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에드워드 러쉬튼의 '런던의 바부르' - 113

정준극 2014. 5. 31. 11:27

런던의 바부르(Babur in London)

중견 에드워드 러쉬튼의 음악과 인도의 시인 지트 타일의 대본

이슬람 폭탄자살자들에 대한 이야기

 

무대 위에 앙상블이 자리잡고 있도록 배려했다.

 

별별 내용의 오페라들이 다 나오고 있지만 이번에는 이슬람 청년들의 폭탄자살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오페라가 나와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출신으로 현재 취리히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곡가 에드워드 러쉬튼(Edward Rushton: 1972-)이 음악을 맡았고 인도 출신의 시인 겸 대본가인 지트 타일(Jeet Thayil: 1959-)이 대본을 쓴 작품이다. 지트 타일은 오래전부터 전설적 인물인 바부르를 현대로 불러 오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초대 무갈제국의 황제인 바부르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면 그보다 더 의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작곡가인 에드워드 러쉬튼과 제작자인 존 풀제임스(John Fulljames)를 만나게 되어 드디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지트 타일은 바부르의 생애와 업적만을 현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여 내용으로 삼고자 했으나 2008년 4일간이나 계속된 뭄바이 폭탄테러가 있은 후에 무슬림들의 자살폭탄테러 이야기를 오페라의 대본에 포함키로 결심했다. 대본에는 또난 심리적으로 복잡한 순간들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주인공들이 죽음과 자살에 대한 견해를 반영하는 경우, 영국 청년들과 자살 폭탄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경우, 바부르가 자살폭탄 테러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경우 등이다. 바부르는 '신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God doesn't countenance the slaughter of innocents)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살은 죄악이고 살인도 죄악이다. 신의 눈에는 너희들이 죄인이다.'(Suicide is a sin and murder is a sin. And in the eyes of God you are sinners).

 

자살이 죄악이라는 말에 생각을 달리하는 자살폭탄 테러자들중의 한 사람

 

음악을 맡은 러쉬튼과 대본을 맡은 타일, 그리고 제작을 맡은 풀제임스는 자칫 이 오페라가 대중적인 센세이션날리즘에 빠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잘못하다가는 무슬림에 대한 증오만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페라를 완성하기 전에 여러 번에 걸쳐 이슬람 학자들과 회합을 가지고 이슬람 교리에 저촉되지 않으며 이슬람 신앙의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스토리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무슬림 청소년들의 신념에 따른 폭탄자살 테러는 있는 그대로 수용키로 했다. 테러와 관련해서는 리허설 이전에 카운터 테러 운동본부의 사람들과도 협의를 가졌다. 그리고 이들은 관심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워크샵과 세미나도 가졌다. 런던에서도 가졌고 브래드포드에서도 가졌다. 일반인들이 가질수도 있는 의문점들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또한 초연 이후에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를 가졌다. 아무튼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하였다. '런던의 바부르'는 2012년 초에 취리히에서 먼저 공연되었고 영국에서는 2012년 6월이었다. 그후 오페라 노우스가 영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공연하였다. 작곡가인 에드워드 러쉬튼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영국의 더 오페라 그룹(The Opera Group: TGO)으로부터 여러번에 걸쳐 오페라 작곡을 위촉받아서 그동안 실내 오페라를 중심으로 작곡활동을 해 온 사람이다. 이번 오페라도 TGO의 위촉을 받은 것이다. 공연은 영국의 오페라 노우스(Opera North)가 맡아서 했다. 대본을 쓴 지트 타일은 인도의 케랄라 출신으로 비록 이스람교도는 아니지만 이슬람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코란을 섭렵하였고 특히 무갈제국의 황제인 바부르의 시와 자서전을 심도있게 공부하였다.

 

바부르가 무슬림 폭탄자살 테러분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오페라의 제목에 나오는 바부르는 16세기 무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자히르 우드 딘 무하마드 바부르(Zahir-ud-din Muhammad Babur: 1483-1530)를 말한다. 바부르는 인도에까지 세력을 넓혀서 인도 북부 대부분의 지역을 무갈 제국의 영토로 만들었다. 바부르는 티무르의 직계 후손이다. 티무르는 징기스 칸의 후손이므로 결국 바부르는 징기스 칸의 후손인 셈이다. 바부르는 제국을 확장하면서 무자비한 통치를 했다. 그의 군대는 잔혹하였고 그의 정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군주로서는 최초로 자서전을 남겼다. 자서전에는 문학, 역사, 과학등 여러 분야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서 무갈 제국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7세기에 활동했던 바부르 황제가 현대의 런던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유령으로서이다. 바부르는 네 명의 이슬람 청년들이 자살폭탄을 계획하자 이들을 타이른다. 그는 '자살은 죄악이다. 살인도 죄악이다. 그런 행동은 천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하며 네 청년들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한다.

 

자살폭탄 테러분자들은 신에게 지하드를 인정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이들은 성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야기는 런던 교외의 어떤 허수룩한 건물로부터 시작된다. 부근에는 강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네 명의 젊은이들이 런던 중심가에서 자살폭탄을 터트릴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 두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이다. 이들은 자비스럽게도 10대의 빗나간 청소년들로 그려져 있다. 죄악에 대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으며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혼전 성행위도 안중에 없다는 식이다. 이들중 한 여자는 오늘밤이 인생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으로 팀메이트인 남자를 잠자리로 유혹하기 위해 전통적인 히잡을 벗어던지기까지 한다. 이들이 거의 준비를 마무리할 즈음에 지금으로부터 약 5백년 전에 세상을 떠난 무갈 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의 혼령이 나타나서 이들에게 자살이 죄악이며 테러로 인한 살인이 죄악인 것을 설명한다. 그로 인하여 이들은 혼란을 겪는다. 바부르는 인도 대륙에 이슬람을 전파한 인물이다.

 

바부르는 자살이 살인과 마찬가지로 죄악이라고 설명한다.

 

'런던의 바부르'는 현대를 조명하는 오페라이다. 현대사회의 테러리즘을 표현하였으며 여기에 고대 인도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첨가한 작품이다. 오페라의 제목에 바부르의 이름을 넣은 것은 잔인한 전사로서의 바부르의 모습과 찬란한 시인으로서 그의 양면적인 모습을 함께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출연진은 아시아계(인도 및 파키스탄계) 영국 청소년들이다. 런던의 교외에 살고 있는 모(Mo), 화이즈(Faiz), 나피사(Nafisa), 사이라(Saira)이다. 모는 모하메드의 애칭이다. 오페라의 서두에 나오는 모의 독백은 영국에서 지내야 하는 아시아계 청소년들의 형편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하메드를 줄여서 모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나는 별볼일 없는 이민 2세대이다. 나이는 28세. 그러나 공민권은 없다. 나의 어머니는 백인이지만 나는 순전한 파키(Paki: 파키스탄인이라는 단어)이다. 아버지는 코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 가게에서 일한다. 나는 전세계적인 움마(세계의 무슬림 가족은 하나라는 주장)를 신봉한다. 나의 국가는 이슬람 공화국이다." 이에 반하여 오페라의 말미에서 바부르는 이들 네명의 '성전(聖戰)주의자'(Jihadists)들이 성전(聖典)인 코란의 내용을 무시하였다고 선언한다. 오페라의 내용은 피에 굶주린 것과 같은 테러에 대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주인공들의 대사를 보면 아름다운 시문들이 간혹 나온다. 대본을 쓴 타일은 '시문과 폭력은 상호간에 배제될수 없다. 사실상 이 둘은 결합되어 있다. 우리가 호머 또는 라마야나(Ramayana)를 읽어보면 마찬가지임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히잡을 두른 소녀

 

네 청소년들은 바부르의 혼령을 만나서 성전인 지하드, 내세, 음주 금지, 무슬림을 위한 테러행위 등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다. 이들 청소년들은 무슬림이지만 일반 서양식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어떤 소녀는 히잡을 두르고 있다. 무대는 상징적이다. 한 구석에는 못쓰는 페트병들이 널려 있다. '런던의 바부르'는 현시대의 테러리즘을 예술작품의 소재로 삼고 싶었으나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 주저했던 여러 예술가들에게 그런 선동적인 주제를 다루어도 상관 없다는 시그날을 보내준 작품이라고도 볼수 있다. 단적인 예가 아시아계 영국 작가인 순지브 사호타(Sunjeev Sahota)의 소설 '우이들의 거리'(Ours Are the Streets)이다. 어떤 자살폭탄 예정자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아내에게 일기 형식으로 사랑의 편지를 남기는 내용이다. 이 사람의 아내는 백인이지만 무슬림으로 개종한 여자이다. 이 사람은 자기 아이들에게도 편지를 남긴다. 자기가 어째서 이슬람 지하드(聖戰)에 참가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편지이다. 그런가하면 크리스 모리스(Chris Morris)의 영화인 '네 사자들'(Four Lions)은 어떤 서투른 자살폭탄 준비자들이 전에 관타나모에 감금되었던 테러분자인 모아참 베그(Moazzam Begg)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히잡을 두른 테러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