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하이든의 '우연한 만남' - 115

정준극 2014. 6. 14. 06:18

우연한 만남(L'incontro improvviso)

Die unverhoffte Zusammenkunft - The Unexpected Encounter

하이든이 페르디난트 대공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요제프 하이든

 

'우연한 만남'(L'incontro improvvisio)는 하이든이 합스부르크의 밀라노 총독인 페르디난트 대공(Archduke Ferdinand)과 대공비인 마리아 베아트리체 데스테(Maria Beatrice d'Este)를 위해 작곡한 3막의 오페라로서 1775년 8월 29일 헝가리 훼르퇴드(Fertőd)에 있는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시스 1새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14번째 자녀로서 아들로는 네번째이다. 그의 큰 형이 나중에 요제프 2세가 된 사람이며 둘째 형이 나중에 레오폴드 2세가 된 사람이고 그의 여동생이 유명한 마리 앙뚜아네트이다. 페르디난트 대공이 밀라노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때는 그가 불과 20세의 청년시절이었고 아마도 비엔나에서 밀라노로 가는 도중 헝가리를 거쳐 갈때 에스터하지 공자의 궁전을 방문하였던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페르디난트 대공과 대공비는 에스터하자에서 나흘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우연한 만남'은 바로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에서터하지 체류중 환대하기 위해 작곡된 것이다. 이 오페라는 드라마 조코소(dramma giocooso)이다. 즉, 코믹 오페라이다. 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하던 터키 주제의 스토리이다.

 

훼르퇴드의 에스터하지 궁전

 

대본은 카를 프리베르트(Carl Friberth)라는 사람이 썼다. 테너인 그는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알리 왕자의 역할을 맡았고 그의 부인인 막달레나 프리베르트는 상대역인 레지아 공주의 역할을 맡았다. 카를 프리베르트의 형은 유명한 작곡가인 요제프 프리베르트였다. 카를 프리베르트의 대본은 프랑스의 L.H. Dancourt(당쿠르)가 1764년에 글룩을 위해 써놓은 대본을 번역한 것이다. 당쿠르의 제목은 La rencontre imprevue(우연한 만남)이었다. 다만, 카를 프리베르트는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스타일의 드라마 조코소를 반영하기 위해 1막과 2막의 피날레에 오리지널보다 더 긴 부포 장면을 추가하였다. 기왕 웃기는 김에 본때 있게 웃겨보자는 속셈이었다. 하이든의 '우연한 만남'은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공연된 이후 독일어로 번역되어 브라티슬라바에서 공연되었을 뿐, 그 이후에는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덴마크의 음악학자인 옌스 페터 라르센이 1954년에 레닌그라드에서 스코어를 발견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러시아는 하이든의 잊혀진 오페라가 러시아에서 발견된 것을 기념하여서 1956년에 전국 방송으로 소개했다. 영국에서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1966년 캄든 페스티발(Camden Festival)에서였다. 그후 1980년에 스위스 로망드 방송이 주관하여 안탈 도라티의 지휘로 음반을 만들어내서 그나마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독일어 대본에 의한 최근의 공연은 2010년 부페르탈 오페라(Wuppertal Opera)가 쾰른의 하이든연구소와 공동으로 공연한 것이다.

 

'우연한 만남'은 하이든의 오페라 중에서 그렇게 뛰어난 것이라고 말할수는 없는 작품이다. 음악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몇군데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음악이 포함되어 있다. 터키풍의 음악은 하이든으로서 대담한 시도였다. 오스민과 칼란드로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3막에서 알리가 체포되지 않으려고 프랑스 화가로 변장하고 그림을 그리는 척하는 장면도 무척 재미있다. 이때 알리는 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아 자기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내용을 설명한다. 오스민이 부르는 Senti, al buio pian은 오케스트라가 화려하게 받쳐 주는 멋있는 아리아이다. 알리를 위해서는 이탈리아의 서정적인 아리아 스타일인 Deh! se in ciel pietade avete가 마련되었다. 레지아의 아리아인 Or vicina a te 도 이탈리아의 서정적인 스타일이다. 2막에서는 두 곡의 강력한 소프라노 아리아가 나온다. 그리고 1막에서 세 여인들의 트리오 Mi sembra un sogno는 아마도 이 오페라의 하일라이트일 것이다.

 

하이든이 하렘을 주제로 삼은 이른바 Seraglio opera를 작곡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 하이든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였는데 그런 입장에서 이교도의 이야기, 그것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하렘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외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이 오페라를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합스부르크의 밀라노 총독인 페르디난트 대공을 위해 작곡했다고 하니 더구나 예외적이지 않을수 없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중동의 사람들이다. 하렘이 나오는 다른 오페라들을 보면 그래도 유럽의 사람들이 등장해서 하렘의 여인을 구출하는 내용이 보통인데 '우연한 만남'의 경우에는 출연진이 모두 이슬람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크게 차이나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오페라는 종교의 차별을 극복하며 인종의 차이도 극복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초연의 무대에서 연출자는 하렘을 마치 떠득석한 살롱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동서양의 차이를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는 의도로 보면 된다. 레지아 공주는 당시의 교향있고 개화된 여인상을 대변한다고 볼수 있다. 레지아 공주는 하렘에서 볼수 있는 관능적이거나 에로틱한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계몽주의적인 세련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알리(Ali: T) - 발소라의 공자. 레지아를 사랑함

- 레지아(Rezia: S) - 페르시아 공주. 이집트 술탄이 가장 총애하는 하렘 여인

- 발키스(Balkis: S) - 레지아의 시녀 겸 친구. 노예

- 다르다네(Dardane: MS) - 레지아의 시녀 겸 친구. 노예

- 오스민(Osmin: T) - 알리의 노예

- 칼란드로(Calandro: Bar) - 탁발 금욕 수도사

- 술탄(Sultan: B) - 이집트의 술탄

 

에스터하지 궁전에서의 공연 그림

 

[1막] 별별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이다. 와인을 비롯한 식료품들도 있다.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탁발 수도사인 칼란드로가 몰래 창고에 들어와서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계속 먹어댄다. 그는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먹고 싶을 때엔 먹고 자고 싶을 때엔 자는 방랑의 신세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모른다는 노래를 부른다. 장면은 바뀌어 마을의 광장이다. 오스민은 칼란드로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다. 오스민은 칼란드로에게 제발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대지만 말고 정말로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칼란드로는 오스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보낸다. 장면은 바뀌어 하렘의 어떤 방이다. 어떤 여인이 레지아에게 레지아가 오래 전에 헤어진 애인을 카이로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레지아는 그리움에 넘쳐서 시녀들인 발키스와 다르다네와 알리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운다. 세 여인의 트리오가 아름답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마을 광장이다. 알리가 어떻게 해서 페르시아로 도망치듯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아름다운 레지아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독백처럼 얘기한다. 레지아는 실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알리와 함께 가출하여 멀리 도망가고자 했으나 어쩌다가 서로 헤어지게 되었고 레지아는 이집트의 해적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광장의 한쪽에서는 칼란드로가 알리에게 '카스타냐, 카스타냐'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던 칼란드로가 갑자기 알리를 알아보고 놀란다. 칼란드로는 알리가 발소라의 왕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시녀 발키스가 알리에게 다가와서 어떤 고귀한 여인이 알리를 만나고자 한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그 여인은 하렘의 2층 창문을 통해 알리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발키스가 알리를 데리고 하렘으로 돌아온다. 하렘의 한쪽 방에서는 오스민이 한상 잘 차려놓고 먹어 대고 있다. 알리는 노예인 오스민이 술에 취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자 화를 낸다.

 

[2막] 소파가 놓여 있는 어떤 방이다. 다르다네는 알리의 마음이 변절되지 않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그를 유혹한다. 알리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레지아가 나타난다. 알리와 하인인 오스민은 레지아를 보고 깜짝 놀란다. 레지아와 발키스, 다르다네는 세 여인이 어떻게 카이로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트리오를 부른다. 장면은 바뀌어 칼란드로의 방이다. 오스민이 칼란드로에게 알리의 애인이 레지아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며 이 두 사람을 하렘으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술탄 궁전의 정원에서는 연회준비가 한창이다. 복잡한 연회를 틈타서 도망칠 계획이다. 레지아와 알리는 그동안 헤어졌던 슬픔을 메꾸려는 듯 사랑의 듀엣을 부른다. 그런 사랑스런 분위기는 사냥을 나갔던 술탄이 갑자기 돌아왔다는 소식에 차갑게 된다. 모두들 비밀 계단을 통해서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3막] 다시 창고이다. 술탄은 레지아가 페르시아의 공주인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알리라고 하는 애인이 나타나서 도망가려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술탄은 레지아 공주와 알리가 어디론가 숨어 있자 현상금을 내걸고 두 사람을 찾고자 한다. 칼란드로가 현상금을 노리고 두 사람을 배반키로 한다. 알리는 체포되지 않으려고 프랑스 화가처럼 변장한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알리는 결국 술탄의 앞에 끌려 온다. 그러나 술탄은 레지아에 대한 알리의 사랑이 진실된 것임을 알고 알리를 용서하고 대신에 배반한 칼란드로는 엄벌에 처하도록 한다. 이제 피날레이다.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빛나는 커다란 홀이다. 술탄이 알리와 레지아 공주에게 축복을 내린다. 모두들 행복하다. 알리와 레지아는 술탄에게 칼란드로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다. 술탄은 칼란드로를 용서하되 카이로에서 추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