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영혼(L'anima del filosofo) - The Soul of the Philosopher
다른 제목으로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
요제프 하이든의 마지막 오페라, 하이든 생전에는 공연되지 못함
체칠리아 바르톨리. 코벤트 가든. 2010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오의 이야기는 16세기에 오페라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부터 작곡가들과 대본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제였다. 오르페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가이다. 노래를 잘 불렀으며 루트처럼 생긴 키타라(Kithara)라는 악기를 잘 탔다. 그래서 오르페오를 '노래의 아버지'(Father of song)이라고 부른다. 그가 키타라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물론, 짐승이나 새들까지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음악에 빠져 들어갔다고 한다. 심지어는 풍랑이 일던 바다까지도 오르페오의 노래를 듣고 잔잔해 졌다고 한다. 세상의 어느 신이라고 해도 오르페오만큼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 그런 뛰어난 음악가이기 때문에 오르페오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을 상관하지 않고 가장 완벽한 음악가의 모델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 아무리 마리아 칼라스라고 해도 짐승들을 잠잠케 하고 바다의 파도를 재울수는 없지 않은가? 오르페오(또는 오르페우스)는 그리스의 트레이스(Thrace) 출신이다. 트레이스라는 나라는 뛰어난 가수들이 많이 나온 나라로서 유명한 곳이다. 오르페오는 아폴로의 아들이라고 한다. 아폴로는 빛의 신, 태양의 신, 예술의 신이다.
요제프 하이든
그런 오르페오이기 때문에 16세기에 플로렌스에서 오페라가 처음 시도되었을 때에 몬테베르디와 페리는 오르페오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삼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노래만 부르며 연극을 한다는 것이 극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오페라 작곡가들은 '노래의 아버지' 오르페오를 등장시켜서 그런 어색함을 불식시키려 했다. 과연!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오르페오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니까 도대체 어떤 노래이기에 귀신들도 감동시켰는지 들어보려고 몰려왔다. 오페라의 아버지라고 하는 몬테베르디의 첫 오페라가 '오르페오'(L'Orfeo)이다. 역사상 가장 처음의 오페라라는 작품이다. 그보다 앞서서 자코포 페리가 '에우리디체'(Euridice)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으나 불행하게도 악보가 분실되는 바람에 어떤 음악인지 알수 없어서 기록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오페라를 개혁한 글룩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밖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서 오페라를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는 독일의 에른스트 크레네크(Ernst Krenek)가 1926년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pheus und Eurydike)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고 프랑스의 오펜바흐가 1858년에 '지하세계에 간 오르페오'(Orphée aux enfers)라는 오페레타를 작곡한 것이 있다. 하이든이 그 반열에서 벗어날수는 없었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역의 엘레나 크산토우다키스)
하이든은 1791년에 런던에 있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였다. 처음 영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런던의 임프레사리오인 요한 페터 잘로몬(Johann Peter Salomon)과의 계약에 의해서 방문했다. 1791년 1월 1일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의 사람들은 하이든에 대하여 일찍부터 많은 얘기를 듣고 있었다. 런던 사람들은 하이든을 오랜동안 한번 만나보고 싶어했다. 영국의 시인들은 하이든이 오자 그를 '이 시대의 오르페오'(Orpheus of this age)라고 하면서 찬사를 보냈다. 당시 런던에서는 중상층을 중심으로 음악예술에 대한 기호가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었다. 런던은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안정된 도시였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서는 간혹 왕권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정치적으로 불안했으나 런던은 그렇지 않았다. 음악당이나 콘서트홀이 이곳저곳에 세워졌으며 오페라 하우스나 음악정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런던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을 듣기를 열망했다. 18세기에 런던에서는 극장에 표를 사서 들어가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음악회 광고도 본격적으로 펼처졌다. 임프레사리오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런던의 임프레사리오들은 1780년대에 비엔나에서 가장 활동이 큰 모차르트나 하이든을 초청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초청하지 못했고 하이든만을 겨우 초청하는데 성공했다.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이기도 한 잘로몬은 1790년 늦게 비엔나에 와서 하이든을 만난다. 잘로몬의 일성은 유명해서 기록에 남아 있다. '나는 런던에서 온 잘로몬이올시다. 당신을 데려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내일 계약을 맺읍시다.'였다. 하이든이 런던행을 수락한 것은 타이밍이 절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름아니라 하이든을 무척 지원해주던 파트론인 니콜라우스 에스터하지 공자가 바로 몇달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후계자인 안톤 에스터하지 공자는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인지 궁정 오케스트라를 해체하고 고용하고 있던 성악가들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때문에 하이든도 모처럼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래서 런던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이든은 연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배를 타고 가면서도 런던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멀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하이든은 58세였다. 하이든이 비엔나를 떠나기 전날 저녁에 모차르트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에게 '선생님, 건강도 그러시고 나이도 연만하신데 런던에 꼭 가야 하시겠습니까?' 라며 섭섭해 했다고 한다. 과연! 모차르트는 하이든이 런던에 머물고 있는 중인 1791년 12월에 35세라는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으니 하이든과의 저녁 식사는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지하세계의 에우리디체(엘리자베트 숄)
런던에 도착한 하이든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좋은 호텔에 머물렀고 점심이면 점심, 저녁이면 저녁마다 서로 대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있는 바람에 번거롭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든은 '제발 작곡할 시간이 필요하니 저녁식사는 나중으로 연기합시다'라고 간청해야할 판이었다고 한다. 하이든과 잘로몬이 맺은 계약에 의하면 하이든은 오페라 1편, 교향곡6편을 작곡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이든은 잘로몬으로부터 미리 작곡료를 받았다. 하이든은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이든은 '오르페오'에 대한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대본은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이민와서 살고 있는 대본가 겸 평론가인 카를로 프란체스코 바디니(Carlo Francesco Badini: c 1710-c 1795)가 쓰기로 되어 있었다. 하이든은 당장 대본을 받지 못했지만 얘기를 들으니 과거에 글룩이 작곡했돈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와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대본을 받고 나서 읽어보니 어쨋든 원작은 그리스의 오비드의 '변형'(Metamorphoses)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글룩의 오페라와 비교할 때 기둥 줄거리는 비슷했다. 하이든은 바디니가 대본을 쓴다고 해서 안심을 했다. 왜냐하면 바디니는 신문에 신랄한 음악평을 싣기로 유명했는데 자기가 쓴 대본으로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므로 이번에는 비평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공연은 런던의 존 갈리니경 오페라단(Sir John Gallini's Opera Company)가 맡게 되었다. 이와 함께 갈리니가 캐스팅도 책임 맡았다. 갈리니는 초연의 프리마 돈나를 뮌헨으로부터 마담 롭스(Lops)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마담 롭스는 유명한 성악교사인 미뇨티(Mignotti)의 제자였다. 하이든은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낸시 스토레이스(Nancy Storace)를 에우리디체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마담 롭스가 섭외되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야 했다. 다만, 하이든은 비엔나의 애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담 롭스를 바보 얼간이'(silly goose)라고 표현해서 불편한 심기를 다스렸다. 프미로 호모(남자 주인공)는 인기를 끌고 있는 데이빗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제니오는 카스트라토가 맡기로 했다. 여기에 합창단과 발레 댄서들이 등장하도록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면의 변화가 상당히 많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체 4막으로 되어 있지만 장면은 열두번이나 바뀌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하이든이 바디니로부터 대본을 받고나서 보니 또 한명의 등장인물이 있었다. 에우리디체의 아버지인 크레온테였다. 하이든은 크레온테를 위해서 전체 스코어를 다시 구상해야 했다.
에우리디체의 엘레나 크산토우다키스
초연의 장소는 킹스 테아터(King's Theatre)로 정해졌다. 킹스 테아터는 어떤 사람이 방화를 하여 전소되었으나 최근 완전히 새로 복원한 극장이다. 런던에서 킹스 테아터와 라이발 성격의 극장은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있는 판테온(Pantheon)극장뿐이었다. 새로운 극장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오페라가 공연되는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한가지 남은 것은 왕과 의회로부터 이탈리아 오페라의 공연에 대한 승인을 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궁내성장관은 판테온 극장 지지자였다. 그러므로 라이발인 킹스 테어터에서 새로운 이탈리아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을 서둘러서 승인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킹스 테아터는 정부의 승인을 받기 전까지 리허설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했다. 리허설은 드레스 리허설을 할수 없기 때문에 무대장치도 없이, 의상도 입지 않고, 조명도 하지 않은채 밋밋하게 진행될수 밖에 없었다. 하이든은 '영국을 위한 오르페오'(Orfeo for England)가 승인을 얻지 못하여 공연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르페오'를 손질하면서 완벽한 스코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만일 공연허가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콘서트 형식으로는 연주될수 있지 않느냐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연습에 열중하였다. 킹스 테아터에서의 하이든의 오페라에 대한 공연허가를 내주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극장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킹스 테아터는 1793년에 공연허가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 전해인 1792년에 라이발인 판테온 극장이 화재로 전소되었기 때문에 어쨋든 공연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설에는 조지 3세(재위: 1760-1820)와 왕세자(Prince of Wales) 사이의 알륵 때문에 하이든의 '오르페오'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아무튼 그 결과 하이든의 스코어는 결코 완성되지 못하였으며 얼마후에는 일부 스코어가 분실되기도 하였다. 조지 3세는 대영제국 및 아일랜드 왕이라는 호칭을 가졌었으나 그후에는 영국 및 아일랜드 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으며 동시에 하노버 공작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사람이다. 자녀는 15명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도 나왔다.
'오르페오'는 1951년 6월 9일에 플로렌스의 테아트로 델라 페르골라(Teatro della Pergola)에서 초연되었다. 당시에 에우리디체는 마리아 칼라스가 맡았으며 크레온테 왕은 베이스 보리스 크리스토프가 맡았다. 지휘는 에리히 클라이버였다. 영국 초연은 1955년에야 가능했다. 세인트 판크라스 페스티발에서였으며 그나마 연주회 형식이었다. 바리톤 데렉 해몬드 스트라우트가 데뷔한 무대였다. 그후 하이든의 '오르페오'는 몇차례 더 공연되었고 음반으로도 취입되었다. 하이든의 '철학자의 영혼'은 처음에 타이틀을 '영국을 위한 오르페오'라고 붙였었다. 그러다가 '철학자의 영혼'으로 바뀌었고 부제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로 확정되었다. 하이든은 레시타티보를 상당히 사용하였다. 그래서 공연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이든이 누구인가? 기막힌 아리아들을 간간히 배치하여 감격하게 만들었다. 에우리디체의 첫번째 죽음에서 부르는 Del mio core il voto estremo는 에우리디체가 죽어갈때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흐느껴 울며 부르는 감동적인 노래이다. 시빌의 노래인 Al tuo seno fortunato stringerai l'amato는 고음이 하이 E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단히 고난도의 노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르페오의 아름다운 아리아인 Rendete a questo seno가 이 오페라의 백미이다. 하프반주에 의한 노래이다. 하이든은 작곡가이지만 하프연주자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하프를 배웠다. 그래서 오르페오의 아리아에 하프가 반주를 하도록 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엘리자베트 숄)
18세기에 유행하였던 오르페오 스토리의 오페라 중에서 바디니의 대본이 오비드 원작의 내용과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오비드의 스토리는 아리스티우스(Aristaeus)가 유리디스(에우리디체)를 능욕하러하였으나 이루이 못하였고 유리디스는 도피하다가 뱀에 물려 죽음을 당하니 그것이 첫째 죽음이요, 모든 난관과 시련이 끝난 후에 이제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오르페우스(오르페오)가 여인들의 사랑을 거부하자 바카스 추종의 여인들이 오르페우스를 독살하니 그것이 마지막 죽음이라는 내용이다. 바카스를 추종하는 여인들이 오르페오의 몸을 갈기갈기 분할하자 큰 폭풍이 불고 홍수가 나서 오르페오의 시신을 레스보스 섬으로 가져가서 그곳에 영원히 잠들도록 했다는 것이 끝얘기이다. 그러면 실제 하이든 오페라의 줄거리는 어떠한지 소개한다.
[1막] 1장. 유리드스는 혼자서 숲속을 거닐고 있다가 길을 잃는다. 유리디스는 음악가인 오르페오를 사랑하지만 유리디스의 아버지인 크레온(크레온테) 왕은 딸 유리디스를 양봉하는 라이스티우스에게 결혼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괴롭고 혼란스러워서 숲속을 거닐다가 길을 잃은 것이다. 코러스는 유리디스에게 어두운 숲에서 어서 빠져나가라고 말하지만 유리디스는 오히려 마치 자신을 파멸이라도 하듯 더욱 멀리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때 못되고 거친 양치기들이 나타나서 유리디스를 잡아 복수의 여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코러스는 유리디스가 위험에 처하자 곧바로 오르페오를 불러 온다. 오르페오는 노래로서 양치기들의 마음을 빼앗아서 유리드스를 제물로 바치지 못하도록 한다. 오르페오는 유리디스를 양치기들의 손에서 구출애서 데리고 나온다. 2장. 크레온의 궁전이다. 신하들이 크레온 왕에게 유리디스 공주를 숲에서 발견했고 무사히 데려왔다고 전한다. 신하들은 크레온 왕에게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한다. 크레온 왕은 오르페오가 유리디스를 위험에서 구출했다는 소리를 듣자 비록 유리드스를 아리스티우스와 결혼시키기로 약속했지만 운명이 유리드시를 앞날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3장. 유리디스와 오르페오는 이제 정식으로 결혼할수 있게 되어 크게 기뻐한다. 두 사람은 '운명도, 죽음도 우리의 사랑을 어찌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2막] 1장. 유리디스와 오르페오가 이들의 결합을 축하하고 있다. 큐비드가 두 사람을 둘러싸고 함께 축하한다. 밖에서 소란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오르페우스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나가본다. 코러스는 유리디스에게 유리디스의 아버지인 크레온 왕이 유리디스를 아리스티우스에게 결혼시키기로 약속했음을 상기하고 유리디스가 오르페오와 결혼하게 되자 아리스티우스가 분노해서 자기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결혼식장에 몰려 왔다고 전한다. 유리드스는 두려워서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피신코자 한다. 그때 뱀이 나타나서 유리디스를 물어 죽게 만든다. 오르페오가 잠시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유리디스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르페오는 숨을 거둔 유리디스를 팔에 안고 슬퍼하면서 운명이 어찌 이렇게 잔혹하냐면서 원망한다. 메신저가 크레온 왕에게 유리디스의 죽음을 전한다. 크레온 왕은 딸의 죽음에 대하여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2막이 끝나면 인터발이 있다.
[3막] 1장. 오르페오와 크레온 왕이 유리디스의 무덤 앞에서 애통해 하고 있다. 코러스도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영혼이여 그대는 하늘나라로 날아 갔소이다. 나의 희망과 나의 위로를 그대의 날개에 싣고서 갔소이다'라고 애통해 한다. 2장. 어떤 신하 한 사람이 크레온 왕에게 오르페오가 정신이상이 생겼다고 말한다. 크레온 왕은 '어느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자기 자신도 잃게 된다'고 말한다. 3장. 오르페오는 예언자인 시빌의 자문을 구한다. 시발은 오르페오에게 만일 유리디스를 다시 보고 싶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용기로서 저 지하세계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빌은 오르페오에게 '망각이란 것은 매력적인 것이다'라며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4막] 1장. 오르페오는 지하세계(지옥)의 강인 레테(Lethe)에 다다른다. 아직 지옥에 들어가지 않은 혼령들이 오르페오에게 지옥에 들어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어찌하여 무섭고 두려운 곳에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질책이다. 시빌이 나타나서 주저하고 있는 오르페오의 등을 밀어 레타 강의 뱃사공인 케어런(Charon: 캬론)에게 가도록 한다. 드디어 오르페오가 케어런의 배에 몸을 싣고 레테 강을 건너 지옥으로 들어간다. 이들이 강을 건널 때에 복수의 여신들이 나타나서 허공을 떠돈다. 2장. 오르페오와 시빌은 마침내 플루토가 지배하고 있는 지옥의 문에 이른다. 오르페오가 플루토에게 들여보내 달라고 간청한다. 플루토가 문을 열어준다. 3장. 아직도 천당에 가야할지 지옥에 가야할지 결정이 되지 않은 영혼들이 방황하고 있다. 유리디스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코러스가 오르페오에게 만일 유리디스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유리디스를 영원히 잃게 된다고 말해준다. 유리디스가 뱀에 물린 다리 때문에 절름거리면서 오르페오에게 다가온다. 시빌이 오르페오에게 아무리 반갑다고 해도 자제심을 잃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주의를 준다. 유리디스가 오르페오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온다. 그 소리에 오르페오가 참지 못하고 유리디스를 바라본다. 그래서 유리디스를 두번째로 잃는다. 시빌도 오르페오에게 실망하여 떠난다. 4장. 오르페오는 '지옥은 나의 마음이다'라면서 탄식한다. 그는 별들을 바라보고 '어찌하여 이러한 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면서 자기의 운명을 원망한다. 오르페오가 흐느껴 울고 있을 때에 바커스와 그를 추종하는 여인들이 나타나서 오르페오에게 슬픔을 버리고 자기들과 함께 즐기자고 권유한다. 오르페오는 이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바카스 여인들이 오르페오에게 '사랑의 넥타'를 한잔 마시라고 권한다. '사랑의 넥타'를 마신 오르페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 독약을 마셨던 것이다. 바카스 여인들이 '환락의 섬'으로 떠나려 할때 갑자기 커다란 폭풍이 몰려와서 그들을 모두 쓸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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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주제로 삼은 대표적 오페라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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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0 Euridice(에우리디체) - Jacopo Peri
○ 1607 L'Orfeo(오르페오) - Claudio Monteverdi
○ 1619 La morte d'Orfeo(오르페오의 죽음) - Stefano Landi
○ 1620 L'uccisione di Orfeo(오르페오의 죽음) - Pier Francesco Valentini
○ 1647 Orfeo(오르페오) - Luigi Rossi
○ 1672 Orfeo(오르페오) - Aantonio Sartorio
○ 1682 Orfeo(오르페오) - Pietro Andrea Ziani
○ 1701 Orpheus and Eurydice(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 - John Weldon
○ 1702 Euridice oder Orpheus(에우리디체 또는 오르페우스) - Reinhold Keiser
○ 1726 Orpheus(오르페우스) - Georg Philippe Telemann
○ 1750 Euridice(에우리디체) - Georg Christoph Wagenseil
○ 1762 Orfeo ed Euridice(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Christiph Willbald Gluck
○ 1781 Orfeo(오르페오) - J. F. Reichardt
○ 1791 Orphée et Euridice(오르페와 유리디스) - Ferdinand Paer
○ 1791 L'amina del filosofo(철학자의 영혼: Orfeo ed Euridice: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Joseph Haydn
○ 1858 Orphée aux enfers(지하세계에 간 오르페) - Jacques Offenbach
○ 1914 Orphée(오르페) - Jean-Jules Roger-Ducasse
○ 1920 L'Orfeide(오르페이데) - Gian Francesco Malipiero
○ 1926 Orpheus und Eurydike(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 Ernst Krenek
○ 1928 Orfeo tragedia(오르페오 비극) - Vittorio Ri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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