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헨체의 '강으로 가다' - 164

정준극 2016. 1. 28. 08:32

강으로 가다(Wir erreichen den Fluss) - We Come to the River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의 2막 오페라(음악을 위한 액션)

전쟁의 공포 부각

 

한스 베르너 헨체

 

독일의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1926-2012)는 여러 스타일의 작품을 남긴 현대작곡가이지만 오히려 좌파주의자, 동성애자 등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시리얼리즘(병렬주의)와 아토날리티(무조주의)의 색체가 농후하다. 그런가하면 스트라빈스키 스타일을 느낄수 있으며 또한 이탈리아 음악, 아랍 음악, 재즈의 분위기도 느낄수 있다. 그리고 물론 독일의 전통적인 작곡 양식도 찾아 볼수 있다. 그는 생전에 40편의 오페라, 음악극장, 기타 드라마틱 작품들을 남겼다. 물론 합창곡, 발레곡, 기악곡, 실내악곡 등도 상당히 남겼다. 그의 첫 무대작품(오페라)는 1948년 그가 22세 때에 완성한 '기적극장'(Das Wundertheater)였고 마지막 작품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완성한 '기젤라'(Gisela!)였다. '강으로  가다'는 그의 일곱번째 오페라이다. 1976년 7우러 12일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에서는 영어 대본이 마련되었다. 영국의 극작가인 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 1934-)가 영어 대본을 썼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을 가진 것은 이 극장이 헨체에게 의뢰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강으로 가다'는 전쟁에 대한 공포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헨체는 '강으로 가다'를 오페라라고 부르지 않고 '음악을 위한 액션'(Actions for Music)이라고 불렀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초연은 헨체 자신이 제작을 맡은 것이었다. 지휘는 데이빗 아서턴(David Atherton)이 맡았다. '강으로 가다'는 런던 초연 이후 베를린의 도이체 오퍼에서 독일 초연을 가졌으며 미국 초연은 1984년 산타 페 오페라에서였다. 이어 함부르크에서 2001년에, 드레스덴의 젬퍼오퍼에서 2012년에 공연되었다. 2012년은 헨체가 세상을 떠난 해이다. '강으로 가다'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혼란했던 세계 정세를 대변하고 있다. 당시에는 베트남전쟁, 앙골라전쟁, 중동전쟁이 세계를 두려움 속에 몰아 넣고 있던 때였다. 동서간에는 냉전을 넘어서서 전쟁의 일촉즉발 전까지 도달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독재에 의한 억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남미 칠레의 경우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재였다. 헨체는 칠레에서 억압을 받다가 탈출한 사람들의 음성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헨체는 그만큼 전쟁의 폭력과 공포에 대하여 할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스 베르너 헨체는 게이였다고 한다. 그는 1953년 독일에서 자기의 좌파주의적 정치성향과 동성애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자 그것이 싫어서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한스 베르너 헨체는 이탈리아에서 맑시스트이자 이탈리아 공산당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호지명과 체 게바라를 위한 곡을 쓴 바 있다. 


탈영병을 처형코자 하는 장군

 

'강으로 가다'는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의 제작으로 이루어져서 화제가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대단히 복잡한 오페라이다. 우선 오페라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이 무려 111명이나 된다. 한 사람이 1인 2역을 맡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실제 출연진은 50여명에 이르지만 이 또한 일반 오페라에 비하면 대규모가 아닐수 없다. 오페라 역사상 매우 드믄 경우이다. 출연진만 많은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도 세 개의 그룹(앙상블)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타악기 연주자는 오케스트라석이 아니라 무대에서 출연진들 사이에 끼어서 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스테이지 자체도 복잡하게 구성된다. 음악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러 스타일의 음악이 혼재되어 있다. 무조음악으로부터 신고전주의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오페라의 주제인 전쟁에 대한 것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지만 헨체는 세개의 각각 다른 스테이지를 마련토록 해서 다른 스테이지에 나오는 사람들은 의상부터 사실적이 아니도록 배려를 했다. 헨체는 스테이지가 관중석으로 가능한한 가깝게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가설 무대로 오케스트라 피트를 덮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드레스덴의 젬퍼오퍼에서 공연할 때에는 일부러 가설 무대를 만들어서 관중 석 중간에서 출연자들이 연기를 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무대를 구성하였다. 황제의 역할은 남자가 아니라 메조소프라노가 맡도록 한 것도 특이하다. 그래서 황제의 이미지를 사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라헬은 일반적으로 로맨틱한 분위기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맡도록 했다. 그래서 사실적인 것이 추상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했다. 다른 말로서는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아첨하는 듯한 라헬의 이중적인 성격을 표현토록 한 것이다.

 

탈영하는 사람들

 

등장인물들을 간단히 소개코자 한다. 젊은 여인(S), 두번째 병사의 부인(S), 라헬(Rachel: S), 메이(May: S), 황제(MS), 장군(Bar), 첫번째 병사(T), 두번째 병사(T), 세번째 병사(T), 네번째 병사(T), 다섯번째 병사(T), 여섯번째 병사(T), 일곱번째 병사(B), 여덟번째 병사(B), 노파(MS), 탈영병(T), 군무원(NCO: Bar), 주지사(Governor: Bar), 의사(B), 조수(Aide: B), 힐코트 소령(Mime), 신사겸 희생자(T) 등이다.

 

'강으로 오다'는 2막 11장으로 구성된다. 무대는 어떤 상상속의 제국이다. 1막. 인정이라든지 도덕심이라든지 하는 것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수 없는 장군이 있다. 그저 자기의 직무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이다. 제국에서 황제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나자 장군은 앞장서서 혁명을 진압한다. 혁명은 실패로 끝난다. 혁명에 동조했거나 또는 군대를 혐오하여서 탈영병들이 생긴다. 장군은 체포되어 온 탈영병 한 사람으로부터 살려 달라는 간청을 듣지만 군대를 그런 곳이 아니라면서 그 탈영병을 처형한다. 어떤 병사의 부인과 그의 어머니인 노파가 먹고 살기 위해 혁명의 와중에서 죽임을 당한 시체들을 뒤져기면서 소지품들을 약탈하다가 역시 체포되어서  총살을 당한다. 장군은 무언지 모르지만 몸에 이상이 있어서 의사에게 보인다. 의사는 장군이 오래 전에 입은 상처로 인하여 결국 얼마 후에 눈이 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듣자 장군은 점차 곰곰히 생각하는 일이 많아 진다. 결국 장군은 전쟁이란 무엇이가라는 의문에 도달한다. 장군은 전쟁터에서 죽은 부상병들이나 전사자들의 망령들이 보이는 바람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장군은 군대를 떠난다. 그러나 아무리 군대를 떠난다고 해도 장군이 저지른 과거의 행동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2막. 얼마후 장군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다. 정신병원의 수감자들은 머리를 쥐어 뜯거나 옷을 찟으면서 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폭력적인 이야기만을 일삼는다. 이들은 상상속의 보트를 만들어서 정신병원으로부터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어느날 장군의 부하였던 병사가 장군을 찾아와서 지금 밖에서는 말할수 없는 잔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후 당국에서 사람들이 장군을 찾아와서 제국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라는 명령을 전한다. 장군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거절하자 황제의 충복이라는 사람이 장군의 두 눈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정신병원에서 반란을 이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눈먼 장군은 환영 속에서 자기 때문에 희생 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비로소 후회의 느낌을 갖는다. 수감자들은 장군이 자기들의 탈출 계획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장군을 다란 널판지로 눌러서 죽인다. 이들은 커다란 널판지가 강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장군의 불운에도 불구하고 억압받고 있는 이 국가에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강가에 서 있네/우리는 강 저편에 서 있을 것이라네/이제 우리의 발걸음은 분명하다네/우리는 더 이상 내려갈수 없다는 것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