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달레나(Maddalena)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단막 오페라
피아노 앞에서의 프로코피에프
오페라 '맛달레나'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 1891-1953)가 대본도 만들고 음악도 작곡한 단막의 오페라이다. 프로코피에프의 대본은 러시아의 극작가인 마그다 구스타보브나(Magda Gustavovna)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며 마그다 구스타보브나의 희곡은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희곡인 '플로렌스 비극'(A Florentine Tragedy)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음악의 신동이라고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프로코피에프는 4편의 오페라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 '거인'(The Giant)이라는 것은 그가 여덟살 때에 작곡한 것이다. '거인'의 악보는 프로코피에프가 너무 어려서 제대로 기보를 하지 못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대신 악보를 그려 주었다고 한다. '맛달레나'는 프로코피에프가 작품번호를 붙인 첫번째 오페라이다. Op 13 이다. '맛달레나'는 프로코피에프가 아직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학생으로 있을 때 작곡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프로코피에프는 '맛달레나'의 오케스트라 파트에서 마지막 네 장면을 완성하지 못한채 포기하다시피 놓아 두었었다. 포기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는 '맛달레나'가 191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서 처음 공연되기를 희망했었다. 그래서 우선 피아노 스코어를 작곡 교수인 니콜라이 미야스코브스키에게 보여주었다. 미야스코브스키 교수는 '음악이 어떤 때에는 너무 음울해서 놀랄 지경이다. 격정적인 기질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아서 놀랍다'고 말하면서 칭찬했다. 하지만 음악원 당국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맛달레나'의 공연을 거절하였다. 프로코피에프는 나중에 음악원이 거절한 이유가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대본 중에 상징주의 시인인 콘스탄틴 발몬트라터(Konstantin Balmontrather)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 너무 많아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해서 미루어 놓았다는 것이다.
제나로와 다투는 맛달레나
그렇지만 한번 시작한 것을 끝내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프로코피에프는 음악원이 공연을 거절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므로 대신에 일반 극장에서 공연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1913년에 음악을 수정하고 오케스트라 파트도 완성하였다. 그는 완성된 악보를 '맛달레나'를 미야스코브스키 교수에게 헌정하였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극장공연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프로코피에프는 1916년에 모스크바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에 사회가 뒤숭숭하여서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였다. 1918년에 마침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프로코피에프는 '맛달레나'의 스코어를 출판하는 문제를 출판사의 재량에 맡기고 파리로 떠났고 이후로 '맛달레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못했다. 프로코피에프는 1917년에 '세개의 오렌지 사랑'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었다. 참으로 다행하게도 모스크바에서 '맛달레나'의 스코어를 손에 넣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파리로 돌아왔다. 프로코피에프는 가족과 함께 1936년에 러시아로 영구 귀국했다. 그런데 '맛달레나'의 스코어를 파리에 두고 왔다. 당시에는 전쟁의 분위기에서 파리로 돌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맛달레나'의 스코어는 돌고 돌아서 전쟁이 끝난지 한참 후인 1960년에 런던의 악보 출판사가 소유하고 있었다. '맛달레나'는 1979년 3월에 BBC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위해 처음 연주되었다. 무대 공연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1981년 3월 25일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였다. 미국 초연은 1982년 6월 9일 세인트 루이스 오페라단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맛달레나'는 1911년에 작곡된 것이지만 초연까지는 70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하여 초연은 1981년 11월 28일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이루어졌다.
'맛달레나'의 무대. 맛달레나, 제나로, 스테니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맛달레나(S), 두에나(Duenna: 보모: S), 제나로(Genaro: 화가: T), 로메오(Romeo: T), 스테니오(Stenio: B-Bar) 이밖에 곤돌라 사공들, 마을 사람들이 나온다. 시기는 1400년 경이며 장소는 베니스(베네치아)이다. 맛달레나는 화가인 제나로와 결혼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제나로의 친구인 연금술사인 스테니오와 불륜의 관계를 가진다. 맛달레나는 스테니오가 자기를 알아 볼 것 같아서 변장을 하고 만난다. 그러므로 스테니오는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인이 친구 제나로의 약혼녀인 것을 모른다. 스테니오는 친구 제나로를 만나서 사실은 어떤 기이하고 신비스런 여인이 자기를 유혹하여서 결국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도무지 누구인지 알수 없다고 털어 놓는다. 그러다가 스테니오는 그 비밀의 여인을 두세번 만나는 사이에 맛달레나인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제나로는 제나로대로, 스테니오는 스테니오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서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다가 급기야는 냉랭한 사이가 된다. 그럴 때에 맛달레나가 두 사람을 부추켜서 결투를 하도록 한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결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제나로의 집에서 운명의 결투가 벌어지고 결국 제나로가 스테니오를 죽인다. 그러나 제나로 자신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제나로는 죽어가면서 맛달레나에게 자기를 고통 속에 남겨 두지 말고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이니 어서 죽여달라고 간청한다. 맛달레나는 제나로의 마지막 간청을 뿌리치지 못한다. 맛달레나는 두 사람의 시신을 앞에 두고서 과연 자기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 맛달레나는 창문을 열고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기요, 여기 어떤 이상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남편과 싸우다가 우리 남편을 죽였어요'라고 소리쳤다.
제나로와 스테니오의 다툼
'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 > 화제의 30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의 '디노라' - 187 (0) | 2018.06.07 |
---|---|
앙드레 메사저의 '포르투니오' - 186 (0) | 2018.05.26 |
체자르 큐이의 '코카서스의 죄수' - 184 (0) | 2018.04.10 |
벨라 바르토크의 '기적의 중국인' - 183 (0) | 2018.04.09 |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의 '보마르초' - 182 (0) | 2018.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