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Bol'shoy Teatr)

정준극 2015. 7. 8. 08:18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Bol'shoy Teatr)

볼쇼이 오페라단의 본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

 

밀라노에 라 스칼라가 있고 비엔나에 슈타츠오퍼가 있듯이 모스크바에는 볼쇼이가 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은 볼쇼이 오페라와 볼쇼이 발레의 본부이다. 세계적으로 볼때 볼쇼이 오페라와 볼쇼이 발레는 창설 이래 아직까지도 빛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오랜 연혁의 단체이다. 특히 볼쇼이 발레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정식 단원이 2백명이 넘는다. 지금의 러시아가 제정러시아일 때에는 수도가 생페터스부르크였다. 그래서 당연히 생페터스부르크의 마리인스키 극장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이었다. 오늘날에는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수도이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볼쇼이라는 단어는 그랜드라는 의미이다. 현재의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은 제정러시아 시대를 거쳐오면서 모스크바 제국볼쇼이극장(Imperial Bolshoi Theatre of Moscow)라는 이름이었다. 제정러시아 시절에 러시아의 극장들은 모두 제국의 소유였다. 모스크바와 생페터스부르크에는 각각 2개의 제국극장이 있었다. 하나는 오페라와 발레를 공연하는 극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를 공연하는 극장이었다. 사람들은 오페라와 발레가 비극이나 코미디의 드라마보다 고상하고 격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페라/발레 극장은 '크고 웅장하다'는 뜻의 '볼쇼이'라는 단어를 붙였고 드라마 극장은 '작고 아담하다'는 의미에서 '말리'(Maly)라는 단어를 붙였다. 그러므로 생페터스부르크의 마리인스키 극장도 처음에는 볼쇼이극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이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은 모스크바 뿐만 아니라 전러시아의 랜드마크이다. 신고전 양식의 볼쇼이 극장은 러시아의 100 루블 지폐에 당당하게 그려져 있을 만큼 러시아의 자랑이 되어 있다. 볼쇼이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위해 2005년부터 6년 동안 문을 닫았었다. 재개관은 2011년 10월 28일이었다. 축하 갈라 음악회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며칠 후에는 글링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가 재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19세기의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볼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모습이다.

 

오늘날의 볼쇼이 오페라단은 일찍이 1776년에 창설되었다. 그래서 2016년이면 창립 240주년을 기념하게 된다. 당시에는 볼쇼이 오페라단이라고 부르지 않고 정식으로 없었다. 오페라는 귀족들의 개인 저택에서 공연하였다. 그러다가 1780년에 페트로브카(Petrovka)극장을 확보하였다. 이 극장이 말하자면 오늘날 볼쇼이 극장의 전신이다. 따라서 새로 생긴 오페라단의 이름도 페트로브카 오페라단이라고 불렀다. 페트로브카 극장은 15년 후인 1805년에 큰 화재로 전소되었다. 모스크바의 오페라를 사랑하는 유지들이 뜻을 모아 새로운 극장을 짓기로 했다. 3년 후인 1808년에 마침내 새로운 극장을 완성할수 있었다. 신아르바트제국극장(New Arbat Imperial Theater)라고 불렀다. 181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이 극장도 불에 타서 모습을 볼수 없게 되었다. 1821년부터 2년에 걸쳐 새로운 극장의 건축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1825년 1월 18일 볼쇼이 페트로브스키 극장(Bolshoi Petrovsky Theatre)라는 이름의 극장이 개관되었다. 페르난도 소르(Fernando Sor)의 오페라 '센드리용'(Cendrillon: 신데렐라)이 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이것이 현재 건물의 전신이다. 볼쇼이 페트로브스키 극장은 처음에 러시아 작품들만 무대에 올렸지만 1840년대부터는 외국 작품들도 공연하였다.

 

오늘날의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의 오디토리움과 무대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세계 초연된 오페라들은 다음과 같다.

 

○ 보예보다(The Voyevoda). 1869년. 표트르 일리이치 차이코브스키. 대본은 알렉산더 오스트로브스키()가 그의 희곡 '볼가의 꿈'(A Dream of the Volga: The Voyevoda)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차이코브스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몇 년 후에 이 오페라의 스코어를 모두 파괴했다. 다만, 1막의 음악은 1874년에 완성한 오페라 '오프리츠니크'(The Oprichnik)에 거의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인 1888년에 차이코브스키의 제자였던 안톤 아렌스키(Anton Arensky)가 '보예보다'의 스토리를 사용하여 오페라를 작곡했다. '볼가의 꿈'(Dream on the Volga)였다.

 

'보예보다' 음반 커버

 

○ 마제파(Mazeppa). 1884년. 표트르 일리이치 차이코브스키. 대본은 빅토르 부레닌(Victor Brenin)이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대서사시 '폴타바'(Poltava)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폴타바'는 우크라이나 코사크 추장인 이반 마제파의 이야기이다. 폴타바는 스웨덴과 러시아의 전투가 벌어진 지역의 이름이다. 우크라이나의 마제파(1640-1709)는 실존인물이다.

 

'마제파'. 메트로폴리탄. 마제파와 마리아.

 

○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1888년.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대본도 작곡자가 완성. 1874년에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초연되었으나 1888년 모스크바 볼쇼이에서의 공연은 수정 버전임.

 

'보리스 고두노프'. 볼쇼이. 베이스 페루치오 푸를라네토

 

○ 프스코프의 처녀(The Maid of Pskov: Pskovityanka). 1892년. 3차 수정본.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 대본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썼다. 레브 메이(Lev Mei)의 동명 소설을 참고로 했다. 위대한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이 이 오페라의 초연에서 이반 대제의 역할을 맡아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노브고로드를 굴복시킨 이반 대제(이반 테리블)가 프스코프도 굴복시키려고 하는 이야기.

 

'프스코프의 처녀'. 짜르 이반과 올가 공주

 

○ 알레코(Aleko). 1893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대본은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 단첸코(Vladimir Nemirovich Danchenko).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서사시 '집시'(Tsygany: The Gypsies)를 바탕으로 삼았다. 오페라 '알레코'는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음악원 졸업작품으로서 최고점수를 받은 것이다. 집시들의 생활이 좋아서 문명사회를 버리고 집시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알레코가 어릴때부터 고아가 된 집시처녀 젬피라를 사랑하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

 

'알레코'의 피날레 장면

 

○ 리미니의 프란체스카(Francesca da Rimini). 1906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대본은 모데스트 일리이치 차이코브스키(). 단테의 '신곡' 제1부 Inferno를 참고로 하였다. 라흐마니노프가 초연의 지휘를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구두쇠 기사'(The Miserly Knight)와 더블 빌로서 공연되었다.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메트. 마르첼로 조르다니.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

 

○ 레이디 막베스(Lady Macbeth) 원래 타이틀은 '므첸스크구의 레이디 막베스'(Lady Macbeth of the Mtsensk District: Ledi Makbet Mtsenskogo Uyezda). 1935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대본은 쇼스타코비치와 알렉산더 프레이스()가 공동으로 작성. 셰익스피어의 '막베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오페라를 부인 니나 바르자르(Nina Varzar)에게 헌정했다. 이 오페라는 스탈린의 소련당국이 1936년부터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거부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는 1962년에 대대적인 수정을 하여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Katerina Izmailova)라는 새로운 타이를의 작품을 내놓았으나 오늘날에는 오리지널 오페라가 주로 공연되고 있다.

 

'레이디 막베스'. 2014년 볼로냐 극장. 스베틀라나 소즈다텔레바(Svetlana Sozdateleva)가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