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속성 역사 정복

오스트리아 국가와 국화와 국기

정준극 2014. 12. 9. 10:08

오스트리아 국가와 국화와 국기

 

산의 나라, 강의 나라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의 국가(國歌: Bundeshymne)는 1947년 2월 25일에 공식 채택한 Land der Berge(산의 나라)이다. 전쟁후 오스트리아 정부는 과거 하이든의 현악4중주에 나오는 멜로디에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아이니히카이트 운트 레헤트 운트 프라이하이트)라는 가사를 붙인 국가를 대체하기 위해 공모를 하였고 여기에서 3절로 된 아래와 같은 가사가 당선되었다. 가사를 쓴 사람은 파울라 폰 프레라도비츠(Paula von Preradovic: 1881-1951)여사로서 당시 오스트리아 연방정부의 문교장관이던 펠릭스 후르데스(Felix Hurdes)의 어머니였다. 파울라 폰 프레라도비츠 여사는 아들 펠릭스가 '어머니, 집에서 심심하게 가만히 있지만 마시고 한번 국가의 가사를 만들어서 응모해 보세요. 어머니는 노래 가사를 잘 지으시잖아요?'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써서 냈다가 당첨이 된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하이든의 현악4중주에 나오는 멜로디에 '신이여 우리의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라는 가사를 붙인 국가는 사실상 독일이 1922년부터 사용한 것으로서 나치가 집권하자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치의 이미지를 씻기 위해 새로 국가의 가사를 공모하게 된 것이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은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에 하이든이 비엔나에 있는 프리메이슨의 지부를 위해 작곡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현재의 오스트리아 국가의 멜로디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요한 홀처(Johann Holzer: 1753-1818)라는 사람이 작곡한 멜로디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모차르트의 작곡으로 되어 있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Land der Berge, Land am Strome,(산의 나라, 강의 나라)
Land der Äcker, Land der Dome,(밭의 나라, 성당의 나라)
Land der Hämmer, zukunftsreich!(망치의 나라, 미래의 나라)
Heimat bist du großer Söhne,(우리 자손들의 고향)
Volk, begnadet für das Schöne,(아름다움으로 축복받은 나라)
vielgerühmtes Österreich,(한없는 찬양을 받을 오스트리아)
vielgerühmtes Österreich!(한없는 찬양을 받을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간마을의 겨울밤.


- 오스트리아의 국화는 에델봐이스(Edelweiss)이다. 하얀 색의 별모양의 작은 꽃이다. 해바라기과에 속한 꽃이다. 오스트리아 유로화에도 나와 있다. 에델봐이스는 여름 한철에만 핀다는 단점이 있지만 고귀한 모습으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상징하고 있다. 에델봐이스는 플로아레아 레지나이(Floarea Reginei)라는 별명이 있다. '여왕 꽃'(Queen flower)라는 뜻이다. 오스트리아가 언제부터 에델봐이스를 나라꽃으로 삼았는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온 후에 '에델봐이스'가 오스트리아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에델봐이스' 노래가 오스트리아의 전통 민속노래인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초에 미국의 오스카 햄머슈타인이 가사를 붙이고 리챠드 로저스가 곡을 붙인 노래이다.

 

오스트리아의 국화인 에델봐이스

 

오스트리아 국기는 아래에서 보는 대로 적-백-적의 세줄로 된 것이다. 이 국기는 중세 바벤버그 왕조의 문장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1230년부터 바벤버그 왕조가 방패 디자인으로 사용했고 이어 문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흑-황의 두 줄이 그려져 있는 방패와 문장을 사용했다. 신성로마제국도 당연히 흑-황의 무늬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다시 적-백-적 세줄의 기를 해양기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어 1918년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이를 국기로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중세부터 사용되었던 적-백-적 세줄의 문장은 아마도 오타카르 왕조가 슈티리아를 통치 할 때부터 사용했던 것을 바벤버그 왕조가 물려받아 사용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짐작이다. 오타카르 왕조는 1056년부터 1192년까지 슈티리아 영토를 통치했던 왕조이다. 바벤버그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적-백-적 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레오폴드 3세(1095-1136)이라고 한다. 1192년에 오타카르 왕조가 통치하던 슈티리아 공국이 문을 닫게 되자 슈티리아는 바벤버그의 레오폴드 5세가 인수하여 오스트리아에 종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슈티리아의 문장이 바벤버그의 오스트리아로 이전되었다는 것이다. 그후 저맨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생겨서 공식적으로 국기로 삼을 때까지의 우여곡절은 지면사정상 생략코자 한다.

 

적-백-적 세줄의 오스트리아 국기

 

다만, 바벤버그가 어째서 이런 디자인의 국기를 채택하였는지에 대하여는 간단한 전설이 있어서 말하고자 한다. 오스트리아 공국의 레오폴드 5세는 3차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이 점유하고 있던 아크레(Acre 또는 Akko)를 포위하고 쌍방간에 처절한 전투를 계속하였다. 1189년부터 1191년까지 무려 3년간 계속된 전투였다. 이를 역사에서는 아크레 공방전이라고 부른다. 이 전투에서 레오폴드 5세의 십자군이 결국은 승리를 거두고 살라딘의 군대를 궤멸시켰지만 십자군측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전투 중에 레오폴드 5세의 흰색 겉옷이 피로 물들어서 마치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되었다. 레오폴드 5세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하니 벨트를 풀었더니 벨트를 맷던 자리만 피가 묻지 않아 흰색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적-백-적의 콤비네이션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레오폴드 5세는 깊은 감동을 받아서 그 모습을 군기로 사용하였고 이어 오스트리아 공국의 국기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크레 공방전에서 승리하여 입성하는 레오폴드 5세. 11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