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7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Idomeneo)

정준극 2016. 10. 22. 20:01

이도메네오(Idomeneo)

원제목은 '크레테의 왕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a) - Idomeneus, King of Crete

또는 '일리아와 이다만테'(Ilia e Idamante)

모차르트의 위대한 합창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무대. 메트로폴리탄 2016


간단히 '이도메네오'라고 불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크레테의 왕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a)는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로서 모차르트가 24세 때인 1780년 잘츠부르크에 있을 때에 바바리아 선제후인 칼 테오도르(Carl Theodor)가 궁정 카니발을 위해 요청해서 완성된 작품이다. '이도메네오'는 이듬해인 1781년 1월 29일에 뮌헨의 궁정극장(현재의 쿠빌리에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모차르트는 이 오페라를 완성한 후에 비엔나에 가서 활동하기 위해 그의 고용주인 콜로레도(Colloredo) 추기경에게 사표를 던지고 잘츠부르크를 떠났다. 그러므로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작곡한 오페라이다. '이도메네오'는 K366이며 그 다음에 완성한 오페라가 K384인 '후궁에서의 도주'(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로서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요셉 2세 황제의 요청으로 처음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도메네오'가 처음 공연된 뮌헨의 쿠빌리에 극장 오디토리엄


'이도메네오'는 크레테의 왕 이도메네우스(이탈리아어로 이도메네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던 이도메네우스는 10년만에 전쟁이 종식되자 병사들을 이끌고 크레테로 돌아오는 중에 바다에서 폭풍으로 조난을 당한다. 이도메네우스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넵튠)에게 폭풍에서 구원해 준다면 육지에 도착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감사의 뜻으로 제물로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이도메네오의 아들인 이다만테는 아버지가 예정기일이 지났는데오 크레테로 돌아오지 않자 바다에서 거친 풍랑을 만나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다만테는 해변에 나가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때 아버지 이도메네우스의 배가 천신만고로 도착한다. 이다만테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뿐이다.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테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사람이 자기의 아들인 것을 알고 크게 두려워한다. 산제물로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도메네우스는 무슨 대가를 치루더라도 아들 이다만테를 살리고 싶다. 이도메네우스는 충복 아르바체의 자문으로 이다만테를 멀리 다른 나라로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제물을 삼을 생각이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편,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다. 이다만테가 사랑하는 여인은 트로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 데려온 일리아 공주이다. 트로이의 프리암 왕의 딸이다.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던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전쟁이 끝나고 아르고스로 돌아가지만 왕비와 왕비의 간부가 모의하여 왕을 죽이고 왕관을 차지한다. 아가멤논의 딸인 엘레트라는 동생과 함께 힘을 합쳐서 어머니인 왕비와 간부를 죽인다. 엘레트라는 아르고스에 머물수가 없어서 크레타로 피신한다. 그 엘레트라가 이다만테 왕자를 사랑한다. 이다만테-일리아-엘레트라의 삼각관계이다.


이도메네오에 대한 백성들의 외침. 메트.


'이도메네오'의 대본은 모차르트와 콤비인 지암바티스타 바레스코(Giambattista Varesco: 1735-1805)가 썼다. 바레스코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잘츠부르크 궁정 사제이며 시인, 대본가였다. 모차르트를 위해서는 '이도메네오'의 대본을 썼고 또한 미완성으로 남긴 '카이로의 거위'(L'oca del Cairo: K422)의 대본을 썼다. 그리고 메타스타시오가 쓴 '목동 왕'(Il re pastore)의 대본을 모차르트를 위해 수정편집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바레스코의 대본에 대하여 별로 만족해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레스코가 극장에 대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바레스코의 대본은 프랑스의 극작가 겸 시인인 앙투안 당셰(Antoine D'anchet: 1671-1748)의 프랑스어 극본인 '크레테 왕 이도메네오'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프랑스의 앙드레 깡프라(André Campra: 1660-1744)는 1712년에 앙투안 당셰의 대본으로 '이도메네'(Idoménée)를 작곡한바 있다. 한편, 바레스코의 대본은 메타스타시오의 스타일을 상당히 참고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레이아웃은 물론이고 주인공들의 성격 설정과 이들의 생각이 변천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 메타스타시오의 전형적인 스타일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합창이다, 행진곡, 그리고 발레는 누가 무어라고해도 프랑스 스타일이다. 여기에 글룩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서 1막 마지막의 난파선 장면은 글룩의 '터리드의 이피제니'(Iphigénie en Tauride)의 장면과 그렇게 흡사할수가 없다. 또한 신에게 희생물을 드리고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은 글룩의 '얼리드의 이피제니'(Iphinie en Aulide) 또는 '알체스트'(Alceste)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비록 프랑스 스타일이 배어 있고 글룩의 장면들을 연상케 하지만 뮌헨에서의 초연에 등장한 성악가들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클래시컬 이탈리안 스타일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이며 레시타티브도 고전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대본이 이탈리아어이니 아무리 프랑스 스타일이 가미되어 있다고 해도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를 벗어나지는 못한 작품이다.


1781년 1월 29일 뮌헨의 선제후 궁전에 있는 궁정극장(쿠빌리에 극장)에서의 초연은 25세의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한 것이었다. 바바리아 선제후가 모차르트에게 직접 부탁한 작품이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콜로레도 추기경에게 작곡을 위해서 휴가를 가야하겠다고 말하자 추기경은 선제후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모차르트에게 휴가를 주었는데 고작 6주간이었다. 모차르트는 역마차에 몸을 싣고 사흘간 고생한 끝에 잘츠부르크에서 뮌헨에 도착했고 이어 작곡에 전념하였고 리허설까지 책임을 졌다. 선제후는 모차르트를 위해서 여러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만하임 오케스트라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제후의 주선으로 만하임 오케스트라가 초연의 연주를 맡게 했다. 또한 주인공들은 모차르트가 마음대로 선정하면 어느 곳에 있던지 초청해주겠다고 했다. 모차르트는 독일의 성악가들도 선정했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성악가들도 캐스팅했다. 그래서 소프라노 도로테아 벤들링(Dorothea Wendling: 일리아), 테너 안톤 라프(Anton Raaff: 이도메네오), 소프라노 카스트라토인 빈첸조 달 프라토(Vincenzo dal Prato: 이다만테),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벤들링(Elisabeth Wendling: 엘레트라), 테너 도메니코 데 판차끼(Domenico de'Panzacchi: 아브라체)등이 초연의 영광을 함께 할수 있었다. 여기에 극장감독은 과거에 모차르트와 함께 '사랑의 정원사'(La finta giardiniera)의 연출을 맡았던 요제프 제아우(Joseph Seeau)가 맡게 되었으니 금상첨화였다. 앞에서 소개한 대본을 쓴 바레스코로 말하자면 이탈리아 출신인데다가 잘츠부르크에서 궁정사제로 있는 사람이었으니 더구나 모차르트와 콤비였다. 그래서 바레스코가 대본을 쓸 때에 모차르트는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니 반영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주장할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발음도 생각하여서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코멘트를 하였다. 예를 들어서 rinvigorir(린비고리르)라는 단어는 i(이) 발음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이어서 다른 단어로 대체한 것 등이었다.


'이도메네오'는 초연 이후 뮌헨에서 3회나 더 공연되었다. 그후 모차르트는 아무래도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도메네오'를 글룩 스타일에 근사하게 수정코자 했다. 원래는 테너인 이도메네오를 베이스가 부르도록 하고 원래는 소프라노 카스트라토인 이다만테를 테너가 부르도록 고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일피일하다고 그렇게 수정하지는 않았다.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온 후인 1786년에 비엔나의 팔레 아우어슈페르크(Palais Auersperg)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선을 보였다. 모차르트는 이 연주회를 위해 한두곡을 더 작곡해서 붙였으며 어떤 부분은 삭제하기도 했다. 또한 뮌헨에서부터 생각했던 것으로 이다만테를 카스트라토에서 테너로 바꾸었다. 그후 '이도메네오'는 오랜 동면에 들어갔다. 새로운 오페라들, 특히 이탈리아의 벨칸토 오페라들이 대거 상륙하는 바람에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잠시 휴면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가 1931년에 '이도메네오' 초연 150주년을 기념하여서 유럽의 주요 극장들에서 반짝 공연이 있었다. 영국 초연은 1934년이었다. 글라스고우 그랜드 오페라 협회가 공연했는데 이 단체는 주로 아마추어 성악가들로 구성된 단체였다. 미국 초연은 그보다 훨씬 늦은 1947년 탱글우드의 버크셔음악제(Birkshire Music Festival)에서였다. 그후 '이도메네오'는 세계의 유명 오페라극장에서 간간히 공연되었는데 쓸데 없이 말도 많아서 2006년 베를린에서의 '이도메네오 논란'(2006 Idomeneo Controversy)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도메네오를 위로하는 일리아


'이도메네오' 150주년과 관련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이도메네오' 150주년은 1930-31년이었다. 1930년은 모차르트가 '이도메네오'를 완성한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고 1931년은 초연이 있은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리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준비하다 보니까 곤란한 일이 생겼다. 오페라 자체는 웅장하고 장엄한데 인간을 우상 신에게 제물로 드린다든지 하는 내용들이 시의에 맞이 않았다. 유럽의 양대 극장인 뮌헨의 슈타츠오퍼와 비엔나의 슈타츠오퍼는 내용의 일부를 현대 취향에 맞게 고쳐서 관중들의 기호에 부응키로 했다. 다만, 위대한 모차르트의 작품을 손보는 것이니만치 아무한테나 수정을 의뢰할수는 없었다.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에게 수정을 의뢰해야 했다. 모차르트 애호가들이 받아 들일수 있는 작곡가에게 의뢰해야 했다. 뮌헨은 독일계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에르마노 볼프 페라리에게 의뢰하여 1931년에 무대에 올렸다. 비엔나는 같은 해에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의뢰하여 새로우면서도 오리지널의 이미지를 절대로 손상하지 않는 수정버전을 만들었다. 역시 1931년을 지나면 곤란하므로 그 해에 완성하여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어 대본을 로타르 발러슈타인(Lothar Wallerstein)에게 의뢰했다. 대체로 이탈리아어 대본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이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새로 넣은 음악에 부합하는 대본을 새로 만들어 넣기도 했다.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음악에서 거의 3분의 1을 자기의 음악으로 교체했다. 심지어는 트로이의 함락에 대한 내용도 추가하였다. 이 장면에는 그가 1928년에 작곡한 '이집트의 헬렌'(Die ägyptische Helena)에 사용한 모티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슈트라우스는 그 다음의 부분들도 상당히 편곡했다. 예를 들면 일리아의 오프닝 아리아인 Padre, germani, addio!는 긴 레시타티브만을 손댔으며 다른 부분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이다만테가 등장할 때에 그는 Non ho colpa 대신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별도의 아리아인 Non temer amato bene(K 490)을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소프라노 카스트라토가 아닌 테너가 부르는 것으로 했다. 슈트라우스는 줄거리에서도 몇가지를 변경했다. 예를 들면 엘레트라 공주를 여사제인 이스메네로 바꾼 것이다. 아무튼 슈트라우스는 '이도메네오'를 상당 부분 고치면서 고전적인 스타일과 자기 특유의 스타일을 절묘하게 융합하였다. 슈트라우스의 버전은 1984년 뉴욕에서 열린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발'(Mostly Mozart Ferstival)에서 소개되었다. 타이틀 롤은 제리 해들리(Jerry Hadley)였고 이다만테는 돌로레스 치글러(Dolores Ziegler), 이스메네는 알레산드라 마르크(Alessandra Marc)였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앞 부분에서 잠시 언급한 '2006 이도메네오 논란'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소개코자 한다. 베를린의 도이체 오퍼는 2006년 11월에 '이도메네오'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9월 하순에 성명서를 내고 '이도메네오'의 11월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오페라 장면 중에서 이슬람 예언자인 무하마드의 머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무슬림들의 반발이 예상되므로 안전을 위해서 공연을 취소한다는 얘기였다. 무슨 장면이냐하면 손에 커다란 자루를 든 이도메네오 왕이 비틀거리면서 무대에 나타나는데 자루에는 해신 포세이돈(넵튠), 예수 그리스도, 부처, 무하마드의 잘라진 머리들이 들어 있으며 이도메네오 왕은 그 머리들을 무대에 놓여 있는 의자에 하나하나씩 전시하듯 놓아두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대사는 없다. 단지 액션만이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은 한스 노이엔펠스라는 연출자가 그렇게 연출한 것으로 트로이 전쟁의 후속조치로서 이런 장면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원래의 대본에는 절대권력의 포세이돈만이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연출에서는 인간들이 신이나 우상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그런 장면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이므로 상관없다'라고 주장하는 편이 있는가 하면 '무슬림을 비하한 명백한 종교박해'라며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졌다. 여기에 기독교에서조차 예수의 머리를 가지고 다니고 전시하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렇듯 논란이 비화되자 도이체 오퍼측은 긴급성명을 내고 '이도메네오'의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베를린 경찰은 혹시 극렬 무슬림이나 기독교 단체들이 도이체 오퍼에 대하여 협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것 같아서 예의 주시하였으나 별다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으며 다만 어떤 익명의 사람이 극장에 전화를 걸어 위협했을 뿐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정작 베를린의 도이체 오퍼는 잠잠한 편인데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마치 호떡 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석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오늘날과 같은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서, 특히 무슬림에 의한 테러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슬람 예언자인 무하마드의 잘라진 머리를 무대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자기검열(셀프 센서쉽)을 통해서 자숙해야 하는 사안이므로 공연은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내세우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논란이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독일 총리 안젤라 메르켈이 직접 나섰다. 메르켈은 '(베를린 도이체 오퍼의) 공연 취소는 미스테이크였다. 자기검열은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후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만일 무슬림이 이 문제를 트집잡아서 테러를 자행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경찰력을 지휘하는 내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무장관은 정부가 후원하는 어떤 무슬림 관련 회의에 참석해서 기자들에게 '그러면 우리 모두 구경가 봅시다.'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말과 마찬가지로 만일 폭력사태가 일어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아무튼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회의에 참석했던 독일의 무슬림 대표들은 '공연은 취소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마침내 2006년 12월 18일에 새로운 연출에 의한 '이도메네오'가 도이체 오퍼의 무대에 올려졌다.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그 장면은 마리들을 자루에 넣어가지고 나와서 의자마다 올려 놓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교수대에 서 있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극장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지만 극장안에서나 밖에서나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극장 안에는 관객들 보다는 내외신 취재기자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극장 밖의 시위자들 중에는 종교적 관용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함부로 사용한데 대하여 항의하는 일부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공연에는 독일 정부의 관계관들과 독일내 무슬립 단체들 사람들이 다수 참석했다. 그러나 무슬림중앙위원회 사무총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만 마체크 사무총장은 알 자치라와의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관람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도이체 오퍼 극장장은 '관중들의 반응은 문명인임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일단락 되었지만 그후로 한스 노이엔펠스의 연출에 의한 공연은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베를린 도이체 오퍼 무대. 부다, 예수, 무하마드의 등장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는 오페라의 장르로 볼때에 오페라 세리아이며 서정적인 비극이지만 내용은 해피엔딩이다. '이도메네오'는 합창이 뛰어나다. 그래서 위대한 합창 오페라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 몇 몇 아리아들도 뛰어나지만 합창은 모차르트 특유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반영되어 있는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이지만 모차르트 스타일과 특색이 누벼져 있는 작품이다.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루하게 느껴질 대목은 대폭 단축해서 긴장감을 더하게 만들었다. 대신에 다른 오페라에서는 보기가 힘든 놀랍도록 아름다운 발레음악을 추가하였다. 뮌헨의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세트가 대단히 훌륭했다. 궁정 참사관이며 극장 감독인 로렌초 콸리오()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뮌헨의 어떤 신문은 모차르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명은 하지 않았지만 '작곡자는 물론 대본가, 번역가 모두 잘츠부르크 출신들이다. 그보다도 세트 디자인은 더할수 놀랄만한 것이었다. 특히 항구의 모습과 포세이돈 신전은 웅장하기가 그지 없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아무튼 모두들 '이도메네오'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청년 모차르트의 이름은 바바리아 궁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되었다. 어쨋거나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가 만든 첫번째 성숙한 오페라였다. 모차르트는 원래 6주 동안만 머무를 예정이었지만 석달이나 머물렀고 뮌헨의 카니발 시즌을 흠뻑 즐겼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로 급히 돌아가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추기경은 모차르트가 자기의 지시를 듣지 않자 잔뜩 화가 나 있었고 모차르트가 돌아오자 크게 문책하였다. 그때문에 결국 모차르트는 '에라 내가 여기 아니면 밥 먹을 데가 없는줄 아나?'라면서 잘츠부르크를 떠날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번민하는 이다만테. 조이스 디도나토


이제 오리지널 모차르트 버전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코자 한다.

- 일리아(Ilia: S). 트로이의 프리암 왕의 딸

- 이도메네오(Idomeneo: T). 크레테의 왕. Idomeneus

- 이다만테(Idamante: Sop Castrato. 나중에는 T). 이도메네오의 아들. 크레테의 왕자. Idamantes

- 엘레트라(Elettra: S). 아르고스의 공주. Electra

- 아르바체(Arbace: T). 이도메네오의 충복. Arbaces

- 넵튠 신전의 고승(T)

- 넵튠의 신탁 음성(B)

- 두명의 크레테 여인들(S & MS)

- 두명의 트로이 사람들(T & B)


자결하려는 이도메네오


1막이 시작되기 전의 배경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트로이의 프리암 왕의 아들인 파리스 왕자가 그리스에 가서 그리스 왕 메넬라우스의 아름다운 왕비 헬렌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헬렌을 납치하다시피해서 트로이로 데려간다. 그리스의 메넬라우스 왕은 헬렌을 되찾고 헬렌은 납치해 간 트로이를 징계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트로이를 공격하니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다. 메넬라우스의 동생인 아가멤논이 그리스의 다른 여러 도시국가들의 왕들을 설득하여 연합군을 형성하여 트로이를 포위하고 공성을 시작한다. 아가멤논의 연합군을 이루는 한 사람은 그레테의 왕 이도메네오이다. 이도메네오 왕의 군사들은 트로이를 함락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로이 전쟁은 10년을 끌다가 겨우 종지부를 찍는다. 이도메네오 왕은 남은 병사들을 데리고 조국 크레테로 돌아간다. 병사들 중 일부는 트로이의 포로들을 데리고 미리 크레테로 돌아간다. 트로이의 포로 중에는 프리암 왕의 딸인 아름다운 일리아 공주도 포함되어 있다. 일리아가 탄 배는 크레테로 가는 도중에 거친 풍랑을 만나 침몰한다. 마침 크레테의 왕자인 이다만테가 일리아를 거센 파도 속에서 구출한다. 이다만테 왕자는 일리아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던 아가멤논은 전쟁이 끝나고 아르고스로 돌아오지만 왕비 클리템네스트라와 왕비의 정부(情夫)인 이기스투스에 의해 살해 당한다. 아가멤논 왕의 아들인 오레스테스는 누이 엘레트라와 함께 부정하고 사악한 클리템네스트라와 이기스투스를 죽여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한다. 엘레트라는 아르고스에 있을수가 없어서 크레테로 몸을 피한다.


이도메네오에게 반항하는 일리아. 사이미르 피르구


[1막] 기원전 1,200년 경 크레테 왕국이다. 궁전의 한쪽에서 일리아가 트로이 전쟁 중에 그리스 군에게 살해 당한 아버지 프리암 왕과 오빠들의 죽음을 잊지 못하여 애통해 하고 있다. 일리아의 아리아가 Padre, germani, addio!(아버지, 오빠들, 안녕히)이다. 일리아는 트로이의 공격에 앞장선 이도메네오를 증오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도메네오의 아들인 이다만테를 사랑하게 된다. 이다만테는 부왕인 이도메네오가 아직 크레테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왕국을 통치하고 있다. 이다만테는 일리아에게 사랑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일리아는 트로이의 공주로서, 죽은 프리암 왕의 딸로서 적국이었던 크레테의 왕자 이다만테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일리아의 아리아가 Non ho colpa(나는 죄가 없어요)이다. 이다만테 왕자는 일리아에 대한 선의의 표시로 트로이 포로들을 모두 석방한다. 자유를 얻은 트로이 포로들은 크레타 백성들과 함께 새로 찾은 평화를 기뻐한다. Godiam la pace(평화를 기뻐하자)이다. 그러한 때에 이도메네오 왕의 자문관이며 충복인 아브라체가 뛰어 들어와서 '왕이 탄 배가 폭풍으로 파선되었고 왕은 익사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한편, 아르고스의 공주로서 크레테에 피난와서 지내고 있는 엘레트라는 이다만테 왕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지만 이다만테가 트로이 포로들을 모두 석방한데 대하여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엘레트라는 이다만테가 자기를 멀리하고 트로이의 일리아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이다만테와 맺어지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어 내심 불안해 하고 있다. 그러한 엘레트라인데 이도메네오 왕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이제는 이다만테와 결혼하는 것이 더구나 어렵게 될 것같아서 걱정이다. 엘레트라의 아리아가 Tutte nel cor vi sento(나의 마음 속에 지옥의 복수의 여신들을 느끼네)이다.


산호세 오페라 무대. 이도메네오와 병사들


장면은 바뀌어 크레테의 해변이다. 난파한 배의 선원들이 구사일생으로 해변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신에게 자비를 보여달라고 간청한다. 선원들의 합창이 Pieta, Numi pieta(신들이시며 자비를)이다. 폭퐁이 수그러지자 해변으로 어떤 사람이 홀로 기어 오르고 있다. 이도메네오이다. 이도메네오는 무덤과 같은 바다의 풍랑 속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에 해신 네투도(Nettuno: 넵튠)에게 간청하기를 만일 살아서 육지에 발을 디디게 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을 신에 대한 감사의 제물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해변에 올라온 이도메네오는 자기가 제물로 바친 사람의 망령을 보는 것 같아서 죄책감으로 크게 한탄한다. 이도메네오의 아리아가 Vedrommi, intorno(탄식하는 망령을 보게 될 것이다)이다. 그러는 중에 이도메네오는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본다. 가까이 보니 다름아니라 자기의 아들인 이다만테이다. 처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의 10년이나 서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도메네오는 살아서 육지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자기의 아들 이다만테인 것을 비로소 알고는 크게 놀란다. 이도메네오는 해신과의 약속대로 이다만테를 산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두려움에 어찌할 줄 모르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서 그 자리에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급히 아무 곳이나 도망치듯 떠난다. 이다만테도 해변에서 만난 사람이 자기의 아버지인 것을 알고 기뻐하지만 갑자기 이도메네오가 도망치듯 떠나자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 크게 혼란스러워한다. 이다만테의 아리아가 Il padre adorato(사랑하는 아버지)이다. 무대의 한편에서는 생존한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이도메네오 왕의 생환을 기뻐한다. 합창이 Nettuno s'onori(넵튠에게 영광을)이다.


해변에 도착한 이도메네오를 병사들과 백성들이 바라보고 있다. 테아터 안 데어 빈


[2막] 이도메네오는 충복인 아르바체를 만나서 어떻게 하면 아들 이다만테를 제물로 바치지 않을수 있겠느냐고 자문을 구한다. 아르바체는 만일 이다만테를 멀리 귀양보내고 대신 다른 사람을 제물로 선정하여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바체의 아리아가 Se il tuo duol(당신의 고통이)이다. 이도메네오는 엘레트라를 아르고스로 되돌려 보내기로 하고 이다만테로 하여금 엘레트라를 에스코트하도록 해서 결국 이다만테를 다른 나라로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이도메네오는 포로로 잡혀 온 일리아를 만나서 따듯한 말로 위로한다. 일리아는 이제 아무것도 없이 다 잃은 처지에 크레테를 새로운 조국으로 알고 살겠다고 말한다. 일리아의 아리아가 Se il padre perdei(비록 아버지를 잃었지만)이다. 이도메네오는 그렇게 말하는 일리아가 이다만테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도메네오는 자기와 아들 이다만테와 이다만테를 사랑하는 일리아가 모두 신들 때문에 희생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도메네오의 아리아가 Fuor del mar(바다로부터 피신했지만)이다. 그런 중에도 엘레트라만이 이다만테가 자기를 에스코트해서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뻐할 뿐이다. 엘레트라는 그러한 기회를 이용해서 한때 라이발 때문에 멀어졌던 이다만테의 사랑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엘레트라의 아리아가 Idol mio(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다만테와 엘레트라가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할 때에 갑자기 바다로부터 엄청나게 큰 무서운 괴물이 솟구쳐 나온다. 해신 넵튠이 화가 났다는 징조이다. 사람들이 괴물을 보도 Qual nuovo terrore!(이 모슨 새로운 테러인가!)이다. 크레테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이도메네오는 해신의 노여움으로 괴물이 나타난 것이 자기가 해신에게 했던 약속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대신 신들이 불만을 갖도록 한 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도메네오의 아리아가 Corriamo, fuggiamo(어서 뛰어 도망가자)이다.


바다의 괴물 장면. 뮌헨 슈타츠오퍼


[3막] 일리아는 순풍이 자기의 사랑의 메시지를 이다만테에게 전해 주기를 바란다. 일리아의 아리아가 Zeffiretti luginghieri(살랑거리는 순풍)이다. 이다만테는 해변에 도착해서 아르고스로 떠나기 전에 괴물과 과감하게 싸우겠다고 말한다. 이다만테의 아리아가 No, la morte io non pavento(아니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소)이다. 일리아는 크레테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우겠다는 이디만테를 보고 자기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도메네오는 이다만테와 일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이다만테를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괴로운 심정을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때까지도 이도메네오는 해신 넵튠과의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이도메네오는 이다만테에게 어서 크레테를 떠나라고 다시한번 명령한다. 크레테를 떠나야만 하는 이다만테와 이다만테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이도메네오는 서로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Andro ramingo, e solo(나는 떠납니다. 홀로 방황할 것입니다)이다. 아르바체가 나타나서 크레테의 백성들은 이도메네오 왕이 어서 백성들을 괴물로부터 구해주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전한다. 아르바체는 크레테가 슬픔에 넘쳐 있다고 말한다. Sventurata Sidon(불쌍하고 불행한 시도니아)이다.


이다만테와 일리아


신전의 고승(대제사장)이 괴물 때문에 건물들이 부서지고 여러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이도메네오에게 신들의 노여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누구를 희생제물로 바칠 것인지 어서 그 이름을 발표하라고 요청한다. 고승의 아리아가 Volgi intorno lo sguardo(당신의 주변을 둘러보시오)이다. 그제서야 이도메네오는 자기의 아들 이다만테가 바로 제물이라고 밝힌다. 그 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비탄으로 충격을 받는다. 백성들의 합창이 O voto tremendo(오 얼마나 무서운 약속인가)이다. 그러나 신들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 안되므로 고승과 이도메네오는 제사 지낼 준비를 시작한다. Accogli, o re del mar(우리의 제물을 받으소서 바다의 제왕이시여)이다. 그때 이다만테가 바다의 괴물을 처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다만테는 어째서 아버지 이도메네오가 자기에게 차갑게 대하며 크레테를 떠나라고 했는지를 그제서야 깨닫는다.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해서인 것을 알게 된다. 이도메네오는 크레테에 평화가 온 것을 감사해야 하므로 제사를 계속 진행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산제사 지내야 한다. 일리아가 이다만테 대신에 제물이 되겠다고 자진해서 나선다. 그러나 이도메네오는 신과의 약속은 성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고 또한 해신이 다시 재앙을 내리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약속대로 이다만테를 제물로 드리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때 하늘에서 신들의 제왕인 주피터(Jove)의 음성이 들린다. 만일 이도메네오가 아들 이다만테와 일리아에게 왕관을 넘겨 준다면 그것으로 신들은 만족한다는 음성이다. 모두들 기뻐하지만 엘레트라만이 기뻐하지 않는다. 엘레트라는 그저 죽고만 싶은 심정에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엘레트라의 아리아가 D'Oreste, d'Ajace ho in seno i tormenti(내 마음 속에 오레스테스와 아작스의 고통을 느끼도다)이다. 이도메네오가 왕관을 넘겨주겠다고 말하고 아들 이다만테와 트로이의 공주 일리아의 맺어짐을 축복한다. 이도메네오의 아리아가 Torna la pace(평화가 다시 왔도다)이다. 백성들은 사랑의 신과 결혼을 신을 부르며 두 왕가의 결합으로 평화가 오게 된 것을 기뻐한다. 백성들의 합창이 Scenda Amor, scenda Imeneo(내리 사랑, 결혼의 신의 축복)이다.


이다만테가 크레테를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다.









ä  ö  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