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크레네크
에른스트 크레네크
에른스트 크레네크(Ernst Krenek: 1900-1991)는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비엔나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베를린에서 음악공부를 했지만 부모가 체코 오리진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아니라 체코의 작곡가로 간주하는 인물이다.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아버지는 체코 출신이지만 비엔나에 있는 오스트로-헝가리 육군의 병사였다. 크레네크는 무조음악의 작품들을 작곡했다. 현대 스타일의 오페라도 수십편을 작곡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요니가 연주하다'(Jonny spielt auf), 그리고 3부작인 '독재자'(Der Diktator), '비밀왕국'(Das geheime Königreich), 국가의 명예(Die Ehre der Nation 또는 Schwergewicht: 헤비웨이트)이다. '요니가 연주하다'는 흑인이 출연하는 재즈 오페라이다. 나치는 크레네크의 오페라들을 퇴폐음악으로 규정하고 연주하지 못하도록 했다. 크레네크는 나치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남은 생애를 미국에서 보냈다. 크레네크는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예를 들면 1939년에 발표한 Music Here and Now이다. 크레네크는 어떤 때는 손턴 윈슬로(Thornton Winsloe)라는 가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에른스트 크레네크는 비엔나의 18구 아르가우어가쎄(Argauergasse) 3번지에서 1900년 8월 23일 태어났다. 그것을 기념해서 그 집에 기념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아르가우어가쎄 3번지는 겐츠가쎄(Genzgasse)의 모퉁이 건물이기도 하다. 크레네크는 소년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크레네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에서 세상을 떠났다.
크레네크 생가 기념명판. 내용은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에른스트 크레네크가 1900년 8월 23일 이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1991년 12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오스트리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설치했다'이다.
18구 아르가우어가쎄 3번지의 크레네크 생가.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13구 히칭의 뮐바허가쎄(Mühlbachergasse) 6번지는 크레네크가 1932년부터 1937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크레네크는 이 곳에 있을 때에 주요 작품을 작곡했고 또한 저술활동을 했다. 크레네크는 이 집에 있다가 1938년에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현대음악, 특히 재즈음악을 퇴폐음악으로 규정하고 탄압하자 더 이상 비엔나에 있을 이유가 없어서 미국으로 떠났다. 크레네크는 미국에서 처음에는 뉴욕주 푸킵시(Poughkeepsie)에 있는 바사르(Vassar)여자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2-47년에는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 있는 햄라인(Hamline)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크레네크는 이곳에서 작곡가인 글레이디스 노르덴스트롬(Gladys Nordenstrom)와 결혼했다. 세번째 부인이었다. 글레이디스는 크레네크의 제자였다. 크레네크는 1950년대 초반에 토론토의 왕립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의 팜 스프링으로 와서 지냈다. 크레네크가 세상을 떠난후 부인 글레이디스는 1998년에 '에른스트 크레네크 연구소'(Ernst Krenek Institut Privatstiftung)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비엔나에 있다가 2004년 크렘스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3구 뮐바허가쎄 6번지 집에 부착되어 있는 크레네크 기념명판
13구 뮐바허가쎄 6번지의 집. 붉은 타원으로 표시된 곳에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뮐바허가쎄는 쇤브룬 동물원의 서쪽 방향 주택지에 있는 거리이다.
에른스크 크레네크와 부인 글레이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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