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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곡가들에게 영광을

정준극 2015. 3. 27. 11:20

다른 작곡가들에게 영광을

 

미술이나 문학등 다른 예술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 음악에서는 작곡가가 다른 작곡가를 크게 존경하여서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자기의 작품에 인용하거나 또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아예 편곡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작곡가가 다른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존경하는 작곡가의 작품 중에서 테마를 인용하여 변주곡을 만드는 일, 자기의 작품에 존경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직접 인용하는 일, 또는 모방하는 일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존경하는 작곡가에게 자기의 작품을 헌정하는 일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많은 작곡가들이 자기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헌정한 일이 많이 있다. 대체로 자기를 후원해준 사람, 또는 자기가 사모하는 사람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다른 작곡가에게 헌정하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경우도 살펴보았다.

 

○ 변주곡: 다른 작곡가의 테마를 바탕으로 하나의 독립된 변주곡을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예가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를 한두가지만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 바흐의 '골드버그 변주곡'(Goldberg Variationen). BWV 988 

-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Diabelli Variations) 33편

-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하지만 그 주제를 하이든이 작곡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음악출판가 겸 음악교사인 안톤 디아벨리(1781-1858)

 

○ 다른 타이틀의 작품: 많은 작곡가들이 다른 작곡가들의 테마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어떤 경우에는 작곡가 미상의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전래민요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짧은 피아노곡을 만들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교향곡과 같은 규모가 큰 작품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단순히 누구누구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고 부를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다만, 다른 제목을 사용했는데 그러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제목이 -ana 로 끝나는 것이면 대개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인용하여 새로 만든 작품이다. 차이코브스키가 모차르트를 존경하여서 자기의 오케스트라 조곡 제4번에 모차르티아나(Mozartiana)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대표적이다. 오토리노 레스피기도 조아키노 로시니를 존경하여서 로시니아나(Rosiniana)라는 제목의 작품을 남겼다.

 - 환타지아 또는 환타지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도 다른 작곡가의 테마를 인용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랄프 본 윌리엄스의 '토마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타지아'(Fantasia on a Theme by Thomas Tallis), 프란츠 리스트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조제에 의한 환타지'(Fantasy on Themes from Mozart's Marriage of Figaro and Don Giovanni)이다.

 - 작품의 제목에 '존경하여서'(Hommage)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Moods(무드)에서의 연습곡에는 '쇼팽을 존경하여서'(Hommage a Chopin)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알렉산드레 탄스만(Alexandre Tansman)도 쇼팽을 존경하여서 기타곡을 만들었다. 클로드 드빗시의 파이노 조곡 이마즈(Images)는 라모를 존경하여서 만든 작품이다.

 - 제목을 새롭게 바꾼 경우도 있다. 패러프레이스(Paraphrase)이다. 예를 들면, 리스트는 Dies Irae(최후의 심판의 날)를 '죽음의 댄스'(Totentanz)라고 바꾸었다.

 - 라프소디(광시곡: Rhapsody)라는 재목으로 다른 작곡가의 테마를 인용하여 작품을 만든 경우도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라프소디'는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카프리치오 24번 A 단조'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 회상곡(Reminiscences)라는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리스트의 '돈 후안 회상곡'(Reminiiscences de Don Juan)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테마를 인용한 작품이다.

 - 톰보(Tombeau)라는 제목을 붙여서 자기가 존경하는 작곡가를 기리는 경우도 있다. 톰보라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인물의 죽음을 기념하는 작품을 말한다. 리스트가 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인 프랑수아 쿠프랭(Francois Couperin)의 죽음을 추모하여서 작곡한 '쿠프랭 추모곡'(Le tombeau de Couperin)은 유명하다. 이밖에도 모리스 라벨의 '드빗시 추모곡'(Le Tombeau de Debussy), 아서 벤자민의 '라벨 추모곡'(Le Tombeau de Ravel) 등이 있다.

 

프랑수아 쿠프랭(1688-1733)

 

○ 존경하는 작곡가의 이름을 제목에 표현한 작품:

 

 - 이탈리아의 자코모 오레피체(Giacomo Orefice)의 오페라 '쇼팽'(Chopin)은 비록 픽션이지만 프레데릭 쇼퍙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작곡자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 등을 쇼팽의 피아노 작품을 편곡하여 사용했다.

 

자코모 오레피체의 오페라 '쇼팽'의 한 장면

 

 - 독일-스위스 작곡가인 요아힘 라프(Joachim Raff: 1822-1882)의 오페라 '베네데토 마르첼로'(Benedetto Marcello)는 베니스 출신의 작곡가 베네데토 마르첼로(1686-1739)를 기념하여 그의 생애와 작품활동을 그린 작품이다.

 -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Mozart and Salieri)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하여서 독살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았다.

 - 한스 피츠너의 오페라 '팔레스트리나'(Palestrina)는 이탈리아의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uigi da Palestrina: 1525-1594)에 얽힌 에피소드를 줄거리로 삼은 작품이다.

 -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파가니니'는 파가니니의 생애를 픽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 로베르트 슈만은 그의 피아노 작품 카르나발(Carnaval)에서 두 파트를 파가니니와 쇼팽이라고 이름 붙였다. '카르나발'은 전체가 20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12번이 쇼팽을 회상하는 곡이며 17번 다음에 나오는 간주곡이 파가니니를 회상하는 곡으로 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자기가 존경하는 작곡가와 관련이 있는 명칭을 타이틀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리야푸노프(Sergei Lyapunov: 1859-1924)는 그의 교향시에 첼라초바 볼라(Zelazowa Wola)라는 제목을 붙였다. 쇼팽이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다.

 

세르게이 리야푸노프

 

○ 편곡(Transcription) 또는 개작(Adaptation):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거나 또는 상당히 개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모리스 라벨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 작품인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 프란츠 리스트는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을 '솔로 피아노 또는 두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했다.

 - 미국의 뮤지컬 작곡가인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와 조지 포레스트(George Forrest)는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을 인용하여 뮤지컬의 노래에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이들의 뮤지컬 '키스멧'(Kismet)에는 알렉산더 보로딘의 노래, 에드바르드 그리고의 '노르웨이의 노래' 등을 편곡하여 사용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멧'의 한 장면

 

○ 인용(Quatation): 다른 작곡가의 테마를 자기의 작품에 인용하는 경우이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의 '23개 솔로 현악기를 위한 변형'(Metamorphosen for 23 solo strings)에 베토벤의 교향곡 3번에서의 장송행진곡을 인용하였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서커스 폴카'(Circus Polka)에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 제1번 D 장조의 주제를 인용하였다.

 

○ 변형(Transformation):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자기의 작품으로 소화하여 완전히 변형된 작품을 내놓는 경우이다.

 

 - 샤를르 구노는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The Well-Tempered Clavier) 제 1권에서 전주곡 제1번 C 장조의 멜로디를 가져와서 가사를 붙여 '아베 마리아' 노래로 세팅하였다.

 - 에드바르드 그리그는 모차르트의 솔로 피아노 소나타에 또 한 대의 피아노를 추가하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만들었다.

 

○ 합성(Synthesis):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서 일부를 가져다가 자기의 작품에 포함시키는 일.

 

 - 루치에로 베리오의 '렌더링'(Rendering: 1989)은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에서 부분 부분을 가져다가 심어 놓은 것이다.

 -  미국의 샤를르 우오리넨(Charles Wuorinen: 1938-)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위한 추모'(A Reliquary for Igor Stravinsky: 1975)에는 스트라빈스키가 스케치 해놓은 부분들이 합성되어 있다.

 

○ 완성(Completion): 다른 작곡가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작품을 완성시키는 일.

 

 - 프란츠 사버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완성했다. 모차르트가 스케치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삼았다.

 - 프랑코 알파노는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완성했다. 물론 푸치니가 스케치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삼았다.

 - 영국의 작곡가인 데릭 쿠크(Deryck Cooke: 1919-1970)는 말러의 교향곡 제10번을 완성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피날레. 메트로폴리탄 무대. 미완성인 것을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다.


○ 모방(Imitation): 옛 작곡가들의 작곡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하여 작품을 만든 경우이다.

 

 - 지그프리트 옥스(Siegfried Ochs: 1858-1929)는 독일 민요인 '새 한마리가 날아오고'('S Kommt ein Voogel geflogen)를 바탕으로 14개의 유머스러운 변주곡으로 만들었다. 변주곡은 각각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요한 슈트라우스, 베르디, 구노, 쇼팽(피아노),  멘델스존, 슈만(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브람스, 마이에르베르, 그리고 군대행진곡 스타일로 만들었다.

 -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는 그의 교향곡 제1번 D 장조 일명 '고전'(Classical)에 하이든 스타일을 도입했다.

 - 모리스 라벨은 1913년에 피아노를 위한 두 편의 곡을 작곡했다. 하나는 '보로딘 스타일'(A la maniere de...Borodine)이고 다른 하나는 '샤브리에 스타일'(A la maniere de...Chabrier)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브라질의 에이토르 비야 호보스(Heitor Villa-Lobos)는 '바히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Bachianas Brasileiras)라는 작품을 썼다. 바흐 스타일의 작품이다.

 - 차이코브스키는 그의 18곡의 모르소 작품번호 72에서 두 편의 피아노 곡을 '슈만 일부'(Un poco di Schumann)와 '쇼팽 일부'(Un poco di Chopin)라고 붙였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앨범'(Album des enfants) 작품번호 39에는 부제로서 '슈만 스타일의 24개 어린이 소품'(24 Children's Pieces a la Schumann)이라고 붙였다.

 

○ 헌정(Dedication): 다른 작곡가 또는 연주가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작곡가의 후원자 또는 사모하는 사람에게 헌정된 작품들은 많지만 다른 작곡가에게 헌정된 작품들은 별로 많지 않다. 몇가지만 예로 들어본다.

 

- 로베르트 슈만은 연가곡 '머틀'(Myrtles: Myrthen)의 첫 곡으로 프리드리히 뤼커트의 시 '헌정'(Widmung)을 작곡하여 사랑하는 아내인 클라라에게 헌정했다. 1840년 결혼기념이다.

 - 안톤 브루크너는 교향곡 3번을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 요크 횔러(York Höller: 1944-)의 '검은 작은 섬'(Schwarze Halbinseln: 1982)은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 주세페 베르디를 위시하여  13명의 작곡가들이 협동해서 완성한 '로시니를 위한 미사곡'(Messa per Rossini)은 로시니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 아람 카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데이비드 오이스트라크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 볼프강 림의 '서브 콘투르'(Sub-Kontur)는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Hymnen'은 피에르 불레즈, 앙리 푸쇠르, 존 케이지, 루치아노 베리오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쾰른 스튜디오에서.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