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정준극 2015. 2. 12. 09:39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Croatian National Theater in Zagreb)

흐르부츠코 나로드노 카잘리스테 우 자그레부(Hrvatsko narodno kazaliste u Zagrebu) - HNK Zagreb

 

자그레브 크로아티아국립극장의 위용

 

크로아티아는 1991년에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되자 독립을 선포한 중동부 유럽의 국가이다. 우리는 크로아티아라고 하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면서도 보스니아 내전과 관련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저 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먼 나라라고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크로아티아에 대하여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축구 잘하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중동부 유럽의 아드리아해에 면하여 있는 나라로서 바다 건너는 이탈리아 반도이다. 크로아티아의 북쪽 끝에서 바다를 건너면 바로 베니스이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의 긴 해안선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해안을 따라 무려 1천여개의 섬이 있는 나라이다. 크로아티아는 다른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오토만 터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이며 동양적인 헝가리의 영향도 많이 받은 나라이다. 크로아티나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온갖 이국적인 문물이 융화되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는 지형적으로 북쪽에는 슬로베니아, 동북쪽에는 헝가리, 동쪽에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동북쪽에는 세르비아, 남쪽에는 몬테네그로, 그리고 서쪽에는 아드리아해를 안고 있는 나라이다. 이만하면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복잡한지를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자그레브 크로아티아국립극장의 입구 홀

 

크로아티아는 그나라 말로 흐르바츠카(Hrvatska)라고 한다. 우리가 영어로는 코리아라고 하지만 우리 말로는 한국, 또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크로아티아의 인구는 430만명이다. 그중에서 수도인 자그레브의 인구는 약 8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80만명이라고 하면 몇년후 세종시의 인구와 같은 규모이다. 그런 작다면 작은 도시인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유산과 같이 아름답고 창연하다. 특히 다운타운의 중심지역에 있는 오페라극장은 마치 궁전과 같다. 실제로 과거 크로아티아왕국의 궁전으로 착각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이 있다. 대단한 건물이다. 내부도 장엄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자그레브의 오페라극장은 오페라뿐만 아니라 발레와 연극도 공연하는 국립극장이다. 그래서 굳이 오페라극장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택시를 타고 오페라극장에 가자고 하면 당연히 크로아티아국립극장으로 데려다 준다. 크로아티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극장이 여러 개가 있다. 예를 들면 스플리트(Split), 리예카(Rijeka), 오시예크(Osijek), 바라즈딘(Varazdin), 자다르(Zadar)에 있다. 자그레브의 국립극장은 그러한 국립극장의 하나이다.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국립극장은 중앙아시아의 다른 지역 국립극장들과는 달리 누구누구를 기념하여서 극장이름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크로아티아어로 '흐르바츠코 나로드노 카잘리스테 우 자그레브'라고 하는 것이 너무 길어서 간단히 약자로 HNK Zagreb 라고 부를 뿐이다. 만일 택시를 타고서 '흐르바츠코 나로드노 카잘리스테 우 자그레브'라고 말한다면 운전기사가 반색을 하고 아주 친절하게 무어라무어라 말할 것이다.

 

자그레브의 다운타운 마샬 티토 광장. 가운데 웅장한 건물이 오페라극장이다. 세계에서도 이만한 환경과 위치에 있는 오페라 극장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편, 최근 크로아티아에서는 마샬 티토 광장의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티토라는 이름은 공산치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을 일삼고 폭력정치를 실시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의 전신은 1836년에 지은 시립극장이다. 현재 구시청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그후 1860년에 크로아티아국립극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크로아티아국립극장은 유럽의 다른 여늬 유명 극장들과 마찬가지로 수준 높은 공연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부로부터의 지원도 충실히 받았다. 전속 오페라단이 생긴 것은 1870년이었다. 그렇게 식구가 늘어나자 당시의 건물로서는 규모가 작아서 새로운 극장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나왔다. 지금의 자그레브 다운타운(Donji grad)의 마샬 티토 광장(Marshal Tito Square: Trg marsala Tita)에 부지를 마련했다. 새로운 극장의 설계는 비엔나의 유명한 건축가들인 페르디난트 펠너와 헤르만 헬머가 맡았다. 이들이 만든 건축회사인 펠너와 헬머(Fellner & Helmer)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 오페라극장을 전문적으로 지은 경력이 있는 회사이다. 화려하고 웅대한 건물은 1895년에 완공되었다. 1905년에는 건물 앞 광장에 '생명의 원천'(The Source of Life)라는 벽면 분수를 설치했다. 크로아티아 조각가인 이반 메스트로비치(Ivan Mestrovic)가 제작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셉 황제가 직접 오프닝에 참석했다. 당시에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하여 있었다. 1995년 10월 14일에는 자그레브 크로아티아국립극장 설립 100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가졌다.

 

자그레브 국립극장의 아름다운 커튼. 보라 얼마나 대단한가를!

 

이 극장에서 크로아티아 출신의 수많은 저명 예술가들이 활동했다. 초대 매니저 겸 극작가는 그리스계의 크로아티아 시인인 디미트리야 데메터(Dimitrija Demeter)였다. 크로아티아 국민주의 예술을 높이 주창한 사람이었다. 1923년부터 1958년까지 오페라 지휘자는 야코프 고토바치(Jakov Gotovac)였다.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극장감독인 브란코 가벨라(Branko Gavella)도 이 극장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미아 코라크 슬라벤스카(Mia Corak Slavenska)도 이 극장 출신이다. 이 극장의 무대에 섰던 인물들로서는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배우 사라 베른하르트,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배우 제라르 필립, 배우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장 루이 바로, 페터 브루크,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와 호세 카레라스 등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크로아티아에는 60개 이상의 전문극장이 있어서 매년 약 8천 8백회 이상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이 극장에서의 2천 8백여회 공연과 아마추어 극장에서의 1천회 공연은 별도이다. 이처럼 크로아티아 국민들은 연극과 오페라와 발레를 매우 선호하고 있다.

 

자그레브 국립극장에서의 발레 공연

 

[참고자료]

 

유고슬라비아의 구성(SR: Socialist Republic, SAP: Socialist Autonomous Province)

 

- SR Bosnia and Herzegogvian(Sarajevo)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

- SR Croatia(Zagreb) → 크로아티아 공화국

- SR Macedonia(Skopje) → 마세도니아 공화국

- SR Montenegro(Titograd→Podgorica) → 몬테네그로 공화국

- SR Slovenia(Ljubliana) → 슬로베니아 공화국

- SR Servia(Belgrade) → 세르비아 공화국

  - SAP Kosovo(Pristina) - 코소보

  - SAP Vojvodina(Novi Sad) - 보이보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