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소피아의 '불가리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

정준극 2015. 2. 19. 21:52

소피아의 '불가리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National Opera and Ballet, Sofia)

불가리아 최대 오페라-발레 극장...시인 이반 바초프 기념

 

이반 바초프 국립오페라-발레 극장. 정면에는 National Theater Ivan Vasov(이반 바소프 국립극장)이라고 써 놓았다.

 

소피아의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은 불가리아 출신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인 이반 바초프(Ivan Vazov: 1850-1921)를 기념하여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극장이다.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을 짓기로 하고 설계를 시작한 것은 이반 바초프가 세상을 떠난 해였다. 설계는 일찍 시작되었지만 실제 공사는 1947년 경에 거의 완성했고 오프닝은 1953년에 가졌다. 보통 '소피아 오페라극장'이라고 부르는 '이반 바초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

은 전형적인 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불가리아에는 여러 지방도시에 훌륭한 오페라 극장들이 있다. 불가리아 서부의 블라고에브그라드(Blagoevgrad), 북쪽 루마니아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루세(Ruse), 동쪽 흑해변의 부르가스(Burgas), 북쪽 루마니아 방면에 있는 플레벤(Pleven), 남서부 쪽의 플로브디브(Plovdiv), 중부의 스타라 차고라(Stara Zagora), 역시 흑해에서 가까운 바르나(Varna), 그리고 소피아(Sofia)에 유럽에서도 수준 높은 오페라 극장들이 있다. 그중에서 물론 소피아의 오페라 극장이 높은 수준의 불가리아 오페라를 대표하고 있다.

 

소피아오페라극장 앞의 광장은 소피아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광장이다.

 

소피아는 지리적으로 이스탄불에서 중부 유럽으로 가는 간선도로의 길목에 있다. 소피아는 불가리아의 정치행정 수도이기도 하지만 문화예술의 수도이기도 하다. 불가리아는 비교적 근세인 1878년에 터키의 통치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방과 여러 분야에서 다이나믹한 변화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1891년에 '드라마틱 오페라단'(Dramatichesko-Operna Trupa)이 설립된 것이다. 불가리아와 체코 성악가들로 구성된 이 오페라단은 유명 오페라의 발췌곡을 무대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불가리아에서 자체 오페라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오페라단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떻게 된다고 말들이 많아서 결국 사람들이 빠져 나와서 새로운 단체들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눈물과 웃음'(Salza i Smyah)이라는 독립적인 극단과 '스톨치나 오페르나 트루파'(Stolchina Operna Trupa: Sofia Opera Company)라는 오페라단이었다. 소피아 오페라단은 소피아음악학교와 불가리아음악연맹, 그리고 러시아의 유명한 배우들의 후원을 받아서 발전적으로 개편하여 '불가리아오페라협회'(Bulgarska Operna Druzhba)로 재출범하였다. '불가리아오페라협회'는 국립극장 등에서 공연하였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모든 것이 어려워졌고 특히 적당한 성악가들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예술가들이라고 해도 예외없이 전쟁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후인 1922년, 불가리아오페라협회는 '소피아국립오페라'(Sofiyska Narodna Opera)가 되었다.

 

소피아국립오페라의 오디토리움

 

그러는 중에 1923년 2월에 국립극장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소피아국립오페라는 '자유극장'(Svoboden Theater)와 '르네상스 극장'(Renesans Theater)에서 공연을 하였다. 1929년에 새로운 극장이 완성되어 소피아국립오페라는 다행히 본부를 찾게 되었다. 소피아국립오페라는 유럽의 스탠다드 레퍼토리를 주로 공연하였으나 불가리아 작곡가에 의한 창작오페라들도 공연하였다. 이제 소피아국립오페라는 유럽의 여늬 오페라단에 비하여 손색이 없는 훌륭한 오페라단이 되었다. 국립극장은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에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소피아국립오페라는 발칸극장에서 공연을 하였고 그 후에는 새로 지은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이 기간에 공연된 대표적인 불가리아 창작오페라는 유도미르 피프코프(Lyudomir Pipkov: 1904-1974)의 '몸칠'(Momchil)이다. 한편, 음악가협회극장(Darzhaven Musikalen Teater)의 '스테판 마케돈스키' 극장은 주로 오페레타와 뮤지컬 코미디를 공연했다. 소피아국립오페라는 1944년 이후부터 유망 성악가를 훈련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때 발굴된 인물들이 예를 들면 나중에 세계적인 오페라 성악가가 된 니콜라이 기아우로프(Nicolai Ghiaurov)와 디미터 우주노프(Dimeteer Uzunov) 등이다.

 

소피아국립오페라 출신의 베이스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메트로폴리탄의 '돈 카를로스'에서 펠립 2세를 맡은 기아우로프. 그래서 소피라국립오페라는 기아우로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하여서 그가 가장 뛰어나게 역할을 맡았던 '돈 카를로스'를 2014년에 소피라국립오페라에서 공연키로 한 것이다.

 

소피아국립오페라는 1997년에 처음으로 야외공연을 시도했다. '아이다'를 알렉산더 바텐버그 광장에 스테이지를 만들고 공연했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블라디게로프의 '짜르 칼로얀'(Tsar Kaloyan), 1999년에는 보로딘의 '이고르 공'(Prince Igor)을 야외공연했다. 이 모든 새로운 프로그램이 소피아국립오페라의 총감독으로 임명된 플라멘 카르탈로프(Plamen Kartaloff)의 아이디어였다. 또한 소피아국립오페라는 브라질 출신의 오페라 작곡가인 카를로스 고메스의 작품들을 연속 공연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주도하였다. '일 과라니'(Il Guarany), 포스카(Fosca), 마리아 튜도르(Maria Tudor)가 새로운 각도의 연출로 공연되었다. 소피아국립오페라는 음반 취입에도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대표적인 음반 취입은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코반치나(Khovantchina), 전쟁과 편화(War and Peace), 아이다(Aida), 카르멘(Carmen), 아드리아나 르쿠브러(Adriana Lecouvreur) 등이다.

 

소피아국립오페라의 '돈 카를로스' 공연. 2014년 시즌. 필립2세 역에 베이스 바리톤 페루치오 푸를라네토(Ferruccio Furlanetto). 2014년 시즌 공연은 불가리아 출신의 20세기 최고의 베이스인 보리스 크리스토프(Boris Christoff: 1914-1993)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것이며 아울러 위대한 오페라 감독인 미하일 하즈히미세(Mikhail Hadzhimishe)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다. 돈 카를로스'에서의 필립 2세의 역할은 보리스 크리스토프를 세계적인 베이스로 명성을 떨치게 해준 역할이다.

 

[불가리아의 지방도시 오페라]

○ Blagoevgrad Opera(블라고에프그라드 오페라): 블라고에프그라드는 불가리아에서도 민속이 풍부한 지역이다. 그리하여 불가리아 남서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부상한 도시이다. 오페라 공연은 1972년부터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정식 오페라를 공연한 것은 1977년 하이든의 Lo speziale(약사)였다. 블라고에프그라드 드라마 극장(Blagoevgrad Dramatichen Teatar)에서였다. 처음 생긴 오페라단은 '청년오페라'(Mladezhka Opera)라는 것이었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여러 명칭으로 바뀌다가 나중에는 '모두를 위한 청년 오페라단'(Mladezhka Opera za Vsichki)라는 이름을 가졌다. '청년오페라단'에는 처음에 아마추어 성악가 또는 대학졸업 초년생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나 나중에는 소피아에서 온 전문 성악가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여 전문오페라단으로 발전하였다. 블라고에프그라드 오페라는 글룩, 하이든, 몬테베르디, 헨리 퍼셀, 도니체티, 갈루피로부터 스트라빈스키, 알렉산더 홀미노프(Alexander Holminov), 그리고 지안 카를로 메노티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다.

 

블라고에프그라드 오페라 극장

 

○ Burgas Opera(부르가스 오페라): 부르가스는 불가리아의 흑해에 면한 도시 중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부르가스에서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것은 1901년이라고 한다. 1954년에는 상설 오페라단인 부르가스 아마추어 오페라(Burgaska Samodeyna Opera)가 설립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성악가들은 주로 부르가스에서 민속합창단(Naroden Khor)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첫번째 공연은 1955년 '라 트라비아타'였다. 그후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들을 공연했고 간혹 모차르트 또는 불가리아 작곡가에 의한 작품들도 공연했다. 부르가스는 흑해에 면한 휴양도시이므로 여름철에 야외 공연도 가졌다. 초기에는 석유화학 공장이 운영하는 '문화클럽'이라는 장소에서 공연을 가졌으나 1983년 이후에는 8백석 규모의 '부르가스 오페라 하우스'가 완성되어 그곳에서 공연했다.

 

부르가스 오페라 하우스

 

○ Pleven Opera(플레벤 오페라): 플레벤은 불가리아 북쪽에 있는 오랜 역사의 도시이다. 오페라 활동은 1970년에 플레벤 아마추어 오페라단(Plevenska Samodeyna Opera)가 파라쉬케프 하지에프(Parashkev Hadjiev)의 '매드 캡'(Lud idiya: The Madcap)을 공연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악가이며 음악교사인 크리스토 브람바로프(Christo Brambarov)가 이 오페라단을 적극 지도했다. 그래서 1975년에 전문오페라단으로 발전하면서 오페라단의 이름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일 트로바토레', '람메무어의 루치아', 그리고 마린 골레미노프(Marin Goleminov)의 '불의 댄서'(Nesinarka: The Fire Dancer)를 성공적으로 공연했다. 오페라 공연장은 19세기에 완성된 플레벤 드라마 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1962년에 5백석 규모로 재단장을 하여 지방오페라극장으로서는 손색이 없게 되었다.

 

플레벤 오페라극장

 

○ Plovdiv Opera(플로브디프 오페라): 플로브디프는 1878년 오토만 터키로부터 해방되고 나서부터 불가리아의 중요한 문화센터가 된 도시이다. 얼마후 부터 이탈리아 순회 오페라단이 와서 오페라를 공연한 것이 자극이 되어 1896년에 자체 오페라단이 결성되었다. 그후 플로브디프에는 여러 오페라단들이 설립되어 나름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1953년에 창단된 플로브디프 국립 오페라(Plovdivska Narodna Opera)이다. 창단 기념으로 국립극장에서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를 공연했다. 플로드디프의 대표적인 오페라단으로서 폭넓은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렸다. '마술피리', '호프만의 이야기', '스페인의 시간', '아드리아나 르쿠브러', '카타 카바노바', 프로코피에프의 '안티고나 43' 등이다. 한편, 1972년에는 산사태가 일어났는데 그때 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 원형극장이 발견되었다. 시당국이 원형극장을 복구하여 현재 공연장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했다. 6월의 '베르디 페스티발'도 원형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플로브디프의 로마시대 원형극장

 

○ Ruse Opera(루세 오페라): 루세는 불가리아의 북쪽, 다뉴브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일찍이 1914년에 '루세 오페라 협회'(Rusenska Operna Druzhba)가 결성되었고 이와 함께 교향악단도 창설되었다. 이 오페라 협회가 1949년에 루세 국립 오페라(Narodna Operna Ruse)로 발전하였다. 1949년의 창단 공연은 '라 트라비아타'였다. 교향악단도 발전하여 현재의 국립교향악단(Darzhaven Simfonichen Orkestar)가 되었다. 루세 오페라와 발레는 불가리아에서도 정상급에 속한다. 수많은 성악가, 발레 댄서들이 활동했지만 소프라노 스테프카 에브스타티에바(Stefka Evstatieva: 1947-)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3월에는 '3월 음악의 날'(Martenski Muzikalni Dni)이라는 페스티발이 열린다. 루세 국립오페라는 국립극장을 이용하여 공연했으나 1956년부터는 새로 건설한 670석 규모의 극장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루세 오페라극장

 

○ Stara Zagora Opera(스타라 자고라 오페라): 스타라 자고라는 동서 유럽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만큼 문화예술 활동도 오랜 전통과 함께 활발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897년에 '카발 음악협회'(Kaval Music Society)가 결성되었다. 이 협회는 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25년에 게오르기 아타나소프(Georgi Atanasov)의 '게르가나'(Gergana)를 풀 스케일로 공연하였다. 1931년에는 '남불가리아 지역 오페라'가  창단되었다. 그후 1946년에 이 오페라단은 '스타라 자고라 국립 오페라'(Narodna Opera Stara Zagora)로 발전적인 개편을 보았다 창단 공연은 '세빌리아의 이발사'였다. 스타라 자고라는 1970년대부터 불가리아에서는 유일한 오페라-발레 페스티발을 주관해 왔다. 그리고 1972년에 7백석 규모의 오페라 전용극장이 완성되었다.

 

스타라 자고라 오페라극장

 

○ Varna Opera(바르나 오페라): 바르나는 흑해에 면한 불가리아 제일의 항구도시이다. 바르나는 불가리아 동북지방에서 오페라 활동의 중심이다. 1893년에 성미카엘 교회에서 비록 종교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오페라 장면들을 공연한 것이 바르나에서 오페라 활동의 시초이다. 그후 1899년에 '굴사 음악협회'(Gulsa Music Society)가 결성되어 오페라 전용극장의 건설과 오페라 공연을 계획했다. 이와 함께 1937년에는 바르나에서는 불가리아 음악페스티발이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바르나스는 1944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국제음악페스티발인 '바르나 섬머'(Varensko Lyato)의 본부로서 활동을 했다. 1946년에는 교향악단이 창단되었고 1947년에는 가존의 오페라단들을 통폐합하여 바르나 국립 오페라(Varneska Narodno Opera)가 창단되었다. 창단공연은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였다. 레퍼토리 중에서 '여자는 다 그래', '알버트 헤링'(벤자민 브리튼), '거지 오페라'(벤자민 브리튼 편곡),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수도원에서의 결혼'(프로코피에프) 등은 불가리아 초연들이었다. 바르나 국립극장은 1932년에 완공된 클래식 양식의 건물로서 6백석 규모이다. 1980년대에 보수공사를 하여 1989년에 재개관하였다. 재개관 기념 공연은 '마술피리'였다.

 

바르나 국립극장의 오디토리움과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