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코른골트

정준극 2018. 2. 27. 07:16

비엔나와 코른골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제2의 모차르트라고 불릴만큼 소년시절에 음악신동으로 알려진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1957)는 모라비아의 브륀(Brünn)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비엔나에서 생활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비엔나의 작곡가라고 부르는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코른골트의 이름에는 그러지 않아도 볼프강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어서 '제2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이 생소하지 않다. 모라비아의 브륀은 오늘날 체코공화국의 브르노(Brno)이다. 야나체크 기념극장이 있는 도시이다. 당시에 모라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한 지역이어서 모라비아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민이었다. 말러는 코른골트에 대하여 '음악 천재'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에게 배우도록 권면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코른골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코른골트가 11세 때에 작곡한 발레곡인 '눈사람'(Der Schneemann)은 궁정오페라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비엔나에서 센세이션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란츠 요셉 황제도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1910년에 궁정오페라극장에서 별도로 공연된 일이 있다. 코른골트가 13세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거장 아르투르 슈나벨(Arturo Schnabel))이 유럽순회 공연에서 연주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코른골트는 19세 때에 첫 오페라를 작곡했다. '비올란타'(Violanta)와 '폴리크라테스의 반지'(Der Ring des Polykrates)였다. 독일에서의 초연은 브르노 발터가 지휘하여 더 유명해졌다.


코른골트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코른골트는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될 것으로 예견하고 1934년에 헐리우드의 초청을 받자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그는 헐리우드 영화음악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간주되었다.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그레이트 왈츠'(Great Waltz: 1934), '씨 호크'(The Sea Hawk: 1940), '씨 울프'(The Sea Wolf: 1941) 등이다. 코른골트가 비엔나에서 살았던 집 중에서 두 군데에 기념명판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를 기억하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군데는 6구 테오발트가쎄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18구 슈테른봐르테슈트라쎄에 있다.


6구 테오발트가쎄 7번지에 있는 코른골트 기념명판.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가 1909년-1924년에 이 집에서 살면서 작곡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 집에서 그의 유명한 오페라인 '죽은 도시'(Die tote Stadt)를 작곡했다. 비엔나의 유태박물관과 친구들이 합작해서 2007년에 명판을 설치했다.

테오발트가쎄 7번지. 붉은 타원으로 표시된 곳에 코른골트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테오발트가쎄 7번지는 쾨니히스클러스터가쎄의 모퉁이에 있다.


18구 슈테른봐르테슈트라쎄 35번지의 기념명판. 이 집에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가 1928년부터 1938년까지, 그리고 종전 후인 1949년부터 1951년까지 살면서 작곡했다는 내용이다. 코른골트는 1951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고 LA의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근처에 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19구 슈테른봐르테슈트라쎄 35번지.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코른골트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18구 슈테른봐르테슈트라쎄. 김나지움슈트라쎄 방향. 오른쪽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코른골트 기념명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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