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브뤼셀의 라 모네(La Monnaie)

정준극 2015. 7. 7. 04:56

라 모네 왕립극장(Theatre Royal de la Monnaie)

간단히 la Monnaie 라고 부름. Royal Theater of the Mint

 

브뤼셀의 중심지인 플라스 드 라 모네에 있는 왕립 라 모네 극장

 

브뤼셀의 라 모네 극장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는 지역으로 볼때 파리의 오페라극장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다. 겉으로보면 그리스의 신전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화려하기가 이를데 없다. 라 모네 극장의 풀 네임은 '왕립 라 모네 극장'(Théâtre Royal de la Monnaie)이지만 사람들은 간단히 라 모네 또는 덧치어를 사용해서 드 문트(de Munt)라고 부른다. 라 모네는 네덜란드어로서 '주조소'(민트)를 말한다. 현재의 라 모네 극장이 있는 곳에 그 옛날에 국가의 화폐를 제조하는 주조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 모네에는 현재 벨기에 국립 오페라단(National Opera of Belgium)이 입주해 있다. 라 모네는 벨기에 중앙정부가 재정지원을 한다. 벨기에의 다른 오페라 극장들, 예를 들면 블람세 오페라(Vlaamse Opera) 또는 왈로니 왕립오페라(Opera Royal de Wullonie)는 지방정부가 재정지원을 한다.

 

라 모네의 오디토리움

 

현재의 라 모네 건물은 그 자리에 세번째로 지은 건물이다. 첫번째 건물은 1696년에 건설되었다. 왕립 주조소가 있던 장소였다. 네덜랜드 합스부르크 총독인 바바리아 선제후 막시밀리안 에마누엘 2세의 지시에 의해 건설되었다. 말하자면 브뤼셀 최초의 대중 오페라 극장이었다. 그러다가 몇년 후인 1700년에 아무래도 좀 더 든든한 극장을 지어야 할것으로 생각해서 확장보수공사를 하고 개관하였다. 개관기념으로는 장 바티스트 륄리의 '아티스'(Atys)가 공연되었다. 1795년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혁명군이 벨기에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브뤼셀의 라 모네는 프랑스 점령군의 행정기구로 사용되었다. 얼마 후에 나폴레옹이 브뤼셀을 방문했다가 라 모네를 보고 이런 정도를 가지고는 백성들의 문화생활을 충족시킬수 없으니 새로 건물을 지으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건물은 여러 사정으로 연기되다가 나폴레옹이 실각한 후에 구체적으로 계획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1818년 그때까지 있었던 라 모네를 철거하고 새로운 광장을 조성하고 그 한쪽에 새로운 극장을 짓기 시작했다. 라 모네는 그 전까지 좁은 골목 길에 있었으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서 신축 부지 앞에 새로운 광장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새로운 극장의 건설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819년 5월에 개관을 할수 있었다. 개관 기념으로는 벨기에 출신의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인 앙드레 그레트리의 '카이로의 대상'(La Caravane du Caire)이 공연되었다.

 

라 모네의 광장쪽 정면

 

라 모네는 벨기에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30년 8월에 다니엘 오버의 '포르티시의 벙어리 소녀'가 공연될 예정이었다. 이 오페라는 제목이 좀 이상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에 항거하는 백성들의 봉기를 지지하는 내용이다. 당시 윌리엄 2세 왕이 내용이 불온하다고 해서 공연금지를 했다. 그러나 리허설까지 마치고 무대배경까지 완성해 놓은 마당에서 공연금지는 너무하다는 주장들이 있어서 결국 8월 25일에 겨우 공연될수 있었다. 그날 밤에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벨기에 혁명의 시그낼이었다. 라 모네는 1855년 1월에 대화재로서 잿더미가 되었다. 브뤼셀 시민들이 열심히 노력하영서 이듬해인 1856년 3월에 재개관을 할수 있었다. 프로멘탈 알레비의 '인디안 처녀 자구아리타'(Jaguarita l'Indienne)였다. 네덜란드영 기아나를 배경으로 삼은 인디안 처녀 자구아리타의 사랑과 애국에 대한 내용이다. 그후 라 모네는 19세기 중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벨기에 오페라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공연을 감내하였다. 라 모네는 벨기에에 알레비, 오버, 마이에르베르와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 베르디와 같은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라 모네는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인 1985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1년 후인 1986년 11월에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으로서 재개관하였다.

 

라 모네의 포이어와 계단

 

라 모네에서 세계 초연된 오페라들은 다음과 같다.

 

마스네의 '에로디아드'. 타이틀 롤에 돌로라 차직. 에로디아드와 에로드 안티파스.

 

○ 에로디아드(Hérodiade). 1881년. 쥘르 마스네. 대본은 폴 미예(Paul Millet)와 앙리 그레몽(Henri Grémont).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에로디아스'(Hérodias)를 바탕으로 삼았다.

 

○ 지구르드(Sigurd). 1884년. 어네스트 라이어. 대본은 카미유 뒤 로클과 알프레드 블라우().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처럼 이 오페라도 니벨룽의 노래와 북구 사가를 바탕으로 했다.

 

○ 그웬돌린(Gwendoline). 1886년. 에마뉘엘 샤브리에. 대본은 카튀유 멘데스(Catulle Mendés). 무대는 18세기 영국의 어떤 해안에 있는 색슨 마을이다.

 

○ 조슬린(Jocelyn). 1888년. 벤자민 고다르(Benjamin Godard). 대본은 폴 아르망 실베스트르(Paul Arman Silvestre)와 테너인 빅토르 캬풀(Victor Capoul). 알퐁스 드 라마르탱(Alphonse de Lamartine)의 시를 바탕으로 삼았다. 테너 노래인 '조슬란의 자장가'(Oh! ne l'eveille pas encore: Angels Guard Thee)가 유명하다.

 

○ 살람보(Salambô). 1890년. 어네스트 라이어(Ernest Reyer). 대본은 카미유 뒤 로클(Camille du Lockl).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를 바탕으로 삼았다. 기원전 240년경 북부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의 딸로서 여사제인 살람보의 사랑과 고뇌의 이야기.

 

1890년 살람보 초연에서 살람보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로즈 캬론

 

○ 페르발(Fervaal). 1897년. 뱅생 댕디(Vincent d'Indy). 대본도 댕디가 완성했다. 스웨덴 작가 에사이아스 테그너(Esaias Tegner)의 서정시 Axel을 바탕으로 했다. 페르발은 켈트족의 족장이다.

 

○ 아서왕(Le roi Arthus). 1903년. 어네스트 쇼숑(Ernest Chausson). 대본도 쇼숑이 완성했다. 바그너 스타일,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파르지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세자르 프랑크의 영향도 받았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인 랜슬롯, 그리고 귀네비어 왕비 사이의 사랑과 충성의 이야기.

 

○ 사랑의 승리(Eros vainqueur). 1910년. 피에르 드 브레비유(Pierre de Bréville). 대본은 장 로레인(Jean Lorrain). 브레비유가 프랑스의 작곡가 뱅생 댕디(Vincent d'Indy)에게 헌정한 작품.

 

○ 갬블러(Igrok: The Gambler). 1929년.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대본도 작곡자가 완성했다. 표도르 도스토예브스키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삼았다. 무대는 1800년대 유럽의 가상의 온천장인 룰레텐버그(Roulettenberg)이다. 이 오페라는 프로코피에프가 1917년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완성하였으나 러시아혁명으로 인하여 1929년에 가서야 러시아가 아닌 벨기에에서 초연될수 있었다.

 

○ 클링호퍼의 죽음(The Death of Klinghoffer). 1991년. 존 애덤스(John Adams). 대본은 앨리스 굿맨(Alicee Goodman). 1985년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LO)이 공해상에서 여객선 Achille Lauro를 납치하고 승객중 한 사람인 69세의 유태계 미국인 클링호퍼를 살해한 사건. 클링호퍼는 불구자여서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클링호퍼의 죽음'. 휠체어를 탄 클링호퍼와 테러리스트 오마르

 

○ 줄리(Julie). 2005년. 벨기에 작곡가 필립 뵈스망(Philippe Boesmans). 대본은 뤼크 봉디(Luc Bondy)와 마리 루이스 비쇼프버거(Marie-Louise Bischofberger ). 스웨덴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의 1888년 희곡인 '미스 줄리'(Miss Julie)를 바탕으로 삼았다. '미스 줄리'라는 제목의 오페라로는 네드 로렘(Ned Rorem)과 윌리엄 앨윈(William Alwyn)이 작곡한 것이 있다.

 

○ 폭탄 쇼크(Shell Shock). 2014년. 니콜라스 렌스(Nicholas Lens). 영어 대본은 닉 케이브(Nick Cave). 죽음의 천사 이외에도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이야기. 그러나 퍼크 갓(Fuck God), 퍼크 더 플랙(Fuck the Flag) 등 야비하고 비정상적인 대사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니콜라스 렌스의 '폭탄 쇼크'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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