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함부르크 슈타츠오퍼(Hamburgische Staatsoper)

정준극 2015. 6. 27. 03:25

함부르크 슈타츠오퍼(Hamburgische Staatsoper)

함부르크 국립오페라(Hamburg State Opera)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아마 독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오페라하우스일 것이다. 일찍이 1678년에 함부르크의 오페라를 애호하는 유력 상인대표들이 시민들을 위한 오페라극장을 건설한 것이 현재의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의 시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부르크의 오페라하우스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순수 민간 오페라 극장이다. 함부르크의 한자 대표들이 세운 오페라 극장은 Opera am Gansemarkt 였다. 거위시장에 세운 오페라 극장이라는 뜻이다. 1678년 1월에 요한 타일레(Johann Theile)가 작곡한 성서 징슈필이 개관기념으로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1703년에는 함부르크 시민오페라(Burgeroper)라고 이름을 바꾸고 이탈리아 오페라들을 지양하고 독일 바로크 오페라의 공연에 치중하였다. 말하자면 민족주의가 확장된 셈이다. 당시에 헨델은 이곳 시민오페라극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겸 하프시코디스트로 종사하면서 작곡을 시작했다. 1705년에 헨델의 '네로'(Nero)가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826년에는 종래의 목조건물을 철거하고 석조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바로 현재의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자리에 새로운 석조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슈타트 테아터로서의 석조건물은 1827년에 오픈되었다. 베토벤의 극음악 '에그몬트'가 개관기념으로 연주되었다. 1873년에는 당시 유행하던 그륀더차이트(Grunderzeit) 스타일로 내부와 외부를 모두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그리고 1879년에는 바그너의 링 사이클 전곡을 세계에서 최초로 공연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후 슈타츠테아터는 유럽에서도 최고수준의 오페라 극장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1891년부터 1897년까지 구스타브 말러가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있을 때에 특히 그러했다. 현재의 명칭인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1930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43년 8월에 폭격으로 크게 파손되었고 전쟁후에 복구에 전념하여 1955년 10월 15일 재개관을 이루었다. 재개관 기념으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공연되었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독일의 다른 오페라 극장들, 예를 들어 뮌헨,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 등의 슈타츠오퍼에 비하여 초연의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전면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의 세계 초연 오페라들

 

○ 신부의 선택(Die Brautwahl). 1912년. 페루치오 부소니(Ferruccio Busoni). 작곡자가 독일어 대본도 쓴 코믹 환타스틱 오페라. 가난한 예술가인 에드문트는 예쁜 알베르티네를 사랑하지만 알베르티네에게는 여러 명의 구혼자가 있어서 괴로운 심정이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마나쎄가 혼령으로 나타나서 구혼하고 있고 그의 아들 벤슈 남작과 귀족인 투스만도 에드문트의 라이발이다. 알베르티네는 이들에게 상자 셋을 내놓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 맞추게 한다. 결국 모든 테스트에 합격한 에드문트가 알베르티네의 사랑을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 죽은 도시(Die tote Stadt). 1920년.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대본은 파울 쇼트(Paul Schott). 원작은 1892년 벨기에의 상징주의 작가인 조르즈 로덴바흐(Georges Rodenbach)의 소설 Burges-la-Morte(죽음의 뷔르제)이다. 뷔르제는 소설 속의 무대인 벨기에의 도시 뷔르제를 말한다. 로덴바흐의 소설은 이미 벨기에 등지에서 극본으로 만들어져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었다. 그 극본을 지그프리트 트레비츄(Siegfried Trebitsch)가 Die stille Stadt(조용한 도시)라는 제목으로 독일어로 번역했다. 나중에 트레비츄는 독일어 극본의 제목을 Das Trugbild(미라쥬, 환영)으로 바꾸었다. 트레비츄는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아버지인 율리우스 코른골트와 친구사이였다. 그리하여 아버지 율리우스의 주선으로 에리히 볼프강이 오페라로 만들게 되었다. 때는 19세기 말이며 장소는 벨기에의 뷔르제이다. 폴은 젊은 아내 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서 그를 잊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던중 어느날 거리에서 우연히 마리를 꼭 닮은 젊은 댄서인 마리에타를 만난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죽은 도시'. 2015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무대

 

○ 홈부르크 공자(The Prince of Homburg). 1960년.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독일 극작가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1811년 희곡인 Prinz Friedrich von Homburg(홈부르크의 프리드리히 왕자)를 잉게보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이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내용은 프리드리히 왕자와 나탈리 공주의 해피엔딩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헨체의 독일 군국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담겨 있다. 배경은 17세기 프러시아-스웨덴의 전쟁 중이며 무대는 브란덴부르크 공국의 페르벨린(Fehrbellin)이다. 프리드리히 아르투르 왕자는 프러시아 군의 장교로서 선제후인 빌헬름 대공의 휘하에서 스웨덴 군과 대치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왕자는 나탈리 공주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나탈리 공주는 빌헬름 선제후와 결혼키로 되어 있다.

 

○ 홍수(The Flood). 1963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에 대한 뮤지컬 플레이. 원래 CBS TV를 위해 작곡한 것. 대본은 창세기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로버트 크라프트(Robert Craft)가 완성했다. 순수 오페라라기 보다는 연극에 가까우며 발레도 등장한다. 합창단은 Te Deum을 노래한다.

 

○ 헬프, 헬프, 글로보링크스(Help! Help! the Globolinks!). 1968년. 지안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 영어 대본은 작곡자 자신이 만들었다. 이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 초연하였다. 독일어 제목은 Hilfe! Hilfe! die Gobolinks! 이다. 함부르크 초연에서는 메노티의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들'(Amahl and the Night Visitors)가 더블빌로서 공연되었다. 영어 대본의 초연은 그해 12월 미국 산타 페 오페라에서였다. 이때에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Nightingale)이 더블빌로서 공연되었다. 두 경우 모두 메노티가 제작을 감독하였다. 무대의 배경은 어느 나라이건 관계없다. 미국일수도 있고 영국일수도 있다. 외계로부터 온 글로보링크스라는 괴물이 지구에 나타난다. 글로보링크스는 방학 프로그램을 끝낸 아이들을 태운 스쿨버스를 가로 막고 위협을 가한다. 그런데 글로보링크스는 음악을 싫어한다. 어린 학생 중에 에밀리가 용감하게 바이올린을 가져와서 연주하여 글로보링크스가 더 이상 스쿨버스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한다.

 

○ 국립극장(Staatstheater). 1971. 마우리치오 카겔(Mauricio Kagel). 독일계로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카겔은 20세기 작곡가중 가장 창의력이 풍부하고 위트가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의 음악은 일견 이성적이면서도 일견 신비적이다. ‘국립극장’은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의뢰에 의한 작품이다. 카겔은 이 작품을 음악을 만들고 듣는 일련의 과정을 시범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물론 극적인 요소를 빼놓지는 않았다. 카겔에 의하면 이 작품의 주목적은 기존 오페라를 비평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카겔은 그러한 점을 무대 구성작품인 ‘국립극장’을 통해 표현코자 했다. 즉, 일반적으로 고고하고 자부심에 가득찬 엘리트 의식의 오페라 주역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평범한 사람들도 음악을 만들고 표현할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국립극장’은 사회 비평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겔은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명료한 음악으로 비평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