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드보르작의 '디미트리' - 135

정준극 2014. 9. 15. 13:19

디미트리(Dimitrij)

안토닌 드보르작의 그랜드 오페라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의 후편격

 

거짓 디미트리의 마지막 장면

 

'디미트리'는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의 4막 그랜드 오페라이다. 오페라 '디미트리'는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이라고 하는 이반 대제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1605년 7월부터 1606년 5월까지 1년 남짓 제정 러시아의 짜르로서 행세하다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한 디미트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보통 드보르작이라고 하면 '오 예! 그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을 작곡한 사람!'이라면서 아는체를 하지만 드보르작이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설령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드보르작의 오페라라고 하면 '루살카' 정도를 기억할 뿐이어서 '루살카'에 나오는 '달에 붙이는 노래'(O Silver Moon)가 아름답다느니 어쩌니 얘기하지만 그 밖의 다른 오페라들은 제목조차 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드보르작은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곡(America), 첼로협주곡, 또는 가곡으로서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Als die alte mutter mich noch lehrte singen), 바이올린 곡으로서 '유모레스크'만 작곡한 것이 아니다. 드보르작은 무려 14 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루살카'도 있지만 '자코뱅'(The Jacobin), '악마와 케이트'(The Devil and Kate), '알프레드'(Alfred), '임금님과 숯 만드는 사람'(King and Charcoal Burner), '반다'(Vanda), '아르미다'(Armida), 그리고 당연히 '디미트리'(또는 드미트리)를 작곡했다. 드보르작은 그가 작곡 생활을 시작할 때에 오페라부터 써야 겠다고 생각해서 몇 편을 썼고 그후 한참을 다른 작품만 만들다가 작곡 생활을 마무리하는 말년에 '그래도 오페라야!'라면서 몇 편을 더 썼다. 다만, '자코뱅'만은 작곡생애의 중도에 작곡한 것이다. 드보르작은 특이하게도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분쟁을 다룬 오페라들을 여러 편 작곡했다. '디미트리'는 그런 오페라들의 클라이막스를 기록하는 작품이다. 폴란드와 러시아의 오랜 숙원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으로서는 영국과 덴마크의 분쟁을 다룬 '알프레드'(1870), 폴란드인들과 독일인들의 분쟁을 다룬 '반다'(1876: 수정본은 1880)가 있다. 1880년대에 만든 오페라들인 '임금님과 숯 만드는 사람'과 '교활한 농부'는 체코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이야기를 다룬 것들이어서 정겹다.

 

체코 그랜드 오페라인 '디미트리'의 대본을 쓴 마리 체르빈코바 리그로바

 

드보르작이 '디미트리'를 작곡하기로 생각한 것은 1881년이었다. 그가 꼭 40세가 되던 해였다. 평소부터 잘 알고 지내던 프라하 출신의 여류 작가이며 대본가인 마리 체르빈코바 리그로바(Marie Cervinkova-Riegrova: 1854-1895)가 드보르작에게 '디미트리'의 대본을 주면서 오페라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마리 체르빈코바는 그 전에 드보르작을 위해 '자코뱅'의 대본을 만들어 준 일도 있다. 마리 체르빈코바의 대본은 페르디난드 미코베츠(Ferdinand Mikovec: 1826-1862)의 '디미트르 이바노비츠'(Dimitr Ivanovic)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며 '디미트르 이바노비츠'는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의 미완성 극본인 '데메트리우스'(Demetrius: 1805)를 참고로 삼은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알렉산드르 푸슈킨도 드미트리을 모델로 삼은 극본을 완성한 것이 있다. 푸슈킨의 극본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빅토랭 드 종시에레(Victorin de Joncierers: 1839-1903)가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이렇듯 푸슈킨의 극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리 체르빈코바는 러시아의 푸슈킨보다 독일의 쉴러를 참고로 삼아서 대본을 만들었으니 그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드보르작이 채택한 디미트리의 성격은 푸슈킨에서 느낄수 있는 강하고 거친 것이 아니라 쉴러에서 볼수 있듯이 오히려 허약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마리 체르빈코바의 '디미트리' 대본은 원래 드보르작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체코의 오페라 작곡가인 칼 세보르(Karl Sebor: 1843-1903)를 위해 작성한 것이지만 칼 세보르가 오페라로 만들지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드보르작에게 주어진 것이다. '디미트리'는 1년 후인 1882년 10월 8일에 프라하의 신체코극장(Nove Ceske Divaldo)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드보르작의 오페라는 대부분 프랑스 스타일의 그랜드 오페라이다. '디미트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출연하는 대규모의 오페라이다. 초연에서 디미트리는 테너 바클라브 수쿠프(Vaclav Soukup)가 맡았고 그와 결혼한 마리나는 소프라노 마리 조피 시토바(Marie Zofie Sittova)가 맡았다. 둘 다 체코 출신으로 당시 정상급의 오페라 성악가들이었다. '디미트리'의 미국 초연은 프라하의 초연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1984년,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그것도 무대 공연이 아니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된 것이었다. 이때 마리나 역할은 위대한 흑인 소프라노 마르티나 아로요(Martina Arroyo)가 맡았다.

 

'디미트리'의 미국 초연에서 마리나 역할을 맡았던 흑인 소프라노 마르티나 아로요.

 

'디미트리'가 초연되자 사람들은 풍부하고도 아름다운 선율로 인하여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누구나 다 아는 스토리를 드라마틱하게 엮어서 긴장감을 더 해 주었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대본과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리 세프빈코바에게 부탁해서 4막의 대본을 고치도록 했고 음악도 새로 만들어 넣었다. 이 수정본은 1885년에 프라하에서 초연 아닌 초연을 가졌다. 그러다가 드보르작은 또 다시 작업을 하여 '디미트리'에 바그너 스타일을 많이 반영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대단히 급진적인 음악이었다. 이 수정본은 1894년(어떤 자료에는 1892년)에 프라하에서 역시 초연 아닌 초연을 가졌다. 그런데 '디미트리'가 드보르작의 생애의 마지막 해인 1904년에 플르첸(Plzen)이라는 곳에서 공연 될 때에는 마지막 버전에 두번째 버전의 3막을 통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쨋든 오늘날 무대에 올려지고 있거나 음반으로 취입되고 있는 '디미트리'는 1882년의 오리지널과 1885년의 두번째 수정본을 혼합한 것이다. '디미트리'는 드보르작의 여러 오페라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격정적인 음악으로 구성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합창에 있어서는 웅장한 8부 합창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음악이 전체적으로 웅장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사랑의 듀엣도 등장한다. 드보르작은 디미트리에게도 아름다운 아리아를 마련해 주었다. 1막에서 크렘린을 축복하는 내용의 '조국의 프라이드'(Pride of our Fatherland)이다. 아무튼 '디미트리'는 '루살카'에 버금하는 드보르작의 가장 뛰어난 오페라이다. 또한 1막에 나오는 무반주 합창은 마치 기도문을 읊는 것과 마찬가지로 깊은 감동을 주는 곡이다. 4막에서 마리나의 모놀로그는 애처로운 노래이다. '창백한 죽음이 나를 건드리는 꿈을 꾸었네'(I dreamt that pale Death touched me)이다. 수이스키의 역할은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것이다. 그가 디미트리를 '폴란드의 사탄'이라고 규정짓고 비난할 때의 모습을 보면 단번에 그런 느낌을 받는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대체로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 오페라 '디미트리'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후편이기 때문이다.

 

- 디미트리 이바노비치(Dimitrij Ivanovic: T) - 거짓 짜르

- 마리나 므니스코바(Marina Mniskova: S) - 디미트리의 부인. 폴란드 출신이다.

- 마르파 이바노브나(Marfa Ivanovna: Cont) - 이반 대제의 미망인

- 바실리 수이스키(Prince Vasilij Sujsky: Bar) - 나중에 짜르 바실리 4세가 된 사람. 루리키드 왕조의 마지막 짜르. 그 후에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섬.

- 세니아 보리소브나(Xenia Borisovna: S) - 보리스 고두노프의 딸

- 페트르 페로도비치 바스마노프(Petr Fedorovic Basmanov: B) - 디미트리를 지지하는 장군

- 조브(Jov: B) -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

 

짜르 표도르 1세가 세상을 떠나자 외척인 보리스 고두노프는 짜레비치(황태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1585-1598년의 13년간 짜르의 섭정으로서 제정 러시아를 통치한다. 그러다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짜레비치를 살해한 후 스스로 짜르에 오른다. 그러나 7년 후에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시기가 바로 제정 러시아의 혼란의 시기(Time of Troubles)이다.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은 후에 러시아는 바실리 슈이스키 공자가 이끄는 고두노프 지지자들과 이반 대제의 아들이라고 생각되는 디미트리를 지지하는 측으로 갈라져서 서로 대립한다. 디미트리는 원래 농노의 아들로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얼마후 수도원을 떠난 그는 폴란드의 귀족인 산도미르 가문의 마리나와 약혼하여 정치적인 기반을 닦는다. 그러다가 디미트리는 러시아에 반대감정을 가지고 있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서 군대를 조직하여 보리스 고두노프를 축출코자 모스크바로 진격한다. 디미트리는 자기야 말로 이반 대제의 아들이기 때문에 류리크 왕조의 유일한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디미트리를 이반 대제의 아들이라고 인정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름 아닌 바로 이반 대제의 미망인 마르파이다. 마르파는 디미트리가 자기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디미트리를 아들이라고 인정해서 짜르로 만든 후에 뒤에서 그를 조종하여 보리스 고두노프의 권력을 빼앗고 복수를 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디미트리가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중에 러시아 제국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여 와해될 지경일 때에 우연인지 모르지만 보리스 고두노프가 급격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디미트리는 모스크바에 무사히 입성해서 정교회의 총대주교의 주재로 새로운 짜르로서 대관식을 갖는다.

 

2막에서 디미트리는 폴란드에 대한 보은을 무시하고 폴란드와 러시아의 관계를 중단시킨다. 이와 함께 그는 폴란드에서 인질처럼 지내고 있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딸인 세니아를 구출한다. 러시아에는 아직도 보리스 고두노프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있으므로 그렇게 해서 이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자는 속셈이었다. 이와 함께 디미트리와 세니아의 관계가 시작된다. 디미트리는 이미 폴란드 귀족의 딸 마리나와 결혼하였으나 폴란드와의 관계가 악화된 입장에서 마리아에 대한 사랑도 식었던 것이다. 디미트리는 또한 자기를 축출하려는 수이스키 공자의 음모를 사전에 발각하여 수이스키 공자를 체포하고 처형코자 한다. 3막은 세니아가 디미트리에게 수이스키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디미트리의 부인인 마리나는 디미트리가 세니아와 이상한 관계에 있자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디미트리가 이반 대제의 아들이 아니라 미천한 집안 출신인 것을 밝히기로 작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미트리는 짜르로서 계속 남아 있기 위해 마리나의 말을 무시한다. 마지막 4막에서 세니아는 자기가 디미트리에게 배신 당한 것을 알고 한탄한다. 마리나는 세니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들고 드디어 디미트리의 출신을 밝힌다. 결국 디미트리는 수이스키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마지한다.

 

[오페라 디미트리의 음악 넘버들]

1. 1막 서곡(Overture)

2. 1막 우리의 고국에 무서운 슬픔이 덮쳐 왔도다(Terrible sorry now has struck our native land)

3. 1막 모스크바여, 나의 말을 들으소서(Hear me, Moscow)

4. 1막 백성들은 맹목적으로 파괴하러 달려가도다(The people rush blindly to destruction)

5. 1막 도와주서소, 우리의 말을 들으소서, 자비를 베푸소서(Help! Hear me! Have pity!)

6. 1막 보라 황금 태양이 러시아 모든 땅 위에 높이 솟아 오르도다(See a golden sun hs risen above the whole land of Russia)

7. 1막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Mother, dearest mother!)

8. 2막 서곡(Overture)

9. 2막 힘들고 잔혹한 전투 후의 보상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What great joy is my reward after a hard, cruel battle)

10. 2막 눈을 높이 들어라(Raise your glasses higher)

11. 2막 나의 영혼은 험난한 폭풍을 헤치고 이곳을 그리워하며 달려 왔도다(From the wild storm of life my soul hastened here longingly)

12. 2막 이제야 도피했도다. 그러나 안전한가?(I have escaped! But am I safe?)

13. 2막 여보시오, 아가씨들이 죽은자와 농담을 하고 있네(Hello, the girl is flirting with the dead)

14. 2막 오, 나의 보호자여(O my protector!)

15. 2막 가만가만히 나를 따르라(Softly, follow me)

16. 3막 내 눈으로 직접 그녀를 보았도다 세니아(크세니아)일 것이다(I saw her with my own eyes. I caught sight if Ksenia)

17. 3막 인사를 드리오, 짜르여(Greetings, tsar)

18. 3막 나를 보내주오. 제발 부탁이니 내 눈으로 짜리나를 보게 해주오(Let me go! For God's sake let me see the tsarina)

19. 3막 어찌하여 수이스키를 용서해 주었나요(Why dis you pardon Shuisky?)

20. 4막 창백한 죽음이 그의 오른 손으로 나를 만지는 꿈을 꾸었네(I dreamt that pale Death touched me with her right hand)

21. 4막 세니아!(Xenia)

22. 4막 그는 떠났어요.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해요(He has left! Now the sacrifice is complete)

23. 4막 취소하렵니다. 모든 것을 취소하렵니다(I will revoke it. I will revoke everything)

24. 4막 도와주어요 디미트리 어디 계셔요(Help me, Dimitri, where are you?)

25. 4막 그대 살인자! 떨리도다(Tremble, you murderess!)

26. 4막 마르파! 마르파!(Marfa! Mar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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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가가 그린 거짓 디미트리의 초상화

 

제정 러시아의 짜르를 지낸 디미트리는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디미트리는 '거짓 짜르'였다는 것이다. 이반 대제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실은 비천한 농노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러시아의 짜르가 되어 러시아를 통치했다는 것이다. 디미트리는 거짓 짜르였기 때문에 부모가 누구인지 기록에 없다. 다만 1851년에 태어났다는 기록은 있다. 그러므로 25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유리(그리고리) 오트리에프예브(Jurij(Grigorij) Otriepjew)라고 한다. '거짓 짜르'인 디미트리는 디미트리 이오노비치(Dimitrij Ioannovich)라는 이름으로 페오도르 2세의 뒤를 이어 1605년 7월부터 이듬해인 1606년 5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제정 러시아의 짜르였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바실리 수이스키 공자로서 그가 디미트리의 뒤를 이어 바실리 4세로서 짜르가 되었다. 디미트리의 부인은 폴란드 출신의 마리나 므니체크였다. 이제 조금 더 그에 대하여 알아보자.

 

보리스 고두노프가 세상을 떠나자 러시아는 후계자 문제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시기를 '혼란시대' 또는 '고통의 시기'(Time of Troubles)라고 부른다. 이때 세명의 자칭 후계자가 나타났다. 그 중의 하나가 이반 대체(Ivan the Terrible)의 망내 아들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Dmitriy Ivanovich)라고 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1591년 이반 대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을 때에 크렘린 궁전을 탈출해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가 열 살 때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반 대제의 망내 아들인 드미트리가 우글리치(Uglich)라는 곳에서 다른 식구들과 함께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살아 남아서 10년을 지내다가 이제 나타났다는 것이다. 거짓 드미트리는 그리고리 오트레피예브라는 이름으로 어떤 수도원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그는 머리가 영민하여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인 좁(Job)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리가 이반 대제의 망내 아들이라는 얘기가 나돌자 짜르인 보리스 고두노프는 그리고리를 잡아서 확인해 보라고 명령했다. 그런 소식을 들은 그리고리는 재빨리 평소에 알고 지내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콘스탄틴 오스트로그스키 공자에게 도망갔다. 그후 그리고리는 비스니오비키스라는 폴란드 귀족 집안에 몸을 숨기고 고용인으로 지냈다. 그런 연고로 비스니오비키스는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정치적인 혼란이 있을 때에 관련할 기회를 가졌다.

 

한때는 드미트리가 폴란드왕 스테판 바토리(Stefan Batory)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널리 퍼진 일이 있었다. 스테판 바토리는 1575년부터 1586년까지 폴란드의 왕이었다. 이런 소문도 있었다. 드미트리는 주인이 화가나서 뺨을 때리자 얼떨 결에 자기가 이반 대제의 아들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드미트리는 이반 대제의 미망인인 자기의 어머니가 모스크바에서 보리스 고두노프에 대한 암살 계획이 진행되자 그런 소식을 듣고 왕궁의 의사에게 어린 드미트리를 맡겨서 목숨을 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의사는 드미트리를 어떤 러시아 정교회의 수도원에  보내어 신분을 숨기고 살도록 했다고 한다. 드미트리는 자기를 구해 준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의 위험을 느껴서 폴란드로 도망갔으며 폴란드에서 잠시 동안이지만 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비스니오비키 가문에 일자리를 얻어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권세 있고 지체 높은 귀족 집안의 고용인으로 들어가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 받을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리한 드미트리는 남들이 보기에 귀족으로서 손색이 없는 언행을 했다. 말도 잘 탔고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러시아어와 폴란드어를 동시에 능숙하게 했다. 더구나 나중에 이반 대제를 만났던 사람들은 드미트리를 보고 이반 대제의 망내 아들과 모습이 비슷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폴란드의 귀족들은 드미트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지만 어쨋든 폴란드를 억압하는 보리스 고두노프에 대항해서 만일 그를 쓰러트린다면 후임자로 드미트리를 밀기로 약속했다. 대표적인 폴란드 귀족으로서는 아담 비스니오비키, 로만 로친스키, 얀 사페이하 등이었고 다른 귀족들도 이들의 지지에 동참하였다. 드미트리는 23세 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드미트리는 1604년 3월에 크라코브의 지기스문드 바사 3세(Sigismund III Vasa)를 찾아갔다. 나중에 러시아의 짜르가 될 때를 대비해서 지원을 요청키 위해서였다. 지기스문드 바사 3세는 드미트리를 지원하겠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예수회의 지지를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604년 4월에 러시아 정교회를 버리ㅣ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다. 이어 로마 교황청 대사인 클라우디오 란고니를 만나 자기를 지지해 달라고 설득하였다. 그러한 때에 드미트리는 폴란드 귀족인 예르치 므니체크의 딸 마리나 므니체크(Marina Mniszech)를 만났다. 드미트리는 마리나에게 청혼을 하면서 나중에 짜르가 되면 므니체크 가문에 러시아 땅인 프스코프(Pskov), 노브고로드(Novgorod), 스몰렌스크(Smolensk), 노보로드 시베르스키(Novhorod-Siverskyi)를 영지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드미트리에 대한 이야기는 짜르인 보리스 고두노프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사람들을 시켜 드미트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도록 했다. 결과, 드미트리는 수도원에서 도망나온 수도승에 불과하며 원래 이름은 유리 오트레피예브인데 수도원에서 그리고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내용을 알아냈다. 물론 보리스가 어떤 소스를 통해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보리스는 처음에는 드미트리가 이반 대제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무슨 일이든지 도와줄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드미트리가 가짜라고 믿게 되자 드미트리를 경계키로 했다. 특히 드미트리가 보리스를 비난하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드미트리가 퍼트린 소문은 보리스가 짜르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소문을 들은 러시아의 귀족들은 오히려 드미트리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보리스가 자격이 없는 짜르라면 그에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리에게는 어느덧 추종자들이 생겼다. 드미트리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군대를 조직했다. 그런데 드미트리가 군대를 조직한다는 얘기를 듣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권세있는 귀족들이 드미트리에게 자기들의 군대에서 병력 3천 5백을 지원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들은 그러지 않아도 러시아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에 드미트리를 지원하면 나중에 러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드디어 드미트리는 이들 군대를 이끌고 1604년 6월에 모스크바로 진격하였다. 보리스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던 러시아 남부의 코사크 전사들도 드미트리의 군대에 합세하였다. 드미트리의 군대는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에 러시아 군대와 두번에 걸쳐 접전을 했다. 사실상 러시아 병사들은 드미트리의 군대와 싸울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첫번째 전투는 드미트리의 대승으로 마감했다. 체르니고프, 푸티블, 세브스크, 쿠르스크 등을 장악했다. 그러나 두번째 전투에서는 크게 패배했다. 거의 와해될 지경이었다. 그때 드미트리를 구해준 일이 일어났다.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드미트리는 전열을 정비해서 모스크바로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러시아 군대들은 드미트리에게 투항하거나 아예 드미트리의 편에 섰다. 그런 와중에 1605년 6월 1일에 모스크바의 귀족들이 궁전 쿠테타를 일으켰다. 귀족들은 새로 짜르가 된 페오도르 2세와 그의 어머니를 체포해서 처형했다. 드미트리는 6월 20일에 모스크바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21일에 그가 선정한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인 이그나티우스를 앞장 세워서 짜르로서의 대관식을 가졌다. 드미트리는 이듬해인 1606년 5월 17일 바실리 수이스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