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공작(Le duc d'Albe) - Il duca d'Alba - El gran duque de Albe
도니체티의 미완성 비극. 제자 마테오 살비가 완성
3대 알바공작인 페르난도 알바레스 데 톨레도(Fernando Alvarez de Toledo)
'알바 공작'은 도니체티가 1839년 파리에서 작곡한 3막의 오페라이다. 초연의 대본은 프랑스어였다. 때문에 제목도 프랑스어로 Le duc d'Albe였다.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초연할 때에는 이탈리아어 대본을 사용하였가. 그래서 제목도 이탈리아어로 Il duca d'Alba가 되었다. 프랑스어 대본은 당대의 대본가인 외진 스크리브(Eugene Scribe: 1791-1861)와 샤를르 뒤베이리에(Charles Duveyrier: 1803-1866)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두 콤비가 완성한 또 하나의 대표적인 대본은 베르디의 '시실리의 저녁기도'(I vespre sicilaini)였다. 외진 스크리브가 단독으로 완성한 대표적인 대본은 프랑스아 부엘듀를 위한 '하얀 옷의 여인'(La dame blanche), 다니엘 오버를 위한 '마농 레스꼬'(Manon Lescaut), 마이에르베르를 위한 '아프리카의 여인'(L'Africaine), '위그노'(Les Huguenots), '예언자'(Le prophete), '악마 로베르'(Robert le diable) 등이 있다. 주인공인 '알바 공작'은 톨레도의 페르단도 알바레스((Fernando Alvarez de Toledo))를 말하며 그는 3대 알바공작이다. 알바 공작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잠시 뒤에 간단히 소개코자 한다.
1882년 '알바 공작'이 초연될 때의 로마 아폴로 극장 무대
'알바 공작'은 파리 오페라극장이 1839년 초반에 도니체티에게 작곡을 의뢰한 것이었다. 도니체티는 그 해 안으로 완성해서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을 가질 계획이었다. 파리 오페라극장장의 애인(실은 정부)인 로시느 슈톨츠(Rosine Stoltz)가 '알바 공작'에서 여주인공인 엘렌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슈톨츠는 '알바 공작'의 내용을 대강 듣고서는 엘렌의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작곡이 완성되어도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니체티는 물론이고 파리 오페라극장장도 난감한 입장이었다. 도니체티는 새로 여주인공을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고 더구나 슈톨츠가 자기가 무언데 엘렌의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느니 어쩌지 하자 속이 상하고 분해서 작곡하던 것을 한쪽으로 미루어 놓고 다른 작품에나 신경을 썼다. 마침 도니체티는 그 당시에 '니시다의 천사'(L'ange de Nisida)와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을 작곡하고 있어서 '알바 공작'을 서둘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도니체티는 '알바 공작'을 4막으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작곡을 진행하다가 슈톨츠라는 소프라노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1막과 2막은 완성했지만 3막과 4막은 주요 멜로디를 스케치만 해놓고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다. '알바 공작'은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1848년 도니체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상 설합에 넣어 있었다. '알바 공작'은 비록 미완성으로 책상설합 속에 보관되는 신세가 되었으나 도나체티는 기왕에 작곡해 놓은 몇 개의 아리아도 함께 설합에 넣어 둔다는 것이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유명한 테너 아리아인 Ange si pur(부드러운 영혼)을 그의 1840년도 오페라인 '라 화보리타'에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마테오 살비(Matteo Salvi: 1816-1887)는 나중에 미완성 부분을 완성하면서 Ange si pur를 제쳐 놓고 대신에 Angelo casto e bel이라는 아리아를 만들어 넣었다. 또한 마테오 살비는 3막과 4막을 통합해서 하나의 피날레 막으로 만들었다. 한편, 프랑스어 오리지널 스코어의 3막과 4막은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바티스텔리(Giorgio Battistelli: 1953-)가 2012년에 완성하였다.
도니체티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을 완성한 마테오 살비(왼편)와 조르지오 바티스텔리
도니체티는 1845년에 잠시 비엔나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이다. 그때에도 물론 '알바 공작'은 미완성으로 있었다. 도니체티는 이제 '알바 공작'을 의뢰한 파리 오페라극장과의 계약이 파기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을 약속해 놓고 공연을 하지 않은데 대한 계약 불이행을 내세워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생각이었다. 도니체티는 이를 위해 1845년 7월에 비엔나를 떠나 파리로 향하였다. 그러나 파리에서 손해배상에 대한 소송이 이미 진척되었을 것으로 믿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해진 것이 없었다. 이때문인지 하여튼 도니체티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외진 스크리브와 샤를르 뒤베이리에가 공동 작성한 '알바 공작'의 대본은 더 이상 오페라로 만들어지지 않게 되자 두 사람의 대본가는 그 대본을 베르디에게 이관하였다. 다만, 장소의 배경을 플란더스가 아니라 스페인으로 잡았고 시대도 1573년의 플란더스가 아니라 1282년 프랑스가 통치하는 시실리로 잡았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1855년의 '시실리의 저녁기도'(Les vêpres siciliennes: The Sicilian Vespers))이다. 당시에 베르디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미완성의 '알바 공작'은 1881년에 도니체티의 제자인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Matteo Salvi: 1816-1887)가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와 안토니오 바찌니(Antonio Bazzani), 체사레 도메니체티(Cesare Domenice)의 도움을 받아 완성하였다. 외진 스크리브의 프랑스어 오리지널 대본은 안젤로 차나르디니(Angelo Zanardini)가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Il duca d'Alba가 되었다. 이탈리아어 대본에서는 두 연인인 앙리(Henri)와 엘렌(Helene)을 마르첼로(Marcello)와 아멜리아(Amelia)로 바꾸었다. 앙리와 엘렌이라는 이름은 이미 '시실리의 저녁기도'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굳이 중복되게 인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탈리아어 대본의 '알바 공작'은 1882년 3월 22일 로마의 아폴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에서 알바 공작은 바리톤 레오네 지랄도니(Leone Giraldoni)가, 아멜리아는 아비가일레 브루스키 키아티(Abigaille Bruschi Chiatti)가 맡았다. '알바 공작'은 로마에서 초연을 가진 후에 다른 곳에서 여러번 공연되었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더 이상 공연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비교적 근자인 2012년 5월에 안트워프의 블람세 오페라가 프랑스어 대본으로 공연하여 그로부터 새로운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이탈리아어 버전은 1882년 초연을 가진 이래 거의 리바이발 된 일이 없다. 심지어 그런 것이 있었느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근자의 리바이발은 1959년 스폴레토의 Festival dei Due Mondi에서였다.
알바 공작과 마르첼로. 스페인 오비에도 극장 무대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알바라고 하니까 편의점에 다니는 알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스페인 귀족의 이름이다. 장소는 플란더스의 브뤼셀과 안트워프이며 시기는 1573년이다. 이 오페라는 군주에 대한 반항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지배계급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운동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 알바 백작(Il duca d'Alba: Le Duc d'Abe: Bar). 스페인 필립 2세가 임명한 플란더스 총독
- 아멜리아(Amelia di Egmont: S). 엘렌(Helene d'Egmont). 플란더스 독립지도자의 딸
- 마르첼로(Marcello di Bruges: T). 플란더스의 애국자, 아멜리아가 사랑하는 사람. 앙리(Henri de Bruges)
- 산도발(SandovalBar). 스페인 군대의 대위
- 카를로(Carlo: T). 스페인 장교
- 다니엘레 브라우어(Daniele Brauer: Bar). 플란더스 애국자. 다니엘(Daniel Brauer)
- 맥주 장사꾼(Il taverniere: Un Tavernier: B).
억압받고 있는 플란더스 백성들과 이들을 진압하는 스페인의 군인들
[1막] 당시 플란더스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플란더스는 스페인의 압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기 위해 분연히 봉기하였다. 스페인의 필립 2세는 플란더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알바 공작을 플란더스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2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알바 공작은 플란더스의 국민적 영웅인 에그몬트 백작을 처형한바 있다. 에그몬트 백작의 유일한 딸인 아멜리아는 아버지의 원수이며 플란더스 국민들의 원수인 알바 공작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에그몬트 백작이 세상을 떠난 이후, 플란더스의 저항을 이끄는 사람은 마르첼로라는 청년이다. 아멜리아와 마르첼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알바 공작은 마르첼로에게 반란을 중지하고 스페인 군대에 합류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면서 높은 지위와 안락한 생활을 약속한다. 마르첼로는 당연히 거부한다. 그러자 알바 공작은 반란을 어서 종식하고 싶은 마음에 마르첼로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둔다. 마르첼로를 처형할 생각이다.
플란더스 백성들의 봉기
[2막] 알바 공작은 마르첼로가 어릴 때에 잃어버린 아들이란 것을 알게 된다. 알바 공작은 차마 자기의 혈육인 아들을 죽일수가 없어서 반란세력을 회유한다는 구실로 마르첼로를 석방한다. 마르첼로는 알바 공작에게 갇혀 있는 동지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자기도 감옥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에는 사랑하는 아멜리아도 들어 있다. 아멜리아를 비롯한 마르첼로의 동지들은 다니엘레 브라우어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모임을 갖다가 모두 체포되었다. 그러자 알바 공작은 마르첼로에게 자기가 아버지인 것을 비로소 밝힌다. 마르첼로는 자기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며 있다면 플란더스의 독립만이 있다고 말한다. 알바 공작은 반란세력의 수괴인 마르첼로가 자기를 아버지로 인정하고 무릎을 꿇으면 반란도 자연히 종식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마르첼로에게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아버지로서 인정하면 마르첼로의 동지들을 모두 석방하겠다고 제안한다.
번민하고 있는 아멜리아와 마르첼로
[3막] 마르첼로는 아멜리아에게 자기가 알바 공작의 아들이란 것을 고백한다. 깊은 충격으로 어찌할줄 모르는 아멜리아! 그러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아멜리아의 마음은 흔들릴수 없다. 그것이 플란더스의 독립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아멜리아는 마르첼로에게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기를 대신해서 알바 공작을 죽여달라고 말한다. 마르첼로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서 고민한다. 얼마후 알바 공작이 안트워프의 항국에 간다는 소식이 알려진다. 아멜리아는 알바 공작을 제거할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멜리아는 마르첼로가 거사를 주저하기 때문에 직접 알바 공작을 암살키로 결심한다. 아멜리아는 남자로 변장해서 안트워프의 항구에 잠입한다. 알바 공작이 나타나자 아멜리아는 단검을 잡고 알바 공작에게 달려든다. 그때 마르첼로가 순식간에 나타나서 알바 공작의 앞을 가로막아서는 바람에 아멜리아는 마르첼로를 찌른다. 아멜리아는 뜻하지 아니하게 사랑하는 마르첼로를 죽이게 된다.
아멜리아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다가 사랑하는 마르첼로를 죽이게 된다. 한탄하는 알바 공작과 후회하는 아멜리아
'알바 공작'의 음반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1882년 로마에서 안젤로 차나르디니가 마련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첫번째 음반은 1951년 지안자코모 귈피(Giangiacomo Guelfi), 아메데오 베르디니(Amedeo Berdini), 카테리나 만치니(Caterina Mancini)가 취입한 것이다. 이어 1959년에 루이스 퀼리코(Louis Quilico), 레나토 치오니(Renato Cioni), 이바나 토시니(Ivana Tosini)가 취입한 것이 있고 1982년에는 마테오 마누게라(Matteo Manuguerra), 달마치오 곤살레스(Dalmacio Gonzalez), 마리나 크릴로비치(Marina Krilovici)가 취입한 것이 있으며 근자인 2007년에는 프랑크 페라리(Franck Ferrari), 아르투로 샤콘 크루스(Arturo Chacon Cruz), 인바 물라(Inva Mula)가 취입한 것이 있다. 한편 2012년에 조르지오 바티스텔리가 완성한 오리지널 프랑스어 버전도 음반으로 취입된 것이 있다. 2012년에 조르즈 프탕(Georges Petean), 이스마엘 조르디(Ismael Jordi), 레이첼 하니쉬(Rachel Harnish)가 취입한 것이다.
플란더스의 독립을 강제로 진압하는 스페인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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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공작은 어떤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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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공작은 16세기 스페인의 귀족으로서 장군이며 외교관이었다. 알바 공작은 스페인에서는 '알바 대공'(Grand Duke of Alba)으로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철의 공작'(Iron Duke)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알바 공작의 풀 네임은 페르난도 알바레스 데 톨레도 이 피멘텔()이다. 1507년 피에드라이타()에서 태어나서 1582년 향년 75세로 리스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런 것까지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알바 공작의 타이틀은 3대 토메스의 알바 공작, 4대 코리아의 후작, 3대 살바티에라 데 토메스의 백작, 2대 피에드라이타 백작, 8대 발데코메하 및 그란데 영주, 그리고 황금양털회 기사이다. 알바 공작은 스페인의 필립 1세의 자문관이었다. 필립 1세는 저 유명한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르 5세를 말한다. 알바 공작은 필립 1세의 뒤를 이어 스페인의 군주가 된 필립 2세의 자문관이기도 했다. 공직으로서는 스페인 정부의 국무성 및 전쟁성 위원이며 밀라노 공국의 총독(1555-1556)을 지냈고 이어 나폴리 왕국 총독(1556-1558), 네덜란드 총독(1567-1573), 포르투갈 왕국 총독(1580-1582)을 지냈다. 알바 공작은 필립 2세가 상처하여 배우자가 없자 필립 2세의 세번째 왕비로서 프랑스의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와의 결혼을 추진했으며 이어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가 세상을 떠나자 네번째 왕비로서 오스트리아의 안나와 필립 2세와의 결혼을 추진한 인물이다. 일설에 의하면 프랑스의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는 필립 2세의 왕자인 돈 카를로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과 프랑스와의 정치적 협정에 의해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가 돈 카를로의 아버지인 필립 2세와 결혼하게 되었고 이에 돈 카를로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을 갖게 되었으며 아울러 그 결혼을 주선한 알바 공작에 대하여도 대단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돈 카를로는 자기와 결혼키로 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가 아버지와 결혼하자 마드리드를 떠나고 싶은 생각에 플란더스(네덜란드)에 가서 플란더스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에 가담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일이 있다.
알바 공작
그건 그렇고 플란더스로서 보면 알바 공작은 일제시대의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존재였지만 스페인으로서 보면 위대한 장군이었다. 알바 공작은 엄격하고 거치른 장군이었지만 부하 장병들은 그를 대단히 존경했다. 장병들은 특히 알바 장군이 연설을 하면서 병사들을 '젠틀맨 솔디어스'(Gentlemen soldiers)라고 부르는 것을 매주 좋아했다. 알바 공작은 여러번의 전투를 이끌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1535년 오토만과 합스부르크간에 벌이진 튜니스 전쟁이었다. 이때 알바 공작은 필립 1세를 도와서 하이레딘 바바로사(Hayreddin Barbarpossa)를 격퇴함으로서 지중해 서부에서 스페인 왕국의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만들었다. 알바 공작은 또한 1547년 독일 개신교 군대와 샤를르 5세의 가톨릭 군대가 벌인 뮐버그 전투를 스페인의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알바 공작의 명성을 드높혀 준 것은 스페인에 대한 플란더스의 반란을 진압한 것이다. 특히 1568년 8년 전쟁의 초기에 예밍겐(Jemmingen) 전투에서 오렌지 공 윌리엄과 나서의 루이의 연합군을 패배시킨 것은 역사에 남은 사건이었다. 알바 공작은 승전장군으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적군에 대한 잔혹한 처사로서도 악명을 떨쳤다. 특히 메헬렌(Mechelen), 추트픈(Zutphen), 나르덴(Naarden), 하알렘(Haarlem) 전투에서의 잔혹한 처사는 두고두고 얘기되고 있는 것이다. 알바 공작의 잔혹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플란더스의 반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알바 공작은 마침내 스페인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알바 공작의 마지막 전공은 1580년 포르투갈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스페인을 승리로 이끈 것이었다. 이때 알바 공작은 알칸타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서 포르투갈이 마침내 필립 2세의 수중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이로써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왕국들을 하나로 통일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서 외국에 식민지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아시아의 필립핀은 필립 2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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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로베르토 드브러는 누구? (0) | 2016.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