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파바로티 신화
(Luciano Pavarotti: 1935. 10. 12 이탈리아 모데나 - 2007. 9. 6 이탈리아 모데나)
2017년으로서 세기의 테너 루차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위대한 성악가인 파바로티는 클래식 성악의 세계에서 여러가지 세계기록들을 수립하였다. 몇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 파바로티는 오페라의 역사상 가장 많은 커튼 콜을 받은 성악가이다. 아마 오페라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회에서 제일 많은 커튼콜을 받았을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2월 24일,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네모리노(사랑의 묘약)를 맡았을 때였다. 무려 167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커튼콜에서 박수를 받은 시간은 무려 1시간 7분이었다. 아직까지 167회의 커튼콜 기록을 깬 사람은 없다. 1991년 7월 30일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오텔로를 맡았을 때에는 101회의 커튼콜을 받은 것이 그 다음이다. 그런데 도밍고가 받은 커튼콜 시간은 파바로티보다 8분이 더 많은 1시간 15분이었다. 베를린에서건 비엔나에서건 극장에 왔던 사람들은 모두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밍고의 1시간 15분은 오페라에서였고 일반 연주회에서는 파바로티가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오랜 시간동안 박수를 받은 기록을 세웠다. 2006년 2월 10일 토리노 동계올림픽 폐막시간에서였다. 파바로티는 '네순 도르마'를 불렀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올림픽 선수들 및 관중들은 무려 1시간 30분 동안 파바로티를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오페라 공연이 되었던지 또는 일반 콘서트가 되었던지 기립박수를 받는 것은 연주자로서 큰 영광이다. 파바로티는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동안 기랍박수를 받은 기록을 세웠다. 2004년 3월 13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토스카'의 카바라도시를 맡았을 때였다. 공연이 끝난 후 무려 12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무대는 파바로티로서 메트로폴리탄에서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네모리노 역의 파바로티
- 파바로티가 취입한 CD 앨범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 앨범이었다. The Three Tenors 라는 앨범인데 실은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와 공동으로 취입한 것이다. 스리 테너스는 1990년에 결성되었다. 스리 테너스는 로마에서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때 전야제날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처음 연주회를 가졌다. 주빈 메타가 지휘한 연주회였다. 이후 스리 테너스 콘서트는 2005년 멕시코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가질 때까지 24회의 콘서트를 가졌으며 이로 인한 전체 음반 판매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게으른 탓에 스리 테너스 CD가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파악하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단번에 수백만장이 팔렸다는 얘기다. 스리 테너스는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에 잠실운동장에서 공연한 일이 있다. 참고로 클래식 CD 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은 The Three Tenors 라는 타이틀 아래 Carerras, Doming & Pavarotti in Concert 라는 음반으로 Decca 가 발매한 것이 제일이며 다음은 비발디의 '사계', 그 다음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1990년에 카레라스, 도밍고, 파바로티가 스리 테너스를 결성하고 첫 콘서트를 가졌을 때 연주실황을 음반으로 만드는데 따른 사례는 세사람이 아주 명목상의 사례비만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세 사람은 음반제작으로 인한 수입은 모두 자선목적으로 기부키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데카가 발매한 스리 테너스 음반은 상상외로 대인기를 끌어서 당장에 수백만장이 팔리는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당연히 세 사람의 테너들은 그럴줄 알았으면 데카에게 출연료를 적당히 요구할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후회하였다. 그런데 실은 데카가 파바로티에게만 남모르게 상당액의 사례비를 지급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데카는 파바로티를 스리 테너스의 대표로 인정해서 그에게만 사례비를 주었다는 것이다. 도밍고가 파바로티에게 그게 사실이냐고 묻자 파바로티는 '무슨 소리냐? 한푼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카레라스와 도밍고는 정확한 증거도 없이 파바로티를 의심하면 안될 것 같아서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서 이들의 과거 대리인이었으면 현재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헤버트 브레슬린이 '사실 그때 파바로티는 데카로부터 1백 50만불의 사례금을 받았으며 다른 두 사람은 받지 않았다'라는 내용의 글을 써놓은 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런 사실이 밝혀진 후로부터는 지난 일을 가지고 파바로티에게 무어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어서 스리 테너스 연주회를 가질 때마다 시례비를 정확히 요구하게 되었다. 하여튼 파바로티는 돈에 대해서는 놀라운 애착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스리 테너스
- 파바로티는 개인 연주회를 통해서 가장 많은 액수의 자선기금을 모금하였다. 파바로티는 매년 그의 고향인 모데나에서 '파바로티와 친구들'(Pavarotti and Friends)이라는 자선모금 연주회를 가졌다. 주로 UN의 자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연주회였다. 물론 파바로티 혼자서 주관한 연주회가 아니라 여러 음악인들이 우정 출연해 준 음악회였다. 예를 들어서 1995년에는 보스니아 난민을 위한 연주회로서 보노(Bono)와 유투(U2)와 함께 연주회를 가졌다. 이 때 850만불의 자선기금을 모금하였다. 그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에서는 330만불을 모금했고 1995년 코소보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에서는 1백만불을 모금하였다. '파바로티와 친구들'이 개최하였던 자선음악회 중에서 중요한 것만 소개하면, 보스니아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1995), 전세계 전쟁고아를 위한 자선음악회(1996), 리베리아 어린이를 위한 자선음악회(1998), 과테말라와 코소보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1999), 캄보디아와 티베트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2000),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2001), 앙골라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2002), 이락 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2003)이다.
모데나의 '파바로티와 친구들'에 출연한 파바로티
- 파바로티는 두번 결혼했다. 첫번째 부인은 아두아 베로니(Adua Veroni)로서 파바로티가 26세 때인 1961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세 딸을 두었다. 로렌차, 크리스티나, 줄리아나이다. 아두아는 와병 중에 2000년에 세상을 떠났다. 파바로티와의 결혼 생활 34년이었다. 파바로티는 아두아가 세상 떠나기 훨씬 전인 1993년부터 니콜레타 만토바니(Nicolleta Mantovani: 1969-)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아두아가 세상을 떠난지 3년 후인 2003년에 결국 니콜레타와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그때 니콜레타는 23세였고 파바로티는 그보다 배가 넘은 58세였다. 파바로티와 니콜레타가 처음 만난 것은 볼로냐에서 열렸던 국제승마대회에서였다. 니콜레타는 볼로냐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니콜레타는 학비에라도 보태려고 국제승마대회에 임시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파바로티는 승마광이나 마찬가지여서 마침 국제승마대회에 참관차 왔다가 사무실에서 니콜레타를 만나 친하게 되었다. 그후 몇주간 동안 파바로티는 니콜레타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어느날 파바로티는 니콜레타에게 세계순회공연에 개인비서로서 함께 가자고 권했다. 물론 니콜레타는 거절했다. 그러자 파바로티는 그러면 떠나는 날 공항에라도 나와 달라고 말했다. 공항에 나갔던 니콜레타는 운명의 덫에라고 걸린듯 파바로티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톨릭인 두 사람은 당장 결혼할수 없었다. 부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차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니콜레타는 파바로티가 입버릇처럼 '나는 사실 니콜레타보다 젊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면서 '마음 속에 어린이가 있지 않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두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은 모두 니콜레타보다 나이가 많았다. 니콜레타는 2003년에 쌍둥이를 조산하였다. 알리스와 리카르도였다. 리카르도는 사산되었다. 그래서 아무튼 파바로티는 네 딸을 두게 되었다. 니콜레타는 쌍둥이를 출산한지 얼마 후에 파바로티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날 때에 그에게는 손녀도 하나 있었다.
- 파바로티가 2007년 9월 6일 고향 모데나에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재산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파바로티의 재산은 부동산으로 뉴욕과 몬테 칼로와 모데나에 있는 저택, 그리고 페사로에 있는 빌라를 포함해서 약 2억 5천만 파운드가 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천 8백억원이 된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3억 유로인데 우리 돈으로는 4천 1백억원이 된다. 또 어떤 계산에 의하면 4억 7천 4백만 달러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돈으로 약 5천 4백억원이 된다.) 이탈리아법에 따르면 그중에서 25%는 니콜레타가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50%는 네 딸들에게 공평하게 상속된다. 한 사람에게 12.5%의 재산이 상속되는 것이다. 나머지 25%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파바로티의 숨겨놓은 자녀가 나타난다든지 숨겨놓은 부인이 나타난다면 대개의 경우 그들의 몫이 된다. 그러나 아무런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또 다시 니콜레타와 네 딸들이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놓고 법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파바로티는 사람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하여튼 죽기 전에 두 장의 유서를 만들어 놓았다. 하나는 이탈리아 국내법에 의해 유산을 배분한다는 내용이었다. 파바로티는 니콜레타에게 재산의 반을, 나머지 반을 네 딸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으로 유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유서는 미국에 있는 모든 재산은 니콜레타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전처의 세 딸들이 들고 일어났다. 페사로 법원에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페사로의 검사는 파바로티가 유서에 서명할 때에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인정할수 없다고 나왔다. 그후 니콜레타의 변호사는 모든 분쟁이 원만하게 타결되었다고 발표했지만 내용이 어떠한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무튼 세월이 흘러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난지도 몇년이 지났고 분명히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인데도 발표된 사항은 없다. 니콜레타도 도무지 함구하고 있어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가 없다.
파바로티와 니콜레타와 딸 알리스. 2004년인듯. 니콜레타는 파바로티 유산의 4분의 1을 받게 되어 있고 알리스는 12.5%를 받게 되어 있다. 유산의 4분의 1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천억원이 된다.
- 파바로티는 이탈리아의 모데나에 집을 가지고 있지만 페사로에 별장이 있고 뉴욕에는 아파트 세채가 있으며 몬테 칼로에도 아파트가 있었다. 모나코는 세금천국이나 마찬가지여서 재산세, 소득세 등에 대하여 극히 관대한 곳이었다. 파바로티는 오랫동안 거주지가 몬테 칼로라고 주장하여서 이탈리아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법원은 파바로티가 실제로 몬테 칼로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서 1999년에 파바로티의 주장을 기각했다. 파바로티는 2000년에 이탈리아 정부에게 1989년부터 1995년까지 미납세금과 가산금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 760만불로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87억원이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01년에 파바로티를 탈세범으로부터 무죄로 인정했다.
- 파바로티는 2006년 7월에 세계 여러나라에서 '고별 연주회'를 갖는 중에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pancreatic cancer)라는 진단을 받았다. 파바로티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파바로티는 예정되어 있던 모든 연주를 취소하고 회복될 것을 예상하여서 그 이후로 잡았다. 그러나 수술은 받았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2007년 9월 7일에 모데나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9월 10일 모데나 대성당에서 열렸다. 당시 이탈리아 수상인 로마노 프로디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코피 아난이 참석했다. 이탈리아 공군의 특수비행팀인 프레체 크리콜로리가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녹백적색의 연기를 뿜으며 모데나 대성당 상공을 특별 비행했다. 운구행렬이 모데나 중심지를 통과할 때에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파바로티는 대성당에서 10km 떨어진 몬탈레 란고네(Montale Rangone)에 있는 파바로티 가족묘에 안장되었다. 장례식은 CNN을 통해서 세계에 중계되었다. 어느 대통령이나 국왕도 이러한 전례를 받지 못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홀에는 대형 조기가 내걸렸다.
파바로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위해 모데나 대성당 앞 광장에 운집한 인파.
- 2017년 9월 7일 파바로티 서거 10주기를 맞이해서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파바로티 생전에 스리 테너스로 함께 노래를 불렀던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가 특별 출연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2CELLOS도 특별 출연했다. 루카 술리츠(Luka Sulic)와 스테이판 하우저(Stjepan Hauser)이다. 이밖에도 팝송 가수들도 출연했다.
파바로티 서거 10주기 기념음악회. 이탈리아 베로나. 2017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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