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도미니크 아르젠토의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 - 139

정준극 2014. 10. 11. 19:08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Postcard from Morocco)

도미니크 아르젠토(Dominick Argento)의 단막 오페라

바탕은 '보물섬'의 원작자 스티븐슨의 '어린이의 시동산'(A Child's Garden of Verses)

 

도미니크 아르젠토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Postcard from Morocco)는 현대 미국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인 도미니크 아르젠토(Dominick Argento: 1927-)의 단막 오페라이다. 미네소타 오페라단이 위촉한 작품으로 대본은 존 도나휴(John Donahue)가 썼다. 이 오페라의 스토리는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의 '어린이의 시정원'(A Child's Garden of Verses)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스티븐슨은 잘 아는 대로 '보물섬'(Treasure Island),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작가이다. 이 오페라의 시기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인 1914년이며 장소는 어느 이국적인 곳의 기차역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 모로코라는 말이 나와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로코라고 생각되지 않는 기차역만이 무대이다. 이 오페라는 1971년 10월 14일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의 시더 빌리지(Cedar Village)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대본을 쓴 존 도나휴가 초연의 무대감독을 맡았다. 미네소타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그후 이 오페라는 뉴욕을 거처 세계 여러 곳에서 공연되었다.

 

도미니크 아르젠토는 여러 오페라를 작곡했다. '미스 하비샴의 화재'(Miss Havisham's Fire), '천사의 마스크'(The Masque of Angels), '아스펀 페이퍼'(The Aspern Papers) 등이 있다. 이들 오페라는 미국에서 화제는 되었으나 세계적으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르젠토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높여 준 작품이 바로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이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아르젠토의 역량이 비로서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다. 평론가들은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에 대하여 '우리에게 삶의 동기를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작품이다'라고 했는가 하면 '아르젠토의 음악은 관중들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이다. 신선하고 향기가 있는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아르젠토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적 오페라의 작곡가일 것이다. 피바디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할 때에는 휴고 웨이스갈(Hugo Weisgall)의 지도를 받았다. 박사학위는 이스트맨음악학교에서 받았다. 이스트맨음악학교에서는 알란 호바네스, 하워드 핸슨 등과 함께 공부했다. 풀브라이트와 구겐하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이탈리아로 공부하러 갔다. 이탈리아에서는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에게서 배웠다. 이때 첫 오페라인 '성자 조나단 대령'(Colonel Jonathan the Saint)을 완성했다. 그후 볼티모어의 힐탑오페라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스트맨음악학교에서 후진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58년부터 1997년까지는 미네소타대학교 음악학부의 교수로서 재직하였다. 현재는 미네소타대학교의 명예교수이다. 사람들은 아르젠토의 기악곡들보다 성악작품들을 더 높이 평가했다. 오페라, 합창곡, 솔로 곡 등이다. 아르젠토는 인간의 음성이 더욱 드라마틱한 충격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은 성악작품들에는 물론, 기악작품에서도 인간의 음성을 중요시했다. 그의 음악이 풍부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는 소규모의 작품이다. 성악 출연자들은 7-8명에 불과하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 클라리넷, 색스폰, 트롬본, 바이올린, 비올라, 베이스, 클래시컬 기타, 그리고 타악기 파트로 구성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는 어찌보면 기차역에서 연주를 하는 밴드로 생각될 정도이다. 스코어에는 전통적인 음향과는 거리가 먼 것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면 기차의 기적소리, 증기를 내뿜는 소리, 바퀴의 브레이크 소리 등이다. 무대인 기차역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지나치는 장소라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미스터 오웬(Mr Owen: T)

- 케이크 상자를 든 부인(Lady with a Cake Box: S)

- 외국인 가수(Foreign Singer: MS)

- 손거울을 든 부인(Lady with a Hand Mirror: Coloratura S)

- 낡은 짐가장을 든 남자(Man with a Old Luggage: Lyric T)/인형 1(Puppet 1)

- 구두 판매원(Shoe Salesman: Bar)/인형 2(Puppet 2)

- 코르넷 케이스를 가진 남자(Man with a Cornet Case: B)/인형 만드는 사람(Puppet Maker)

- 2명의 무언극 하는 사람들(2 Mimers)

 

이상의 사람들이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각자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소개한다. 하지만 자기들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밝히려 하지 않는다. 잠시후에 인형(마리오네트)을 만드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차역에서 눌러 붙어 지낼 생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이리저리 콘트롤하려고 노력한다. 무대에는 여러 장면의 사진들이 비춰진다. 어떤 어린아이가 천진스러운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형들은 마치 섹스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뒤엉켜서 혼란스럽다. 어떤 여인은 자기의 작은 손거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다른 사람은 짝사랑을 다룬 비련의 내용의 옛날 노래를 부른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상자 안에 두었네'(I Keep My Beloved in a Box)이다. 마침 연결 기차가 소리도 요란하게 도착한다. 마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he Beach)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과 흡사하다. 사람들이 모두 기차를 타고 떠나지만 한 사람만이 남아 있다. 미스터 오웬이다. 미스터 오웬인 자기가 보트를 타고 저 멀리 바다로 나갔었다는 얘기를 과장되게 한다. 미스터 오웬은 인형 주인이 기차역의 주인 행세를 하고 승객들을 콘트롤하려는데 대하여 반기를 든다. 인형 주인은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자기의 인형으로 만들 생각이다. 인형 주인은 승객 중에서 한 사람, 즉 외국인 가수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게 해서 인형으로 만드는 것을 보류한다. 하지만 인형 주인은 막이 내려질 때 쯤해서는 모두를 자기 인형처럼 콘트롤하게 된다. 이상이 대략적인 스토리이다. 이처럼 이 오페라는 누구나 이해할수 있는 어떤 분명한 스토리가 없다. 다만, 강력한 이미지와 추측으로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이 오페라는 인간이 얼마나 자아를 잃고 잔혹하게 되는지를, 그리고 가장된 인간의 마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승객들은 겉으로는 화목하고 즐겁게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를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 그러는 중에 인형 주인(퍼펫 마스터)은 승객 한사람 한사람 씩을 유혹해서 자기의 인형처럼 만들고자 한다. 인형극의 인형들은 주인이 흔드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겉으로는 웃고 울고 하지만 자기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오페라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차역이라는 장소에 모여 있는 이야기를 다룬 초현실주의적인 오페라이다. 각 사람들은 자기의 짐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다. 각자의 짐은 바로 자기를 규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짐가방들은 각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이 오페라는 마치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을 보는 것과 같다. 아르젠토의 음악은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것이다. 이 오페라에는 바그너의 음악을 발췌하여 사용한 부분도 있다. 발레음악인 '바이로이트의 기념품'(Douvenirs de Bayreuth)이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에 무언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캬바레 음악과 오페레타 스타일의 음악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래그타임 음악이나 20세기 후반기의 팝 음악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서정적인 내용의 음악이 도처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