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57. 안토닌 드보르작의 '루살카'(Rusalka)

정준극 2016. 1. 29. 10:08

루살카(Rusalka)

안토닌 드보르작의 동화오페라(Nixenoper)

 

안토닌 드보르작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공화국)의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이라고 하면 우선 저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원래 제목은 '신세계로부터': From the New World)을 생각하게 된다. 좀 더 드보르작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세계 3대 첼로협주곡 중의 하나라고 하는 첼로협주곡, 그리고 현악4중주곡인 '아메리카', 또는 '슬라브 무곡'에 대한 감동을 말할 것이다.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라고하면 드보르작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Als die alte Mutter mich noch lehrte singen)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는 일곱개의 '집시의 노래'(Zigeunermelodien)에 포함된 곡이다. 그런 드보르작이 오페라도 작곡했다면 '그래?'라면서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드보르작은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어느 누구보다도 대단히 많은 사람이었다. 드보르작은 체코 민족음악을 널리 퍼지게 하고 보존하려면 오페라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바쁜 중에도 체코의 전통 민속음악을 사용하고 체코 전래 민화를 소재로 삼은 오페라를 너댓 편이나 작곡했다. 드보르작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그가 학생시절에 프라하 에스테이츠 극장에서(1862-1871),  그 후에는 프라하 임시극장에서 비올리스트로 활동하던 때부터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간 중에 그는 모차르트, 베버, 로시니, 로르칭, 베르디, 마이에르베르, 바그너, 스메타나 등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폭넓게 접하면서 오페라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드보르작은 그중에서도 마이에르베르의 그랜드 오페라를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바그너의 오페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 사람들은 '반다'(Vanda)와 '디미트리'(Dimitrij)가 마이에르베르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라고 말했으며 또한 '자코뱅'(The Jakobin)과 '루살카'는 아무래도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의 오페라에는 체코의 민족적인 정신이 살아 있다. 오페라의 주제를 보헤미아의 전설이나 역사, 또는 민화에서 가져온 것이 그러하며 보헤미아의 민속음악을 살려서 작곡했다는 것이 그러하다.  

 

보헤미아(체코)의 전래 동화인 루살카에 대한 삽화. 강가에서 님프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한쪽에서 루살카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동경하고 있다.

 

'루살카'는 요정오페라(Nixenoper), 또는 서정적 동화오페라(Lyric fairy tale opera)로 분류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비극적인 내용의 오페라일 뿐이다. 루살카는 슬라브 신화에 나오는 물의 정령이다. 주로 호숫가 또는 강가에 살고 있다. 오페라 '루살카'는 드보르작이 60세 때에 완성한 것이다. 그리하여 1901년 3월 31일 프라하의 에스테이트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대성공이었다. 드보르작의 오페라들이 보헤미아(체코)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다른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당시 보헤미아가 독립국가가 아니고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한 하나의 지방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오페라라고 하면 이탈리아 오페라가 휩쓸고 있었으므로 변방에 불과한 보헤미아의 오페라가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려웠기도 했다. 그리고 전후 동서냉전으로 소련과 동구의 오페라가 철의 장막을 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루살카'의 매력은 세계의 오페라 애호가들을 감동시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슬픈 스토리가 특별한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루살카'는 스탠다드 레퍼토리에는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세계의 주요 오페라단들이 그래도 자주 공연하는 작품이 되었다. '루살카'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아리아는 1막에서 루살카의 노래인 '달에 붙이는 노래'(Mesicku na nebi hlubokem)이다. 콘서트 아리아로 자주 등장하며 영화음악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노래이다.

 

'달에 붙이는 노래'의 루살카(르네 플레밍). 메트로폴리탄. 2014년.

 

초연에서 주인공인 루살카는 당시 보헤미아에서 알아주는 오페라 소프라노인 루체나 마투로바(Ruzena Maturova)가 맡았다. 마투로바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여러 곳에서 오페라의 주역으로서 이름을 떨쳤던 소프라노였다. 마투로바는 드보르작과 인연이 깊어서 드보르작의 오페라 '악마와 케이트'(The Deveil and Kate: 1898)의 주역을 맡았었고 이어 '루살카'의 주역을 맡았으며 그후에는 '아르미다'(Armida: 1904)의 주역까지 맡았었다. 드보르작은 '루살카'를 루체나 마투로브에게 헌정하였다. '루살카'의 체코어 대본은 체코의 시인, 극작가, 대본가인 야로슬라브 크바필(Jaroslav Kvapil: 1868-1950)이 맡았다. 야로슬라브 크바필은 체호프, 입센, 고르키 등의 작품을 체코에 소개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다. 야로슬라브 크바필의 대본은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Karel Jaromir Erben: 1820-1862)과 보체나 네므코바(Bozena Nemcova: 1811-1870)가 수집하여 엮어낸 체코의 전래 동화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보체나 네므코바는 비엔나에서 태어난 체코의 여성 국민주의 작가로 '할머니'(Bakicka)는 그의 대표작이다. 체코의 역사학자이며 시인인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의 대표작은 '꽃다발'(Kytice)이다. 이 두 사람이 보헤미아의 전통 민화 또는 전설을 수집해서 정리하여 '루살카'를 내놓았지만 사실 '루살카' 스토리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그리고 프리드리히 들 라 모트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e)의 '운디네'(Undine)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인어공주'라고 하면 디즈니 만화영화로서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이어서 더 이상의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이며 '운디네'는 로르칭의 오페라로서 잘 알려진 것이다. 크바필은 작곡가가 누가 될지 모르는 입장에서 대본을 완성했다. 크바필은 그 전에 '프린세사 팜펠리스카'(Princessa Pampeliska)라는 극본을 쓴 것이 있다. 역시 '루살카'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크바필은 대본을 완성하고 나서 아는 작곡가들을 만나서 오페라로 만들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모두들 '하고는 싶은데 다른 할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대답이었다. 그중 어떤 친구가 드보르작이 오페라를 위해 대본을 구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말했다. 사실상 드보르작은 위대한 시인이며 작가인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의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러므로 에르벤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대본이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을 가졌다. 드보르작은 크바필의 대본을 읽어보고 나서 즉각적으로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1년후에 오페라 '루살카'가 나오게 되었다. 그후 드보르작은 에르벤과 콤비가 되어 에르벤의 민속 발라드 시를 바탕으로 네개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소프라노 루체나 마투로바의 '루살카' 프라하 초연의 장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프라하에서의 '루살카'가 그야말로 대인기를 차지하자 이어서 체코의 여러 도시에서 마치 경쟁이나 하듯 '루살카'가 공연되었다. 당시 체코 사람으로서 드보르작의 '루살카'를 알지 못한다면 체코인으로서 행세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루살카'가 체코 이외의 나라에서 처음 공연된 것은 슬로베니아의 류블리아나에서였다.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서 공연된 것은 1910년으로 체코오페라단에 의해서였다. 1935년 슈투트가르트에서의 공연은 독일어 대본을 사용한 것이었다. 영국 초연은 1935년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였다. 1983년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ENO)의 공연은 오페라영화로 만들어졌다. ENO의 공연은 그후 여러 극단에서 연출을 본받아 사용했다. 미국 초연은 1975년 산디에고 오페라에서였다. 타이틀 롤은 캐스린 불레인(Kathryn Bouleyn)이 맡은 것이었다. 메트로폴리탄에서의 리바이발은 2014년에 이루어졌다. 당대의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루살카(안느 소피 뒤프렐)와 왕자(피터 웨드). 스카티쉬 오페라. 2016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루살카(Rusalka: S). 물의 님프

- 왕자(The Prince: T). 루살카가 사랑하는 사람

- 보드니크(Vodnik: B). 루살카의 아버지. 물의 정령

- 외국 공주(The foreign princess: S). 왕자와 사랑하는 사이.

- 예지바바(Jezibaba: MS). 예시바바. 마녀

이밖에 숲의 정령들(S, S, Cont.), 사냥터지기(T), 고기굽는 사람/부억에서 심부름하는 소년(S), 사냥꾼(Bar) 등이 나오며 합창단은 숲의 님프들, 왕궁의 손님들, 왕자의 수행원들을 맡는다.

 

왕자를 사랑하기에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루살카. 하노버 국립오페라

 

[1막]. 수정처럼 맑은 호수의 한쪽 호반에서 숲의 정령들이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춤을 추고 있다. 그러더니 생각이나 난듯이 물결 아래 깊은 곳에 살고 있는 호수의 지배자 보드니크를 도깨비라고 부르며 놀리면서 웃고 떠든다. 버드나무 가지들이 호수 위로 내려진 곳에 보드니크의 딸인 루살카가 홀로 앉아 있다. 루살카는 저 먼곳을 바라보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보드니크가 루살카의 모습을 보고 다가와서 무슨 걱정이 있기에 혼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느냐고 묻는다. 루살카는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결심이나 한듯 보드니크에게 어떤 왕자가 호수에 수영을 하러 간혹 오는데 그만 그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루살카는 호수에 들어온 왕자를 사랑하여서 손으로 붙잡고자 하지만 루살카의 손은 파아란 물결이 되어 사라질 뿐이라고 한탄한다. 이어 루살카는 인간들은 물의 님프들을 볼수 없으며 님프들의 소리도 듣지 못하므로 루살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왕자는 루살카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며 눈물을 떨군다. 루살카는 아버지 보드니크에게 남프가 인간이 될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제발 가르쳐 달라고 애원한다. 딸의 마음을 애처롭게 생각한 아버지는 루살카에게 인간이 되는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인간들이란 죄악에 가득차 있는 존재이므로 일부러 그런 인간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인간이 되는 것은 정말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루살카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보드니크는 아무리 말해도 딸의 마음을 돌릴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결국 루살카에게 호수 저편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마녀 예지바바를 찾아가면 될 것이라고 마지못해 얘기해 준다.

 

루살카와 보드니크. 프라하국립극장

 

보드니크는 물 속 깊이 들어가서 자취를 감추고 호수에는 루살카만이 남아 있다. 루살카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다니면서 마침 떠 오른 달에게 자기의 소원을 기도하다. 이때 부르는 루살카의 아리아가 '달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the Moo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달의 노래'라고 알려진 곡이다.

 

하늘 높이 저 멀리 있는 달이여

그대의 빛은 멀리까지 볼수 있어요

그대는 넓은 세상 곳곳을 다니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곳도 들여다 볼수 있지요

그러니 내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어요

 

은빛 달이여, 그에게 전해주세요

비록 잠시이지만 그를 포옹한다고 말이예요

그래서 그가 나에 대한 꿈을 꾸도록 해주세요

저 멀리서도 그가 빛을 발하도록

그에게 말해주세요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인간인 그가 정말로 나를 꿈 꾼다면

옛 기억이 그를 깨우게 해주세요

달빛이여 사라지지 마세요, 사라지지 마세요

 

달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루살카. 바르셀로나 리세우극장

 

기도를 마친 루살카는 예지바바의 오두막집으로 향한다. 루살카는 예지바바에게 어째서 그같은 소원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예지바바는 루살카를 위해 님프를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미약을 만들어 줄수는 있지만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대가라는 것은 첫째 미약을 마시는 즉시 음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즉, 말을 할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만일 상대방이 배신을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루살카는 그런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데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왕자의 사랑을 차지하게 되는 것에만 정신을 쏟는다. 루살카는 마녀 예지바바의 조건들을 당장 수락하고 미약을 마신다. 이튿날 아침이다. 왕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나온다. 왕자는 마침 들에서 하얀 사슴을 만나 뒤를 쫓는다. 그러나 하얀 사슴은 워낙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왕자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어서 사냥들을 하라고 멀리 보내고 혼자 남는다. 왕자의 마음 속에는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솟아나서 어찌할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후 왕자는 자기 앞에 나타난 루살카를 본다. 루살카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왕자는 자기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이 루살카인 것을 알고 크게 놀라면서도 루살카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왕자는 루살카를 데리고 궁전으로 돌아간다. 호수의 저 깊은 곳에서는 루살카의 언니들이 루살카가 인간 세상으로 떠난 것을 슬퍼하는 비탄의 소리가 들린다.

 

마녀 예지바바를 찾아간 루살카. 프라하국립극장

 

2막. 왕궁의 정원 한쪽, 나무그늘이 우거진 곳에서 사냥터지기와 키친 보이가 왕자의 이상하고도 유별난 장래의 신부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왕자가 데려온 아가씨는 이름도 모르고 더구나 말도 못하기 때문에 저러다가는 얼마 안 있어서 변덕스러운 왕자가 싫증을 낼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이들은 혹시 아가씨가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데 왕자의 결혼식을 위해 방문한 다른나라 공주가 어느새 왕자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 장면은 바뀌어 궁전 안의 어느 방이다. 왕자가  루살카와 함께 있다. 왕자는 루살카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루살카가 아름다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나라 공주가 나타나서 왕자에게 어찌하여 결혼식의 하객들을 접대하지 않고 루살카하고만 있느냐면서 비난한다. 그러자 왕자는 오히려 루살카를 꼭 포옹하면서 공주의 비난은 들은체도 아니하고 루살카와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왕자는 루살카의 몸이 의외로 차가운 것을 느끼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공주는 그런 왕자의 행동을 조롱하면서도 만일 자기가 왕자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의 행복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왕자는 루살카에게 방으로 가서 그날 밤 왕궁에서의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루살카가 자기의 방으로 가자 공주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온갖 매력을 다해서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자 왕자는 어느새 루살카를 잊고 공주에게 청혼코자 한다. 왕궁에서 무도회가 시작된다. 루살카가 준비를 다 하고 무도회에 참석해 보니 왕자는 이미 다른나라 공주와 함께 무척 즐거운 듯이 춤을 추고 있고 이어서 다른 축하객들과 함께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왕궁에서의 파티장면

 

그날 늦은 밤에 물 속 깊은 곳에 있는 루살카의 아버지인 보드니크는 무언가 괴이하고 두려운 느낌 때문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잠시후 보드니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깊은 물 속으로부터 왕궁의 정원에 있는 연못을 통해서 인간 세상으로 나온다. 보드니크는 사랑하는 딸 루살카가 눈물을 흘리면서 왕궁에서 뛰쳐 나와 어디론가 정처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아버지를 본 루살카는 아버지의 품에 뛰어 들면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며 아버지의 용서를 빈다. 루살카는 님프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수가 없다. 그러나 루살카의 공허한 마음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왕자는 루살카를 까맣게 잊은 듯 다른나라 공주와 함께 히히덕 거리면서 정원으로 나온다. 왕자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아무도 루살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루살카는 그래도 마지막으로 왕자의 마음을 얻고자 왕자에게 달려가서 포옹코자 한다. 왕자는 루살카를 밀치면서 루살카의 몸이 마치 어름처럼 차갑다고 소리친다. 보드니크는 루살카를 데리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왕자는 다른나라 공주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는 입장이 된다. 그런 왕자를 보고 공주는 사악한 웃음을 머금는다.

  

루살카(야르단카 밀코바)를 위로하는 언니

 

3막. 비탄에 빠진 루살카는 예지바바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닥친 비통한 운명을 막을수 있는지 묻는다. 예지바바는 루살카에게 단검 한 자루를 주면서 루살카를 배신한 그 인간을 죽여야만 저주와 겁벌로부터 자유롭게 될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살카는 차마 왕자를 죽일 수가 없다. 루살카는 예지바바로부터 받은 단검을 호수에 버린다. 루살카는 왕자를 사랑했던 그 행복감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루살카는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죽음의 정령으로 변한다. 그로부터 루살카는 호수의 가장 깊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살며 밤에만 밖으로 나와서 인간을 유인하여 죽음의 덫으로 끌어들일수 있게 된다. 루살카의 언니들도 루살카가 이미 자기의 모든 기쁨을 잃었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편, 사냥터지기와 키친 보이는 왕자가 데려온 아름다운 아가씨가 왕자를 배신하고 왕궁으로부터 사라진 것이 요사스런 마법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마녀를 찾아내서 마녀와 루살카의 사악함을 비난한다. 호수 속에 있던 보드니크가 그 소리를 듣자 루살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물속에서 급히 나와서 천둥과 회오리바람 같은 소리로 루살카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왕자라고 소리친다. 보드니크의 갑작스런 출현과 큰 소리에 겁을 먹은 두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다. 보드니크가 숲의 정령들에게 루살카의 슬픈 이야기를 해주자 숲의 정령들은 모두 논물을 흘리며 애통해 한다.

 

예지바바는 루살카에게 단검을 주면 루살카를 배신한 인간을 죽여야 저주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말한다. 르네 플레밍과 돌로라 차직. 메트로폴리탄

 

그날 밤에 왕자는 문득 혹시 낮에 보았던 하얀 사슴을 찾을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호수가의 들판을 거닌다. 그러자 왕자는 어쩐지 루살카가 근처에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갖는다. 왕자는 주변을 살피며 루살카를 찾아본다. 루살카는 자기의 운명이 바뀌어 사람들을 유인해서 죽음의 덫으로 몰아 넣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랑했던 왕자를 잊을수가 없어서 왕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왕자는 너무나 반갑다면서 루살카에게 다가가지만 루살카는 왕자와 거리를 두며 어째서 자기를 버리고 배신했는지 묻는다. 왕자는 자기의 잘못이라면서 루살카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서 제발 전처럼 다시한번 키스해 달라고 간청한다. 루살카는 주저주저하다가 만일 키스를 하게 되면 왕자에게 죽음과 겁벌을 가져오게 된다고 마지 못해서 말한다. 왕자는 그런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살카에게 다가가서 키스를 한다. 왕자는 루살카의 팔에 안겨서 죽는다. 루살카는 왕자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속삭이듯이 한다. 보드니크가 이 모든 희생은 쓸데 없는 것이라고 한탄하는 중에 루살카는 다시 깊고 어두운 물속으로 다른 악마들과 함께 내려간다.

 

죽어가는 왕자와 루살카. 르네 플레밍과 피오트르 베찰라. 메트로폴리탄.

 

[루살카와 반지의 제왕]

존 로날드 루엘 톨킨(J. R. R. Tolkien)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쓴 사람이다. 그런데 톨킨은 이 소설을 쓰면서 모험, 마법, 선과 악, 전쟁 등을 소재로 삼았지만 로맨스에 대하여는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주위의 사람들이 아무래도 로맨틱한 이야기도 들어 있어야지 좋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한 가닥의 스토리를 넣었다. 루살카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반지의 제왕'의 소설을 읽었거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요정인 아르웬(Arwen)이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인 아라곤(Aragorn)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보통 일반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르웬은 죽음과는 관계가 없는 요정이며 아라곤은 그렇지 못한 인간이다. 아르웬이 아라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려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결국 아르웬이 언젠가는 죽는 인간처럼 되기로 하며 따라서 사랑이 승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아라곤이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대답은 드보르작의 '루살카'에 있다. 로맨틱한 끝맺음은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대답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르웬과 아라곤의 결혼 장면

 

[비난 받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루살카]

2012년 봄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이른바 새로운 연출시도라면서 '루살카'를 무대에 올렸다. 무대는 중세의 보헤미아 지방이 아니라 현대의 어떤 사창굴로 설정했다. 문제는 인어(루살카)를 창녀로 설정했고 예지바바는 사창굴의 마담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뻔하다. 손님(왕자)가 사창굴을 찾아와서 창녀(루살카)와 지내다가 순정의 창녀에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안델센의 '인어공주'가 나온 이래 이 소설을 보고 또는 영화나 연극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어공주가 가련하고 불쌍해서이다. 그런데 예술의 전당이라는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인어공주'의 또 다른 번안인 '루살카'를 공연하면서 무대를 사창굴로 설정하고 등장인물들을 창녀 또는 건달로 설정한 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수 없다. 상당수의 관객들은 오페라가 공연되는 도중에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비난의 소리와 함께 퇴장하였다. 사람들은 '루살카'를 공연한다고 하니까 180파운드(32만원)에 이르는 입장권을 사서 들어 왔지만 도저히 참고 볼수가 없어서 퇴장한 것이다. 물론 끝까지 남아서 관람한 사람들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커튼이 내려지자 마자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내며 불쾌감을 표현하였다. 이렇듯 엉뚱한 설정을 책임 맡은 사람은 연출가들인 요시 빌러(Jossi Wieler)와 세르지오 모라비토(Sergio Morabito)이었다. 이들은 동화를 실제 현실에 맞추기 위해서 그런 설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새로운 연출의 '루살카'가 치졸하고 천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명문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그럴수가 있느냐는 항의였다. 하기야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얼마전에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던 안나 니콜 스미스의 이야기를 담은 '안나 니콜'이라는 오페라를 서슴없이 무대에 올린 일이 있다. 저속한 내용의 오페라였다. 왜 그렇게 자꾸 저속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새로운 시도라는 미명아래에서 저속함이 명분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로얄 오페라 하우스의 '루살카'가 비난의 화살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인 카스퍼 홀튼(Kasper Holten)은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새로운 연출을 엔조이 한 사람들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입장료를 환불해 달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소리를 질러서 야유를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브라보를 외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라고 변명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루살카'. 물의 님프들을 창녀로 설정했고 마녀를 사창굴의 마담으로 설정하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