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비엔나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

정준극 2015. 6. 27. 11:05

비엔나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 - (Imperial) Court Theater

 

비엔나의 링슈트라쎄(Ring Strasse)에서 우니페어지태트링(Universitätring) 2번지에 있는 부르크테아터의 위용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이다. 비엔나는 과거 거의 7백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에 속하여 있는 수많은 나라들의 기라성과 같은 음악가들이 제국의 수도에서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글룩, 살리에리, 비발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비엔나는 유럽 클래식 음악의 센터였다. 비엔나의 오페라 역사는 이탈리아 또는 독일에 비하여 뒤떨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궁전이나 귀족들의 저택에서 오페라를 공연하였으나 얼마후에는 시민들을 위한 오페라 극장이 들어서서 오페라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는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의 하나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다. 현재의 슈타츠오퍼는 실은 1888년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 시대에 링 슈트라쎄를 조성하면서 다른 건물보다도 우선적으로 건설한 건물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2015년으로 127년의 역사를 지닐 뿐이다. 비엔나의 오페라 역사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가장 일찍이 오페라 활동이 이루어졌던 도시 중의 하나이다. 비엔나에서 오페라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전에서 먼저 공연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체 높은 귀족이나 왕족들의 저택에서 공연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오페라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비엔나에 일반 극장으로서의 건물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748년일 것이다.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시민들도 들어 올수 있는 극장을 지을 것을 지시하여 현재의 미하엘러플라츠 한쪽에 극장이 문을 열었던 것이다. 부르크테아터 암 미하엘러플라츠(Burgtheater am Michaelerplatz)라고 불렀다. 비엔나 시민들은 간단히 '디 부르크'(Die Burg)라고 불렀다.

 

호프부르크 정문 앞 미하엘러플라츠에 있었던 제국왕궁극장(k.k. Theater am der Burg: 오른쪽). 왼쪽은 호프부르크 빈터라이트슐레(Winterreitschule). 현재는 철거되어 없다. 비엔나에서의 오페라 초연들은 거의 모두 이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철거되어 모습을 볼수 없지만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였던 극장이다.

 

현재의 슈타츠오퍼의 연혁은 15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페르디난트 1세는 호프부르크의 정원에 발하우스(구기 경기장)를 건축하였고 이곳에서 간혹 연극이나 오페라를 공연하였는데 이것이 비엔나 국립오페라의 전신이라고 하면 전신이다. 그후 1748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호프부르크 정문 앞의 광장 한 구석에 극장을 세우고 Theater nächst der Burg(왕궁 옆 극장)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제국왕궁극장이라고 불렀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큰 아들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요제프 2세는 음악 애호가였다. 요제프 2세는 1776년에 제국왕궁극장이라는 명칭을 독일국립극장(Deutsches National Theater)라고 바꾸고 주로 독일어 연극과 오페라를 공연토록 했다. 그후 독일국립극장이라는 명칭은 1794년부터 제국왕궁극장(k.k. Hoftheater nächst der Burg)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제국왕궁극장에서는 1800년에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이 초연되었다. 그후 1888년에 링 슈트라쎄에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와 칼 하제나우어(Karl Hasenauer)의 공동 설계로 새로운 궁정극장(부르크테아터)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미하엘러플라츠에 있던 제국왕궁극장은 자연히 문을 닫게 되었다. 미하엘러플라츠의 부르크테아터에서는 1782년에 모차르트의 '후궁에서의 도주'(Entführung aus dem Serail)가 초연되었고 1786년에는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이 초연되었으며 1790년에는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가 초연되었다.

 

현재의 우니페어지태트링에 1888년 아름다운 부르크테아터가 완성되기 전에 이미 오페른 링에 웅장한 슈타츠오퍼 건물이 완성되었다. 슈타츠오퍼 건물은 부르크테아터보다 거의 20년 전인 1869년에 완성되었다. 1869년 5월 25일의 오프닝에서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공연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엘리자베트(씨씨) 황비가 참석했다. 오페른 링에 슈타츠오퍼가 생기고 나서도 한 동안은 미하엘러플라츠의 제국왕궁극장이 운영되었으므로 슈타츠오퍼는 노이에스 하우스(신관)라고 부르다가 곧이어 1869년부터 1871년까지는 제국궁정오페라극장-신관(k.k. Hof-Opernthater-Neues Haus)이라고 불렀고 1871년부터 1918년 공화국이 출범하기 까지는 신관이라는 명칭을 삭제하고 제국궁정오페라극장()이라고만 불렀다. 1918년 공화국 시대로부터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인 1938년까지는 오페라극장(Operntheater)이라고만 불렀고 1938년부터 1945년까지의 나치 시대에는 슈타츠오퍼라고 불렀다. 슈타츠오퍼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폭격으로 상당히 파손되었다. 건물을 완전 복구할 때까지는 나슈마르크트의 테아터 안 데어 빈과 배링거슈트라쎄의 폭스오퍼에서 오페라를 공연하였다. 슈타츠오퍼의 재개관은 1955년 11월 5일이었다. 베토벤의 '휘델리오'가 공연되었다.

 

비엔나 중심지역인 오페른 링에 자리 잡고 있는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위용

 

종전의 미하엘러플라츠에 있었던 비엔나 제국궁정오페라극장(부르크테아터의 전신)에서 초연된 주요 오페라들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링슈트라쎄에 있는 부르크테아터와 슈타츠오퍼는 해당되지 않는다.

 

○ 가짜 하인(La fausse esclave: The False Slave). 1758년.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프랑스어 대본은 루이 아느솜(Louis Anesaume)과 피에르 오귀스탱 르페브르 드 마르쿠비유(Pierre-Auguistin Lefevre de Marcouville)가 공동 작성한 오페라 대본인 La fausse aventuriere(가찌 모험)를 사용하였다. 이 오페라 대본은 원래 루이 라루에트(Louis Laruette)의 오페라 코미크를 위해 만든 것이다. 현재 풀 스코어는 분실되었으나 키보드 버전은 남아 있다.

 

○ 바보 재판관(Le cadi dupé: The Duped Qadi). 1761년.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프랑스어 대본은 피에르 로네 르몬이에(Pierre-Rene Lemonnier). 글룩은 이미 이 오페라에서 야리사리의 음악을 인용하는 등 터키의 영향을 표현했다. 따라서 이 오페라에는 피콜로, 드럼, 심발 등의 악기가 등장한다.

 

○ 오르페오와 유리디체(Orfeo ed Euridice). 1762년.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대본은 라니에리 데 칼자비기(Ranieri de Calzabigi). 글룩이 주도한 최초의 개혁 오페라이다. 지나치게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를 단순화하였으며 음악도 고상하게 단순화하였다. 이를 noble simplicity 라고 불렀다. 글룩의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베토벤의 '휘델리오',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뜻밖의 만남(La rencontre imprevue). 1764년. 또는 Les pelerins de la Mecque(메카 순례자).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대본은 루이 당쿠르 알렝 르네 르사즈()의 1763년 보데빌 극봉인 Les pelerins de la Mecque를 바탕으로 삼은 작품. 술탄에게 잡혀 있는 레지아 공주와 발소라의 왕자 알리의 해피 엔딩 사랑 이야기.

 

○ 텔레마코(Telemaco). 1765년.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이탈리아어 대본은 마르코 콜텔리니(Marco Coltelini). 스칼라티의 1718년 오페라 텔레마코를 위해 카를로 카페체(Carlo Capece)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삼았다. 요제프 2세와 바바리아 공주 마리아 요제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작품이다. 텔레마코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프로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자 찾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모험과 사랑의 이야기. 텔레마코는 호머의 오디세이의 주인공이다.

 

○ 알체스테(Alceste). 1767년.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대본은 라니에리 데 칼자비기(Ranieri de' Calzabigi). 유리피데스의 알체스테를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 엘체스테는 테살리의 페라에에 있는 왕비로서 중병에 걸린 남편 아드메토 왕을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대신 희생되어야 한다고 하자 스스로 제물이 되기로 결심함으로서 비롯된 이야기.

 

○ 순진한 사랑(L'amore innocente). 1770년.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대본은 조반니 가스토네 보테리니(Giovanni Gastone Boccherini). 비엔나 카니발 기간 중에 공연. 목동인 데스피노와 목동 대장의 딸인 데스피나의 사랑 이야기.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18세기 티롤 지방의 클라우젠()이 무대.

 

○ 굴뚝 청소부(Der Rauchfangkehrer). 1781년. 부제는 Die Unentbehrlichen Verräther ihrer Herrschaften aus Eiigennutz. 안토니오 살리에리. 독일어 대본은 레오폴드 아우엔브루거(Leopold Auenbrugger). 독일의 징슈필,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 스타일. 요제프 2세 황제의 요청으로 작곡. 개인의 욕심을 위해 어쩔수 없이 주인을 배반하는 코미디.

 

○ 후궁에서의 도주(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The Abduction from the Seraglio). 1782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독일어 대본은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브레츠너(Christoph Friedrich Bretzner). 간단히 일 세릴리오(Il Seriglio)라고 부르기도 한다. 벨몬테가 하인 페드릴로와 함께 파샤의 하렘에 잡혀 있는 애인 콘스탄체를 구출하는 이야기. 요제프 2세의 독일어 오페라 요청으로 작곡한 것임.

 

○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Die Hochzeit des Figaros). 1786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대본은 로렌초 다 폰테. 프랑스의 피에르 보마르셰의 1784년 극본인 La folle journee(하루만의 소동) 또는 Le Mariage de Figaro(피가로의 결혼)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 오르무스의 왕 악수르(Axur, re d'Ormus). 1788년.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대본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살리에리는 1787년에 프랑스어 대본의 타라레(Tarare)라는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는데 '오르무스의 왕 악수르'는 이 오페라의 이탈리아어 버전이다. 프랑스어 대본은 피에르 오귀스탱 캬롱 드 보마르셰(Pierr-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가 썼다.

 

○ 암호(La cifra). 1789년. 안토니오 살리에리. 대본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배경은 특이하게도 스코틀랜드이다. 이 오페라는 '여자는 다 그래'의 초연에서 휘오르딜리지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아드리아나 델 베네(Adriana del Bene)를 위해 작곡한 것임.

 

○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 1790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대본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다 폰테는 모차르트를 위해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의 대본을 썼다. 18세기 나폴리가 무대로서 약혼자들에 대한 여자들의 일심단편 여부를 테스트한 코믹 오페라.

 

○ 비밀 결혼(Il matrimonio segreto). 1792년. 도메니코 치마로사(Domenico Cimarosa). 대본은 조반니 베르타티(Giovanni Bertati). 원작은 조지 콜만(George Colman)과 데이빗 가리크(David Garrick)의 희곡 The cladestine marriage(은밀한 결혼). 초연에는 레오폴드 2세 황제가 참석했다. 치마로사의 오페라 중에서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자주 공연되고 있는 작품. 볼로냐의 부유한 상인인 제로니모의 두 딸 엘리세타와 카롤리나의 결혼 이야기.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비밀결혼' 무대

 

 

 

 

 

 

 

 

 

 

 

 

ö  ü  ä  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