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교향시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은 클래식 앨범
○ 클로드 드비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라 메르'(바다: La Mer)
'라 메르'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개의 교향적 스케치로 구성된 작품이다. 풀 타이틀은 The Sea, Three Symphonic Sketches For Orchestra(바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개의 교향적 스케치)이다. 세 파트는 From Dawn to Midday on the Sea(바다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Play of the Waves(파도의 놀이), Dialogue of the Wind and the Sea(바람과 바다의 대화)이다. 드비시는 주제에 대한 에센스와 웅대함을 직접 인식하기 위해 커다란 보트에 오케스트라를 태우고 다니면서 작품에 대한 악상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드비시는 특히 파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클로켄슈필과 탐탐을 포함한 타악기들을 내세웠다. 그래서 어찌 들어보면 마치 자바의 가멜란(gamelan)연주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드빗시는 '라 메르'를 작곡하기 시작할 때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사실 한때 선원생활을 하려 했었다. 그러나 운명이 작곡가의 길을 걷도록 했다.'라고 피력한바 있다. 바다와의 인연을 내세운 언급이었다. 드비시는 1905년에 영국 남부의 이스트본(Eastbourne)이라는 해변마을로 와서 '라 메르'의 작곡을 시작했다. 사실 그때에 드비시는 파리에서 애정 스캔들 때문에 물의가 많자 이를 피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다고도 한다. 내용인즉 드비시가 소프라노 엠마 바르뒤크(Emma Barduc)에게 정신이 빠져서 아내를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라 메르'의 초연은 드비시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과 함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라 메르'는 바다에 관한 음악으로서는 아마도 가장 생생하고 활발한 작품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라 메르'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 분명히 교향적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드비시는 이를 교향곡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드빗시의 '라 메르'는 간혹 샹송인 '라 메르'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샹송 '라 메르'는 종전 후인 1946년에 처음 발표된 프랑스의 샤를르 트르네(Charles Terenet)가 만든 노래이다.
드비시의 '라 메르'를 들으면 마치 가멜란 악기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얀 시벨리우스(Jan Sibelius: 1865-1957)의 '오세아나이드'(The Oceanides)
시벨리우스가 이 곡을 쓰게 된 것은 미국의 부유한 예술애호가 부부(칼과 엘렌 스퇴켈)의 부탁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이곡의 초연은 1914년 미국 코네티커트주 노포크의 칼 스퇴켈씨의 저택에서 이루어졌다. 시벨리우스가 이 부부의 간청에 의해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오셔나디드'는 교향시 성격을 띤 작품으로 연주 시간은 고작 15분 정도에 불과하다. 오셔나이드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바다의 님프를 말한다. 오세아나이드는 3천명이나 된다고 하며 이들은 오세아누스(Oceanus)와 테티스(Tethys)의 딸들이라고 한다. 오세아나이드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들은 스타익스(Styx)이다.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강을 건너러면 스타익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 다른 유명한 딸은 메티스(Metis)이다. 제우스의 첫번째 부인이다. 나머지 모든 오세아나이드들은 자연 현상, 구름, 냇물, 호수, 꽃 등등과 관련되어 있다. '오세아니드'는 진실로 시벨리우스적인 작품이다. 하모니는 그의 첫번째 교향곡을 연상케 한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은 그가 아직도 작곡가로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완성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더블 플루트와 현악 파트는 그의 교향곡 2번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살펴보면 '오세아나이드'는 드비시의 '라 메르'의 음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오세아나이드'는 파도가 아치형으로 엄습하여 오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라 메르'는 그 이전의 고요함이라고 할수 있다.
오세아나이드. 구스타브 도어(Gustave Dore)작.
○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의 '바다 교향곡'(A Sea Symphony)
영국의 해양국가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나라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바다로 향한 열정이 식을줄 몰랐던 나라였다. 그러한 나라이므로 바다에 대한 교향곡이 나오지 않을수 없다. '푸른 옷소매'(Green Sleeves)로 유명한 랄프 본 윌리엄스(1872-1958)는 30세 쯤해서부터 바다를 주재로 삼은 교향곡을 작곡하고 싶어했다. 그러한 의욕을 붇돋아 준 것이 월트 휘트만(Walt Whitman)의 '풀잎'(Leaves of Grass)라는 연시였다. 본 윌리엄스는 4악장의 '바다 교향곡'을 1909년에 모두 완성했다. 초연은 이듬해인 1910년 리즈(Leeds) 페스티발에서였다. 본 윌리엄스 자신이 지휘를 했다. '바다 교향곡'은 기본적으로 합창이 중심이 되는 합창교향곡이다. 여기에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솔로가 곁들인다. 전 악장이 합창, 그리고 솔로로 된 교향곡은 아마 본 윌리엄스의 '바다 교향곡'이 처음일 것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있지만 합창과 솔로, 중창은 4악장에만 나온다. 그러므로 본 윌리엄스는 '바다 교향곡'을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작품'이라고 불렀다. 본 윌리엄스는 9편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 중에서 첫번째 교향곡이 '바다 교향곡'이다. '바다 교향곡'은 그의 모든 교향곡 중에서 연주 시간이 가장 길다. 1시간 15분 정도가 걸린다. 네 악장 중에서 4악장이 가장 길어서 35분 정도가 걸린다. 본 윌리엄스는 월트 휘트만의 시를 바탕으로 교향곡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제목을 '대양'(The Ocean)이라고 붙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바다 교향곡(A Sea Symphony)라고 수정했다. 네개의 악장에는 각각 부제가 붙어 있다. 1악장은 '모든 바다, 모든 선박을 위한 노래'(A Song for All Sea, All Ships), 2악장은 '한밤에 해변에서 홀로'(On the Beach at Night Alone), 3악장은 '스케르초: 파도'(Scherzo: The Waves), 4악장은 '탐험가들'(The Explorers)이다. 4익징은 길기 때문에 편의상 세개의 파트로 나누기도 한다. 첫번째가 '우주에서 떠 다니는 오 광활한 반구여'(O vast Rondure, swimming in space), 두번째는 '오 더 이상 기다릴수 없도다 우리 모두 배를 타자'(O we can wait no longer, we too take ship O soul), 세번째는 '인도 저 넘어로 가는 길'(Passage to more than India)이다. '바다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한없이 펼쳐진 웅장한 망당대해를 배를 타고 모함하며 항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에서).
'피터 그라임스'는 벤자민 브리튼의 첫번째 풀 스케일 오페라이다. 영국의 동부에 있는 앨드버러라는 어촌이 무대이다. 2차 대전이 거의 끝나고 있을 때인 1945년 6월 7일 런던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거친 바다와 그 거친 바다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어촌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이기 때문에 많은 호응을 얻었다. 신문들은 '피터 그라임스'는 최초의 진정한 영국 오페라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바다의 내음을 그대로 전하는 음악이었다. 특히 1막 첫 장면과 둘째 장면 사이에 일어나는 거센 폭풍을 그린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투르드포스(tour-de-force), 즉 기가막히게 장면에 부합하는 절묘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나중에 브리튼은 전체 오페라에서 사용한 간주곡들만 모아서 하나의 콘서트 작품으로 만들었다. '피터 그라임스에 나오는 네개의 바다 간주곡'(Four Sea Preludes from Peter Grimes)이다. 네 개의 간주곡이란 1. 새벽(Dawn) 2. 주일 아침(Sunday Morning) 3. 달빛(Moonlight) 4. 폭풍(The Storm)이다. 간주곡들이기 때문에 서곡과 그 다음에 나오는 장면을 연결하는 음악, 장면과 장면이 바뀔 때에 나오는 음악이다.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18세기 영국의 시인인 조지 크래브(George Crabbe)의 시 '보로우'(The Borough)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보로우'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어부인 피터 그라임스이다. 피터 그라임스는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인간상의 대표적인 인물로 모습을 보인다. 고아원에서 사온 아이를 때려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아이에게 죽도록 일을 시켜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브리튼은 그런 피터 그라임스를 좀 더 현대적인 인물로 변형하였다. 산업사회에서 어쩔수 없이 생긴 산물이며 아울러 그런 사회의 희생자로서 그려 놓았다.
'피터 그라임스'의 한 장면
○ 피터 스컬소프의 '바다와 하늘의 노래'(Song of the Sea and Sky). 실내악. The Fifth Continent의 한 악장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태평양 해안'(Australia's Pacific Coast)
피터 스컬소프(Peter Sculthorpe: 1929-2014)는 호주의 작곡가이다. 파푸아 뉴기니의 남쪽에 있는 사이바이(Saibai) 섬의 원주민들 민속음악, 특히 춤곡을 바탕으로 1987년에 '바다와 하늘의 노래'를 작곡했다. 사이바이의 노래들은 실은 1961년에 호주의 민속음악학자로서 시드니대학교 명예교수인 제레미 베케트(Jeremy Beckett)가 사이바이 섬에서 수집한 민요와 춤곡들, 그리고 어떤 것은 유럽의 선교사들이 알려준 찬송가를 바탕으로 실내악 스타일로 정리한 것이다. 실내악 스타일이기 때문에 플루트와 피아노, 클라리넷과 피아노 등의 연주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집은 모두 6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멀리 대양을 항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래, 숲에서 새들이 부르는 노래, 바다와 하늘의 색깔이 아름답게 변하는 모습들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바다와 하늘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바다와 하늘의 노래'는 예일대학교 음악학교가 스컬소프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피터 스컬소프와 제레미 베케트
○ 윌리엄 월튼의 '헨리 5세 모음곡'(suite from Henry V)에서 영국의 함대가 프랑스로 항해하는 장면의 음악
영국의 윌리엄 월튼(William Walton: 1902-1983)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헨리 5세'를 1944년에 영화로 만들 때에 음악을 작곡했다. 당시는 전쟁이 한창이어서 모두들 불안한 내일을 살고 있었다. 국민들에에 영국의 위대함을 보여주어서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할 필요가 있었다. 영국의 역대 군왕 중에서 헨리 5세는 숙적인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자랑스럽게 장식한 인물이다. 월튼은 영화음악 중에서 다섯 곡을 선별하여서 5악장의 모음곡을 만들었다. 1악장은 서곡으로서 이 세상을 하나의 극장이나 마찬가지라는 내용이다(The Globe Playhouse)이다. 2악장은 파스칼리아로서 '활슈타프의 죽음'(Pascaglia: Death of Falstaff)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3악장은 '돌격과 전투'(Charge and Battle)이다. 이 장면의 음악이 활기에 넘친 것이다. 영국의 함대가 프랑스로 항해하는 장엄한 표현하였다. 4악장은 로맨틱한 분위기의 음악이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Touch her soft lips and part)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5악장은 '아쟁쿠르의 노래'(Agincourt Song)이다. 아쟁쿠르 노래는 중세로부터의 영국 민요로서 백년전쟁중인 1415년에 헨리 5세가 이끄는 영국군이 샤를르 6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을 아쟁쿠르에서 크게 물리친 사건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아쟁쿠르는 오늘날 프랑스의 칼레 인근에 있는 평원이다. 한편, 랄프 본 윌리엄스는 ''헨리 5세 서곡'을 작곡했다. 전승을 축하하는 팡파레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는 곡이다.
○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 1871-1942)의 교향시 '인어공주'(Die Seejungfrau: The Mermaid). 안델센 동화에 의한 교향시
비엔나에서 태어난 쳄린스키의 가정 내력은 그야말로 다문화이다. 쳄린스키의 할어바지는 헝가리의 칠리나에서 살다가 비엔나로 이주해 왔다. 칠리나는 현재 슬로바키아에 속해 있다. 할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여인과 결혼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독실한 로마 가톨릭 가정 출신이었다. 쳄린스키의 아버지 아돌프는 당연히 가톨릭 신자로서 양육되었다. 그러나 쳄린스키의 어머니는 사라예보 출신으로 어머니의 아버지, 즉 쳄린스키의 외할아버지는 유태인이었고 외할머니는 보스니아 무슬림이었다. 어머니가 유태인이었으므로 쳄린스키의 가족 모두는 유태교로 개종하였다. 다시 말해서 쳄린스키는 유태인으로서 양육되었다. 가정 내력은 이쯤해서 그만두고 쳄린스키의 '인어공주' 얘기로 돌아가면, 그는 이 작품을 1903년에 완성했다. 초연은 1905년 1월에 비엔나에서였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이었다. 특히 관악기와 타악기의 비중을 크게 두었다. 4개의 플루트(2개는 피콜로와 더블링), 2개의 오보에와 잉글리쉬 혼, 4개의 클라리넷, 3개의 바순(파곳), 6개의 혼, 3개의 트럼쳇, 3개의 테너 트롬본, 튜바, 팀파니, 글로켄슈필, 트라이앵글, 심발 파이프식의 종, 2개의 하프, 그리고 현악기로 구성되었다.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연주 시간은 45분 정도이다. 내용이야 누구나 아는 안델센의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이야기이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인어공주라고 번역했지만 공주라는 직함은 그냥 붙인 것이고 실은 '바다 님프'(Sea nymph)라고 해야 정확하다.
쳄린스키가 교향시 '인어공주'를 만든 것은 안델센의 대표작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해야하는 비극적인 사연에 공감해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쳄린스키는 인어공주를 자기 자신으로 보았다. 인간인 왕자는 알마 쉰들러였다. 그 얘기를 조금 하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쳄린스키가의 오페라인 '옛날 옛적에'(Es war einmal)를 지휘하고 있을 때 객석에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한사람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인 알마 쉰들러였다. 비엔나의 유명한 화가인 에밀 야콥 쉰들어의 딸이었다.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쳄린스키에 대한 알마의 첫 반응은 '나약한 사람처럼 보인다. 키도 작고 눈은 튀어나오고 그리고 지휘하는 스타일은 왜 또 그렇게 완전 미친것 같은지 모르겠다'였다. 두어주 후에 알마는 쳄린스키와 어떤 딘너 파티에서 만나서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었다. 알마는 처음에는 쳄린스키를 '솔직히 못생긴 남자'라고 생각했으나 얘기를 나누는 그가 자기와 예술적인, 그리고 지성적인 취향에 있어서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알마는 쳄린스키에게 깊은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쳄린스키는 알마의 음악선생이 되어서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노래 부르는 법을 가르쳤다. 알마는 쳄린스키가 못생겼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쳄린스키의 눈이 지성으로 빛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마는 쳄린스키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다. 알마의 주변 사람들은 '아니, 쳄린스키는 유태인이잖아!'라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당시에는 반유태적인 정서가 점점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마는 쳄린스키와의 사랑을 완성하며 쳄린스키의 아이들을 가지고 싶어했다.
그러나 운명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방해했다. 1901년 11월 7일, 쳄린스키가 그라츠에서 지휘를 하고 있을 때에 알마는 비엔나에서 어떤 딘너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테이블의 건너편에는 구스타브 말러가 앉아 있었다. 말러는 알마에게 다음날 아침에 있을 슈타츠오퍼의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초청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알마는 두 사람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를 저울질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12일에 알마는 쳄린스키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제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02년 2월에 말러와 결혼했다. 쳄린스키는 물론 알마와 말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쳄린스키는 결혼식 며칠 전부터 새로운 교향시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인어공주'였다. 스코어를 완성하는데 꼬박 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 1년 동안 쳄린스키는 번뇌와 분노와 실망과 허탈 속에서 지내며 오직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의 '바다 그림'(Sea Pictures).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가곡(Song Cycle)이다.
엘가는 조용한 들판이나 언덕 길을 산책하기를 즐겨했다. 그의 우스터셔어(Worcestershire) 집에서 가까운 말번(Malvern) 언덕은 그가 좋아하는 산책코스였다. 그러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엘가는 말번 언덕을 산책하면서 '바다 그림'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후 엘가는 영국 서부의 해르포드셔어에서 지내면서 '바다 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헤르포드셔어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엘가는 바다에 대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바다 그림'은 콘트랄토(또는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5악장의 연가곡이다. 원래는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했지만 콘트랄토 클라라 버트(Clara Butt)가 이 노래들을 대단히 부르고 싶어했기 때문에 엘가는 저음의 콘트랄토를 위한 노래들로 수정하였다. 클라라 버트는 '바다 그림'을 1899년 7월 노위치 페스티발에서 엘가 지휘의 오케스트라 반주로 처음 불렀다. 이때 버트는 인어의상을 입고 노래를 불러서 대단한 박수를 받았다. 런던 초연은 그로부터 석달 후인 10월이었고 이때에는 버트가 엘가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그로부터 2주 후에 엘가와 버트는 빅토리아 여왕이 그 노래들을 듣고 싶다고 해서 스코틀랜드의 발모랄 성으로 가서 연주했다. 송 사이클의 두번째 노래인 '하늘'(The Heaven)만은 다른 모든 악장들을 완성하기 2년 전에 완성한 것이다. 가사는 엘가의 부인인 알리스의 시에 의한 것이다. 원래 알리스의 가사는 Love Alone Will Stay라는 제목의 연작시에서 The Dome이라고 부르는 시를 가져다가 사용한 것이다. 그 외의 시들은 Sea Slumber Song, Sabbath Morning at Sea, Where Corals Lie, The Swimmer 등이다. 엘가의 음악은 커다란 파도나 폭풍을 그린 것은 아니다. 잔잔하게 빛나는 바다를 그린 것이다. 마치 한폭의 수채화처럼!
○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Sheherazade)에서 '바다와 신밧드의 배'(The Sea and Sinbad's Ship)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한때 선원이 되어서 오대양을 내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원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집안은 해군가문이었다. 그의 형도 해군장교였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어서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오히려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우연히 천일야화를 읽고나서 무척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동양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있었다. 당시에 동양이라고 하면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서 있는 터키의 동쪽, 그리고 이집트를 포함한 아프리카 북부도 모두 동양으로 간주하였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제정러시아도 동양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러시아 전통의 화려하고 컬러플한 음악에 동양적인 것을 가미하여 당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Op 35번인 교향적 모음곡 '세에라자드'(또는 세헤라자데)는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1888년에 완성하였다.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이 바다의 신비함이 물씬 묻어 있는 '바다와 신밧드의 배'(The Sea and Sinbad's Ship)이다. 2악장은 '칼렌다 왕자'(Carlendar Prince)이며 3악장은 '젊은 왕자와 공주(The Young Prince and the Young Princess), 그리고 4악장은 '바그다드의 축제'(Festival at Bagdad)이다.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 나이트 또는 천일야화라고 부르는 이야기집에 나오는 여인으로 그 얘기는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세레라자데'에서 첫번째 곡인 '바다와 신밧드의 배'
○ 프랑크 브릿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바다'('The Sea': Suite for Orchestra)
영국의 비올리스트이며 작곡가인 프랑크 브릿지(Frank Bridge: 1879-1941)는 영국 남단의 항구인 브라이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바다에 경외심과 동경으로 지냈다. 그같은 동경과 경외심은 1911년 7월, 서섹스 해안의 이스트본에서 작곡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인 '바다'에 집약되어 있다. 4악장으로 구성된 '바다'에서 1악장은 마치 서광이 비쳐 있는 듯한 끝없는 수평선을 표현하였다. 브릿지는 그것을 시스케이프(Seascape)라고 불렀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이라는 뜻에서이다. 여름날 이름아침 바다에 나가서 작열하듯 떠오른 태양 아래에 말없이 펼쳐있는 거대한 바다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악장이다. 2악장은 밀려오는 파도가 해변의 바위와 부딪쳐서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철썩하고 바위를 때렸던 파도가 물러가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장면도 실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브릿지는 파도에 의한 물거품을 Sea-foam 이라고 불렀다. 3악장은 달빛(Moonlight)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달빛이 은은하게 내려 비치는 바다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4악장은 폭풍(Storm)을 표현한 것이다. 심발과 관악기의 포효하는 듯한 음향이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연상케 한다. 4악장의 피날레는 1악장의 주제를 반복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바다는 역시 평화스럽다는 메시지이다. 브릿지의 '바다' 모음곡은 열살 소년이던 벤자민 브리튼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 것이었다. 그로부터 브리튼은 브릿지의 제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평생을 브릿지 작품의 챔피온으로 활동했다. 브리튼이 얼마나 브릿지를 존경했는가하면 브리튼은 1937년에 브릿지의 '현악4중주를 위한 세곡의 목가적인 작품'(Three Idylls for String Quartet: 1906)의 두번째 곡의 주제로 '프랑크 브릿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of Frank Bridge)를 작곡하여 헌정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1939년에 브리튼이 페터 피터 피어스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브릿지는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비올라를 브리튼에게 주며 장도를 축하했다. 그것이 브릿지와 브리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브릿지는 브리튼이 미국으로 떠난지 2년후, 전쟁의 포화가 작열하기 시작하던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브릿지가 오케스트라 모음곡인 '바다'를 작곡한 영국 남단 서섹스의 이스트본 해변
○ 샤를르 발렌탱 알간(Charles-Valentin Alkan: 1813-1888)의 '바닷가에서 어떤 미친 여자의 노래'(The Song of the Mad Woman on the Sea Shore). 전주곡
알칸은 유태계 프랑스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다. 오늘날 알칸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이름난 음악가였다. 그는 쇼팽과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 친구이면서 또한 옆집에 살았다. 알칸은 드비시, 라벨, 라흐마니노프 등 후배 작곡가-피아니스트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았다. 알칸은 쇼팽처럼 주로 피아노곡을 썼다. 그것도 비르투오소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점잖은 작품들도 작곡했지만 아무래도 알칸이라고 하면 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작품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알칸은 독실한 유태교 신자였기 때문에 반유태 정서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 프랑스에서도 반유태 정서가 한결 높았었다. 그런 그였지만 위트와 풍자도 많았다. 예를 들어 로시니를 풍자하여서 Funeral March on the Death of a Parrot(참새 한 마리의 죽음에 대한 장송곡)을 작곡한 것이다. 로시니는 참새를 아주 좋아했다. 알칸은 쇼팽이 세상을 떠나자 진정한 친구를 잃은 슬픔에 사람들로부터 더욱 숨어 살았다. 그리고 성격도 점점 멜랑콜리하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어떤 미친 여자의 노래'는 바로 그러한 심경을 반영한 작품이다. 그 즈음에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매일매일 점점 사람이 싫어지고 세상이 싫어지고 있소이다. 내게는 무슨 보람이 있거나 좋거나 유용한 일이 없소이다. 나의 지금 심정은 무섭도록 슬프고 마치 망망대해에서 난파된 느낌이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것 같다오. 그리고 이젠 작곡에도 관심이 없다오. 작곡을 하는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라오'라고 썼다. '바닷가에서....'에서 피아노는 알칸의 관념에서 보면 기나긴 울부짖음이다. 그래서인지 연주하기에 대단히 어렵다. 베이스의 단순한 소리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다시 물러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미친 여인의 울부짖음은 저 높은 곳의 허공에서 맴도는 것 같다. 하모니는 장조와 단조를 가로 지르며 정착을 모른다. 마치 미친 여인의 영혼처럼.
○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바다 위의 한 척의 보트'(Une barque sur l'ocean)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에서는 일단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시인, 화가들이 동호회를 결성하고 자기들 스스로를 Les Apaches(아파치)라고 붙였다. 북미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가져온 명칭이다. 아파치라는 단어는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말썽이나 일으키는 무뢰한들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다. 어쨋든 아파치의 멤버 중에는 라벨을 포함해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마누엘 드 화야, 에두아르 베네딕투스 등이 들어 있다. '바다 위의 한 척의 보트'는 라벨이 아파치 동료들을 생각해서 작곡한 다섯 작품 중에서 세번째의 것이다. 라벨은 세번 째인 이 작품을 특별히 화가인 폴 소르데(Paul Sordes)에게 헌정했다. 세번째이기 때문에 앞의 두 작품과 뒤의 두 작품의 중간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다섯 작품 중에서 가장 길다. 아파치 멤버 중의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로저 비녜스(Roger Vines)가 이 작품의 초연을 담당했다. 이 작품은 쉬임없이 넘실대면서 사람의 혼령을 불러내려는 듯한 파도의 모습을 아르페지오 형태로 연주토록 되어 있다.
○ 프레데릭 들리우스의 '바다에서의 표류'(Sea Drift)
영국의 프레데릭 들리우스(Frederick Delius: 1862-1934)의 '바다에서의 표류'는 1906년에 초연된 바리톤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다. 가사는 월트 휘트만의 '풀잎'(Leaves of Grass)에 포함되어 있는 "끊임 없이 흘들리는 요람에서 나와서'(Out of the Cradle Endlessly Rocking)의 구절들을 바탕으로 삼았다. 휘트만의 연작시집인 '풀잎'은 바다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은 바다와 해변에 대한 시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사실상 '끊임없이 흔들리는 요람에서 나와서'도 역시 바다 또는 해변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들리우스는 '바다에서의 표류'를 작곡하면서 전체적으로 파도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음악을 깔았다. 그래서 누가 듣더라도 파도에 대한 내용인 것을 짐작토록 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의 내용은 모킹 버드(Mocking bird: 입내새)를 비유한 것이다. 목킹 버드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라 훌쩍 둥지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너무나 번민에 휩싸인 남편은 아내와 함께 지내던 둥지가 싫어서 자기도 어디론가 떠나려고 한다. 그러다가 만일 자기가 없는 사이에 아내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은 결국 영원히 둥지를 떠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바다에서의 표류'! 그것은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는 남편 모킹버드의 신세와 같은 것이다.
○ 휴고 알벤(Hugo Alfven)의 교향곡 4번 '저 먼 암초섬으로부터'(From the Outermost Skerries)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휴고 알벤(1872-1960)은 스웨덴 이외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그의 작품에 나오는 친근한 멜로디와 호소하는 듯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 먼 암초섬으로부터'는 스웨덴 해변의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사나운 파도소리가 마치 아무도 없는 해안에서 유령을 불러내는 듯이 들리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유령을 불러내는 듯한 소리는 소프라노와 테너가 오프 스테이지에서 보칼리제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표현했다. 혹자들은 제목에 Outermost Skerries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혹시 스코틀랜드 북쪽 북대서양상에 있는 셰틀랜드 군도(Shetland Islands)의 동쪽에 있는 아우터 스커리스(Outer Skerries)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얘기이다.
○ 펠릭스 멘델스존의 '잔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Calm Sea and Prosperous Voyage)
이 작품은 괴테의 시에 바탕을 둔 것이다. 괴테의 시는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관심을 끌었는데 멘델스존이
작품을 내 놓았다. 커다란 여객선이 파도라고는 하나도 없는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운항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19세기에 항해가 세계적인 추세에 있을 때에 잔잔한 바다는 언제나 하나의 커다란 염원이었다. 그러나 멘델스존은 항해 내내 잔잔한 바다를 기대할수 없다는 점도 내세웠다. 높은 파도가 여객선의 승객들에게 불안감을 던져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피날레 파트에서 트럼펫은 마치 팡파레처럼 배가 항구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린다. 모든 승객들이 그제서야 안심의 숨을 내쉬고 마른 땅으로 발을 내디딘다.
○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910-1849)의 '헤브라이즈 제도'(The Hebrides)에서 '핑갈의 동굴'(Fingal's Cave)
멘델스존은 20세 때에 뜻한바 있어서 유럽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원래 계획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부터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프랑스로 가는 대신 스코틀랜드로 향했다. 그가 평소에 존경하여 마지 않던 월터 스콧 경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1829년 8월 5일, 스콧 경과의 만남은 별로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멘델스존은 연락선을 타고 멀(Mull)로 향했다. 그로부터 며칠후, 멘델스존은 친구 킹게만(Kingemann)과 함께 보트를 타고 스타파(Staffa) 섬으로 향하였다. 핑갈의 동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바다는 퐁랑이 심했다. 뱃멀미로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멘델스존은 그런 고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타파섬의 자연적인 경관, 특히 핑갈의 동굴의 신비스러울 정도의 장엄함에 대하여 깊이 감동하였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곧이어 '핑갈의 동굴 서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의 명성은 '핑갈의 동굴'로 인하여 더욱 높아졌다.
장엄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핑갈의 동굴
○ 그레이스 윌리엄스(Grance Williams: 1906-1977)의 '바다 스케치'(Sea Sketches). 웨일스 출신의 가장 명성이 높은 여류 작곡가. 그는 '바다 스케치'를 그의 부모에게 헌정했다. 바닷가인 글리모건(Glamorgan)의 해안에 집을 지은 센스를 존경해서라고 했다. 그레이스 윌리엄스는 배리(Barry)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작곡에 대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윌리엄스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작곡하는 것을 즐겨했다. 카디프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런던의 왕립음악원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엉클 랄프'라고도 불리는 랄프 본 윌리엄스는 그의 스승이었다. '바다 스케치'는 1944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작곡된 것이다. 그의 친구인 브리튼이 바다 간주곡으로 유명한 '피터 그라임스'를 작곡하던 때와 같은 시기였다. 윌리엄스의 '바다 스케치'는 브리튼처럼 바다의 여러 색다른 무드를 그린 것이다. 웰쉬의 해안선이 오선지에 그대로 살아 숨쉬는 것같은 작품이다.
○ 존 아일랜드(John Ireland: 1879-1962)의 '바다 열병'(Sea Fever)
존 아일랜드는 채널 아일랜드를 사랑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바다 열병'은 채널 아일랜드의 바다를 그린 노래이다. 가사는 영국의 시인인 존 맨스필드(John Mansfield)의 '솔트 워터 발라드'(Salt Water Ballads)를 사용하였다. '바다 열병'은 바다에 대한 시인과 작곡가의 열정을 반영한 노래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찬란한 바다의 소리를 반영했다기 보다는 바다의 한숨 소리를 반영한 면이 더욱 많다. 첫 소절은 저 유명한 '나는 다시 바다로 내려가련다. 외로운 바다와 하늘에게로'(I must go down to the sea again, to the lonely sea and the sky)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 아놀드 박스(Arnold Bax: 1883-1953)의 '틴타젤'(Tintagel)
영국의 시인이며 작곡가인 박스의 '틴타젤'은 콘월의 해안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틴타젤 고성과 높이 서 있는 그 고성을 공격이라도 할 듯 계속해서 밀려오며 부딪치는 파도를 그린 찬란한 작품이다. 1917년에 박스는 그의 애인인 피아니스트 해리엣 코엔(Harriet Cohen)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콘월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콘월의 해안가 벼랑에 그림같이 서 있는 틴타젤 고성의 폐허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중세의 틴타젤 고성은 오래전부터 아서왕의 로맨틱한 전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박스는 그와 같은 로맨틱한 연관을 그대로 보아 넘길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박스는 전설보다는 인상적인 주변 환경에 더욱 감동을 받았다. 그의 '틴타젤'은 절벽 위에 왕관처럼 자리잡고 있는 틴타젤의 모습을 그렸고 그리고 어느 햇빛 비치는 여름 날, 콘월의 벼랑으로부터 바라다보이는 대서양 저 먼 바다를 그렸다. 그리하여 장엄한 힘과 웅장한 규모의 음악이 탄생하였다. 박스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콘월 해변의 틴타젤 고성 폐허와 대서양
○ 안톤 루빈슈타인(Anton Rubinstein: 1829-1894)의 교향곡 2번 C 장조 Op 42 '대양'(Ocean)
○ 프레데릭 쇼팽(Frederick Chopin: 1810-1849)의 Op 25 #12 '오션 에뛰드'(Ocean Etude)
○ 하워드 핸슨(Howard Hanson: 1896-1981)의 교향곡 7번 '바다 교향곡'(Sea Symphony)
'클래시컬 뮤직 팟푸리 > 클래시컬 뮤직 팟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국사랑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 (0) | 2017.05.24 |
---|---|
나치 치하에서의 음악활동 (0) | 2017.05.23 |
유명 변주곡 총정리 2 (0) | 2017.05.06 |
유명 변주곡 총정리 1 (0) | 2017.05.05 |
위대한 작곡가들과 어머니 - 2 (0) | 2017.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