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55. 주세페 베르디의 '하루동안의 왕'(Un giorno di regno)

정준극 2014. 5. 12. 18:31

하루동안의 왕(Un giorno di regno) 또는 가짜 스타니슬라오(Il finto Stanislao)

베르디의 첫번째 코미디(멜로드라마 조코소)

베르디에게 실패가 무엇인지 알려준 오페라

 

'하루동안의 왕' 무대

 

Un giorno di Regno를 우리 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로 번역된 것을 보면 A one-Day Reign(하루동안의 왕위) 또는 King for a Day(하루동안의 왕)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왕궁의 하루' '하루만의 임금' 등등 여러가지로 번역해 놓아서 어떤 것이 정확한지 통일이 필요하다. 아무튼 본 블로그에서는 편의상 Un giorno di Regno를 '하루동안의 왕'이라고 번역했다. 이 오페라의 부제목으로는 Il finta Stanislao(가짜 스타니슬라오)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The Pretended Stanislaus(거짓 스타니슬라우스)라고 되어 있다. 부제목을 '거짓 스타니슬라오(스타니슬라우스)'라고 붙인 것은 프랑스의 장교에 불과한 벨휘오르라는 사람이 폴란드의 왕 스타니슬라오라며 거짓으로 행세했기 때문이다. '하루동안의 왕'은 베르디의 두번째 오페라이다. 잘 아는대로 베르디의 오페라들은 거의 모두 비극이다.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나부코, 아틸라, 시몬 보카네그라, 롬바르디, 운명의 힘, 가면무도회, 오텔로, 맥베스.....모두 비극이다. 그런데 '하루동안의 왕'은 코미디이다. 베르디의 마지막 작품인 '활슈타프'도 코미디이다. 그러므로 베르디는 단 두편의 코미디 오페라를 남겼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하루동안의 왕'은 초연에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초연 이래 거의 공연되지 않고 스코어가 설합에 넣어져 있었으나 근래에 들어와서 그나마 관심들을 가지고 간혹 공연이 시도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입장의 오페라이지만 음악은 훌륭하다. 사실상 내용도 재미있다. 베르디라고 하면 당연히 비극을 생각하게 되지만 엄숙하기만 한 그에게 코믹한 면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실패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일깨워준 작품이었다. 그래서 점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베르디에게 이런 내용의 오페라도 있나? 라고 감탄까지 하게 된다.

 

'하루동안의 왕'은 오페라의 장르로 보면 멜로드라마 조코소(melodramma giocoso)이다. 코믹 멜로드라마라는 의미이다. 오페라의 용어에서 멜로드라마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텔리비전 연속극 처럼 질질 짜는 애정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오페라를 19세기에는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멜로드라마 세리아(melodramma seria)라고 하면 '심각한 멜로드라마'라고 하기 보다는 오페라 세리아(순수오페라)를 의미했다. 2막의 '하루동안의 왕'의 대본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일찍이 1818년에 써놓았던 것을 나중에 사용한 것이다.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은 프랑스 작가인 알렉산드르 뱅상 피노 뒤발(Alexandre Vincent Pineu-Duval)이 쓴 Le faux Stanislas(가짜 스타니슬라스)라는 극본을 바탕으로 해서 살도 붙이고 뼈도 붙여서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 것이다. 원래 펠리체 로마니의 가짜 스타니슬라오'의 대본은 보헤미아 출신으로 주로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아달베르트 기로베츠(Adalbert Gyrowetz: 1763-1850)를 위해 쓴 것이었다. 그것을 베르디가 '에라 한번 코믹 오페라를 작곡해서 인기나 끌어보자'라는 순수한 생각으로 음악을 붙였다. '하루동안의 왕'은 1840년 9월 5일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줄리에타의 고민

 

베르디가 '하루동안의 왕'을 작곡하게 된 것은 라 스칼라의 매니저 겸 임프레사리오인 바르톨로메오 메렐리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출세하기 위해 시골 부세토에서 밀라노로 올라온 베르디는 아는 사람들의 추천으로 첫 작품인 '오베르토'(Oberto)를 라 스칼라의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라 스칼라의 메렐리는 무명의 베르디에 대하여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베르토'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성공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메렐리는 청년 베르디를 특별한 재능의 작곡가로 인정하여 라 스칼라에서 공연하겠으니 세편의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르디로서는 참으로 커다란 행운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밀라노의 라 스칼라라고 하면 세계에서 알아주는 오페라의 전당이었다. 그러한 라 스칼라가 무명의 베르디에게 한편도 아니고 무려 세편이나 되는 새로운 오페라들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청년 베르디로서는 참으로 뜻밖의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루동안의 왕'은 그렇게 부탁받은 세편 중에서 첫번째가 된다. 베르디가 27세 때의 일이었다. 한편, 메렐리는 라 스칼라에서 '오베르토'가 성공을 거두자 그것을 가지고 비엔나로 갔다. 비엔나에서도 '오베르토'는 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은 베르디가 누구길래 이런 훌륭한 음악을 작곡했느냐면서 궁금해 했다. 비엔나에서 밀라노로 돌아온 메렐리는 베르디에게 라 스칼라의 가을 시즌을 위해서 코미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로시니나 도니체티, 메르카단테 등의 코믹 오페라가 큰 환영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디도 코미디를 작곡하면 성공을 거둘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메렐리는 베르디에게 시간이 부족하니 펠리체 로마니가 이미 써놓은 대본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작곡을 해 달라고 말했다. 베르디는 실상 로마니의 코미디들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는 바람에 그 중에서 그나마 나쁘지 않은 '하루동안의 왕'을 택해서 작곡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랑과 혼돈

 

그러나 '하루동안의 왕'은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첫날 공연에서 베르디는 오케스트라 피트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관중들의 반응을 직접 볼수 있었다. 그날 밤에 집에 돌아온 베르디는 곰곰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하루동안의 왕'의 실패가 자기의 개인사정 때문에 기인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부세토를 떠나 밀라노에 온지 얼마 후에 그는 첫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이어 바로 전해인 1839년에는 둘째 아들도 저 세상을 보냈다. 그리고 '하루동안의 왕'의 초연을 갖기 3개월 전에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세상에 불행도 이런 불행이 없었다. 그러니 작곡이고 뭐고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하루동안의 왕'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 중에는 라 스칼라의 문제도 있었다. 임프레사리오인 메렐리가 '하루동안의 왕'을 위해 확보한 성악가들은 오페라 세리아에 출연했던 사람들 뿐이었다. 특히 바로 전에 공연했던 오토 니콜라이(Otto Nicolai)의 '성전기사단'(Il templario)에 출연했던 사람들이었다. '성전기사단'은 '아이반호'의 니콜라이 버전이었다. 이들은 코미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코미디인 '하루동안의 왕'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라 스칼라의 무대와 오디토리엄이 '하루동안의 왕'을 공연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는 것이었다. 라 스칼라라고 하면 그랜드 오페라를 소화해야 제격인 무대와 오디토리엄인데 아기자기한 '하루동안의 왕'은 사실상 규모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동안의 왕'은 말하자면 스토리가 구식인데 베르디의 음악은 당시로서 상당히 새로운 패션이어서 무언가 서로 맞지 않았다는 것도 실패의 이유였다. 또한 당시에는 사람들이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이나 '돈 파스쿠알레'와 같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코미디에 익숙해져 있는데 좀 어색하고 세련되지 않은 '하루동안의 왕'이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 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후작부인의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아무튼 베르디는 '하루동안의 왕'의 실패에 몹시 낙망하여 앞으로는 절대로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학교 음악선생이나 하면서 조용히 지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할수 없었다. 베르디는 '나부코'로서 재기하였고 이후 오페라의 황제로 세계 음악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으니 그간의 얘기는 본블로그의 '나부코'편이나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하루동안의 왕'은 밀라노 초연 이후 1845년 베니스에서, 1846년 로마에서, 그리고 1859년에는 나폴리에서 공연되었다. 그런데 베니스와 나폴리의 공연에서는 타이틀을 '하루동안의 왕'으로 그냥 광고하면 사람들이 그저 그렇겠지라고 하며 안 올 것으로 생각되어 '가짜 스타니슬라오'를 제목으로 공연했다. 그래서 그나마 현상유지는 할수 있었다. 그래도 베르디의 생전에 이만큼 공연된 것은 다행한 일이며 베르디의 사후에는 아예 '아니, 그런 오페라가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었다. 그런 전통은 오늘날에도 효력을 발생하여 1960년대에 들어와서여 겨우 몇 군데서 리바이발되었을 뿐이었다.

 

후작부인의 등장

 

비교적 근자에는 1960년 6월에 미국 초연이 있었다. 이어 1961년 3월에 런던 초연이 있었다. 1981년 미국 산디에고에서 열린 '베르디 페스티발'에서도 공연되었다. 1994년에는 뉴욕 그랜드 오페라단이 '비바 베르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오베르토'와 함께 공연하였다. 브롱크스 오페라단은 1983년에 이어 1994년에도 공연하였다.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1999년에 콘서트 형식의 연주회를 가졌다. 당시에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바리톤인 블라디미르 체르노프가 왕의 역할을 맡은 공연이었다. 영국 벅스턴 페스티발은 2001년에 '하루동안의 왕'을 무대에 올렸다. 2008년에는 영국의 오페라 델라 루나(Opera della Luna)가 수정본을 가지고 영국에서 지방순회 공연을 가졌다. 스토리는 움베르토 2세 치하의 전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삼은 것이었다. 수정본에는 조직폭력과 정치유머도 포함되었다. 어떤 평론가는 수정본에 대하여 '벨칸토에서 부족했던 점을 충만시켜 주는 대단히 재미있고 엄청나게 즐길수 있는 여흥 프로그램이었다'라고 말했다. 2013년에는 사라소타 오페라가 새로운 연출로서 공연하여 대대적인 관심을 끌었다. 2013년에는 영국의 글리머글래스 페스티발에서도 공연되었다.

 

벨휘오레와 에도아르도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벨휘오레(Cavaliere di Belfiore: Bar) - 프랑스군 장교, 폴란드 왕 스타니슬라오로 행세

- 켈바르 남작(Barone di Kelbar: B) - 왕위를 찬탈한 사람

- 포지오 후작부인(Marchesa del Poggio: S) - 켈바르 남작의 조카, 젊은 미망인, 벨휘오르를 사랑함

- 줄리에타(Giulietta di Kelbar: MS) - 켈바르 남작의 딸

- 에도아르도(Edoardo di Sanval: T) - 라 로카의 조카. 젊은 장교

- 라 로카(La Rocca: B) - 브리타니의 재무장관

- 이브레아 백작(Count Icrea: T) - 브레스트 군사령관. 후작부인과 약혼

- 델몬테(Delmonte: B) - 거짓 스타니슬라오의 시종

 

이밖에 하인들, 하녀들, 남작의 부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좀 황당하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황당이고 무어고 그런대로 좋아들 했던 모양이다.

 

가짜 스나니슬라오와 하인-하녀들

 

이 오페라에서 거명되는 스타니슬라오는 실존인물로서 폴란드 왕이며 로레인 공작인 스타니슬라브 레츠친스키(Stanislaw Leszczynski: 1677-1766)를 말한다. 그는 1704년에 폴란드 왕위에 올랐으나 폴란드 왕위계승 전쟁의 와중에서 패배하여 왕관을 벗어야 했던 인물이다. 1709년 작손군이 침범한 후 폴타브 전투에서 패배해서였다. 그러므로 그의 재위기간은 5년이다. 그는 절치부심하다가 1733년에 왕위를 되찾았다. 그러나 3년 후인 1736년에 폐위되었고 그후 프랑스에 가서 망명생활을 했다. 샹보르성은 그가 프랑스에서 지내던 곳이었다. '하루동안의 왕'은 1733년 스타니슬라브가 폴란드로 돌아갈 때 일어난 일이다. 그는 폴란드로 돌아간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벨휘오레라고 하는 프랑스군 장교에게 자기의 역할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가짜 왕이 펼치는 웃기는 일들이 이 오페라의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이 오페라의 시기는 1733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장소는 프랑스의 브레스트(Brest) 인근에 있는 켈바르 남작의 저택이다. 브레스트는 프랑스의 서쪽 끝 대서양에 면한 브리타니 지방에 있는 해안도시이다. 파리로부터 6백 Km 떨어진 곳이다.

 

라 로카와 켈바르와 줄리에타

 

[1막] 1장. 켈바르 남작 저택의 회랑이다. 폴란드 왕이었으나 사정상 왕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프랑스에 와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스타니슬라오는 본국 폴란드에서 갑자기 오라는 전갈을 받고 폴란드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프랑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알려지면 곤란할지도 모르므로 전쟁터에서 만나 알고 지내는 프랑스군 청년 장교 벨휘오레가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감안하여 벨휘오르에게 잠시 자기의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벨휘오레는 폴란드의 스타니슬라오 왕으로 행세히며 켈바르 남작의 저택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정중한 대우를 받는다. 사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뜻하지 아니하게 변한데 대하여 대단히 만족하는 입장이다. 벨휘오레의 아리아가 Compagnoni di Parigi...Verra purtroppo il giorno(파리에 있는 옛 전우를 만나서... 연대에서 가장 방종한 장교가 현명한 왕이 되다니)이다. 한편, 켈바르 남작은 얼마전에 자기의 딸 줄리에타와 브리타니의 재무장관인 라 로카의 약혼이 성사되어 한껏 기분이 좋아 있다. 이제부터는 정치적으로도 자기위 위상이 높아지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라 로카의 조카인 에도아르도를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바람직하지 않은 결혼이 추진되고 있다. 켈바르 남작의 조카인 포지오 후작부인이 브레스트 지방의 프랑스군 총사령관인 이브리아 백작과 어쩔수 없이 약혼을 했지만 실은 후작부인은 프랑스군의 장교인 벨휘오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포지오는 얼마전에 후작과 결혼하여 후작부인의 호칭을 갖게 되었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되었다. 그런데 포지오 후작부인이 이브리아 백작과 약혼하게 된 것은 벨휘오레가 줄리에타와의 결혼을 약속하지 못할 것 같다고 물러서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은 벨휘오레도 후작부인을 사랑하고 있기는 하다.

 

다시 결론만 말하자면, 줄리에타 - 에도아르도, 포지오 후작부인 - 벨휘오레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사정상 켈바르 남작의 딸 줄리에타-라 로카 재무장관, 켈바르 남작의 조카 포지오 후작부인-이브리아 백작 겸 총사령관이 연결되어 있다.

 

벨휘오레, 라 로카, 켈바르

                   

그런데 포지오 후작부인이 벨휘오레가 스타니슬라오 왕의 행세를 하며 잠시 머물고 있는 켈바르 남작의 저택을 곧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벨휘오레는 만일 후작부인이 자기를 알아보고 '아니,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아는체를 하면 폴란드왕의 행세를 하고 있는 정체가 발각될 것이므로 곤란한 입장이어서 걱정이다. 벨휘오레는 급히 스타니슬라오에게 편지를 보내어 제발 스타니슬라오의 행세를 그만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브리타니의 라 로카 재무장관의 조카인 에도아르도는 줄리에타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줄리에타의 아버지인 켈바르 남작이 줄리에타와 삼촌인 라 로카와의 결혼을 완강히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심란한 입장이다. 에도아르도는 줄리에타를 잊기 위해 스타니슬라오(실은 벨휘오레)에게 폴란드로 돌아 갈 때에 제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간청한다. 드디어 후작부인이 켈바르 남작의 저택에 도착한다. 후작부인이 스타니슬라오(실은 벨휘오레)에게 소개된다. 후작부인인 스타니슬라오 왕이라고 하는 사람이 실은 자기가 사랑하는 벨휘오레인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자리에서 정체를 밝히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 질 것이므로 현명하게 일단은 모른체 한다. 마찬가지로 벨휘오레도 후작부인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모른체 한다. 그러나 후작부인인 벨휘오레가 아직도 변함없이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테스트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삼촌인 켈바르 남작이 권유한대로 약혼까지 한 이브리아 백작에게 상당한 아양과 함께 사랑하느니 하면서 벨휘오레의 반응을 살핀다. 벨휘오레는 후작부인이 이상하게 행동하자 '오라, 좋다! 한번 해보자 이건가?'라면서 후작부인을 골탕먹일 궁리를 한다.

 

줄리에타를 위로하는 여인들

 

2장. 벨바르 남작 저택의 정원이다. 줄리에타가 시녀 한사람과 함께 정원에 앉아 있다. 줄리에타는 나이 많은 라 로카와 결혼해야 하는 자기의 불행을 한탄한다. 줄리에타의 아리아가 Non san quant'io nel petto...Non vo' quel vecchio이다. 이어 이브리아 백작과 라 로카 재무장관이 도착한다. 그 뒤를 이어 아직도 스타니슬라오 왕의 행세를 하고 있는 벨휘오레, 그리고 에도아르도가 따라 들어온다. 또 그 뒤를 이어 후작부인이 들어온다. 후작부인은 줄리에타가 나이 많은 라 로카와 결혼하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에도아르도와 맺어 지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눈치 하나는 빠른 편인 벨휘오레가 후자부인의 의도를 간파하고 일부러 백작과 라 로카 재무장관을 중요한 문제를 협의할 것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의논하자면서 데리고 나간다. 이제 정원에는 후작부인과 젊은 연인들만이 남아 있다.

 

켈바르와 에도아르도

 

3장. 다시 켈바르 저택의 회랑이다. 아직도 스타니슬라오 왕의 행세를 하고 있는 벨휘오레는 라 로카에게 아주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할수 있도록 해 줄테니 대신 줄리에타와 결혼할 생각을 포기하라는 제안을 한다. 라 로카는 폴란드의 왕이 그렇게 제안하는데 따르지 않을수 없다. 더구나 돈 많은 과부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스타니슬라오 왕이 자기의 출세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가! 라 로카가 켈바르 남작에게 '당신 딸 줄리에타와 결혼하지 않겠소'라고 통보하자 체면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한 켈바르 남작은 라 로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한 와중에 후작부인이 나타나서 삼촌인 켈바르 남작에게 이제 라 로카가 줄리에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그러면 줄리에타와 에도아르도를 어서 결혼시키자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줄리에타와 에도아르도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그거 좋은 생각이라면서 지지의 의사를 보낸다. 그런데 가짜 왕인 벨휘오레가 들어와서 상황이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모든 문제는 자기가 해결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선언한다. 가짜 왕인 벨휘오레는 라 로카에게 후작부인을 소개해 줄 생각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후작부인을 잊지 못하고 있고 후작부인도 자기를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일을 일단보류해 놓은 것이다.

 

벨휘오레와 후작부인

 

[2막] 1장은 다시 켈바르 저택의 회랑이다. 폴란드의 왕인 스타니슬라오(실은 벨휘오레)가 모두가 해피한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선언하자 하인들과 하녀들은 저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하인들과 하녀들은 '에라 될대로 되라지, 우리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까!'라면서 태평스러우면서도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하인-하녀들의 자유분방한 합창에 고무된 에도아르도가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련다'라면서 줄리에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에도아르도는 하인-하녀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에도아르도의 아리아가 Pietoso al lungo pianto...Deh lasciate a un alma amante이다. 벨휘오레와 라 로카, 그리고 줄리에타가 함께 모여서 도대체 왜 켈바르 남작이 줄리에타와 에도아르도의 결혼을 죽어라고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들을 나눈다. 줄리에타가 그건 에도아르도가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말을 들은 벨휘오르는 라 로카에게 당장 가지고 있는 저택 중에서 하나와 상당액의 자금을 두 젊은이에게 주라고 명령이나 하듯이 말한다. 라 로카는 스타니슬라오 왕(실은 벨휘오레)가 더 많은 재산을 주선해 줄것으로 믿고 아무런 불평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벨휘오레는 이제 모두가 해피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라 로카는 켈바르 남작이 요구한 결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다.

 

포지오 후작부인에게 청혼하는 이브리아 백작과 이를 지켜보는 켈바르 남작

 

2장은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베란다이다. 벨휘오레와 후작부인이 마침내 베란다에서 단 둘이서 만난다. 후작부인은 도대체 벨휘오레가 어떻게 해서 폴란드 왕의 행세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수 없어서 궁금하다. 그런데도 벨휘오레는 그 사연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후작부인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다. 그래서 벨휘오레에게 예정된 대로 이브리아 백작과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후작부인은 혹시 벨휘오레가 진짜 폴란드 왕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보다도 과연 벨휘오레가 자기를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해 한다. 결론적으로 후작부인은 벨휘오레가 '오 그대여, 나는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오이다'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다. 후작부인의 아리아가 Si mostri a chi l'adora이다. 마침 이브리아 백작이 나타나자 후작부인은 단호한 심정으로 백작과 결혼할수 없다고 선언한다. 후작부인의 카발레타가 Si, scordar sapro l'infido! 이다. 백작은 갑작스런 후작부인의 태도변화에 적지 않이 당황한다. 한편, 에도아르도는 벨휘오레에게 그를 따라서 폴란드로 가겠다고 말했으므로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반대한다. 줄리에타는 폴란드 왕을 만나서 에도아르도를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다.

 

켈바르와 라 로카

 

후작부인은 아직도 벨휘오레가 아무 말도 없자 다시한번 제스추어를 써서 이브리아 백작과 곧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마침내 벨휘오레가 반응을 보인다. 벨휘오레는 중요한 국가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와 백작이 함께 급히 폴란드로 떠나야 하므로 결혼식을 당장 올릴수는 없다고 말한다. 모두들 자기들의 문제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이런 저런 주장들을 한다. 도무지 완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 벨휘오레에게 편지 한장이 전달된다. 진짜 스타니슬라오 왕이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그가 바르샤바에 무사히 도착했으므로 벨휘오레의 스타니슬라오 행세는 당장 그만두어도 된다는 내용이다. 바르샤바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은 그가 다시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편지에는 또한 비록 하루동안이지만 벨휘오레가 폴란드 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해 수행하였으므로 그 공로를 인정하여 벨휘오레를 프랑스군의 원수(元帥)로 삼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벨휘오레는 편지의 내용을 아직 공개하지 않은채 사람들에게 폴란드 왕으로서 줄리에타와 에도아르도가 결혼하도록 선언한다. 켈바르 남작은 스타니슬라오 왕의 명령이므로 그렇게 하겠다고 응락한다. 벨휘오레는 그제서야 스타니슬라오 왕의 진짜 편지를 읽어준 후에 자기의 진짜 신분을 밝힌다. 이제 프랑스군의 원수가 된 벨휘오레는 후작부인에 대한 사랑에는 영원히 변함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 행복하다. 곧이어 두 커플의 결혼식이 준비된다.

 

피날레에서 그제서야 신분을 밝히는 벨휘오레

 

[명음반] - 벨휘오레, 켈바르, 후작부인, 에도아르도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73년: Ingvar Wixell, Jessye Norman, Fiorenza Cossotto, Jose Carerras - Lamberto Gardelli,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암브로시아 합창단

- 2010년: Guido Loconsolo, Andrea Porta, Anna Caterina Antonacci, Ivan Magri - Donato Renzetti, 테아트로 레지오 디 파르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의 목욕장면을 커버로 사용한 DV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