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관용 1960(Intolleranza 1960) - Intolerance 1960
루이지 노노(Luigi Nono)의 단막 오페라
젊은 시절의 루이지 노노와 부인 누리아. 누리아는 아놀드 쇤버그의 딸이다.
루이지 노노(Luigi Nono: 1923-1990)는 이탈리아 아방 가르드(전위) 작곡가로서 20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한가지 께름직한 면이 있다. 1952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에 가입한 것이다. 노노는 작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임이며 의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이념을 담은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대표적인 오페라인 '불관용 1960'(Intolleranza 1960)만해도 그 안에는 파치스트의 압정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노의 경력과 작품세계를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으므로 아예 줄이는바이지만 다만 한가지 첨언하자면 그의 부인인 누리아(Nuria)는 저 유명한 아놀드 쇤버그의 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노는 '불관용 1960'을 만들어서 장인인 쇤버그에게 헌정하였다. 노노는 66세라는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누리아는 베니스에 노노의 유작들을 관리하고 노노를 기리는 사업을 수행하는 기념관을 세워서 운영하고 있다. 노노는 베니스의 산 미켈레(S Michele)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인근에는 아놀드 쇤버그의 묘지가 있다.
시위장면. 베니스 라 페니체
'불관용 1960'은 오페라의 제목 치고는 특이하다. 제목에 1960년이라는 년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1960 이라는 숫자를 넣은 것은 이 작품의 작곡을 1960년부터 착수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불관용 1960'에서 1960을 빼고서 '불관용'이라고 부르며 그렇지 않으면 이탈리아어로 '인톨러란짜'라고 부르고 있다. '불관용 1960'은 노노의 첫번째 오페라 작품이다. 그런에 노노의 초기 작품 중에서는 가장 완성되고 가장 심미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한편, 노노는 이 작품을 오페라라고 부르기를 싫어했다. 대신에 Azione scenica(아치오네 스케니카) 라고 불렀으니 말하자면 '액션이 있는 장면들' 또는 '스테이지 액션'이라는 뜻이다. 또한 막(Act)라는 용어 대신에 파트(Tempi)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불관용 1960'은 Azione scenica in due tempi라고 적는다. 실제로 '불관용 1960'은 2파트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본은 노노 자신이 썼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시인 안젤로 마리아 리펠리노(Angelo Maria Ripellino: 1923-1978)로부터 얻었다. 또한 프라하 출신의 저널리스트 율리우스 푸치크(Julius Fucik: 1903-1943)의 시와 다큐멘타리 텍스트인 Raportage unter dem Strang geschrieben(누군가에게 조종되어서 보도기사를 쓰다), 프랑스계 알제리의 저널리스트인 앙리 알레그(Henri Alleg: 1921-2013)의 La question(고문), 프랑스의 철학자 겸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평론,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루아르(Paul Eluard: 1895-1952)의 La liberte(자유), 소련의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배우인 블라디미르 마야코브스키(Vladimir Mayakovsky: 1893-1930)의 Our march(우리의 행진), 그리고 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헤트(Berolt Brecht: 1898-1956)의 To Prosperity 등에서도 인용하여 대본을 만들었다.
베니스 라 페니체 무대
'불관용 1960'은 어떤 이민노동자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경우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이름도 없이 그저 이민자 또는 이민노동자라고만 불리는 주인공은 노동자에 대한 불법착취, 거리의 시위, 정치적 희생물로 체포되고 고문당하는 일, 강제노동 수용소에의 수감, 도망, 그리고 사회로부터 버림받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는다. 또한 실제 공연에 있어서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동원되고 여기에 녹음 테이프와 라우드스피커가 등장한다. 풍성한 표현주의적 드라마를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시청각 장비를 무대에 설치하여 효과를 보는 것을 '매직 랜턴'(Magic lantern) 테크닉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1920년대에 소련의 뛰어난 연출가인 브세볼로드 마이어홀트(Vsevolod Meyerhold: 1874-1940)와 역시 소련의 시인 겸 혁명가인 블라디미르 마야코코브스키(Vladimir Mayakovsky: 1893-1930) 등이 시도했던 것이다(물론 매직 랜턴이라는 용어는 환등기를 뜻하기도 한다). 안젤로 리펠리노로부터 영향을 받은 대본은 정치적 슬로간들, 사회고발성의 시들, 브레헤트 또는 사르트르로부터 인용한 문장들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노노의 귀에 거슬리는 듯하며 고뇌에 차있는 듯한 음악이 융합되어 있다. 노노의 음악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반자본주의적인 폭발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베니스에서의 초연은 실패였다. 정치적으로 좌익과 우익 사람들이 모두 참석한 초연이기 때문이었다. 관객으로 가장해서 들어온 신나치주의자들과 신파치스트주의자들이 극장 안에서 악취탄을 터트려 난장판을 만들려고 했다. 그것이 제대로 안되자 야유를 보내며 소란스럽게 행동했다. 특히 이민자가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는 장면이 나오자 '경찰 만세'(Viva la polizia)라고 고함치면서 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오페라는 계획대로 일단 막을 내렸다. 그런가하면 노노의 반대주의자들은 노노가 이탈리아 음악을 독살하려 한다면서 비난했다. 그래서인지 노노는 3년 후인 1964년에 '불관용 1960'이 보스턴에서 공연될 때에 2막에서 1막으로 수정하였다.
강제수용소의 고독한 이주노동자. 그러나 수용소의 다른 수감자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돌이켜보건대 1960년대에 노노의 음악활동은 눈에 띠게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들로 구성되었다. 그 주제라는 것은 핵전쟁에 대한 고발,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 나치 전범들에 대한 비난(특히 아우슈비츠), 그렇지 않으면 그가 생각하기에 미제국주의자들에 의한 베트남전쟁 따위였다. 이를 위해 노노는 정치적 연설, 슬로간, 그리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는 소음 등을 테이프와 새로운 전자기기에 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품 중에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항들을 더 확실하고 더 구체적으로 표현코자 하면 테이프에 녹음된 그 소리들을 사용했다. 이같은 테크닉은 '불관용 1960'에도 상당히 도입되었다. '불관용 1960'은 1961년 4월 13일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라 페니체의 감독인 마리오 라브로카가 1961년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작곡을 의뢰한 것이다. 초연의 무대 디자인은 노노의 친구로서 급진파 화가인 에밀리오 베도바(Emilio Vedova)가 맡았다. 등장인물들은 비교적 간단하다.
- 이주노동자(A Migrant: T). 영웅
- 이민자의 동반자(His Companion: S)
- 여인(A Woman: Cont.)
- 알제리 사람(An Algelian: Bar)
- 고문 희생자(A Torture Victim: B)
- 네명의 경찰관(배우들). 이밖에 광부들, 시위자들, 고문받은 사람들, 죄수들, 난민들, 알제리 사람들, 농부들은 합창단.
아우구스부르크 무대. 광산노동자들.
시기는 현대이며 장소는 상상 속의 아무곳이나이다.
[파트 1] 서곡 대신에 대규모 무반주 합창단이 무대 뒤에서 오프닝 합창을 부른다. '살아라, 방심하지 말고'라는 내용이다. (1장) 어느 광산촌이다. 말로케스 광산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광부일이 처음이라서 너무 힘들어 한다. 이주노동자는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얼마전에 도망치듯 떠나온 곳이지만 말이다. (2장) 여인이 등장한다. 거친 광산촌에 떠돌이처럼 들어온 이주노동자를 따듯하게 대해주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여인이다. 여인은 이주노동자에게 힘들지만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은 하지말고 이 광산촌에서 함께 살자고 간청도 해보고 설득도 해본다. 그러다가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로부터 태도가 바뀌어서 이주노동자를 저주하고 비난한다. 게다가 만일 마을을 떠난다면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그러나 얼마후 이주노동자는 여인을 뒤로 두고 광산촌으로부터 어디론가 떠난다. (3장) 이주노동자는 어느 도시에 들어선다. 거리에선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불법시위가 한창이다. 경찰이 개입해서 그중 과격시위자 몇명을 체포하여 경찰서로 데려간다. 이주노동자도 어떨결에 체포되어 경찰서로 간다. 이주노동자는 데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경찰은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아마 이주노동자가 경찰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경찰의 고문 장면
(4장) 경찰서이다. 경찰 네명이 죄수들의 자백을 받아내려고 고문을 준비하고 있다. 고문전담 경찰인 모양이다. 이주노동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이 도시를 통과해야 해서 지나가다가 어쩌다가 시위대에 휩쓸렸던 것이며 자기는 시위대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므로 고백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5장) 체포되어온 모든 사람에 대한 고문이 시작된다. 고문에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관중들의 귀를 자극한다. 코러스는 관중들에게 귀가 먹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수치의 목장에 갇힌 소떼들과 같으냐고 묻는다. (6장) 강제수용소이다. 강제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자유를 갈구하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린다. 이주노동자도 강제수용소에 들어온다. 죄수들은 이주노동자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고문을 받고 스스로 강제수용소에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문을 맡았던 네 명의 경찰관들은 자기들의 희생자를 보고 비웃고 조롱한다. 이주노동자는 알제리에서 온 어떤 죄수와 친하게 된다. 두 사람은 탈출을 계획한다. (7장) 이주노동자는 알제리인과 함께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주노동자의 희망은 그저 한번만이라도 고향집을 보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불타고 있다(알제리인은 자기의 갈 길로 가고 이주노동자는 어떤 여인을 만나 동반자로서 함께 여행을 가는 것으로 짐작하면 된다).
강제수용소를 그린 장면
[파트 2] (1장) 현대생활의 몇몇 불합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방에서 이주노동자를 압박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소리는 이주노동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성가시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를 대단히 압도하고 있다. 현대 생활의 불합리한 사람들, 예를 들면 관료주의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관료주의적인 사람들은 '신고를 해야 한다', '서류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서류가 사실이라는 보증을 받아야 하고 그런 구비서류를 다 마련해서 찾아가면 공증을 받아야 한다'고 소리칠 뿐이다. 신문들도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그저 센세이셔널한 기사만을 찾아서 게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열세명 아이들의 어머니가 알고보니 남자였다'라는 제목이다. 그런 장면이 오디오 비주얼 스시템을 통해서 소개된 후에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난다. (2장) 난민과 그의 동반자가 만나는 이야기이다. 다수의 침묵자들은 시위대의 슬로간들과 예상치 못했던 폭발음에 대하여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어떤 여인이 나와서 전쟁과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이주노동자는 자기만이 고독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희망을 갖는다. 그로부터 이주노동자와 여인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서로 투쟁하기로 다짐한다. (그런데 여인의 정체에 대하여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이주노동자와 동반자.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사이에 길을 만들어 놓았다.
(3장) 테러와 광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주노동자의 앞에 광산촌에서 떼어 놓고 왔던 여인이 나타난다. 이주노동자는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주노동자는 자기의 동반자와 함께 광산촌의 여인을 쫓아보낸다. 그러자 광산촌의 여인은 다른 광신주의자들과 함게 유령과 그림자로 변형한다. 여인은 꿈에서 이주노동자와 광산과 강제수용소의 입구에 걸려 있는 조롱하는 듯한 슬로간인 '노동이 자유롭게 만든다'(Arbeit macht frei)를 본다(이 문구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붙어 있는 간판이다). 그리고 여인은 이주노동자가 동반자와 함께 붙잡고 있는 불관용이라는 악몽을 본다. 코러스는 마야코브스키의 '우리의 행진'(Our march)을 노래한다. (4장) 어떤 마을에서 가까운 곳으로 옆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동반자는 큰 강의 강변에 도달한다. 이 강만 건너면 다른 나라이다. 홍수가 났는지 강물이 엄청 불어 있다. 강물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불어난 물은 도로를 삼키고 다리들을 부서트리며 집과 창고들을 허문다. 이주노동자와 그의 동반자는 불어난 강물을 어찌하지 못하고 오히려 휩쓸려 떠 내려간다. 두 사람은 참으로 의미없는 그러면서도 번뇌에 넘친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으로 합창단이 브레헤트의 시 To Posterity(후손들에게)에서 발췌한 가사로서 노래를 부른다. 오프닝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반주 합창이다.
베니스의 라 페니체 무대
'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 > 화제의 30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르젠토의 '물새 토크' - 169 (0) | 2016.04.09 |
---|---|
마스카니의 '리틀 마라' - 168 (0) | 2016.04.09 |
초콜라이 산도르의 '피의 결혼식' - 166 (0) | 2016.02.04 |
티에리 에스케슈의 '클로드' - 165 (0) | 2016.02.02 |
헨체의 '강으로 가다' - 164 (0) | 2016.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