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을 위한 음악
감사하는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감정들, 예를 들면 사랑이나 미움, 복수, 환희, 슬픔, 분노 등은 음악으로 어찌어찌 표현할수가 있지만 감사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작곡가로서는 감사의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코자 한번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추수를 감사하는 계절이다. 반드시 추수감사와 관련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작품들이 있어서 소개코자 한다.
○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 15번 중에서 3악장 아다지오(String Quartet No 15, Op 132 Adagio).
베토벤의 작품들은 대체로 베토벤의 자서전적인 상황과 연관이 많이 있다. 그래서 베토벤의 작품들을 연도별로 보면 베토벤이 생애에서 어떤 사건들을 겪었는지를 짐작할수 있다. 현악 4중주곡 15번도 그런 맥락에서 고려할수 있다. 베토벤은 1825년 초에 장염으로 무진 고생을 했다. 베토벤은 심지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중에 주위에서 베토벤에게 식이요법을 하면 나을수도 있다고 권하는 바람에 마음을 굳게 먹고 식이요법을 엄격하게 강행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하게도 병으로부터 회복되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 15번은 5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에서 3악장은 극심한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심정을 담은 것이다. 추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 작품은 질병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므로 일반적인 감사의 경우에도 적합한 작품이다. 현악 4중주곡 15번 3악장에는 Heiliger Dankgesang eines Genesenen an die Gottheit, in der lydischen Tonart(회복된데 대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 리디아 스타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리디아 스타일이라는 것은 감미로우면서도 애조를 띤 부드러운 음악 스타일을 말한다. 베토벤은 병에서 회복된 후 곧바로 현악 4중주곡 15번 A 단조를 작곡하였다. 이 작품은 그해(1825년) 11월초에 비엔나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은 작품번호 132번인 이 작품을 니콜라이 갈리친(Nicolai Galitzin) 백작에게 헌정하였다. 베토벤은 실제로 현악 4중주곡 작품번호 127과 130도 갈리친 백작에게 헌정하였다.
제정러시아의 귀족인 갈리친 백작은 아마추어 음악가로서 비엔나에 와서도 상당기간을 지냈다. 그때에 하이든과 모차르트와도 친분을 유지하며 지냈고 나중에는 베토벤과도 가깝게 지냈다. 갈리친 백작은 작곡도 했고 첼로도 연주했다. 부인인 아나는 뛰어난 재능의 피아니스트였다. 갈리친 백작은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들을 현악 4중주곡, 또는 5중주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그는 182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으면서 베토벤에게 현악 4중주곡 3편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례는 요구하는 대로 하겠다는 단서도 붙였다. 그렇게 해서 베토벤은 Op 127, Op 130, Op 132의 현악 4중주곡을 완성하여 헌정하였다. 3악장에서 아다지오 파트는 건강이 회복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단조로 시작하여 장조로 옮겨지는 것이 신비스럽고도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5번 Op 132는 베토벤의 이 작품을 만든 때로부터 1백년도 지난 때에 위대한 시인인 T.S. 엘리엇에게 영감을 주어서 Four Quartet(4중주)라는 작품을 만들게 했다. 엘리엇의 '4중주'는 인관과 시간의 관계를 설명한 작품으로서 시간, 미래에 대한 전망, 인간성, 구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시작(詩作)이다.
작곡중인 베토벤. 좀 정리나 하고 사시지.
○ 챨스 아이브스의 '홀리데이 교향곡'(Holiday Symphony)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챨스 아이브스(Charles Ives: 1874-1954)의 '홀리데이 교향곡'(일명 A Symphony: New England Holidays)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악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공휴일을 그렸다. 1악장은 2월 셋째 월요일인 워싱턴 탄생일에 대한 것이며, 2악장은 5월 마지막 월요일인 전몰장병기념일(Memorial Day)에 대한 것이다. 2악장의 원래 부제는 현충일(Docoration Day)이었다. 3악장은 7월 4일인 미국독립기념일(The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에 대한 것이며 4악장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과 선조들의 날(Forefather's Day)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각 악장이 겨울, 봄, 여름, 가을과 일치하기도 한다. 각 악장은 콘서트에서 하나의 교향곡으로서 보다는 따로따로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다. 감사에 대한 것은 4악장으로 주로 미국 동부에서 자주 연주된다. 왜냐하면 추수감사절도 그렇지만 '선조들의 날'도 미국 동부, 구체적으로는 매사추세츠주의 플리마우스(Plymouth)가 무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목요일이지만 '선조들의 날'은 12월 22일에 지키고 있다. 그것은 최초의 필그림들이 1620년 12월 20일에 플리마우스에 도착한 날이다. 그래서 1769년부터 이날을 '선조들의 날'로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챨스 아이브스는 추수감사절와 선조들의 날을 모두 기념하기 위해서 '홀리데이 교향곡'의 4악장을 할애하였다. 이 악장에서는 필그림들이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서 신세계에 정착하기까지의 위험한 행로가 표현되어 있고 아울러 살아남기 위해서 불굴의 정신으로 투쟁하였던 역정이 표현되어 있다. 아이브스는 이를 위해 청교도들의 전통 찬송가 멜로디를 자주 인용하였다. 사실상 4악장은 아이브스가 1887년에 플리마우스의 어떤 교회에서 주관하는 추수감사주일을 위해 작곡한 두개의 오르간 곡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아이브스는 '홀리데이 교향곡'의 4악장에 '이건 멋있는 칠면조 조각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그의 처남으로 군인이며 정치가였던 에디 캐링턴 트위첼에게 헌정하였다.
필그림들의 첫 추수감사. 플리마우스에서
○ 바흐의 칸타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He who offers thanks praises me)
신앙심이 깊었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Wer Dank opfert, der preiset mich: BWV 17)라는 칸타타를 작곡한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칸타타는 후가 스타일의 영광스러운 대합창으로 막을 연다. 성악부와 기악부의 연주는 점차 힘있게 발전하며 전체적으로는 후반부에서 서로 부르고 응답하는 듯한 대화가 복잡하게 얽히는 양상을 보이지만 그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간절한 마음과 여호와에게 전하고자 하는 신실한 메시지가 한데 어울려짐을 의미한다. 바흐는 이 곡을 성령강림주일(Trinity Sunday)로부터 14번째 주일을 위해 작곡하였지만 오늘날 교회에서는 감사주일에도 이 곡을 자주 연주한다. 바흐의 이 칸타타는 1726년 9월 22일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당시 바흐는 토마스교회의 칸토(Kantor), 즉 일종의 음악총책임자였다. 바흐는 토마스교회에 있으면서 그의 친척으로 마이닝겐 궁정음악가인 요한 루드비히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를 무려 18곡이나 공연했다. 그러면서 바흐는 '감사로 제사를...' 을 비롯한 자기가 작곡한 칸타타들도 공연하였다. 바흐의 칸타타들, 특히 '감사로 제사를...'의 가사는 작세 마이닝겐 공작인 에른스트 루드비히가 작성했다고 본다. 이런 칸타타들은 어떤 공통된 패턴이 있었는데 대개 7개 악장으로 구성되고 이들을 두 파트로 나누었다. 두 파트에서 첫번째 파트는 구약의 기록들을 가사로 삼은 것이고 두번째 파트는 신약의 구절들을 가사로 삼은 것이다. '감사로 제사를...'의 가사는 예수가 10명의 나병 환자들을 고친 기적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칸타나도 예에 의해서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번째 파트는 설교 전에, 두번째 파트는 설교 후에 부르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면 안된다는 것으로 감사절에 적합한 찬양이다.
예수께서 열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심(누가복음 17장 11-19절)
○ 엥겔버트 훔퍼딩크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에서 '감사의 합창'(Chorus of Thanksgiving)
엥겔버트 훔퍼당크(Engelbert Humperdinck: 1854-1921)의 동화오페라(Marchenoper) '헨젤과 그레텔'은 크리스마스를 위해 작곡된 것이다. 홈퍼딩크의 여동생인 아델하이트 베테(Adelheid Wette)는 오페라 대본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림형제가 정리한 독일 전래 동화인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아델하이트는 자기가 쓴 대본으로 오빠 엥겔버트가 오페라를 만들어 주면 크리스마스에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오페라를 공연해서 기쁘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빠 엥겔버트는 동생 아델하이트의 대본에 음악을 붙여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만들었고 1893년 12월 23일에 봐이마르 호프테아터(궁정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때 지휘는 젊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맡았다. 두번째 공연은 이듬해인 1894년인데 이번에는 12월이 아니라 9월이었고 장소는 함부르크였다. 지휘는 구스타브 말러였다. 오늘날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은 전세계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가 되었지만 (발레는 차이코브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이 오페라의 2막의 피날레에 나오는 '감사의 합창'은 감사절에도 별도로 부르는 합창이 되어 있다. '감사의 합창'은 헨젤과 그레텔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마녀에 의해 생강과자가 되었다가 마녀가 죽자 살아난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으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See how a witch can be bewitched(마녀도 마법에 걸릴수가 있는 것을 보았지)
She'e been turned into gingerbread(마녀가 생강과자가 되었거든)
See how Heaven judges, eveil cannot endure.(하늘의 심판이 어떤지 보았지, 악한 것은 견딜수 없어)
When all hope is gone(모든 희망이 사라질 때)
God reaches out His hand.(하나님은 손을 뻗어 주시지)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에서 감사의 합창. 헨젤은 안젤리카 키르흐슐라거, 그레텔은 디아나 담라우. 아버지는 토마스 알렌.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 몬테베르디의 '감사 미사'(Mass for Thanksgiving)
클라우디도 몬테베르디(1567-1643)의 '감사 미사'는 신대륙에서 필그림들이 첫 추수감사를 지낸 때로부터 10년 후인 1631년에 베니스의 성마르꼬 대성당에서 처음 공연되었으므로 혹시 추수감사를 위한 미사곡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베니스에서 역병이 물러난 것을 감사해서 작곡한 미사곡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미사곡의 악보는 글로리아만 온전히 남아 있고 나머지는 조금씩 훼손되어서 나중에 보완되었다. 이 미사곡의 원래 타이틀은 Solemn Mass for the Feast of Sancta Maria a 4 Voci da Capella(성모 마리아 축일을 위한 4성부의 아카펠라 장엄미사)이다. 장엄미사(라틴어로는 missa solemnis)라는 것은 트리덴트 공의회에서 결정한 대로 완전한 형식의 미사곡을 말한다. 사제와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 그리고 회중들이 미사의 대부분을 노래하는 미사곡이다.
베니스의 성마르꼬 대성당 내부. 몬테베르디의 '감사 미사'가 처음 연주되었다.
○
○
'클래시컬 뮤직 팟푸리 > 클래시컬 뮤직 팟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래시컬 레퍼토리의 흥미 스토리 (0) | 2017.08.09 |
---|---|
세계의 베스트 클래시컬 행진곡 (0) | 2017.08.06 |
가을의 음악 베스트 10 (0) | 2017.07.15 |
대관식 음악 총정리 (0) | 2017.07.12 |
위대한 작곡가들의 이런저런 에피소드 (0) | 2017.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