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쇤베르크
제2의 비엔나학파를 주도한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187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에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쇤베르크 생가는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오베레 도나우슈트라쎄(Obere Donnaustrasse) 5번지로 전쟁 중에 일부 파손되었으나 현재는 복구된 상태이다.
쇤베르크의 생가에 설치되어 있는 명판. 이 집에서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1874년 9월 13일 태어났다는 내용이다. 오스트리아 음악협회와 연방정부 교육예술성이 공동으로 제작해서 설치했다.
2구 오베레 도나우슈트라쎄 5번지(왼쪽).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쇤베르크 기념명판이 있다. 도나우카날 방향.
쇤베르크는 1918-1925년에 비엔나 교외의 뫼들링에서 지냈다. 베른하르트가쎄(Bernhardgasse) 6번지이다.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창안한 곳이다. 그래서 '12음 기법의 탄생지'라고 부른다. 오늘날 이 집은 쇤베르크 기념관이다.
쇤베르크는 비엔나의 2구 레오폴드슈타트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레오폴드슈타트는 유태인들이 많이 살았던 구역이었다. 쇤베르크의 아버지 사무엘은 유태계로서 원래 브라티슬라바에서 살다가 비엔나로 온 사람이었다. 브라티슬라바는 오늘날 세르비아의 수도이다. 쇤베르크의 아버지 사무엘은 비엔나에서 상점 관리인으로 일했다. 쇤베르크의 어머니 파울리네는 프라하에서 태어난 체코 오리진의 여인이었다. 쇤베르크는 1898년에 루터교로 개종하였다. 서구 문명과 전통에 더욱 접근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가 1933년에 오랜 생각 끝에 다시 유태교로 돌아갔다. 말하자면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1933년에 그는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위해 파리에 갔었다. 그런데 그해에 나치가 집권하고 유태인에 대한 핍박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파리의 친구들은 이대로 비엔나로 돌아갔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니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쇤베르크는 영국으로 피신코자 했으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서 결국 가족들과 함께 미국행을 단행하였다. 쇤베르크는 1901년에 지휘자 겸 작곡가인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의 여동생 마틸데와 결혼하였다. 쇤베르크는 쳄린스키와 1894년부터 함께 공부했었다. 쇤베르크는 미국에서 1951년 7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분은 작고하진 23년만인 1974년에 비엔나로 돌아와 6월 6일 중앙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첸트랄프리드호프)에 있는 쇤베르크 묘지
국제쇤베르크협회는 1998년 3월에 비엔나에 '아르놀트 쇤베르크 센터'를 설립했다. 쇤베르크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정리해 놓았으며 여러가지 행사를 주관하는 센터이다. 비엔나 3구의 슈봐르첸버그플라츠(Schwarzenbergplatz) 6번지에 있다. 센터에는 쇤베르크 기념관도 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센터. 뫼들링의 쇤베르크 기념관도 6번지인데(베른하르트가쎄) 슈봐르첸버그플라츠의 쇤베르크 센터도 6번지이다. 쇤베르크는 13이란 숫자를 기피하였다. 불운이 온다고 믿어서였다. 그런데 쇤베르크는 13일에 태어났고(9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