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타슈켄트의 '나보이 오페라-발레 극장'

정준극 2015. 2. 11. 21:07

나보이 오페라-발레 공화국 극장(Alisher Navoi Theater of the Republic for Opera and Ballet)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오페라 극장

 

타슈켄트 오페라 하우스. 역시 이슬람 스타일이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중앙아시아에 있는 스탄 국가 중의 하나이다. 1991년에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공화국이 된 나라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완전히 다른 나라들에 둘러싸인 내륙국가이다. 북쪽으로는 카자크스탄과 아랄해가 있고 동남쪽으로는 타지크스탄, 동북쪽으로는 키르기즈스탄,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서남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인구 3천만 명이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다. 인구는 2백 40만명이다. 타슈켄트의 아타투르크(Ataturk) 거리에 나보이 극장이 있다. 타슈켄트 오페라 극장이다. 간단히 나보이 극장(Navoi Theater) 또는 복잡하게 '알리세르 나보이 오페라-발레 공화국 극장'(Alisher Navoi Theater of the Republic for Oprera and Ballet)라고 부르는 극장이다. 중앙아시아의 극장들은 대체로 누구누구를 기념하는 극장이라고 해서 유명한 문화예술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타슈켄트의 나보이 극장은 이름에서 볼수 있는대로 16세기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시인인 알리세르 나보이(Alisher Navoi 또는 Ali-Shir Nava'i: 1441-1501)를 극장 이름으로 명명했다. 나보이는 샤가타이어 문학을 꽃피운 위대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면서도 정치가, 언어학자, 화가 등등의 호칭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으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주로 활동한 알리 쉬르 나바이(알리세르 나보이)

 

현재의 극장은 1942년에 건설을 시작했다. 러시아 출신의 알렉세이 슈추세프(Alexey Shchusev: 1889-1949)가 설계를 맡았다. 원래는 1941년에 착공코자 했다. 1941년은 알리세르 나보이의 탄생 500 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였다. 그러나 2차 대전의 와중이어서 건축은 예정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나마 건축에 박차를 가하여 결국 1947년에 완공을 보았다. 타슈켄트는 알리세르 나보이의 탄생 500 주년을 축하하는 것을 계속 연기하고 있다가 1947년에 오페라 극장의 준공과 함께 축하했다. 나보이 극장을 1947년에 완공할수 있었던 것은 1945년 전쟁이 끝나고서부터 일본군 전쟁포로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일본군 전쟁포로들은 중국 광동에서 붙잡혀 중앙아시아로 추방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타슈켄트로 와서 오페라 극장의 마지막 공정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전쟁포로들을 동원해서 오페라 극장을 지은 경우는 타슈켄트 오페라극장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별일도 다 있다. 극장은 1천 4백석 규모이다. 중앙 무대는 넓이가 540 평방미터에 이른다. 상당한 넓이이다. 알리세르 나보이 오페라-발레 극장은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또한 가장 독특한 형태로 건설된 극장이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그런 오페라 극장을 보유하게 되어 무척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메인 홀 오디토리움. 사마르칸다 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독특한 형태로 건설된 극장이라고 말한 것은 이 극장에 있는 여러 개의 홀을 우즈베키스탄의 각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타슈켄트 홀, 부카라 홀, 코레즘 홀, 사마르칸드 홀, 페르가나 홀, 테르메즈 홀 등은 각각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과 특성으로 장식되었던 것이다. 극장 회랑의 벽면은 알리세르 나보이의 시에서 발췌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고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자연경관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벽화를 그린 화가들은 모두 우즈베키스탄 출신들이었다. 극장 건설이 끝난 후에는 건물 앞에 분수를 설치했다. 그리하여 나보이 오페라-발레 극장과 분수는 타슈켄트의 명소가 되었다.

 

오페라극장과 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