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메르카단테의 '두 명의 피가로' - 108

정준극 2014. 5. 13. 10:51

두 명의 피가로(I duo Figaro) - The Two Figaros

사베리오 메르카단테의 오페라 부파

보마르셰의 3부작에 대한 추가 드라마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2013년은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 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그래서 당연히 베르디와 바그너를 재조명하는 여러 뜻깊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런 중에도 벨칸토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2013년에는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데카에서 '노르마'를 취입한 것이었고 오페라 라라(Opera Rara)가 도니체티의 '카테리나 코르나로'(Caterina Cornaro)를 내놓은 것이었다. 게다가 특별히 메르카단테의 오랫 잊혀져 있었던 '두 명의 피가로'도 음반으로 나왔다. 모두들 벨칸토 시대를 회상케 하는 유명작품들이다. 그래서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는 2013년이 '벨칸토'의 한여름을 새롭게 시작하는 해라고까지 말했다.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 1795-1870)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오페라 애호가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벨칸토 작곡가라고 하면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3인을 거론하지만 실은 메르카단테도 이들에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메르카단테는 스페인에 가서 상당기간을 지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사람들보다 덜 알려진 형편이었을 뿐이다. 메르카단테는 약 60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그 중에서 '엘리사와 클라우디오'(Elisa e Claudio), '일 브라보'(Il bravo), '오라치와 쿠리아치'(Orazi e Curiazi), '자이라'(Zaira), '비르지니아'(Virginia), '일 지우라멘토'(Il giuramento) 등은 19세기 중반에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각지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이다. 메르카단테는 오페라 뿐만 아니라 기악곡과 성악곡도 많이 남겼다. 그의 오페라 중에 '두 명의 피가로'(I due Figaro)라는 것이 있다. 1826년에 작곡했으나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거의 10년 후인 1835년에 처음 공연된 오페라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메르카단테의 오페라들에 대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두 명의 피가로'가 은근히 흥미를 끌고 있음은 벨칸토 애호가들에게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백작저택에서의 연회장면

 

피가로라고 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생각하게 된다. 피가로는 프랑스의 소설가인 보마르셰의 유명한 '3부작'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래서 보마르셰의 3부작을 일명 '피가로 3부작'이라고 부른다. 3부작 중에서 첫번째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거리의 만능선수인 피가로가 알마비바 백작과 아름다운 로지나의 결혼을 주선해 준다는 내용이다. 두번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피가로가 자기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백작부인의 하녀 수잔나를 백작이 눈독을 들이고 있자 백작을 백작부인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수잔나와 예정대로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 제3부는 '죄많은 어머니'이다. 백작부인이 케루비노라는 미청년과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았으며 백작은 백작대로 어떤 여인과 관계를 가져 딸을 낳았는데 이 아들 딸이 서로 사랑하여서 결혼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며 따지고 보면 반드시 남매라고 볼수가 없기 때문에 결혼을 허락한다는 내용이다. '죄많은 어머니'는 프랑스의 다리우스 미요가 현대 오페라로 만든 것이 있다. 그런데 제3부가 또 하나 있다. 그렇다고 보마르셰가 쓴 제3부가 아니다. 프랑스의 배우 겸 작가인 오노레 리샤르 마르텔리(Honore Richard Martelly)라는 사람이 쓴 '두 명의 피가로'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두 명의 피가로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세빌리아의 거리 이발사였다가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결혼을 주선해 주었다고 해서 백작이 자기의 개인 비서겸 전용 이발사로 고정직장을 갖게 해준 바로 그 피가로이다. 또 다른 피가로는 소년시절에 백작 저택에 귀족생활을 배우러 온 견습생이었다가 아름다운 백작부인(로지나)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바람에 백작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군대에 강제로 입대했던 케루비노가 피가로라는 가명으로 나타난 경우를 말한다. 케루비노는 귀족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군대에서 열심히 복무해서 대령으로 승진하였는데 이번에는 백작부인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백작부인의 딸인 이네즈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고 싶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보마르셰의 제3부에서 케루비노와 백작부인이 사랑하여서 아들을 낳았다든지 하는 얘기는 '두 명의 피가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백작 저택에서의 파티

 

'두 명의 피가로'의 대본은 유명한 대본가인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가 쓴 것이다. 로마니의 I due Figaro는 상당한 환영을 받아서 이를 대본으로 삼아 19세기 초반에 여러명의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만들었다. 사베이로 메르카단테도 그렇지만 이외에도 미켈레 카라파(Michele Carafa: 1820), 조반니 파니짜(Giovanni Panizza: 1824), 디오니지 브로지아디(Dionigi Brogiadi: 1825), 조반니 안토니오 스페란차(Giovanni Antonio Speranza: 1839) 등이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아무래도 메르카단테의 '두 명의 피가로'가 그나마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메르카단테의 '두 명의 피가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차르트와 로시니의 오페라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대동소이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성격의 인물들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두어명의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한다. 물론 백작부인의 딸인 이네즈가 등장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토리비오(Torribio)와 플라지오(Plagio)라는 못보던 사람들도 등장한다. 토리비오는 옛날에 케루비노를 섬기던 하인이다. 그는 돈 알바로라는 귀족 행세를 하며 이네즈에게 프로포즈하고자 한다. 플라지오는 백작의 집을 방문하여 머물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이름인 플라지오라는 말은 '표절'(plagiarism)이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지오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Il Turco in Italia)에 나오는 시인 프로스도치모(Prosdocimo)의 사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사람이다.

 

케루비노(피가로-2)와 이네즈

 

수잔나는 이 오페라에서도 일이 많아 죽을 지경인데다가 백작을 비롯해서 이남자 저남자들이 수잔나의 치마자락을 쫓아다니고  있어서 피곤하다. 피가로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처럼 자신에 넘쳐 있는 만능선수가 아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어리둥절하기가 일수이고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 당황해 하는 경우가 많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백작부인(로지나)은 아직도 우울하고 기분이 언짢은 입장이다. 그리고 백작(알마비바)이 자기에게 또 다시 싫증을 내고 있고 심지어는 떨떠름하게 대하고 있어서 속이 상해 있다. 백작은 예나 지금이나 영주로서, 그리고 잘난 남자로서 기고만장하고 있다. 그런데 백작과 백작부인 사이에는 여식이 하나 생겼다. 이네즈이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이네즈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 이네즈는 편의와 기분에 의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진정 사랑하는 청년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케루비노가 다시 등장한다. 케루비노는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장성한 청년이 되어 있다. 더구나 '피가로의 결혼'에서 보는 것처럼 천방지축의 여성애호가가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남성이다. 케루비노는 이제 높은 지위의 장교이지만 자기의 정체를 일부러 감추고 '피가로'라는 이름으로 백작의 비서로 들어간다. 케루비노는 백작부부에게 이네즈라는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서 은근히 알아보았더니 백작이 어떤 귀족 집안의 아들과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이네즈를 구원해 주어야 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겨서 이네즈에게 접근하기 위해 백작의 비서로 들어간 것이다. 왜 하필이면 피가로라는 이름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피가로라는 이름은 흔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문제로 삼을 필요가 없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케루비노가 피가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오리지널 피가로와 함께 두 명의 피가로가 된 것이다.

 

이네즈와 아가씨들

 

백작부인은 백작의 비서로 들어온 청년 피가로를 보고 옛날에 케루비노가 자기를 사모한 나머지 노래까지 작곡해서 들려준 일이 생각나서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피가로-2가 케루비노인줄은 알지 못한다. 더구나 피가로-2는 아직도 미모의 백작부인에게 은근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니 백작부인으로서도 피가로-2에 대하여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아무튼 케루비노(피가로-2)는 온갖 계략을 동원해서 끝내는 이네즈와의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 케루비노에 대하여 관중들은 환호를 보내지만 무대 위의 백작과 백작부인은 속이 상하고 불쾌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피가로-1의 활약을 간과할수 없다. 피가로-1은 유쾌하면서도 반항적인 인물이 아니다. 피가로-2가 이네즈와 결혼하도록 계략의 일부가 되는 사악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피가로 -2가 이네즈와 결혼함으로서 받는 상당한 액수의 지참금을 둘이서 나누어 갖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가로-1은 작가로 등장하는 플라지오에게 피가로-2와의 음모를 미리 얘기해주어 소설의 주제로 삼도록 하고 별도의 사례를 받을 생각이다.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공연

 

메르카단테의 '두 명의 피가로'에는 그가 1826년에 몇달 동안 마드리드에서 궁정음악가로서 지내서 그런지 스페인의 춤과 스페인의 악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니 다른 어느 피가로 오페라보다 정열에 넘쳐 있다고 말할수 있다. 메르키단테의 스페인 정취의 음악은 낭만주의 마스터들인 프랑스의 샤브리에나 비제가 스페인 음악을 표현한 것보다 더 스페인적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메르카단테는 벨칸토와 베르디 초기작품을 연결해 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메르카단테의 음악이 모차르트의 작품과 흡사하다는 주장을 했다. 특히 '두 명의 피가로'가 그렇다는 것이다.

 

백작과 피가로 1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