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취리히 오페라하우스(Opernhaus Zürich)

정준극 2015. 7. 10. 22:33

취리히 오페라하우스(Opernhaus Zürich)

Opera Zürichs - Zurich Opera House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1891년에 오픈하였다. 정면 상단의 인물들은 양쪽으로 베버와 모차르트의 흉상이며 가운데 쪽은 쉴러, 셰익스피어, 괴테의 흉상들이다.

 

취리히오페라하우스는 유럽의 다른 오페라 극장에 비하여 비록 규모는 작지만(1천 1백석) 수많은 오페라 공연으로서 오래전부터 이미 세계적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극장이다. 특히 순수오페라보다는 음악극(Musiktheater)으로서의 작품들을 자주 무대에 올렸다. 징슈필 성격의 작품들과 비엔나 오페레타 스타일의 작품들이 자주 공연되었다. 취리히오페라하우스는 취리히의 중심지대인 젝스로이텐플라츠(Sechläutenplatz)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광장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취리히오페라하우스는 1891년 9월 30일에 문을 었다. 비엔나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인 페르디난트 펠너(Ferdinand Fellner)와 헤르만 헬머(Hermann Hellmer)가 공동으로 설계한 네오클래식 건물이다. 페르디난트 펠너와 헤르만 헬머는 유럽의 여러 오페라 극장들을 설계한 경력이 있다. 취리히오페라하우스는 이들이 공동으로 설계했던 뷔스바덴극장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설계한 건물이다. 뷔스바덴극장은 오늘날 뷔스바덴의 헤센 국립극장(Hessisches Staatstheater Wiesbaden)을 말한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오디토리움과 무대. 그랜도 오페라보다는 오페레타의 공연에 적합한 규모이다.

 

취리히에 극장다운 극장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834년이다. 취리히의 첫 오페라 전용 극장이지만 실은 연극과 다른 공연(주로 음악극장)도 무대에 올리는 극장이었다. 첫 오페라극장은 히르셴그라벤(Hirschengraben) 거리에 있었다. 수도원이 있던 자리였다. 극장 이름은 악티엔 테아터(Aktientheater)라고 불렀다. 취리히의 유지들이 공동투자하여 지은 극장이어서 악티엔(주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가 취리히 시당국과 주정부의 후원을 받게 되어 명칭도 슈타트테아터(Stadttheater: 시립극장)이라고 바꾸었다. 드레스덴에 있던 바그너가 반정부 운동에 참여했다가 지명수배를 당하게 되자 취리히로 피신하였는데 그가 취리히에 있으면서 주로 활동했던 극장이 바로 악티엔테아터였다. 악티엔테아터는 1890년에 큰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 새로운 극장을 지어야 했다. 그래서 비엔나의 페르디난트 펠너와 헤르만 헬머가 설계를 맡아 이듬해에 완성했다. 1891년 9월 30일의 재개관에서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이 공연되었다. 새로 지은 슈타트테아터는 1925년까지 취리히 공연예술의 센터였다. 그러다가 1925년에 명칭을 오페른하우스 취리히(Opernhaus Zürich)로 바꾸고 순전히 오페라/오페레타만을 공연하는 극장으로 만들었다. 당시에 취리히에는 연극전용의 극장이 별도로 완공되었기 때문에 슈타트테아터에서 더 이상 연극을 공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취리히 중심가의 젝스로이텐플라츠(광장). 가운데에 있는 건물이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이다.

 

오페른하우스 취리히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 대대적인 보수와 확장공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준비과정을 거쳐 1982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하였다. 일부에서는 아예 종전의 건물을 철거하고 완전히 새건물을 짓자는 주장을 내세웠으나 그건 너무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대대적 보수 및 확장 공사로서 만족하기로 했다. 공사는 2년에 걸쳐 진행되어 1984년에 마무리되었다. 재개관 기념으로는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공연되었다. 아울러 스위스 출신의 작곡가인 루돌프 켈터보른(Rudolf Kelterborn: 1931-)의 '체리 정원'(Der Kirschgarten)도 세계 초연되었다.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명칭도 Opernhaus Zürich로 확정하였다. 그런데 새로운 오페라 전용극장이 생겼다고 해서 기뻐할수만은 없었다. 1980년에 청년들은 시당국이 오페라극장에 너무 많은 예산을 지원키로 했으며 반면에 청년예술에는 소홀하다면서 항의를 했다. 청년들은 특히 청년예술의 무대로 이용되고 있는 로테 파브리크(Rote Fabrik)에 대하여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항의하였다. 로테 파브릭은 전에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서 공장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게 되자 건물에 무대를 마련하고 주로 팝음악이나 청년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시위는 점점 격화되어서 시경찰들은 물론 주경찰들까지 동원되어서 시위를 진압해야 했다. 시위대들은 오페라하우스 앞의 광장에서 불을 지피며 극장을 보수확장하기 전에 무터트리자면서 점차 폭력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아무튼 시위는 며칠만에 진압되었지만 후유증은 컸었다. 이 사건을 오페른하우스크라발레(Opernhauskrawalle)라고 부른다. 오페라하우스 폭동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취리히 브랜트(Zürich brännt)라고 부른다. '취리히가 불타고 있다'는 의미이다. 1981년에 제작된 '취리히 브랜트'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타리 영화는 이때의 청년항의에 대한 것이다. 1980년의 취리히 봉기를 기념하여서 지금도 매년 봄에 오페라하우스 앞의 광장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1980년 취리히 봉기를 기념하는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의 이벤트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페루치오 부소니(Ferruccio Busoni),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오트마르 쇠크(Othmar Schoeck), 아서 오네거(Arthur Honegger), 프랑크 마르틴(Frank Martin) 등이 크게 활동하였다. 특히 나치가 유럽을 위협하고 있을 때에 나치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저명한 음악가들이 스위스로 건너와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알반 베르크의 '룰루', 파울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아놀드 쇤버그(Arnold Schoenberg)의 '모세와 아론' 등이 역사적인 세계 초연을 가졌다. 1913년에 베를린의 푸르트뱅글러가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공연한 것은 바그너의 작품이 바이로이트 이외의 지역에서 공연된 첫번 케이스로서 의미가 깊었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세계 초연된 주요 오페라들은 다음과 같다.

 

○ 룰루(Lulu). 1937년. 알반 베르크(Alban Berg). 대본도 알반 베르크가 작성. 프랑크 베데킨더(Frank Wedekind)의 '땅의 정령'(Erdgeist: 1895)와 '판도라 상자'(Die Büchse der Pandora: 1904)를 바탕으로 삼았다. 베르크는 3막과 마지막 막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프리드리히 체르하(Friedrich Cerha)가 1979년에 전체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여 공연하였으나 오늘날 '룰루'는 알반 베르크가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공연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알반 베르크의 '룰루'.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 화가 마티스(Matthis der Maler). 1938년. 파울 힌데미트. 대본도 힌데미트 자신이 완성했다. 작곡자의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화가 마티스는 16세기 독일 르네상스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hias Grünewald)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는 이젠하임(Isenheim) 제단화로서 유명하다.

 

파울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비엔나 테아터 안 데어 빈(빈강변극장)

 

○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 1957년. 아르놀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대본도 쇤버그가 작성했다.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기록을 참고로 했다. 쇤버그도 이 오페라를 미완성인채 세상을 떠났다. 헝가리의 졸탄 코치스(Zoltan Kocsis)가 마지막 막을 완성하여 2010년에 선을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모세와 아론'은 1932년 쇤버그가 미완성인채 남긴대로 공연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모세의 형인 아론은 Aaron으로 적어야 마땅하지만 쇤버그는 이상하게도 13에 대한 기피증이 있어서 Aaron을 Aron이라고 변경했다. Moses und Aaron이라고 하면 전체 철자수가 13개가 되지만 Aron이라고 하면 12개가 되기 때문이다. 나치를 피해서 비엔나를 떠나 미국으로 갔던 쇤베르크는 그 이후부터 Schönberg를 Schoenberg 로 고쳐서 썼다. 영어의 알파벳에는 ö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아놀드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베를린 코미셰 오퍼

 

○ 그리스 고난(Griechische Passion: The Greekk Passion). 1961. 보후슬라브 마르티누(Bohuslav Martinu). 대본은 작곡자 자신이 조나탄 그리핀(Jonathan Griffin)의 희곡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원작은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트차키스(Nokos Kazantzaks: 1883-1957)의 '그리스 고난'(영어 제목은 '다시 못박힌 그리스도'(Christ Recrucified)이다.

 

보후슬라브 마르티누의 '그리스 고난'(다시 못박히신 그리스도). 팔레르모 테아트로 마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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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된 음악극(Musiktheater)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투란도트(Turandot)와 알레키노(Alecchino). 1917. 페루치오 부소니(Ferruccio Busoni)

○ 베누스(Venus: 비너스). 1922. 오트마르 쇠크(Othmar Schoeck)

○ 비단 옷을 입은 비너스(Venus in Seide). 1932. 로베르트 슈톨츠(Robert Stolz)

○ 왈츠 속의 두 마음(Zwei Herzen im Dreivierteltakt). 1933. 로베르트 슈톨츠

○ 크라이데크라이스(Der Kreidekreis). 1933.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

○ 쉬라스에서 온 왕자(Der Prinz von Schiras). 1934. 요제프 베르(Joseph Beer)

○ 선상의 마음(Herz über Bord). 1935. 에두아르드 퀴네케(Eduard Künneke)

○ 세곡의 왈츠(Drei Walzer). 1935. 오스카 슈트라우스(Oscar Straus)

○ 홉사(Hopsa). 1935. 파울 부르크하르트(Paul Burkhard)

○ 요제핀 황비(Kaiserin Josephine). 1936. 엠메리히 칼만(Emmerich Kalman)

○ 폴란드 결혼(Die polnische Hochzeit). 1937. 요제프 베르

○ 화형장의 잔느 다크(Jeanne d'Arc au bucher). 1942. 아서 오네거()

○ 스위스의 카사노바(Casanova in der Schweiz). 1943. 파울 부르크하르트

○ 니오베(Niobe). 1946. 하인리히 주터마이스터(Heinrich Sutermeister)

○ 틱 탁(Tic-Tac: 똑딱). 1947. 파울 부르크하르트

○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1967. 하인리히 주터마이스터

○ 진정한 영웅(Ein wahrer Held). 1975. 기젤허 클레베(Giselher Klebe)

○ 바빌론으로 가는 천사(Ein Engel kommt nach Babylon). 1977. 루돌프 켈터보른(Rudolf Kelterborn)

○ 미소짓는 얼굴(Keep Smiling). 1982. 페터 레버(Peter Reber)

○ 체리 정원(Der Kirschgarten). 1984. 루돌프 켈터보른

○ 잠자는 동생(Schlafes Bruder). 1996. 허버트 빌리(Herbert Willi)

○ 백설공주(Schneewittchen). 1998. 하인츠 홀리거(Heinz Holliger)

○ 북풍 선생(Der Herr Nordwind). 2005. 하인츠 칼 그루버(H.K. Gruber)

○ 할리(Harley). 2005. 에드워드 러쉬턴(Edward Rushton)

○ 뽕나무 그늘에서(Im Schatten des Maulbeerbaumes). 2008. 에드워드 러쉬턴

○ 게수알도(Gesualdo). 2010. 마크 안드레 달바비(Marc-Andre Dalbavie)

○ 장님 도시(Die Stadt der Blinden). 2011. 안노 슈라이어(Anno Schreier)

○ 보물섬(Die Schtzinsel). 2012. 프랑크 슈벰머(Frank Schwemmer)

○ 칸터빌의 유령(Das Gespenst von Canterville). 2013. 마리우스 펠릭스 랑게(Marius Felix Lange)

○ 홍등(Rote Laterne). 2015. 크리스티안 조스트(Christian Jost). 수탕(Su Tang)의 동명 소설 바탕.

 

크리스티안 조스트의 '홍등'. 송리안(샐리 잭슨)과 마스터 첸(로드 길프리).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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