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음악
올림픽 수중발레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2016년 리오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러시아 수중발레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서 스포츠가 주역이지만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은 개회식과 폐회식에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경기에 대한 직접적인 역할도 중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피겨 스케이팅과 수중발레, 즉 신크로나이즈드 스위밍(Synchronized swimming)이다. 경기에서의 음악을 위해 어떤 나라는 특별위원회까지 두어서 음악 선곡에서부터 연주까지를 주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림픽에서 음악의 허이라이트는 개폐회식에서 나타난다. 최근들어 올림픽의 개폐회식은 개최국들이 마치 국력을 과시하는듯 화려하고 장엄하게 진행한다. 이때에 사용되는 음악의 중요성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올림픽기가 게양되거나 성화가 점화될 때에 울려퍼지는 올림픽 찬가는 올림픽 음악의 주역이다. 그러한 이벤트에서는 원래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지정하는 올림픽 찬가를 연주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오늘날에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찬가를 만들어서 연주하는 모양새다. 음악과 관련한 또 하나 중요한 올림픽 행사가 있었다. 올림픽과 함께 열리는 예술경연대회였다. 건축, 문학, 음악, 회화, 조각 등 다섯 분야로 나누어서 올림픽과 관련한 작품들을 출품토록 해서 올림픽 경기와 마찬가지로 금, 은, 동 메달을 수여하는 행사였다. 비록 몇 번에 걸쳐 시행되다가 어쩐 일인지 오늘날에는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몇 번의 경연대회를 통해 훌륭한 올림픽 음악들을 탄생시켰던 것도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대체 이것저것 합해서 지금까지 올림픽을 위해서, 또는 올림픽과 관련되어서 작곡된 클래시컬 음악들로서는 어떤 것이 있는시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의 텐리 알브라이트(Tenley Albright: 1935-)는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쪼(Cortina d'Ampezzo)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이때 사용된 음악은 자크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발췌한 곡들이었다. 선곡을 위해서는 별도의 위원회가 구성되어서 활동했다.
오페라 작곡가로 더 잘 알려진 그리스의 스피리돈 사마라스(Spyridon Samaras)는 1896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리는 최초의 근대 올림픽을 위해 '올림픽 찬가'를 작곡했다. 그리스의 시인 코스티스 팔라마스(Kostis Palamas)가 가사를 붙인 '올림픽 찬가'는 합창 칸타타이다. 아테네의 올림픽 찬가가 대인기를 끌자 그후 올림픽을 주관하는 나라들은 '우리도 우리나라 작곡가에 의한 별도의 올림픽 찬가를 만들수 있다'는 심정을 갖게 해 주었고 실제로 몇 몇 나라들은 자기나라 작곡가에 의한 별도의 '올림픽 찬가'를 만들어서 개회식이나 폐회식에서 사용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올림픽 찬가'가 그러하고 1984년 로스안젤레스 올림픽을 위해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올림픽 팡파레와 주제'가 그러하다. 이와는 별도로 '올림픽 예술경연대회'(예술올림픽)를 통해서 올림픽 관련 음악들이 출품되었고 수상자들이 선정되어서 올림픽의 의미를 더욱 높여주었다. 올림픽 예술경연대회는 사실상 지금까지 7회밖에 열리지 못했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로서는 올림픽 하나만 준비하는데도 힘들어서 죽겠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예술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니까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그보다도 양대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하계나 동계 올림픽 자체도 열리지 못하는 마당에 예술올림픽까지 열기는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예술올핌픽은 첫회가 1912년 스톡홀름에서, 두번째가 1920년 안트워프에서, 세번째가 1924년 파리에서, 네번째가 1928년 암스테르담에서, 다섯번째가 1932년 로스안젤레스에서, 여섯번째가 1936년 베를린에서, 일곱번째가 1948년 런던에서 열리고는 더 이상 진정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음악분야에서는 처음에 분과를 작곡 하나로 한정했는데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무슨 생각을 했던지 노래, 기악곡, 오케스트라의 세 분야로 구분하였고 이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노래 분야를 솔로와 합창분야로 확대하였으며 나머지 기악곡과 오케스트라는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1948년 런던 올림픽 때에는 성악, 기악과 실내악, 합창과 오케스트라곡으로 분류하였다.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린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우승한 그리스의 스피리돈 루이스(Spiridon Louis)가 결승점에 들어오고 있는 장면.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여 모습을 보인후 더 이상은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7회에 걸친 예술올림픽에서 음악분야 수상작품과 수상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1912년 스톡홀름 하계 올림픽과 함께 열린 예술경연대회의 음악 카테고리에서는 금메달을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바르텔레미(Riccardo Barthelemy)의 '올림픽 승리 행진곡'(Olympic Triumphal March)이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해당작이 없었다.
- 1920년 안트워프 하계 올림픽과 함께 열린 예술경연대회의 음악 카테고리에서는 금메달은 벨기에의 조르즈 모니어(Georges Monier)의 '올림피크'(Olympique)가 차지했고 은메달을 이탈리아의 오레스테 리바(Oreste Riva)의 '승리행진곡'(Marcia trionfale)이 차지했다. 동메달은 없었다.
- 1924년 파리 하계 올림픽과 함께 열린 예술경연대회의 음악 카테고리에서는 아무런 수상자도 내지 못하였다.
- 1928년 암스테르담 하계 올림픽과 함께 열린 예술경연대회의 음악 카테고리는 노래, 기악곡, 오케스트라의 세 분야로 나누어 심사되었는데 노래 분야와 기악곡 분야는 아무런 수상자를 내지 못하였고 오케스트라 분야에서는동메달을 덴마크의 루돌프 시몬센(Rudolph Simonsen)의 '교향곡 2번 헬라스(Hellas)'가 차지했다. 루돌프 시몬센은 당시에는 아마추어였으나 나중에는 왕립덴마크음악원의 학장으로 활동했다.
- 1932년 로스 안젤레스 하계 올림픽과 연계하여 개최된 예술경연대회의 음악 카테고리에서는 금메달과 동메달은 해당자가 없었고 은메달을 체코의 요제프 수크(Josef Suk)의 교향적 행진곡인 '새로운 삶 속으로'(Into a New Life)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원래 올림픽을 위해 작곡한 것이 아니다. 1919년에 슬로바키아의 남부 지방이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되자 군대를 소집하는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작곡한 것이다. 요제프 수크는 나중에 행진곡 파트를 연장하고 교향곡 스타일로 편곡해서 로스안젤레스 예술올림픽에 제출했던 것이다.
- 1936년의 베를린 하계 올림픽과 관련해서 주선된 예술경연대회의 음악 카테고리는 세 분야로 구분되어 시상되었다. 노래와 합창 분야에서는 금, 은, 동 메달 수상자가 모두 나왔는데 금메달은 독일의 파울 회퍼(Paul Hoffer)의 '올림픽 서약'(Olympic Vow)이 차지했고 은메달은 역시 독일의 쿠르트 토마스(Kurt Thomas)의 '올림픽 칸타타'가 차지했으며 동메달 역시 독일의 하랄트 겐츠머(Harald Genzmer)의 '달리는 사람'(The Runner)이 차지했다. 기악분야에서는 금, 은, 동 모두 해당자가 없었다. 오케스트라 분야에서는 금메달을 독일의 베르너 에그크(Werner Egk)의 '올림픽 축제 음악'(Olympic Festive Music)이 차지했고 은메달은 이탈리아의 리노 리비아벨라(Lino Liviabella)의 '승리자'(The Voctor)가 차지했으며 동메달은 체코의 야로슬라브 크리츠카(Jaroslav Kricka)의 '마운틴 모음곡'(Mountain Suits)이 차지했다.
- 전후 처음으로 열린 1948년의 런던 하계 올림픽과 함께 개최된 예술경연대회에서는 음악 카테고리에서 성악분야는 금메달과 은메달 해당자가 없이 동메달만 이탈리아의 가브리엘레 비안키(Gabriele Bianchi)의 '인노 올림피오니코'(Inno Olimpionico)가 받았다. 기악 및 실내악 분야에서는 금메달 해당자는 없고 은메달은 캐나다의 존 봐인츠봐이크(John Weinzweig)의 '솔로 플루트와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트'(Divertiment for Solo Flute and Strings)가 받았고 동메달은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라우리첼라(Sergio Lauricella)의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Toccata per Pianforte)가 받았다. 이어 합창과 오케스트라 분야에서는 금메달은 폴란드의 츠비그니에브 투르스키(Zbigniew Turski)의 '올림픽 교향곡'이 받았고 은메달은 핀란드의 칼레르보 투카넨(La;ervo Tuukkanen)의 '카르훈피티'(Karhunpyynti)가 받았으며 동메달은 덴마크의 에를링 브레네(Erling Brene)의 '체력'(Vigeur)이 받았다. 캐나다의 존 봐인츠봐이크는 나중에 토론토대학교 음악대학의 교수로 활약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과 연계하여 열리는 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한 작품들을 심사하는 장면(회화와 조각)
올림픽 예술경연대회와는 관계없이 미국의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는 1984년 로스안젤레스 올림픽을 위해 '올림픽 팡파레와 주제'를 작곡하였다. 미국 영화음악의 대부인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올림픽 주제는 로스안젤레스 올림픽 뿐만 아니라 이후의 세 올림픽 경기에서 연주되었다. 미국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팡파레를 위해 기여한 경우이다. 존 윌리엄스의 '올림픽 팡파레와 주제'는 근대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하는 1996년의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의 올림픽에서도 개회식에서 연주되었다. 그러나 이 때에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오 아르노(Leo Arnaud)의 '나팔수의 꿈'이라는 작품과 융합되었다. '나팔수의 꿈'은 올림픽을 위해서 작곡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방송국이 올림픽 중계를 하면서 그 음악을 시그널 뮤직으로 삼았기 때문에 마치 올림픽 주제가처럼 되었다. 그리스의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는 고대 올림피안(제우스, 아폴로)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을 위해 '칸토 올림피코'(Canto Olimpico)를 작곡했다. 7개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적 오케스트라 작품인 '칸토 올림피코'는 단순한 음악이면서도 초시간적인 작품이다. 1992년의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테오도라키스에게 작곡을 의뢰하는 것과 동시에 바르셀로나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e)에게 올림픽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줄 것을 부탁했다. 몽세라 카바예는 영국의 보컬 그룹인 퀸(Queen)의 리드 싱거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와 합작하여서 '바르셀로나'라는 노래를 탄생시켰다.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오프닝에서 불려진 이래 팝 클래시컬 크로스오버의 히트작품이 되었다. 미국의 작곡가인 마이클 토크(Michael Torke)가 작곡한 '제벌린'(Javelin: 투창)은 1996년 아틀란타 하계 올림픽의 개회식에서 연주되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이 곡은 트랙과 필드 경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부르는 몽세라 카바예와 프레디 머큐리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게임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4년마다 한번씩 열렸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서는 세가지 경기밖에 없었다. 레슬링, 달리기, 원반던지기였다. 그리고 음악이 있었다. 트럼펫으로 경기장의 선수들을 불러 모았고 5종경기에서는 플루트를 연주하였다. 또한가지 주목할 것은 올림픽 경기와 함께 음악 행사도 열렸다는 것이다. 노래자랑이었다. 자기가 작곡한 찬가를 노래하는 경연대회였다. 내용도 좋고 노래도 가장 잘 부른 사람이 상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 경기는 기본적으로 신중의 신인 제우스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단결토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제우스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기독교인이라고 판단하여서 핍박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포츠 정신이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체육을 진흥하고 음악 활동을 중요시하는 기본 목적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이 열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거의 1천년이 지난 1896년에 음악을 애호하는 프랑스의 피에르 드 꾸베르탱 남작은 예술과 스포츠가 연합하는 올림픽을 구현코자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꾸베르탱 남작은 '육체적인 경쟁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경쟁도 함께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꾸베르탱은 새로운 형태의 올림픽, 즉 예술올림픽의 추진을 위해 1894년에 파리에서 여러 국가들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 나팔을 불고 리라를 켜는 모습을 볼수 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96년에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근대 올림픽이 열렸다. 꾸베르탱 남작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올림픽 찬가'가 울려퍼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들었을 것이다. 꾸베르탱 남작의 소원인 스포츠 경기와 함께 예술경연대회를 가지는 일은 1912년에야 이루어질수 있었다. 스톡홀름 올림픽에서였다. 음악, 문학, 회화, 조각, 건축의 분야에서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바르텔레미라는 작곡가의 '올림픽 승리 행진곡'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없었다. 메달 수상작을 심사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우선 출품자는 아마추어야 했다. 올림픽 참가자의 자격도 아마추어야 한다는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올림픽과 연계되어서 열리도록 한 예술경연대회는 1948년에 시행하고서 그 이후로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실상 기 이후로부터는 올림픽에서 음악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되었다. 특히 개회식에서 그러했다. 가장 유명한, 다른 의미로 말해서 가장 악명 높았던 올림픽 개회식 음악의 예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찾아볼수 있을 것이다. 나치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그리스의 사마라스가 작곡한 '올림픽 찬가'를 개회식에서 사용할 것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도 아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별도로 '올림픽 찬가'를 작곡토록하고 그것을 사용하겠다고 내세웠다. 베를린의 개회식은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과 축포 발사와 수천마리의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나치교향악단이 대단한 '올림픽 찬가'를 연주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는 줄다리기(tug-of-war)도 경기종목이었다. 스웨덴 팀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부터 예술경연대회(예술올림픽)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948년을 마지막으로 휴강에 들어갔다.
베를린의 '올림픽 찬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하고 개회식에서 그가 직접 지휘하여 연주되었지만 사실상 그는 스포츠를 경멸하는 입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치에 대하여도 적극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심지어 '슈트라우스는 올림픽 찬가를 왼손으로 작곡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슈트라우스 자신도 '올림픽 찬가'를 작곡해 달라고 해서 작곡은 했지만 별로 대단한 작품은 못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그는 자기의 작품이 나치 선전장이나 마찬가지인 베를린 올림픽에서 연주되는 것을 심하게 말해서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슈트라우스는 올림픽이라는 기회를 이용해서 침체 분위기의 독일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자 했다. 그러므로 슈트라우스를 친나치주의자이니 뭐니 하면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튼 베를린 이후 올림픽을 주관하는 나라들은 자국 작곡가에게 올림픽 찬가의 작곡을 의뢰한 경우가 더러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은 1984년도 로스안젤레스 올림픽을 위해 필립 글라스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그래서 나온 것인 '올림피안'(The Olympian)이었다. 필립 글라스라고 하면 미니멀리즘 음악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데 '올림피안'은 웅장한 주제에 의한 전통적인 작품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연주시간은 약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필립 글라스는 2004년 아테네 경기를 위해서도 작곡을 했다. 1994년에 아틀란타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미국의 신예 작곡가인 마이클 토크(Michael Torke)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토크는 글라스와 마찬가지로 보이려고 하는 화려하고 장엄한 제스추어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주제에 더욱 초점을 두기로 했다. 스포츠맨쉽, 용기, 경쟁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자 했다. 토크의 작품은 '재벌린'이라는 제목의 것이다. 투장을 말한다. 창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때 나오는 소리를 캐치해서 요사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서 피아니스트 랑 랑이 어떤 소녀와 함께 '황하 협주곡'의 테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고대 올림픽은 당대의 시인이 자기의 시를 리라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것으로 폐회되곤 했다. 아주 단순한 폐회식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현대의 올림픽에서는 점점 더 스펙터클한 시각적 효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서 1984년 로스안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제트 팩을 짊어진 사람이 84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조지 거슈윈의 '라프소디 인 블루'를 연주하는 가운데 공중을 가르며 개회식장 한 가운데 낙하하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1988년도 서울올림픽에서는 취타대가 올림픽기를 옹위하여 입장했지만 올림픽기가 게양될 때에는 한국어로 가사를 만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되었다. 1992년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그룹 퀸(Queen)의 리드 싱어인 프레디 머큐리가 세계적인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합작하여서 '바르셀로나'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Ozawa Seiji: 小澤征爾)가 베이징, 베를린, 시드니, 뉴욕, 케이프 타운의 합창단들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피날레 '환희의 송가'를 각지에서 부르는 것을 위성중계로 지휘했다. 그리고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음악도 잊을수 없다. 2008명의 고수들이 군대식으로 북을 치는 장관이 연출되었고 이어서 열정적인 피아니스트 랑 랑(Lang Lang: 朗朗)이 '황하 협주곡'에 나오는 주제 멜로디를 연주했다. 올림픽에서 음악의 역할을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1984 로스안젤레스 올림픽 개회식에서 교향악단과 84명의 피아니스트들이 거슈윈의 라프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다. 원주아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피아니스트들이다.
1984년 로스안젤레스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제트 팩을 장착한 사람이 경기장에 낙하할 때에 84명의 피아니스트들이 거슈윈의 '라프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다.
2018년 2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에는 러시아 선수들이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그렇게 결정했다. 국가가 주도하여 올림픽 참가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러시아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다면 그것은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이들은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lympic Athlete from RussiaㆍOAR)의 일원으로 경기에 참가한다. 이들은 러시아란 국가명과 러시아 국기가 박힌 유니폼 대신 OAR이라는 글씨와 올림픽 오륜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다. 러시아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시상대에서는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를 연주토록 했다. 영어로 번역된 올림픽 찬가의 가사를 소개한다. 사실상 여러 버전이 있기는 하다.
O Ancient immortal Spirit, pure father
of beauty, of greatness and of truth,
Descent, reveal yourself and flash like lightning here,
within the glory of your own earth and sky.
At running and at wrestling and at throwing,
Shine in the momentum of noble contests,
And crwon with the unfading brach
And make the body worthy and ironlike.
Plains, mountains and seas glow with you
Like a white-and-purple great temple,
And hastens to the templke here- your pilgrim,
O Ancient immortal Spirit - every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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