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조반니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 109

정준극 2014. 5. 19. 21:30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 La precauzione inutile(쓸데 없는 조심)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의 코믹 오페라

모차르트도 아리아 한 곡을 기여

 

조반니 파이시엘로

 

피에르 보마르셰의 '피가로 3부작' 중에서 2부인 '피가로의 결혼'이 모차르트에 의해 먼저 오페라로 만들어졌고 그후에 1부인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로시니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있어서 '거 참! 2부가 1부보다 먼저 오페라로 만들어졌네!'라면서 신통해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비엔나에서 초연된 것은 1786년이고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로마에서 초연된 것은 1816년이다. 그러므로 2부와 1부 사이에는 3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다. 그래서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 1부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2부부터 보았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1부인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이탈리아의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에 의해 '피가로의 결혼'보다 4년 앞선 1782년에 공연되었다. 비엔나나 로마가 아니고 제정러시아의 생페터스부르크에서 공연된 것이 특별할 뿐이다. 파이시엘로는 약 7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오페라 이외에도 칸타타, 오라토리오, 미사곡, 기악곡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대단한 작곡가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파이시엘로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대본은 주세페 페트로셀리니(Giuseppe Petrosellini)라는 사람이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오리지널 스코어에는 대본을 누가 썼다는 기록이 없다. 그래서 페트로셀리니가 썼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음반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풀 타이틀은 Il barbiere di Siviglia ovvero La Precauzione inutile, dramma giocoso per musica tradotto liberamente dal francese, da rappresentarsi nel Teatro Imperiale del corte, l'anno 1782이다. 굳이 번역하면 '세빌리아의 이발사 또는 쓸데 없는 조심, 음악을 위한 드라마 조코사(코믹 드라마). 프랑스어 소설을 자유번역하다. 1782년 제국 궁정극장에서 공연'이다. 오늘날 오페라의 제목을 이렇게 해설조로 쓰는 사람은 없지만 그때에는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파이셀리오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스토리는 거의 같다. 그렇지만 차이도 있다. 파이셀리오의 것은 코믹한 내용보다는 백작과 로지나의 사랑 이야기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리고 파이시엘로의 오페라에는 두명의 하인이 추가로 등장한다. 하나는 조비네토(Giovinetto: T)로서 '젊음'이라는 별명의 바로톨로의 늙은 하인이고 다른 하나는 '조심'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벨리아토(Svegliato: B)로서 조심은 커녕 그저 시간만 있으면 졸려서 눈을 감는 하인이다. 이밖에 알마비바 백작(T), 로지나(S), 바로톨로(buffo), 피가로(Bar), 돈 바질리오(B), 공증인(B) 등은 모두 같다.

 

군인으로 변장하고 로지나에게 접근하려는 백작

 

실상 보마르셰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발표된 이래 여러 작곡가들이 그 소설을 음악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몇편은 공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다른 어느 시도보다도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초연된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서둘러 공연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비엔나에서의 공연은 대표적인 성공이었다. 비엔나에서는 1783년부터 1804년까지  다섯 곳의 극장에서 무려 100회 이상이나 공연되었다. 비엔나에서는 독일어 대본을 사용하는 공연도 있었고 이탈리아어 대본을 사용하는 공연도 있었다. 이밖에도 나폴리, 바르샤바, 프라하, 베르사이유, 카셀, 브라티슬라바, 만하임, 리에즈(Liege), 쾰른, 마드리드, 베를린, 런던, 파리, 리스본,브뤼셀, 스톡홀름, 미국의 뉴올리언스 등에서 공연되었다. 1787년 나폴리에서 다시 공연될 때에는 3막으로 단축되었고 파이시엘로가 새로 노래 세곡을 더 써 넣었다. 로지나를 위한 La carta che bramate 와 알마비바를 이한 Serena il bel sembiante, 그리고 1막의 피날레였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무대

 

모차르트는 1789년에 그의 처형인 요제파 호퍼(Josepha Hofer)가 로지나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으면 3막에서 로지나의 아리아인 Gia riede primavera 대신에 Schon lacht der holder Fruhling(K 580)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도록 작곡하여 헌정했다. 그러나 스코어가 분실되어 어떤 노래인지는 알수 없다. 다만, 마지막 부분의 리토르넬로(반복되는 기악곡)만이 남아 있다. 그나마 노래의 반주를 위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미완성으로 되어 있어서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온지 한참 후에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동안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더 인기를 끌었던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져서 결국 로시니의 것이 완전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고 파이시엘로의 것은 슬며시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에 다행스럽게도 리바이발 된 것은 2005년 뱀턴클래시컬오페라에서 영어 대본으로 공연된 것이다.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스토리는 로시니의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으므로 생략.

 

파이시엘리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음반. 로지나와 백작과 피가로와 바르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