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76. 페렌츠 에르켈의 '방크 반'(Bank Ban)

정준극 2016. 10. 21. 16:36

페렌츠 에르켈의 '방크 반'(Bank Ban)

헝가리의 대표적인 국민오페라


헝가리 국민오페라의 아버지인 페렌츠 에르켈


헝가리의 음악을 세계적인 것으로 인정받게 하는 비밀카드가 있다. 오페라 '방크 반'이다. 헝가리 국민오페라의 창시자라고 불리며 존경받는 페렌츠 에르켈(Ferenc Erkel: 1810-1893)의 대표작이다. 헝가리 국민으로서 이 오페라를 모른다면 말이 안된다. '방크 반'은 헝가리의 국민오페라이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국립오페라 극장은 1884년 문을 연 이래 매 시즌마다 '방크 반'을 공연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만큼 '방크 반'은 헝가리를 대표하는 오페라이다. 음악도 뛰어나지만 스토리가 헝가리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헝가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오페라이다. '방크 반'에서 '방크'는 사람의 이름이며 '반'은 지체 높은 귀족의 호칭이다. 헝가리에서 방크 반에 나오는 반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의 공작(duke), 팔라틴 백작(Palatine), 또는 총독이나 태수(viceroy)에 해당하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방크 반은 13세기 헝가리 왕국에서 왕을 보좌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 왕의 임무를 대신하는 사람, 즉 부왕(副王)이었다. 오페라 '방크 반'은 1861년 3월 9일에 부다페스트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당시에는 페스티 넴체티 마쟈르 친하즈(Pesti Nemzeti Magyar Szinhaz)라고 불리는 극장에서였다. '방크 반'의 헝가리어 대본은 헝가리의 작곡가이며 베니 에그레시(Beni Egressy: 1814-1851)가 헝가리의 위대한 극작가이며 시인인 요체프 카토나(Kozsef Katona: 1791-1830)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요체프 카토나는 헝가리 드라마의 창시자로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대본을 쓴 베니 에그레시와 원작자인 요체프 카토나


'방크 반'이 어째서 헝가리의 국민적 오페라인가? 헝가리 국민들에게 조국 헝가리를 위하는 애국심을 불어 넣어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배경 시기는 1213년이다. 이야기는 헝가리왕국의 왕비로 메라니아 출신의 여인이 들어오고부터 시작된다. 메라니아는 오늘날 아드라아해에 면하여 있었다고 하는 봉건영주가 다스리는 국가로서 1152년부터 1248년까지 거의 1백년 동안 존속했으며 당시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우산 아래에 있었던 나라이다. 메라니아에서 온 게르트루드 왕비는 엔드레(안드레아) 2세 왕이 전쟁을 위해 멀리 오랫동안 나가있자 헝가리 왕국의 권세를 휘여잡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온갖 방탕한 행동을 다한다. 이에 국왕의 직무를 대신 맡고 있는 방크 반이 마침내 게르트루드 여왕을 죽이고 헝가리인에 의한 헝가리 왕국을 확고히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희생이 따르지 않을수 없다. 방크 반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지성적인 부인인 멜리사는 게르트르드 왕비의 남동생인 오토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다. 치욕적인 일을 당한 멜리사는 정신이상을 일으켜서 사랑하는 남편 방크 반과 아들을 두고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오페라 '방크 반'은 에르켈이 창안한 헝가리 고유의 오페라이다. 전편을 통해서 헝가리의 민속적인 음악이 누벼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치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는 듯하다. '방크 반'은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이며 음악적인 색채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스토리에 있어서도 사랑, 욕망, 배신, 복수, 명예....이런 것들이 내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힘찬 합창, 풍부한 멜로디의 아리아와 앙상블은 베르디라도 부러워했을 것이다. 이 오페라는 헝가리어로 불러야 깊은 의미를 알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날 헝가리어로 주역들인 방크 반이나 멜리나를 맡을 성악가들이 부족해서 헝가리 이외 지역에서의 공연은 극도로 어렵다는 얘기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페투르 반이 방크 반에게 멜린다에 대한 오토의 집요한 야욕을 얘기해 주고 있다.


- 엔드레 2세(II. Endre: Bar 또는 B-Bar). 헝가리 국왕

- 게르트루드(Gertrude: MS). 헝가리 왕비

- 오토(Otto: T). 게르트루드의 동생. (베르톨드 4세의 아들)

- 방크 반(Bank Ban: T). 왕의 임무를 대행하는 귀족

- 멜린다(Melinda: S). 방크 반의 아내

- 파투르 페투르 반(Patur-Petur ban: Ban Petur: Bar). 헝가리 귀족들의 지도자

- 티보르츠(Tiborc: Bar 또는 B-Bar). 농부

- 이밖에 궁정인들, 농부들, 뱃사공들, 병사들, 댄서들


[1막] 헝가리의 엔드레 2세 왕은 전쟁을 위해 멀리 나가 있고 그 동안에 왕비인 게르트루드가 권력을 장악하고 온갖 부정한 일을 저지른다. 엔드레 왕은 전쟁에 나가면서 방크 반에게 왕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보살펴 줄것을 당부했지만 게르트루드는 그의 측근들과 함께 전횡을 일삼고 있다. 게르트루드는 메라니아 출신이다. 외국인이 헝가리에 와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왕비의 권력을 등에 없은 측근들은 백성들로부터 터무니 없이 많은 세금을 거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탈과 강관과 폭력을 일삼고 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만 왕비가 데리고 온 메라니아 사람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헝가리의 일부 귀족들은 날이면 날마다 주지육림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엔드레 왕으로부터 자기가 없는 동안에 백성들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받은 방크 반은 지방을 돌며 농민들의 사정을 살펴보느라고 여념이 없다. 방크 반이 지방을 돌아다니는 틈을 타서 왕비와 그 추종자들은 전보다 더 악랄하고 방탕한 행동들을 한다. 이날도 이들은 왕궁에서 난잡한 파티를 열고 쾌락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추는 민속춤이 흥겹지만 왕궁 밖의 백성들은 여전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방크 반에게는 아름답고 정숙한 부인 멜린다가 있다. 저 멀리 방크 반의 성에서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게르트루드 왕비의 동생인 오토가 멜린다에게 흑심을 품고 방크 반이 지방을 순회하는 중에 온갖 방법으로 멜린다를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멜린다의 마음은 변할 수가 없다.


궁전에서의 연회장면. 게르트루드 왕비가 댄서들을 치히하고 있다.


사악한 게르트루드 왕비는 멜린다를 동생 오토의 품에 안겨주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왕비는 멜린다를 왕궁으로 불러서 파티에 참석토록 해서 마음을 흩으려 놓으려 한다. 방크 반을 존경하는 헝가리의 귀족들이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분개하여서 조국 헝가리가 외국인 왕비의 손에 흔들리는 것을 막고 멜린다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왕비에 대하여 반기를 들기로 협의한다. 왕비에 반대하는 헝가리 귀족들을 이끄는 사람은 지체 높은 귀족인 페투르 반(Petur Ban)이다. 반 페투르는 우선 지방에 나가 있는 방크 반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어 일이 생겼으니 왕도로 돌아올 것을 청했다고 전한다. 아무래도 반란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방크 반이 왕도에 도착한다. 방크 반은 페투르 반으로부터 왕비를 제거할 계획이며 반란군을 이끌어 달라는 설명을 듣는다. 그 얘기를 들은 방크 반은 크게 노하여 페투르 반에게 '그대가 비록 나와 막역한 친구이지만 왕비에게 반항하는 것은 곧 왕에게 반항하는 것이므로 왕에게 충성을 서약한 나로서 절대로 반란에 가담할수 없다'고 대답한다. 모두들 방크 반의 충성심에 감복하지만 그렇다고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왕비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그만둘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페투르 반은 방크 반에게 게르트루드 왕비의 동생인 오토가 멜린다에게 야욕을 품고 있으며 왕비도 그런 사실을 은근히 부추켜 주고 있다고 말해준다. 이 말을 들은 방크 반은 분노하여 귀족들의 반란 모임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한다. 


방크 반이 왕비에 대한 반란을 주장하는 귀족들의 외침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한다.


[2막] 방크 반은 크게 혼란스럽다. 왕에 대한 충성과 게르트루드와 오또에 대한 적개심이 갈등을 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방크 반은 갈등 속에서 나라와 자기 이름의 명예를 위해 기도한다. 방크 반은 비셰그라드(Visegrad)의 성에서 지금은 늙은 농부인 티보르츠를 만난다. 티보르츠는 그 옛날 전쟁에서 방크 반의 목숨을 구해준 일이 있는 사람이다. 티보르츠는 방크 반에게 지금 온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으나 외국인들은 낭비와 사치로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무슨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방크 반은 사랑하는 아내 멜린다가 오토의 수중에서 농락 당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미칠 지경이어서 티보르츠의 탄원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티보르츠가 방크 반에게 다시 한번 간절히 탄원하자 방크 반은 그제서야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 주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오토는 게르트루드로부터 멜린다에 대한 공공연한 허락을 얻고 멜린다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하지만 멜린다의 마음이 변할리가 없다. 마침내 오토는 연회에서 멜린다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하고 강간한다. 겨우 정신을 차린 멜린다는 너무나 수치스럽고 분해서 남편 방크 반을 찾아 만나서 호소한다. 하지만 방크 반은 멜린다가 아직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정확한 얘기를 하지 못하자 오히려 멜린다를 크게 비난한다. 자기가 집에 없는 사이를 참지 못해서 오토와 놀아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방크 반은 그러면서 멜린다가 가문과 자기의 이름에 먹칠을 했으므로 멜린다가 낳은 아들마저 저주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어린 아들을 멜린다에게 넘겨주어 그나마 위안으로 삼도록 한다. 방크 반은 멜린다를 측은하게 여겨서 농부 티보르츠에게 부탁해서 아기와 엄마를 헝가리 동부에 있는 방크 반의 성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방크 반의 성으로 가려면 물결이 세찬 티짜(Tisza)강을 건너야 한다.


왕궁에 돌아온 방크 반은 게르트루드 여왕을 만난다. 방크 반은 여왕에게 나라를 노략질하여 빈곤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으며 개인적으로는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였으니 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요청한다. 방크 반으로서는 헝가리 귀족들의 반란으로 유혈소동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왕비에게 직접 호소하여 사태를 해결코자 했던 것이다. 방크 반에게 있어서는 나라와 백성들이 우선이며 가정의 일은 두번째였다. 여왕은 방크 반의 충고어린 조언과 탄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크 반이 직무를 태만히 하여 지방순찰을 하다가 아무런 통고 없이 왕도로 돌아온 것을 크게 힐난한다. 이에 방크 반이 분노하여서 왕비에게 하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소리치자 왕비는 단검을 들어 방크 반을 죽이려 한다. 방크 반은 왕비의 손을 비틀어서 가까스로 단검을 빼앗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단검이 왕비를 찔러 결국 왕비는 그 자리에 쓰러진다. 방크 반은 자기가 저지를 일을 크게 한탄하지만 이미 때는 늦는다.


멜린다가 방크 반에게 오토로부터 당한 치욕을 얘기하고 있다.


[3막] 방크 반의 부탁을 받은 티보르츠가 멜린다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티짜 강변에 이른다. 멜린다는 소용돌이 치며 흐르는 강물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마차에서 뛰어내려 아들을 안고 강물로 걸어 들어간다. 멜린다는 완선히 정신이상을 일으킨 상태이다. 그 모든 것이 게르트루드의 동생 오토의 만행 때문이다. 멜린다와 어린 아들이 노도와 같은 강물에 휩싸여서 흘러가지만 늙은 농부 티보르츠로서는 어떻게 손을 쓸수가 없는 지경이다. 가엾은 멜린다와 순진무구한 아들은 물 속으로 가라 앉는다. 엔드레 왕이 마침내 돌아온다. 엔드레 왕은 왕비 게르트루드의 시신을 앞에두고 왕비를 시해한 자는 반드시 찾아내어 처벌하겠다고 다짐한다. 귀족들은 아무도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한다. 이때 방크 반이 앞으로 나와서 자기가 왕비를 죽였으며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리고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으며 사치와 방종을 일삼아서 백성들을 대신해서 처단했다고 말한다. 엔드레는 왕비의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가 신임하던 방크 반이 자기를 배반했다고 믿어서 칼을 빼어 방크 반을 내려 치려 한다. 방크 반도 칼자루에 손을 대어 대비한다. 이때 늙은 농부 티보르츠가 급히 궁전의 홀로 들어오고 뒤를 이어 멜린다와 어린 아들의 시신을 멘 백성들이 등장한다. 방크 반은 빼어들려던 칼을 집어 넣고 멜린다와 어린 아들의 시신에 쓰러지듯 엎드린다. 귀족들와 궁정의 사람들이 영원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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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크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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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엔드레(앤드류) 2세(1205-35)의 치하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의 귀족이었다. 한 동안의 왕의 직무대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방크 반은 1213년 게르투르드 왕비를 살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살해 음모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방크 반은 1208-09년, 그리고 다시 1217-18년에 크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의 총독을 지냈다. 그리고 1213년에는 헝가리의 팔라틴이었다. 1221-22년에는 대법관과 같은 직책이었다. 방크 반에 대한 이런 저런 전설과 에피소드는 이미 13세기 후반부터 시중에 나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