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박물관 도시

KHM 집중탐구 - 1

정준극 2015. 9. 25. 18:59

KHM(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집중탐구 - 1

미술사박물관 - 국립미술관

 

미술사박물관(국립미술관)과 그 앞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기념상

 

비엔나의 쿤스트히르토리셰스 무제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을 우리는 보통 미술사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국립미술관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모처럼 비엔나를 방문한 사람들로서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신성로마제국의 유서 깊은 수도였던 비엔나가 제공하는 수많은 문화예술의 보고를 무심하게 지나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중에서 백미는 아무래도 미술사박물관이다. 간단히 말해서 카하엠(KHM: Kunsthistorisches Museum)이라고 부르는 국립미술관이다. 카하엠은 생페터스부르크의 에르미타즈(Hermitage), 플로렌스의 우피치아(Uffizia), 마드리드의 프라도(Prado), 파리의 루브르(Louvre), 뮌헨의 피나코테크(Pinakothek)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세계적인 미술보고이다. 카하엠은 수백년 이어온 합스부르크 군주들의 별난 취미인 미술품 수집벽에 따른 결과이다. 아마 유럽의 어느 왕조도 합스부르크만큼 미술품 수집벽이 대단했던 왕조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합스루브크의 군주들은 자기들의 미술품 수집벽을 제국의 다른 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 그들도 미술품 수집에 대한 집착을 가지도록 했다.

 

1층의 중앙의 로비. 현재는 카페이다. 잠시 쉬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둘러보는 것도 감동적이다.

 

카하엠은 무엇으로 그렇게도 유명한가?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미술품을 수집해 놓은 미술관이다. 토털 1백 50만점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그리하여 한 곳에만 소장하기가 어려워서 링 슈트라쎄의 미술사박물관 건물을 위시하여 비엔나 시내의 여러 곳에 분산 관리하고 있다. 카하엠은 특히 인류 미술문화의 원천이라고 하는 이집트 파피루스 작품의 최고 소장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밖에도 그리스, 로마, 에트루스칸(Etruscan: 고대 이탈리아)의 고대 미술품에 있어서도 세계적이다. 또한 초기 르네상스의 작품들, 특히 종교미술품(이를 devotionalia 라고 부름),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이 사용했던 왕관을 비롯해서 각종 보물들,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시실리, 기타 제국의 영향 아래에 있는 수많은 지역의 미술품들이 합스부르크의 소장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니 과연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미술사박물관의 수많은 전시품들은 질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가 보고 싶은 분야만 감상해도 좋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복되게 감상해야 하는 걱정은 없다. 크게 보아서 1층에는 오리엔탈 아트와 조각들을 전시해 놓았다. 오리엔탈이라고 하는 것은 이집트, 이락, 이란 등을 포함하는 북아프리카와 중근동을 말한다. 2층은 회화 전시실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더치, 플레미쉬를 총망라하는데 게르만 분야와 이탈리아 분야로 분류되어 있다.

 

미술사박물관의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늘날의 미술사박물관은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지시에 의해 건설되었다. 비엔나 중심지역이 점점 좁아 터지게 되자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용단을 내려 지금의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비엔나의 오랜 성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를 리모델링하여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길도 크게 넓힌 링 슈트라쎄를 만들기로 했다. 이 계획에 따라 노이에 호프부르크, 라트하우스(비엔나 시청),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팔라멘트(의사당), 비엔나대학교,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뵈르제(증권거래소) 그리고 여러 궁전들과 호텔들이 링 슈트라쎄의 건물로서 완성되었다. 미술사박물관은 이탈리아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마리아 테레지엔 플라츠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자연사박물관(NHM)과 쌍둥이 처럼 지어졌다는 것이다. 한쪽은 미술관, 다른 한 쪽은 과학관! 이 얼마나 오묘한 예술과 과학의 조화인가! 두 건물을 지은 위대한 건축가들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 1803-1879)와 칼 하제나우어(Karl Hasenauer: 1833-1894)이다. 두 건물은 1872년부터 1891년까지 거의 20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고트프리트 젬퍼는 비엔나에서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노이에 호프부르크, 부르크테아터 등을 설계했다. 그가 설계한 드레스덴의 오페라 하우스는 그를 기념하여 젬퍼 오페라하우스(Semperoper)라고 부른다. 비엔나 출신의 칼 하제나우어는 고트프리트 젬퍼와 함께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노이에 호프부르크(Neue Hofburg), 부르크테아터 등을 설계했다.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엘리자베트 황비에서 선물로 준 헤르메스빌라(Hermesvilla)는 하제나우어의 단독 작품이다.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노이에 호프부르크, 부르크테아터 등을 공동 설계한 고트프리트 젬퍼와 칼 하제나우어

 

미술사박물관의 초석이 된 소장품들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티롤의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II) 대공의 소장품이다. 주로 갑옷과 초상화들이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전설적인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손자이다. 막시밀리안 황제는 브루군디의 메리와 결혼하였는데 메리의 아버지인 브루군디의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자식이라고는 메리 밖에 없어서 메리가 브루군디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메리와 결혼한 막시밀리안 황제가 브루군디의 재산을 모두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막시밀리안 황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인스부르크의 암브라스 성(Schloss Ambras)에서 지낸 일이 있다. 그리하여 그의 소장품들은 대개가 인스부르크의 암브라스 성에 있다. 지금도 암브라스 성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의 알프스지역 지부로서 운영되고 있다.

 

인스부르크의 슐로스 암브라스

암브라스 성의 홀. 성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또 하나의 핵심 소장품들은 예술의 파트론이라고 불리는 루돌프 2세(Rudolf II: 1552-1612) 황제가 수집한 미술품들과 스페인 관할의 네덜란드 총독을 지낸 레오폴드 빌헬를(Leopold Wilhelm: 1614-1662)의 회화작품들과 초상화들이다. 돌이켜보건대, 합스부르크의 후손들은 페르디난트 2세 또는 루돌프 2세와 같은 선조들의 미술품 수집벽을 상속받아서 열심히들 미술품들을 수집하여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미술사박물관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미술사박물관이 유럽의 다른 미술관들과 다른 점은 16세기와 17세의 회화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브뤼겔(Bruegel), 틴토레토(Tintoretto)의 베니스 미술, 티티안등의 작품은 세계 제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과 플레미쉬 르네상스와 바로크 작품들도 대단하다. 예룰 들면 렘브란트, 크라나흐(Cranach), 뒤러, 반 다이크, 루벤스 등이다. 바로크 시대에 합스부르크가 네덜란드 일대와 북부 이탈리아를 통치했던 것이 비엔나의 미술품들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 놓은 계기가 되었다. 또하나의 걸작은 첼리니(Cellini)의 소금 그릇인 살리에라(Saliera)이다. 이것은 한때 도난 당했다가 다시 찾은 후부터는 미술사박물관의 이콘이 되었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켄타우렌을 제압하는 테세우스'(안토니오 카노바 작품)

 

합스부르크가 이집트 유물들을 수집한 것은 의외이다. 왜냐하면 이집트를 비롯해서 중근동 지역은 합스부르크가 단 한번도 영토로 삼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 전시관은 들어서면 이집트의 죽음의 의식이 맞이한다. 그로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의 특이한 유물들이 보는 사람들을 경탄하게 만든다. 세계 제일이라는 파피루스 전시는 다른 건물이다. 그래서 파피루스를 제외하고는 미술사박물관의 이집트 전시는 런던의 브리티쉬 뮤지엄에 미치지 못한다. 하기야 영국은 이집트를 오래동안 통치했으므로 수많은 유물들을 런던으로 가져왔음이 틀림없다. 물론 브리티쉬 뮤지엄도 카이로박물관에 비하면 어색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반면에 로마시대의 유물들은 합스부르크가 자기들이 다스리던 영역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런데 어떤 품목들은 반대로 로마제국이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시기에 오스트리아의 영토에서 발굴된 것들이어서 어이러니컬하다. 예를 들면 카린티아에서 발견된 청동조각상인 '마그달렌스버그 산의 젊음이'(Jüngling von Magdalensberg: Youth of Mount Magdalesberg)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이 청동동상은 로마시대에 만든 것이 아니라 16세기에 만든 복제품이라고 한다. 처음에 이 동상이 발견되었을 때는 로마시대 최대의 예술품이 오스트리아에서 나왔다고 해서 난리도 아니었는데 좀 싱겁게 되었다. 반면에 잘츠부르크 인근에서 발견되 모자이크는 로마시대 장인들의 솜씨를 엿볼수 있는 작품로 판명되었다. 미술사박물관의 아랫층(그라운드 플로어)의 전시에서는 이집트보다 그리스, 로마가 더 뛰어나다. 오스트리아 예술과 이탈리아 예술의 밀접한 연맹을 짐작할수 있다.

 

이집트 유물 전시실 중의 하나

 

미술사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파트 중의 하나는 조각과 장식예술 전시이다. 합스부르크의 예술에 대한 센스를 들쳐 볼수 있는 전시이다. 옛날에는 조각이나 장식예술품을 수집해서 전시해 놓은 방을 '분더캄머'(Wunderkammer)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기적의 방'이라는 뜻이지만 '보물실'을 의미했다. 별별 신기하고 신통한 물건들이 많아서였다. 이렇게 보물들을 모아 놓은 방은 따지고 보면 현대적 미술관의 시초라고 할수 있다. 현재 합스부르크 보물들은 미술사박물관 건물에 있지 않고 호프부르크에 별도의 전시실을 가지고 있다. 샤츠캄머(Schatzkammer)이다. 합스부르크 보물전시실은 실상 인스부르크의 페르디난트 대공 소장품과 잘츠부르크 추기경의 소장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져온 보물들은 잘츠부르크 대성당박물관에 있었던 것도 포함된다.

 

호프부르크의 한편에 있는 미술사박물관 산하의 제국보물실(샤츠캄머)

 

이집트 유물, 페르디난트 대공의 인스부르크 보물실과 잘츠부르크 추기경의 보물실에서 가져온 보물들과 함께 미술사박물관이 자부하는 세번째의 전시물은 루돌프 2세의 소장품을 주축으로 한 미술품들이다. 원래는 황제가 된 루돌프 2세가 거주했던 프라하에 있었던 것들을 비엔나로 가져온 것이다. 루돌프 2세의 소장품은 인스부르크의 암브라스 성에서 가져온 페르드난트 2세의 보물들과 함게 미술사박물관의 큰 주춧돌이 되었다. 보물들은 대부분 황금이나 각종 보석으로 만든 것이며 어떤 것들은 진주 또는 상아와 같은 천연 재질로 만든 것도 있다. 참으로 값으로 따지기가 어려울 정도로 귀중한 것들이다. 보물들은 세속적인, 즉 황실의 보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종교적인 보물들도 다대하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언덕에서 달리셨던 성십자가의 조각, 로마 군인이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던 성창의 창날, 로마의 바티칸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 달려서 순교한 베드로의 치아 등이다. 이러한 보물들을 보면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의 합스부르크 황실 사람들의 각별한 취미를 살펴볼수 있다.

 

제국보물실에 전시되어 있는 성십자가의 조각(오른편 십자가 안에 있음)과 성창의 칼날(왼편)

 

제 27 전시실에 있는 유명한 살리에라(Saliera)를 지나칠수는 없다. 살리에라는 광기의 조각가라고 하는 벤베누토 첼리니의 작품이다. 소금을 넣어두는 식탁용품으로 만든 것이다. 황금으로 된 아름다운 조각작품이다. 이 귀중한 작품이 근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은 신비스러울 정도의 사건이었다. 이 작품을 훔쳐갔던 도둑은 매스컴의 각광을 받아서 미디어 스타가 되었고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문화재 도둑을 영웅으로 떠 받들다니 말이다. 아무튼 미술사박물관의 그라운드 플로어(우리 식으로는 1층)의 조각전시실은 귀중한 보물들과 함께 참으로 볼만한 곳이다. 그러나 미술사박물관에서 진짜로 볼만한 곳은 1층(우리 식으로는 2층)의 전시실에 있는 그림들이다. 전시실들은 미로처럼 마련되어 있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한참동안 둘러 보았더니 처음 보았던 곳으로 다시 왔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회화전시실(Gemaldegalerie)을 돌다보면 마치 합스부르크 시대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렇지 않고 어서 나가서 맛있는 커피라도 한잔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첼리니의 '살리에라'

 

생각해 보면 합스부르크의 군왕들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국왕들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즐겨하며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군림하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예술품과 학문과 음악에 더욱 심취했다. 그리하여 과거 거의 8백년을 거치면서 막대한 예술품들을 소장할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선행을 한 것이다. 회화전시실은 네덜란드 출신의 브뤼겔(Bruegel: 1525-1569: 아버지)부터 시작한다. 플레미쉬 화가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보통 브뤼겔이라고 말하지만 브뤼겔도 두 사람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다. 아버지를 브뤼겔 엘더(Bruegel Elder)라고 부르는 것은 알아 듣겠는데 아들도 브뤼겔 엘더이다. 다만 앞의 이름이 아버지는 피에터(Pieter)인데 아들은 얀(Jan)이다. 두 사람 모두 유명한 화가이다. 브뤼겔이라는 이름의 원래 발음은 상당히 복잡하다. 더치어로는 브뢰열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름을 어떻게 쓰며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제쳐두고 그의 작품을 보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당시로서는 거의 주제로 삼지 않았던 농민들을 주역으로 삼은 그림들이다. 그 자신도 자기를 '농부 브뤼겔'(Peasant Bruegel)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우울한 날'(Gloomy Day), '눈 속의 사냥꾼들'(Hunters in the Snow), '어린이들의 게임'(Children's Games), 그리고 '바벨탑'(Tower of Babel) 등은 특별히 눈길을 끈다. 얀 브뤼겔(아들: 1568-1625)의 꽃 그림은 미술에 문외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어디선가 본듯한 작품이다.

 

브뤼겔(아버지)의 '바벨 탑'

 

마리아 테레지엔 플라츠가 주소로 되어 있는 미술사박물관은 다섯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여기에 도서실이 있다. 다섯 파트란, 1) 이집트와 중근동 수집품 2) 그리스와 로마 유적 수집품 3) 회화 전시장 4) 조각 및 장식 예술 수집품 5) 주화 수집품이다. 미술사박물관은 마리아 테레지엔 플라츠 이외에도 박물관들을 관리하고 있다. 노이어 호프부르크(Neue Hofburg)가 가장 중요한 전시장소이다. 노이어 호프부르크에는 1) 에베소 박물관 2) 고악기 수집품 3) 무기 및 갑옷 수집품 4) 제국보물 전시실 5) 민족학(Ethonology) 박물관, 그리고 문서보관소가 있다. 이밖에도 미술사박물관 산하의 기구들로서는 1) 쇤브룬 궁전에 있는 황실 마차(Carriages) 및 궁정 제복 박물관 2) 인스브루크의 암브라스성(Schloss Ambras) 수집품 3) 팔레 로브코비츠(Palais Lobkowitz)에 있는 오스트리아 극장박물관 4) 슈탈부르크(Stallburg)의 리피짜너(Lipizzaner) 박물관 등이 있다.

 

호프부르크, 노이어 부르크, 헬덴플라츠, 미술사박물관, 마리아 테레지엔 플라츠, 자연사박물관, 폭스가르텐과 테세우스신전 등이 보이는 비엔나 중심가 공중사진. 노이어 부르크의 전시장들은 미술사박물관 산하이다. 국립도서관은 별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