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터키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

정준극 2015. 2. 21. 20:24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Ankara Opera House) - Opera Sahnesi -  Büyük Sahne

터키 국립 오페라-발레(Turkish State Opera and Ballet: Devlet Opera ve Balesi) 산하

 

터키는 동양이면서도 유럽이다. 그래서 유럽 오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터키가 유럽 오페라에 끼친 영향도 크다. 터키를 소재로 삼은 오페라들이 더러 있음을 볼수 있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후궁에서의 도주'(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이다. 일찍부터 유럽과 교통을 해 온 터키는 오페라에서도 유럽의 수준을 따라잡고자 노력하였다.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는 대표적으로 세 곳의 오페라극장이 있다. '터키 국립 오페라-발레'에 속한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Opera Sahnesi: 오페라 사흐네시), 터키가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소프라노인 레일라 겐서를 기념하는 '레일라 겐서 극장'(Leyla Gencer Sahnesi: 오스팀 소재), 그리고 오페레타를 주로 공연하는 '오페레타 극장'(Operet Sahnesi: 시히예 소재)이다. 그 중에서 우선 소개코자 하는 오페라 극장은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이다. 곁들여 말하자면 터키에는 '터키 국립 오페라-발레'라는 조직의 산하에 앙카라, 이스탄불(Istanbul), 이즈미르(Izmir), 메르신(Mersin), 안탈랴(Antalya), 삼순(Samsun)에 국립 오페라-발레(단)이 있다.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 전경. 옛 전시회장을 개조한 건물이다.

 

원래 현재의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는 1933년에 터키의 전도유먕한 건축가인 세브키 발뭄쿠(Sevki Balmumcu)가 전시회장으로 설계한 건물이다. 이를 나중에 독일의 건축가인 파울 보나츠(Paul Bonatz)가 오페라 하우스로 개조하였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는 1948년 4월 2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앙카라 정부는 아타튀르크(Atatürk)의 유언에 의해 규모가 더 큰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를 오리지널 장소 인근에 2005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앙카라 회의 문화 센터'(Ankara Congress and Culture Center)라는 명칭의 건축공사는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었다.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또한 '뷰유크 티야트로'(Büyük Tiyatro 또는  Büyük Sahne)라는 이름으로 터키국립극장의 공연 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앙카라 국립오페라의 여러 공연 장면

 

터키에서 처음 공연되었던 오페라들은 대개가 오토만 터키의 개혁군주인 셀림 3세(Selim III: 1761-1808)의 치적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터키는 오페라 활동을 셀림 3세의 기여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실은 셀림 3세는 작곡가이기도 했고 시인이기도 했다. 셀림 3세는 일찍이 1797년에 외국으로부터(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오페라단을 초청하여 토프카피(Topkapi) 궁전에서 공연토록 했다. 그러나 외국 오페라단의 공연은 이탈리아어 또는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터키인들에게 생소하였다. 터키어로 번역된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것은 1840년이었다. 도니체티의 '벨리사리오'(Belisario)였다. 마침 당시에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보스코가 세운 극장이 완성되어 그곳에서 '벨리사리오'가 터키어로 공연되었다. 터키에서 오페라 활동을 주도한 인물은 튜튠쥬오글루 미카엘 나움 에펜디(Tütüncüoglu Michael Naum Efendi)였다. 미카엘 나움 에펜디는 1844년에 앙카라에 새로 지은 극장을 인수했다. 미카엘 나움 에펜디는 그후 무려 26년 동안 터키에서 오페라 공연을 위해 헌신하였다. 1846년에 터키에서 공연된 중요한 작품은 베르디의 '에르나니'였다. '에르나니'는 독재에 대한 항거를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해에 나움 에펜디의 극장이 화재로 파괴되었다. 그 자리에 새로운 극장이 들어섰다. 1846년부터 1877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앙카라의 나움 에펜디 극장은 주로 베르디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베르디의 작품들은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순수 터키의 오페레타도 선을 보였다. 터키어로 된 오페레타로서는 아르메니아의 작곡가인 디크란 주하지얀(Dikran Cuhaciyan: 1837-1898)이 작곡한 '병아리콩 장수 호르호르'(Leblebici Horhor: Horhor the chick pea seller)가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디크란 쿠하시얀은 또한 터키어로 된 최초의 오페라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1874년의 '아리프의 속임수'(Arif'in Hilesi: Arif's Deception)이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는 터키 자체의 오페라 또는 발레 공연은 일시중지될수 밖에 없었다. 전쟁 때문이었다. 특히 발칸 전쟁과 1차 대전은 제국의 몰락을 가져다 준 것이었고 이로써 문화예술 활동도 타격을 입을수 밖에 없었다.

 

앙카라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 세워진 퀴네이트 괵서(Cuneyt Gokcer:: 1920-2009) 동상. 훌륭한 배우 겸 극장감독이었다. 앙카라 국립 오페라에는 세계적인 오페라 소프라노 레일라 겐서(Leyla Gencer), 유명한 배우 겸 감독인 무신 에르투그룰(Muhsin Ertugrul: 1892-1979)의 기념상도 함께 있다.

 

1923년에 터키에 새로운 공화국이 들어섰다. 이어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아타튜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의 개혁이 뒤따랐다.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타튀르크는 음악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유럽에 보내어 공부를 하고 터키로 돌아와서 음악활동을 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24년에는 앙카라와 이스탄불에 음악원(Musiki Muallim Mektebi)이 설립되었다. 유럽에서 공부했던 젊은 인재들이 음악원의 교수로서 봉사하였다. 1934년에는 최초의 터키인에 의한 터키 오페라인 '외초이'(Özsoy)가 무대에 올려졌다. 아흐메드 아드난 사이군(Ahmed Adnan Saygun)이 작곡했다. 아드난 사이군의 '타스베베크'(Tasbebek)와 네질 카짐 아케세스(Necil Kazim Akeses)의 '언데르 총독'(Bay Önder)도 이어서 공연되었다. 독일과 가까웠던 터키는 독일의 음악가를 초청해서 터키의 음악교육 등 음악 전반에 걸친 제도와 정책을 검토하도록 했다. 작곡가인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와 극장감독인 카를 에버트(Carl Ebert)가 초청을 받았다. 두 사람은 앙카라의 음악원에서 강의를 하며 음악정책과 음악교육에 대한 자문을 하였다. 터키 정부는 두 사람에게 앙카라 음악원의 종신교수가 되어 줄것을 요청했다. 파울 힌데미트는 사정상 거절하였지만 카를 에버트는 음악원장으로서 9년 동안 더 봉사했다. 파울 힌데미트도 비록 사정상 독일로 돌아갔지만 그 후에도 앙카라를 자주 방문하여 계속 자문 활동을 했다.

 

  

아타튀르크 대통령;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 배우, 극장감독 겸 문화행정가인 카를 에버트. 모두들 터키의 음악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쌓았다.

 

1940년에 터키 정부는 앙카라 음악원에 음악, 오페라, 발레, 극장학과를 두도록 했다. 오페라과 학생들이 처음으로 공연한 작품은 모차르트의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였다. 터키어로 번역한 대본을 사용했고 오케스트라는 터키대통령교향악단이 맡았다. 1940년에는 또한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2막이 터키어로 번역되어 공연되었다. 그리고 1941년에는 '토스카'를 공연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도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중단될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후 본격 오페라 하우스의 확보가 추진되었다.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던 세르기에피 건물을 1947년부터 오페라 하우스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48년 4월 2일에 개관기념 행사를 가졌다. '터키의 5인'(Turkish Five)의 작품들이 연주되었고 오페라로서는 아흐메드 아드난 사이군의 '케렘'(Kerem)이 공연되었다. '터키의 5인'은 20세기의 터키공화국 초기에 유럽 고전음악을 도입하여 적용한 선구적인 작곡가 5인을 말한다. 이들은 아흐메드 아드난 사이군, 울비 제말 에르킨(Ulvi Cemal Erkin), 제말 레쉬트 레이(Cemal Rrsit Rey), 하산 페리트 알나르(Hasan Ferit Alnar), 네질 카짐 악세스(Necil Kazim Akses)이다. 앙카라 오페라 하우스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조직되었다. 한편, 이 기간중에 이스탄불음악원에 발레학과가 설치되었으나 1956년에 앙카라 국립음악원에 통합되었다. 그후 1958년에는 극장부문과 오페라부문이 분리되었 터키국립극장과 터키국립오페라-발레가 출범하게 되었다. 1959년에는 이스탄불 국립오페라-발레가 설립되었고 이어 1983년에는 이즈미르 국립오페라-발레가, 1992년에는 메르신 국립오페라-발레가, 1999년에는 안탈리야 국립 오페라-발레가 설립되었다.

 

앙카라 국립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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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üneyt Gökç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