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네의 모든 것
운디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동화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사람치고 콩쥐와 팥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착한 흥부와 못된 놀부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라든지 호랑이와 곳감에 대한 이야기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콩쥐와 팥쥐, 흥부와 놀부 등등을 잘 알고 있지만 그건 미안하게도 우리나라에 한정된 주인공들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알수가 없는 동화의 주인공들이다. 반면에 우리는 서양 동화의 주인공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백설공주(The Snow White: Schneewittchen: 그림 형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신데렐라(Cinderella: 샤를르 페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있다.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Den lille Havfrue: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The Littel Match Girl: 안데르센),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 샤를르 페로)의 주인공인 오로라 공주,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의 주인공인 오데트 공주, 리틀 레드 라이딩 후드(Little Red Riding Hood: 샤를르 페로)의 빨간 후드 옷을 입은 소녀,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 요제프 야콥스)의 잭 등등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물의 요정인 운디네도 있다.
발레작품인 '인어공주'의 한 장면. 메트로폴리탄. 음악은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cz).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 동화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아마 백설공주와 인어공주일 것이다. 백설공주는 해피엔딩이지만 인어공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해피엔딩보다는 비극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둘다 공주이지만 사람들은 백설공주보다는 인어공주에 대하여 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고 불상하게 생각한다. 인어공주에 버금할 만큼 사랑을 받고 있는 동화의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 유럽 사람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운디네(Undine)이다. 운디네는 누구일까? 간단히 말해서 운디네(또는 영어식으로 언딘)는 물의 님프이다. 보통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등장한다. 운디네는 숲속의 연못이나 폭포수가 내려 떨어지는 커다란 웅덩이에서 살고 있다. 운디네는 여자나 마찬가지여서 그런지 잘생긴 남자들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런 남자들이 나타나면 자기들도 모르게 동경하고 따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려고 한다. 그러나 운디네는 사람이 아니고 정령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사람과 함께 살수가 없다. 그래서 운디네는 사람이 되려고 마녀를 찾아가고 여기에서 비극의 싹이 트는 것이다. 운디네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고 더구나 대체적으로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문학과 예술작품의 주제로 많이 사용되었다. 동화의 주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나 소설, 그림, 영화, 그리고 음악의 소재가 되었다. 음악에 있어서는 운디네 스토리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 경우가 많이 있다.
로르칭의 '운디네'. 비너 슈타츠오퍼가 킨더오페른첼트(Kinderopernzelt)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린 킨더오퍼. 운디네 역에는 아니카 게르하르드스. 현대적 연출. 휴고의 밀회를 저지하고 있는 운디네
따지고 보면 동화를 오페라로 만든 경우가 생각보다는 많이 있다. 동화를 주제로 삼은 오페라를 프랑스에서는 Opéra féerie(오페라 페리)라고 부른다. 그레트리의 '제미르와 아조르'(Zemire et Azor), 다니엘 오버의 '청동 말'(Le cheval de bronze) 등이 이에 속한다. 독일에서는 Märchenoper(매르헨오퍼)라고 부른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엥겔버트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모든 것은 해티 탓'(An allem ist Hütchen: Hattie is to blame for eve), 칼 오르프의 '영리한 하녀'(Die Kluge) 등이 이에 속한다. 영국에서는 Fairy Opera(페어리 오페라)이다. 예를 들면 설리반의 '이올란타'(Iolantha)가 이에 속한다. 운디네 이야기는 너무 감동을 주는 것이어서 독일, 프랑스 보헤미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등에서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굳이 소개하면 알베르트 로르칭의 '운디네', 피터 차이코브스키의 '운디나', ETA 호프만의 '운디네', 세자르 퓨니의 '온디네', 한스 베르너 헨체의 '운디네', 그리고 보헤미아의 드보르작의 '루살카'도 이에 속한다.
드보르작의 '루살카'에서 루살카의 '달에 붙이는 노래'. 소프라노 크리스틴 오팔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옛날에는 세상만물이 4원소로 되어 있다고 믿었다. 불, 물, 공기, 흙을 말한다. 각 원소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운디네는 물의 정령이라고 했다. 운디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파라셀수스(Paracelsus)라고 한다. 스위스 출신의 파라셀수스는 16t세기 독일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했던 의사, 연금술사, 천문학자였다. 그가 그의 '님프의 애인'(Lieber de Nymphis)이라는 저서에서 전설로만 얘기되어 오던 운디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정리해서 발표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비슷한 개념의 존재가 언급된 일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오비드는 '변형'(Metamorphoses)에서 운디네를 연상케 하는 존재를 등장시킨바 있다. 운디네를 처음에 소개할 때에는 물의 정령이라고 했으나 나중에는 물의 님프로 발전한 것도 기억해 둘만한 일이다. 하기야 정령이나 님프나 사촌간이니 크게 문제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정령보다는 님프라는 단어가 더 애착이 간다. 운디네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운다(unda)에서 나왔는데 운다는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 아니라 '파도'(wave)라는 뜻이다. 호수이건 바다이건 파도가 이는 것은 운디네들이 놀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간혹 온디네(Ondine 또는 온딘)라는 단어도 등장하는데 온디네나 운디네나 차이가 없는 스펠링이다.
'운디네'. 폴란드의 알리샤 바클레다(Alicja Bachleda)
운디네는 근세에 들어와서도 계속 문학작품의 주제가 되어 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이다. 인어공주도 따지고 보면 운디네이다. 안데르센은 덴마크 사람이므로 우리가 '인어공주'라고 부르는 동화도 당연히 덴마크어로 써졌다. '인어공주'의 덴마크어 제목은 Den lille Havfrue이다. 번역하면 '리틀 항구여인'이다. 그것을 영어로 The Little Mermaid라고 번역했다. '리틀 인어'라는 뜻이다. 리틀 인어보다는 기왕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주라는 호칭을 붙여서 '인어공주'라는 번역이 가능했다. 운디네에 대한 이야기를 16세기에 독일의 파라셀루스라는 시인이 처음으로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지만 사실상 운디네를 주인공으로 삼은 공식적인 첫 소설은 1811년에 출판된 프랑스의 프리드리히 드 라 푸케(Friedrich de la Fouqué)의 '윈댕'(Undine)이다. 윈댕은 운디네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프리드리히 드 라 푸케의 '윈댕'은 당연히 파라셀수스의 '님프의 애인'(Liebe de Nymphis)를 참고로 삼은 작품이다. '님프의 애인'은 님프인 운디네가 인간과 결혼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 인간이 될수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 내용도 사실 따지고 보면 17세기에 유행했던 비교적(秘敎的)인 소설 '가발라 백작'(Comte de Gabalis)의 내용에서 빌려온 것이다. 소설에서 가발라 백작이란 사람은 온갖 비교적인 방법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Aloysius Bertrand: 1807-1841)의 시작(詩作)인 '밤의 갸스파르'(Gaspard de la Nuit)도 운디네 전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밤의 갸스파르' 중에서 하나의 제목이 '온딘'(Ondine)였다. 갸스파르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궁전의 보물을 책임지는 사람을 말한다. '밤의 갸스파르'는 밤에도 왕실의 보물을 지키는 갸스파르라는 의미이며 이것이 나중에 '밤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발전하였다. 즉, 보석과 같은 중요한, 어둡고 신비한, 은밀하고 기괴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운디네에게 적합한 설명들이 아닐수 없다. 이 시는 나중에 프랑스의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에게 영향을 주어 그는 1908년도 솔로 피아노를 위한 작품인 '밤의 갸스파르'를 작곡하였다.
장 지라드의 연극 '온딘'의 무대
님프 운디네의 이야기는 프랑스의 모리스 메테르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희곡 '플레아와 멜리상드'(Pelléas et Mélisande)를 만들게 했다. 연극 '플레아와 멜리상드'는 특이하게도 1893년 5월 17일에 단 한번만 무대에서 공연되고 더 이상 공연되지 않은 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당시의 도덕기준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인것 같았다. 연극 '플레아와 멜리상드'가 공연되는 날, 젊은 작곡가인 클로드 드비시도 관람석에 앉아 있었다. 드비시는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극본을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오늘날 드비시의 오페라 '플레아와 멜리상드'는 세계의 여러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뛰어난 작품이 되어 있다. 한편, 1939년에 발표된 프랑스의 극작가 장 지라두(Jean Giradoux)의 연극 '온딘'(Ondine)도 프리드리히 드 라 모트 푸케의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독일의 작곡가인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1926-2012)가 안무가인 프레데릭 애쉬턴(Frederick Ashton), 그리고 세기의 발레리나인 마고 폰테인(Magot Fonteyn: 1919-1991)과 공동으로 만든 발레곡 '운디네'도 당연히 푸케의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의 작가로서 한스 베르너 헨체의 친구인 잉게보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은 발레 '운디네'의 런던 초연에 참석한 후에 '그저그런 운디네 이야기'(Undine geht)라는 단편을 썼다. 그는 이 단편소설에서 운디네를 '인간도 아니고 물의 정령도 아닌 존재이다. 운디네는 아이디어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운디네에 대한 색다른 견해였다. 프리드리히 드 라 모트 푸케의 소설 '님프의 애인'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인어공주'(1837)를 내놓게 했다. 미국의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도 푸케의 이갸기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밖에도 여러 작가들이 운디네 이야기를 변형해서 그들의 작품에 소화했다.
드비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환상적인 무대
이번에는 '운디네 저주'라는 색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희귀한 질병 중에 선청성 집중 호흡저하증(Congenital central hypoventilation syndrome)이란 것이 있다.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쉴수 없는 증세이다. 그래서 밤에 잘 때에 갑자기 숨을 멈추는 바람에 옆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 증세에 있는 사람은 잘못하면 질식사할 위험이 있다. 이 증세를 다른 말로는 '운디네 저주'(Undine curse)라고 한다. 프랑스의 장 지라두의 희곡인 '온딘'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물의 님프인 온딘(운디네)은 인간세계에서 한스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어 결혼키로 약속한다. 온딘이 한스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면 온딘이 한스에게 '나는 당신 발의 신발이 되겠어요. 나는 당신 폐의 호흡이 되겠어요'라고 말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온딘은 한스와의 결혼에 앞서서 삼촌인 온딘들의 왕과 약속을 한다. 만일 한스가 단 한번만이라도 온딘을 속인다면 한스는 죽게 된다는 것이다. 온딘과 한스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다. 온딘은 행복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런데 한스는 온딘 몰래 옛 애인인 베르타 공주를 다시 만난다. 그 사실을 알고 실망한 온딘은 한스를 떠나 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여섯 달 후에 어부에게 잡혀 다시 인간세계로 나온다. 온딘은 누구보다도 먼저 한스를 만나고자 한다. 그런데 한스를 찾아간 바로 그날은 한스가 베르타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온딘은 한스에게 왜 자기를 속였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한스는 '당신을 알고 난 후에 나의 몸은 예전 같지가 않아요. 어떤 특별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숨조차 쉴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온딘과 한스는 옛 사랑을 회상하면서 마지막으로 키스를 한다. 그러자 한스는 그자리에서 숨을 거둔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로부터 온딘의 저주라는 용어가 생겼고 이어 의학적으로 호흡저하증이라는 병세가 설명되었다.
영화 '온딘'의 한 장면. 온딘 역의 오드리 헵번, 한스 역의 멜 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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