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

정준극 2015. 2. 28. 19:40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Opernhaus Dortmund)

Dortmund Opera House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의 첨단적인 모습.

 

1966년에 문을 연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는 특이하게도 생겼다. 외관이 마치 중세 여인들의 모자처럼 생겼다. 오페라 '돈 카를로스'를 보면 그런 스타일의 모자를 쓴 귀부인들이 등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파리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르트문트에도 극장들이 많이 있다. 도르트문트 시립극장(Stadttheater Dortmund), 도르트문트 시립무대(Städitische Bühnen Dortmund), 도르트문트 연극장(샤우슈필 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 콘서트하우스(Konzerthaus Dortmund), 그리고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Opernhaus Dortmund)이다. 모두 '도르트문트 극장협회'(Theater Dortmund)가 운영하고 있다. 도르트문트에 오페라 전용의 극장이 처음 생긴 것은 1904년이었다. 슈타트테아터(시립극장)이었다. 건축가 마르틴 뒤플러가 설계했다. 1904년 12월의 개관기념공연은 바그너의 '탄호이저'였다. 그후 시립극장은 수많은 오페라와 발레, 연극 등을 공연했다. 1925년에는 부조니의 '독토르 파우스트'(Doktor Faust)를 공연했다. 그러나 이 극장은 2차 대전 중인 1943년 3월 1일에 공중폭격을 받아 크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로 수선을 하고 공연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나치가 독일내의 모든 극장을 폐쇄하는 법을 만들자 어쩔수 없이 1944년 9월에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바로 한달후인 1944년 10월에 다시 폭격을 받아 이번에는 건물의 형체를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다.

 

오디토리움

 

전쟁이 끝난후 몇년 동안은 정신이 없어서 극장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공연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1950년 9월에 임시로 '도르트문트 시립 무대'(Städtische Bühnen Dortmund)를 공연장소로 삼았다. '도르트문트 극장'을 '도르트문트 시립무대'라고 불렀다. 첫 공연은 베토벤의 '휘델리오'였다. 극장감독이던 발터 야콥은 바그너의 오페라를 공연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첫 시즌에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연출하고 지휘를 맡아했다. 발터 야콥은 그 다음해에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지휘했다. 1954년에는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뮤지컬 코미디인 '말없는 세레나데'(Die stumme Serenade)의 세계 초연을 제작하고 지휘했다. 1955년에는 프란츠 베르펠의 '야코보브스키와 대령'(Jacoboski und der Oberst)을 공연하였는데 발터 야콥은 그때 주역으로 출연까지 했다.

 

오랜 심의 끝에 새로운 오페라극장을 짓기로 하고 독일 건축가인 하인리히 로스코텐과 에드가르 트리트하르트에게 설계를 맡겼다. 새로운 오페라하우스는 1966년 3월 3일에 개관식을 가졌다. 명칭은 오페라하우스이지만 오페라뿐만 아니라 큰 스테이지를 필요로 하는 발레, 콘서트, 그리고 연극까지도 하는 장소이다. 오케스트라는 2002년까지 새로운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를 사용했으나 콘체러트하우스가 완성되고 나서는 그곳으로 이전하였다. 개관기념 공연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였다. 옥타비안은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칠리스 가가(Teresa Żylis-Gara)가 맡았고 마샬린은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그뤼머(Elisabeth Grümmer), 옥스 남작은 베이스 바리톤 크루트 뵘(Kurt Böhme)이 맡은 공연이었다.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는 새로운 개관 이후 나머지 시즌에 훼도라 바르비에리가 아주체나를 맡은 베르디의 '일트로바토레',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파울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 남작'을 무대에 올렸다. 재개관 이후 첫 시즌에서는 또한 연극으로서 베르톨트 브레헤트의 '길릴레이의 생애'(Leben des Galilei), 장 마리 뤼시앙 피에르 아누이(Jean Marie Lucien Piere Anouilh)의 '베케트'(Becket: 또는 신의 명예)가 그로세스 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철의 장막 시대로서는 극히 예외적인 사항으로서 로스토크의 폭스테아터 연극팀이 도르트문트에 와서 페터 봐이스(Peter Weiss: 1916-1982)의 긴제목의 연극인 '사드 후작의 지시 아래 샤렝통 정신병원의 수감자들로 구성된 연극팀이 시행한 장 폴 마라의 처형과 암살'(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d zu Charento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 The Persecution and Assassination of Jean-Paul Marat as Performed by the Inmates of the Asylum of Charenton Under the Direction of the Marquis de Sade)을 공연했다.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는 개관 이래 상당 수의 세계 초연을 기록하였다. 1967년에는 발터 슈테펜스(Walter Steffens)의 오페라 '엘리'(Eli)가 초연되었다. '엘리'는 넬리 작스(Nelly Sachs)의 드라마를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도르트문트시가 의뢰한 작품이다. 1992년에는 라인하르트 페벨(Reinhard Febel)의 '카스파르 하우저의 순간과 한 해'(Sekunden und Jahre des Caspar Hauser)가 초연되었다. 타이틀 롤은 알렉산더 마르코 부르메스터(Alexander Marco-Buhrmester)가 맡았다. 갸뱅 브리야르(Gavin Bryars)의 오페라 '옥스 박사의 실험'(Doctor Ox's Experiment)은 원래 1998년에 초연을 가졌으나 1999년에 일부 수정하여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 아닌 초연을 가졌다. 2000년에는 미하엘 호프슈테터(Michael Hofstetter)의 지휘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한 것이 뜻 깊었지만 그런 중에도 에리키 스벤 튀르(Erkki Sven Tüür)에게 '봘렌버그'(Wallenberg)라는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하였고 이듬해인 2001년에 초연을 가질수 있었다. 2004년은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도르트문트에 첫 오페라극장이 문을 연 것이 1904년이었으므로 그로부터 계산하면 그렇다. 이와 관련하여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전편의 새로운 제작을 기획하였다. 기획과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첫번째인 '라인의 황금'을 2005년 6월에야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지그프리트'는 2006년 9월에 공연되었으며 2007년에는 나머지 두 편을 공연함으로서 '니벨룽의 반지' 전편을 정복할수 있었다. 2009년에는 루르 지방이 유럽문화의 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한스 베르너 헨체의 '젊은 공자'(Der junge Lord)를 공연하였다. 그것도 뜻깊은 행사였다.

 

2002년에 문을 연 도르트문트 콘서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전에는 도르트문트 오페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2005/06 시즌부터는 완전 독립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