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정준극 2016. 8. 9. 20:22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Daehan Empire History Museum


덕수궁 석조전 1층의 대접견실

석조전에서의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이은, 영휘황제 순종, 광무황제 고중,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석조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을 때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머무는 황궁이었고 석조전은 황제의 거처였기 때문이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에 덕수궁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로 인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삼일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덕수궁인데 덕수궁의 석조전이 어떤 용도로 지어진 건물인지 등에 대하여는 별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덕수궁에는 예로부터 왕이 정사를 보던 중화전이 있고 기타 침실로 사용하던 건물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것들이고 새로 석조전을 만들어서 황제와 황후의 숙소 겸 황제를 방문한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으로, 또한 필요하면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함께 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다시 생각해 보건대 석조전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제가 숙소로 삼을 건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계획하여 3년 후인 1900년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10년 후인 1910년에 준공된 서양식 건물이다. 석조전은 건축양식으로 볼때 신고전주의(네오클래시컬)의 건물이다. 좌우 대칭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건축양식이다. 그리스의 신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당시 조선으로서는 최신 스타일의 건축물이었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건립되었으나 일제 시대인 1933년 이후에로 비교적 근자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국제회의장,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래 황궁이었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석조전을 대한제국 시대의 황궁으로서 복원키로 결정했고 10년 공사 끝에 비교적 옛 모습을 간직하도록 복원하였고 이제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전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가구들은? 남아 있는 사진들을 참고로 해서 국립고궁박물관과 창덕궁이 보관하고 있던 당시의 가구들을 원래 자리에 배치하였다. 사진에는 나와 있는데 없어진 가구들은 석조전이 오픈될 당시에 가구들을 조달했던 영국의 하딩 회사를 통해서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그 회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비슷한 가구들을 구해서 전시하였다. 또한 재현이 어려운 공간은 그냥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아름답고 웅장한 석조전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2014년 10월 3일 오픈하였다는데 게으른 탓에 그동안 이런 전시관이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내왔다. 이무렴 석조전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쁘더라도 반드시 방문해 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입장은 무료이다. 덕수궁 입장료는 별도로 부담해야 하지만 그거야 큰 일은 아니다. 그리고 65세 이상이면 경로로서 무료 입장이다. 대한제국역시관은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식으로는 1층인데 이곳에서는 지층이라고 부르는 곳에는 석조전 복원에 따른 이야기, 대한제국에 의한 조선의 근대적 개혁 이야기, 교육, 통신, 교통, 경제 등 신문물에 대한 이야기가 영상 및 모형 등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어느때고 관람할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2층이라고 생각되는 1층에는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의례에 대한 전시 공간으로서 귀빈대기실, 접견실, 소식당, 대식당 등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고 우리는 3층이라고 생각되는 2층에는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거실, 욕실, 화장실 등 생활 공간을 재현해 놓았다. 그리고 대한제국 황실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전시관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동안 열심히 복원들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국민의 혈세가 무던히도 많이 들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서 깊은 석조전을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 놓은 것은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입구 1층. 예정된 시간에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예약제로 관람할수 있다.


1층과 2층은 예약을 해야 관람할수 있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참고로 홈페이지는 www.deoksugung.go.kr이다. 다만, 65세 이상의 어르신 및 외국인은 예약하지 않고 현장에 오면 선착순으로 5명정도까지 안내관람이 가능하다. 관람은 매 한시간마다 실시되는데 해설사의 안내가 있으며 관람시간은 약 45분 정도 걸린다. 아이들은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근대역사를 설명해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어떤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과연 무얼 얼마나 알아나 들었는지 의심이 간다. 하여간에 엄마들은 그저 자기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1층 대기실


부언이지만 현재의 덕수궁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연인즉, 현재의 덕수궁은 조선왕조 성종의 형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월산대군의 사저로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 파천에서 돌아와 사용하던 경운궁(慶運宮)을 한참 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한식 건물과 서양식 건물을 다수 신축하여 대한제국의 본궁으로 삼은 것이다. 대한제국의 선포에 따라 이루어진 각종 의식들도 근처에 새로 세운 원구단과 이 궁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현재 웨스틴 조선호텔의 구내에 있는 환구단 등이 그런 목적의 시설물들이다. 그런데 일본이 1905년에 을사조약을 강제하자 이에 항거하여 고종이 1907년 6월에 헤이그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를 보낸 일이 있다. 일본은 이것을 빌미로 7월에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면서 황태자(순종)를 창덕궁으로 보내고 ‘태황제’인 고종은 경운궁에 그대로 거처하게 하였지만 궁의 이름을 덕수궁(德壽宮)으로 바꾸었다. 이런 경위로 볼 때, 이 궁의 이름을 덕수궁으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일제의 조선 침탈 및 강제 병합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므로 시급히 원래의 이름, 즉 경운궁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주장이다. 


석조전에서 내려다 본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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