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가곡 왕 슈베르트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 1

정준극 2017. 1. 27. 08:15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 1

짧은 생애...1천 5백여 곡에 이르는 작품...도이치 분류에 의한 작품들


슈베르트와 친구들


슈베르트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남긴 다작의 작곡가였다. 짦은 생애이었지만 1천 5백 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모차르트는 35년의 생애를 통해서 650여곡을 남겼다. 베토벤은 57년의 생애 중에 350여곡을 남겼다. 이들과 비교하면 슈베르트는 31년 생애를 통해서 1천 5백여 작품을 남겼다. 슈베르트가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을 17세 때라고 본다면 세상 떠날 때까지 향후 14년 동안 1천 5백여 곡을 작곡한 것이며 이는 한 해에 1백 곡 이상씩을 작곡했다는 셈이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König der Lieder 또는 Liederfürstin)이라고 불릴만큼 많은 가곡을 작곡했다. 모두 6백곡이 넘는다. 가곡 중에서 '겨울 나그네'와 같은 연가곡은 슈베르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그의 노래들을 가곡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솔로 음성과 피아노를 위한 노래'(Songs for solo voice and piano)라고 불렀다. 슈베르트는 종교음악도 많이 작곡했지만 세속적이라고 하는 일반 음악들도 다수 작곡했다. 종교음악은 대체로 솔로 작품이었지만 세속적인 음악은 솔로 뿐만이 아니라 듀엣이나 트리오도 많았다. 이들을 파트 송(part song)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대부분은 합창곡이나 칸타타 형식의 성악곡들이었다. 슈베르트는 오케스트라 음악에 있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케스트라 서곡을 8곡이나 작곡했고 교향곡은 완성된 것만 7편이나 된다. 교향곡 중에서 나머지 6편은 일부분만 작곡해 놓고 미루어 둔 미완성이었다. 그러나 협주곡은 하나도 작곡하지 않았다. 다만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43곡의 콘체르탄테는 남아 있다. 피아노 독주곡은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중에는 14곡의 피아노 소나타도 포함된다. 슈베르트는 무곡들도 다수 작곡했다. 주로 독일 무곡과 랜들러였다. 피아노 작품으로서는 솔로 작품 뿐만 아니라 듀엣 작품들도 많았다. 그리고 50편이 넘는 실내악을 작곡했다. 물론 그 중에는 완성하지 못하고 부분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종교음악에 있어서는 7곡의 미사곡과 1곡의 오라토리오, 그리고 1곡의 진혼곡(레퀴엠)을 작곡했다. 무대음악은 기록상으로는 21곡을 작곡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무대작품은 11편이다.


슈베르트의 음악들은 대개 듣기에 즐거운 것이라는 얘기이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음악이라기보다는 그저 한번 가볍게 듣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학자들은 슈베르트의 음악이 바흐나 베토벤이 보여주었던 드라마틱한 면모 또는 지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견해들도 있다. 예를 들면 20세기 작곡가인 에른스트 크레네크(Ernst Krenek)의 견해이다. 그에 의하면 슈베르트는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낸 선율의 대장장이(tune-smith)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완벽하며 감정적으로 풍성한 음악들을 만들어 낸 뛰어난 작곡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단순히 매력적인 아이디어들을 기존의 틀에 부어 넣어서 음악을 만든 작곡가가 아니라 자기의 작품들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정신에 대한 갈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 '생각하는 아티스트'라고 말했다. 슈베르트라고 하면 연가곡들을 생각하게 된다. 가곡을 격조 높은 예술 세계로 승화시킨 작곡가이다. 슈베르트는 가곡을 작곡함에 있어서 시인들의 시를 인용하였다. 슈베르트는 시와 음악의 이상적인 조화를 추구하였다. 예를 들어 괴테의 시에 의한 가곡들을 보면 잘 알수 있다. 괴테의 시에 의한 가곡들로서는 특별히 '물레 젓는 그레첸'(Gretchen am Spinnrade: D 118)과 '마왕'(Erlkonig: D 328)이 있다. 드라마틱한 내용에 있어서나 하모니의 절묘한 사용에 있어서, 그리고 피아노를 반주 이상의 존재로 격상시킨 점들이 이들 가곡에 수놓아져 있다. 슈베르트는 여러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삼았는데 톱 스리라고 하면 괴테, 요한 마이르호퍼(Johann Mayrhofer), 프리드리히 쉴러일 것이다. 이밖에도 하이네,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요제프 프라이헤르 폰 아이헨도르프, 그리고 빌헬름 뮐러가 있다. 빌헬름 뮐러의 경우에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나그네'가 모두 그의 시작이다. 비너 테아터차이퉁이라는 신문은 연가곡 '겨울나그네'에 대하여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부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노래들'이라며 이 연가곡의 의미를 강조한바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연가곡인 '백조의 노래'에서는 루드비히 렐슈타브(Ludwig Rellstab), 하인리히 하이네, 요한 가브리엘 자이들(Johann Gabriel Seidl)의 시를 가사로 삼았다. 이렇듯 슈베르트는 여러 시인들이 시들을 노래 가사로 사용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대체로 인생의 비애와 절망스런 삶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카탈로그] 슈베르트의 작품 중에서 생전에 작품 번호를 붙인 것은 고작 100 여곡에 불과하다. 주로 노래와 실내악과 피아노 소품들이었다. 작품번호를 붙인 것은 그 악보가 출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슈베르트의 음악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출판되었다. 그래서 작품번호도 1860년대에 173번까지 나갔다. 주로 디아벨리 출판사가 출판했으며 피터스 에디션에서도 출판되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긴 작품들은 슈베르트의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이 책장이나 박스에 담아서 보관하는 바람에 거의 출판되지 않고 감추어져 있었다.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따라서 작품번호도 부여되지 못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이나 미사곡과 같은 긴 작품들이 알려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슈베르트를 그저 '노래의 왕자'라고 부르며 칭송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설합에 넣어 두었던 악보들이 발견되어 놀라운 감동을 전해 주는 경우도 생겼다. 대표적인 경우가 C 장조 교향곡(D 944)이다. 이 위대한 작품은 슈만이 처음 발견한 것이다. 1838년에 라이프치히에서 노이에 차이트슈리프트(Neue Zeitschrift)라는 음악신문을 만들던 슈만은 비엔나에 가면 혹시 슈베르트의 유고를 찾을수 있지 않을까 해서 비엔나를 찾아왔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만의 일이었다. 슈만은 슈베르트의 형인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먼지에 쌓여 있는 C 장조 교향곡의 악보를 발견했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집이었다. 슈만은 이 악보를 라이프치히로 가져가서 멘델스존에게 보내어 초연을 지휘하게 했고 그래서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슈만은 이 교향곡을 찾아 낸 것이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어서 이 교향곡에 Great 라는 별명을 붙였다. 오늘날 교향곡 9번가 바로 이 작품이다.


비엔나의 4구 뷔덴의 케텐브뤼켄가쎄 6번지의 집 .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집이다. 이집에서 슈만이 슈베르트의 C 장조 교향곡을 찾아냈다. 슈베르트의 형인 페르디난트가 살던 집이다.


그러나 슈만의 경우는 그저 숨어 있던 하나의 작품을 발견한 일이었고 그보다도 마치 보물섬에서 보물을 발견하듯 상당히 많은 작품들을 새로 발견한 경우는 따로 있다. 1867년 가을에 영국의 유명한 음악학자인 조지 그로우브 경(Sir George Grove: 1820-1900)과 사보이 오페라의 작곡가인 아서 설리반 경(Sir Arthur Sullivan: 1842-1900)이 비엔나에 가서 슈베르트의 미발견 작품들을 상당수 찾아내는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조지 그로우브 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사전인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를 펴낸 사람이다. 두 사람은 비엔나에서 슈베르트와 관련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련된 장소들을 탐방하여서 결국 잊혀져 있던 교향곡 7편, 로자문데 극음악, 몇 편의 미사곡과 오페라, 여러 편의 실내악곡, 기타 수많은 노래와 피아노 소품들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인하여 슈베르트의 작품들이 그야말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이 슈베르트의 음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슈베르트의 교향곡 10번으로 명명된 Great C major는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어서 훗날 안톤 브루크너와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이 나오도록 앞 길을 포장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베르트의 잊혀져 있던 작품들을 찾아내어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들. 왼쪽으로부터 로베르트 슈만, 조지 그로우브, 아서 설리반. 조지 그로우브와 아서 설리반이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유별난 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보 출판사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Breitkopf & Härtel)이다. 일찍이 1719년에 베른하르트 크리스토프 브라이트코프(Bernhard Christoph Breitkopf)가 설립한 출판사이다.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은 1884년부터 1897년까지 13년에 걸쳐서 여러 음악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슈베르트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요한네스 브람스도 편집위원으로서 슈베르트의 8개 교향곡을 처음으로 한데 묶어 정리하여 출판되도록 기여했다. 그후 20세기에는 독일 카셀에 본부를 둔 배렌라이터(Bärenreiter) 출판사가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다시 정리해서 Neue Schubert-Ausgabe라는 책자를 출판했다. 한편, 슈베르트 애호가들과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는 슈베르트의 작품에 넘버링이 완전하게 되어 있지 않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해서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잘 아는대로 슈베르트의 작품 중에서 넘버링, 즉 작품번호가 붙은 것들을 일반적으로 슈베르트가 살아 있을 때 붙인 것이고 나중에 발견된 작품들은 아무런 넘버링이 되어 있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작품을 연대별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음악학자인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 1883-1967)가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연대별로 완전하게 정리하였다. 그렇게 정리된 자료집은 1951년에 영국에서 Schubert Thematic Catalogue(슈베르트 주제별 목록)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때로부터 슈베르트의 모든 작품에는 오토 에리히 도이치의 이름을 따서 D 라는 기호가 붙게 되었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D 759이며, 연가곡인 '겨울 나그네'는 D 911이다. 혹시 도이치라고 하니까 '아하 슈베르트가 독일어(도이치)로 노래를 작곡했기 때문에 D 라는 약자를 붙인 것이 아니지 모르겠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지만 D는 Otto Erich Deutsch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혼돈이 없기를 바란다. '슈베르트 주제별 목록'은 독일어로 1978년에 가서야 출판되었다. Franz Schubert: Thematisches Verzeichnis seiner Werke in chronologischer Folge(프란츠 슈베르트: 연대별 작품 주제 목록)라는 긴 제목의 카탈로그였다. 슈베르트의 작품을 이해하는 일에 도이치의 기여는 참으로 중요하고 대단하다고 말할수 있다.


그런데 작품번호를 붙임에 있어서 조금 혼돈이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슈베르트의 최후의 교향곡에 대한 넘버링이 문제가 되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완전 교향곡은 슈만이 발견한 '그레이트 C 장조 D 944'인데 이 작품을 출판사에 따라서 교향곡 7번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가하면 교향곡 8번, 또는 교향곡 9번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슈베르트의 유명한 '미완성 교향곡'도 교향곡 7번이라고 박아서 발간한 출판사가 있는가하면 교향곡 9번이라는 곳도 있었다. 물론 오늘날 일반적으로는 교향곡 8번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무튼 이런 혼란이 있기 때문에 근자에는 그로우브 음악사전을 참고하여서 아예 다음과 같이 정해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고집스런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넘버링을 붙이고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넘버링은,


No 7 E major D 729

No 8 B minor D 759 Unvoillendete(Unfinished: 미완성교향곡)

No 9 C major D 944 Great C major

No 10 D major D 936A


교향곡은 그렇다고 치고 넘버링에 있어서 더 큰 혼란은 피아노 소나타에서 나타났다. 피아노 소나타 15번부터 23번까지의 넘버링은 정확치가 않아서 아직도 정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프란츠 리스트는 슈베르트의 사후에 그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슈베르트의 일부 작품들, 특히 가곡들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였다. 리스트는 슈베르트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시적인 음악가'라며 찬사를 보냈다. 안토닌 드보르작은 슈베르트의 교향곡에 대하여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높이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안톤 브루크너와 엑토르 베를리오즈도 슈베르트의 교향곡, 특히 Great C major 를 높이 평가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안톤 베베른, 벤자민 브리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미국의 아방 갸르드 작곡가인 조지 크럼(George Crumb: 1929-), 독일의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한스 첸더(Hans Zender: 1936-) 등이 슈베르트의 작품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브리튼은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수시로 슈베르트 가곡의 반주를 맡아 했으며 피아노 솔로와 듀엣 작품을 직접 연주하였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발행한 슈베르트 기념 우표. 가운데는 탄생 100주년(1928) 기념 주화, 오른쪽은 탄생 150주년 기념(1978) 주화


슈베르트를 기념하는 영화, 연극, 오페레타, 팝송 등도 여러가지가 제작되었다. 1977년에 독일의 전자음악 밴드인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는 '트랜스 유럽 엑스프레스'라는 앨범에서 '프란츠 슈베르트'라는 제목의 노래를 취입하였다. 1897년은 슈베르트 탄생 1백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였다. 세계 각지에서 이날을 기념하는 축제들이 열렸다. 비엔나에서는 무려 10일에 걸친 기념 연주회가 개최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특별히 참석하여서 슈베르트를 '예술가곡의 창조자, 오스트리아가 낳은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라며 찬양하는 연설을 했다. 이 해에 칼스루에에서는 슈베르트의 오페라 '휘에라브라스'의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1928년에는 슈베르트 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여서 유럽과 미국에서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다. 음반회사인 콜럼비아는 상금 1만 달러를 내건 작곡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스웨덴의 쿠르트 아텐베리(Kurt Attenberg: 1887-1974)가 그의 교향곡 6번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슈베르트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는 여러 편이 제작되었다. 1931년에는 '슈베르트의 봄의 꿈'(Schubert's Dream of Spring), 1933년에는 '부드러운 나의 노래들'(Gently My Songs Entreat), 1940년에는 '세레나데', 1947년에는 '오직 사랑'(It's only Love), 1953년에는 '프란츠 슈베르트', 1958년에는 '세 아가씨의 집'(Das Dreimäderlhaus), 그리고 1986년에는 '야상곡'(Notturno)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용했으며 슈베르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페레타로서 '세 아가씨의 집'이 있다. 헝가리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한 하인리히 베르테가 편곡했다.


'세 아가씨의 집'에서 슈베르트 역을 맡은 오스트리아의 칼하인츠 뵘. 유명한 지휘자 칼 뵘의 아들이며 씨씨 영화 시리즈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로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슈베르트를 주제로 삼은 그림으로서는 클림트의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Schubet am Klavier)가 단연 유명하다. 이 작품은 클림트가 1899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비엔나의 이름난 기업가로서 부유한 음악애호가인 그리스 출신의 니콜라우스 둠바(Nikolaus Dumba)는 자기 저택의 방들을 그림으로 꾸밀 생각으로 1898년에 당시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세 사람에게 자기 저택의 세 방을 그림으로 꾸며 줄 것을 요청했다. 세 사람의 화가는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1840-1884), 프란츠 마츄(Franz Matsch: 1861-1942), 그리고 구스타브 클림트(Gistav Klimt: 1862-1918)였다. 세 화가들이 각각 방 하나씩을 맡아서 그림을 그리는 요청을 받았다. 클림트는 음악의 방을 맡기로 하여 두 폭의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음악을 비유한 그림이지만 다른 하나는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였다. 클림트로서는 저택의 방을 장식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처음 도전하는 어색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둠바가 슈베르트를 그려 달라고 했기 때문인지 승낙하였다. 슈베르트는 클림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다. 슈베르트 그림은 고증을 무시한 새로운 기법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에서 볼수 있듯이 여인들의 의상은 슈베르트 당시의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후에 나온 의상이다. 슈베르트의 왼편에 있는 여인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클림트의 내연의 처인 마리 침머만(Marie Zimmermann)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마리 침머만은 클림트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런 여인이 슈베르트 시대에 그의 피아노 옆에 서 있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상상이 아닐수 없다.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는 2차 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원래 오스트리아 정부는 클림트의 이 그림 등등을 전쟁 중에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남부의 슐로스 임멘도르프(Schloss Immendorf)에 간직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막바지에 나치 군인들이 퇴각하면서 예술작품들을 연합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불을 질러서 잿더미로 만들었다.


클림트가 그린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음악애호가이며 부유한 기업인인 니콜라우스 둠바의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1898년.


[슈베르트의 작품 총분류]


시리즈 I: 성곡(Sacred works: Kirchenmusik) - 교회음악


1.1 미사곡(Masses), 진혼곡(requiems), 성모애상곡(Stabat mater)

1.2 미사곡 중의 일부곡(Mass movements)

1.3 성곡 소품(Smaller sacred works)


시리즈 II: 무대작품(Stage works: Bühnenwerke)


오페라, 징슈필, 오라토리오를 포함한다. 하나의 무대작품에는 여러 곡이 들어 있지만 작품번호는 하나만 부여한다. 예를 들어 징슈필 '휘에라브라스'에는 서곡을 포함하여 20여곡으로 구성되지만 1개의 작품으로 간주한다.


시리즈 III: 파트 노래(Partsongs), 합창곡(choruses), 칸타타(cantatas) - 다성 노래(Mehrstimmige Gesänge)


3.1 오케스트라 반주의 파트 노래(Part songs with orchestral accompaniment)

3.2 파트 노래를 포함하는 연작 노래(Song cycles containing part songs)

3.3 혼합 앙상블을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ixed ensemble)

3.3.1 혼합 앙상블과 피아노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ixed ensemble and piano)

3.3.2 혼합 앙상블 아 카펠라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ixed ensemble a capella)

3.4 남성 성부 또는 여성 성부만을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only male or only female voices)

3.4.1 남성 또는 여성 앙상블과 피아노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ale or female ensemble and piano)

3.4.2 남성 또는 여성 앙상블 아 카펠라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ale or female ensemble a capella)

3.4.3 남성 앙상블과 피아노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ale ensemble and piano)

3.4.4 남성 앙상블과 기타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 for male ensemble and guitar)

3.4.5 남성 앙상블 아카펠라 파트 노래(Part songs for male ensemble a capella)

3.4.6 여성 앙상블과 피아노를 위한 파트 노래(Part songs for female ensemble and piano)


시리즈 IV: 솔로 음성을 위한 노래(Songs for solo voice: Lieder) - 가곡(리더)


4.1 오케스트라 반주의 리더(Lieder with orchestral accompaniment)

4.2 실내 앙상블 반주의 리더(Lieder with chamber ensemble accompaniment)

4.3 피아노 반주의 리더(Lieder with piano accompaniment)

4.3. 송 사이클과 송 세트(1Song cycles and song sets) - 연가곡

4.3.2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리더(Lieder for soprano and piano)

4.3.3 베이스와 피아노를 위한 리더(Lieder for bass and piano)

4.3.4 불특정 성부와 피아노를 위한 리더(Lieder for any voice type and piano)


시리즈 V: 오케스트라 작품(Orchestral works :Orchesterwerke)


5.1 교향곡(Symphonies)

5.2 서곡(Overtures)

5.3 기타 오케스트라 작품(Miscellaneous orchestral works)

5.4 콘체르탄테 작품(Concertante works)


시리즈 VI: 실내악(Chamber Music: Kammermusik)


6.1 9중주와 8중주 앙상블곡(Works for nonet and octet ensembles)

6.2 현악 6중주곡(Works for string sextet)

6.3 현악5중주곡(Works for string quintet)

6.4 현악4중주곡(Works for string quartet)

6.5 현악3중주곡(Works for string trio)

6.6 피아노 및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악을 위한 작품(Works for piano and one or more instruments)

6.7 기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를 위한 작품(Other works for strings, winds and brass instruments)


시리즈 VII: 피아노음악(Piano Music: Klaviermusik)


7.1 두대의 피아노, 여덟 손을 위한 작품(Works for two pianos, eight hands)

7.2 피아노 듀엣곡 작품(Works for piano duet)

 7.2.1 기타 피아노 듀엣곡(Miscellaneous piano duet works)

 7.2. 행진곡과 춤곡(2Marches and dances)

 7.2.3 서곡(Overtures)


7.3 피아노 솔로 작품(Works for piano solo)

7.3.1 피아노 소나타 및 별도의 소나타 악장(Piano sonatas and sonata movements)

7.3.2 기타 피아노 작품(Miscellaneous piano works)

7.3.3 피아노 춤곡(Piano dances)


시리즈 VIII: 기타 첨부작품(Supplement)


8.1 편곡작품(Arrangements)

8.2 위작(Spurious works)

8.3 작곡 연습을 위한 곡(Composition exercises)

8.4 장르를 알수 없는 작품, 일부분 또는 스케치(Works, fragments and sketches of unknown genre)

8.5 다른 작곡가의 작품목록에 들어 있는 작품들(Works in the catalogue by other composers)


오페라(징슈필) 휘에라브라스의 한 장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슈베르트는 21편의 무대작품을 남겼다. 대부분은 미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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