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천사(The Fiery Angel)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5막 오페라
소련정부가 1991년에 발행한 프로코피에프 기념 우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라고 하면 우선 이오시프 스탈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로코피에프와 스탈린은 비록 태어난 해는 다르지만 같은 해,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났다. 1953년 3월 5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북한 공산당의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당시에 프로코피에프의 집은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근처에 있었다. 스탈린이 세상을 떠나자 수많은 사람들의 조문을 오는 바람에 크레믈린 일대는 하루종일 길이 막혔다. 프로코피에프의 집 앞길도 인산인해로 꼼짝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친지들이 막힌 길을 뚫고서 그의 시신을 간신히 운구하여 장례를 치루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나저나 스탈린 시대를 살았던 프로코피에프는 이모저모로 공산당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프로코피에프는 '소련은 음악을 위해서 아무런 소용이 없는 나라'라고 판단하고 1918년에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1936년에 고국을 잊을수 없어서 소련으로 돌아와 모스크바에 재정착했다. 프로코피에프는 여러 장르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런 중에 오페라는 9편을 남겼다. 그중에서 하나가 '분노의 천사'이다. 프로코피에프가 종교적인 주제를 가지고 오페라를 작곡한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분노의 천사'는 그가 가장 힘들여서 완성한, 그야말로 프로코피에프의 역작으로 더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역작이기는 하지만 가장 문제가 많았던 작품이며 또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작품으로서도 기억이 되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처음 공연을 위해서 이곳저곳과 접촉하였지만 번번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스토리가 지나치게 비정상적이어서 그랬는지 또는 음악이 특별해서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수 없다.
마녀를 찾아간 레나타
프로코피에프가 '분노의 천사'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누가 의뢰해서도 아니고 공연이 보장되어서도 아니었다. 자의에 의해 작곡을 시작했다. '분노의 천사'의 주제는 그가 혁명전에 작곡했던 오페라들, 예를 들면 '갬블러'(도박사)와 흡사하지만 과연 주제가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생각도 갖게 해준다. 예를 들어서 플라토닉한 사랑에 초점을 두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육욕적인 사랑에 중점을 두었는지를 알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주제라고 한다면 악의 세력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분노의 천사'는 프로코피에프의 초기 오페라들, 예를 들면 '세개의 오렌지 사랑'(The Love for Three Oranges)과 대조적이다. 비극적 종말이기 때문이다. 프로코피에프의 어둡고도 풍자적인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 '분노의 천사'이 정식으로 공연되기 까지는 많은 애로가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는 여러 극장들과 접촉하며 공연의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시카고 리릭 오페라가 그랬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그랬으며 베를린의 슈타츠오퍼가 그랬다. 프로코피에프로서는 애타는 일이었다. 그런 중에도 1928년에 세르게이 쿠제비츠키가 파리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분노의 천사'를 처음 소개할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 음악이 아니고 발췌곡들이었다. 프로코피에프는 생전에 이 오페라의 공연을 보지 못하였다. '분노의 천사'의 전체 스코어가 파리에서 발견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195년에는 파리에서 비록 콘서트 형식이지만 '분노의 천사'의 전체 음악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무대공연이 처음 이루어 진 것은 이듬해인 1955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였다. 베니스 초연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 것이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최대 걸작이라는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음악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 실패한 작품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드라마틱한 요소가 집중된 음악'이라는 평을 받았다. 볼쇼이 공연이 있은후에 나온 평론은 '광란의 음악이다. 하지만 혼돈스럽게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였다. 심지어 어떤 평론은 '16세기의 카르멘과 같다. 다만 초자연적인 장식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이었다.
소녀 레나타에게 나타난 천사 마디엘
한마디 더 붙인다면, 프로코피에프가 이 오페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보면 그 자신이 이 작품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볼수 있다. 여러번 수정을 한 것이라든지, 공연 장소를 구하기 위해 애타게 노력한 것을 보면 그러하다. 프로코피에프는 '분노의 천사'가 당장 공연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다른 방법으로 주제 음악을 알리고자 했다. 교향곡 3번(1928)의 주제로 사용하였다. 대본은 프로코피에프 자신이 완성했다. 러시아의 시인으로 러시아 상징주의 운동의 주역 중의 하나인 발레리 브류소프(Valery Bryusov: 1873-1924)의 1907년도 자서전적 소설인 '분노의 천사'를 바탕으로 삼았다. 브류소프의 소설 '분노의 천사'는 그가 당시의 여류작가인 니나 페트로브스카야(Nina Petrovskaya)와의 경험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니나 자신은 작가 안드레이 벨리(Andrey Bely)의 정부이면서 브류소프와도 뜨거운 관계에 있었다. 결국 벨리와 브류소프는 니나를 두고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결투를 하게 되었지만 두 사람의 친구가 만류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 결투까지는 가지 않았다. 니나와 브류코프와 벨리는 프로코피에프의 작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브류소프의 소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대는 16세기 독일의 어느 지방이다. 주제는 젊은 여인인 레나타의 점점 높아만 가는 성적 히스테리아이다. 레나타는 불의 천사에게 말할수 없는 집착을 한다. 불의 천사는 레나타를 사랑하는 기사인 루프레헤트를 파멸시킨다. 레나타는 수녀원에 들어가지만 그곳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환락과 탐욕을 추구한다. 그러한 내용을 프로코피에프가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대본은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혼세계와의 신비스러운 대화 장면, 비교적인 종교의식의 장면, 해골들의 비명소리, 육욕적인 광란의 파티 장면, 자학적인 장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와 조우하는 장면등은 드라마틱한 경지를 넘어서서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프로코피에프의 대본은 전통적인 오페라 대본의 스타일을 벗어나서 체호프의 자연주의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교묘하게까지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장면의 전환을 엿볼수가 있고 또한 교활하기까지 한 유머를 느낄수가 있다. 예를 들면 점쟁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중얼거릴 때에 주인공들은 러시아말을 하는지 영어를 말하는지를 두고 다투는 장면이다.
하인리히가 떠나자 절망 중에 자살을 기도하는 레나타
레나타의 역할은 아마 모든 오페라의 여주인공 중에서도 가장 녹초로 만드는 역할일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장면에서 레나타는 광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레나타는 공연에서 거의 모든 장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힘든 역할이다. 음악은 어떠한가? 레나타의 성격은 성적 히스테리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레나타는 악마의 소유처럼 되어 있다. 그러므로 레나타에 대한 음악은 물론, 전체적으로는 무섭고 두려우며 악마적인 음향이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1막에서 레나타의 광란의 장면, 그리고 2막 첫 장면에서 레나타가 악마를 불러내기 위해 소리치는 장면의 음악은 전자기기가 아니면 낼수 없는 음향과 같다. 그런 음향은 20세기 초반에는 아직 이용되지도 않았는데 프로코피에프는 이미 인용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는 음악도 있다. 마지막 막에서 평온한 도입부의 음악은 이전의 드라마틱한 음악과는 대조적이다. 레나타도 레나타이지만 주인공인 '분노의 천사'에 대한 음악도 프로코피에프가 만들어 낼수 있는 가장 표현주의적 음악이며 가장 열정적인 음악이라고 할수 있다. 블라디미르 야로브스키는 '분노의 천사'를 20세기 초반에 볼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오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적으로는 '푸른 수염의 성'과 '룰루' 또는 '보체크'에 버금하는 양상으로서 이마도 이런 류의 음악은 1960년대 또는 1970년대에 나타난 록 음악에서나 발견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여관에 묵고 있는 루프레헤트와 레나타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레나타(Renata: S), 기사 루프레헤트(Ruprecht: Bar), 여관집 여주인(Hostess of the Inn: Cont), 여관집 하인(Bar), 마녀(Sorceress: MS), 야콥 글로크(Jakob Glock: T), 철학자 겸 마법사인 아그리파 반 네텔스하임(Agrippa van Nettelsheim: T), 하인리히 백작(Count Heinrich: 사일런트 역할), 의사(Doctor: T), 파우스트(Faust: Bar),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 T), 쾰른의 여관집 주인(Bar), 수녀원장(Mother Superior: MS), 종교재판관(Inquisitor: B), 수녀 두명(Ss), 세개의 해골(Skeletons: S/T/B), 이웃사람 세명(Bar/ 2 Bs), 이밖에 수녀들(Chorus: S&A)과 종교재판관의 종자들(Chrus: T&B)이 등장한다.
해골들의 등장
[1막] 레나타는 어릴 때부터 사랑해온 사람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헤매고 있다. 레나타가 찾는 사람은 천사이다. 천사는 어느날 홀연히 어린 레나타에게 나타났었다. 천사 마디엘(Madiel)은 친절하게 어린 레나타가 어찌할줄 모르고 있을 때에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는 보상으로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후로 레나타는 천사를 마음속으로 지극히 사랑해 왔다. 레나타는 어느덧 17살의 아름다운 처녀가 된다. 레나타는 성숙한 여인으로서 천사와의 육체적인 섹스를 갈망하게 된다. 레나타는 천사에게 사랑의 표시로 육체적인 관계를 갖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천사는 불같이 분노하면서 섹스를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레나타의 마음은 알겠으니 언젠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며 그 때 만나자로 말한다. 천사가 떠난 후, 레나타는 천사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게 된 것이다. 레나타가 머물고 있는 여관에는 기사 후보생으로 무예수업을 위해 여행하는 루프레헤트도 묵고 있다. 루프레헤트는 레나타를 만난 이후 사랑을 느끼게 되고 얼마 후에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는 한이 있더라도 레나타만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갖는다. 얼마후 레나타는 하인리히 폰 오터하임 백작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레나타는 천사 마디엘이 약속대로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돌아왔으며 그가 하인리히라고 믿는다. 레나타는 하인리히에게 자기자신을 맡긴다. 두 사람은 사랑의 불길을 붙인다. 1년 후에 하인리히가 홀연히 떠난다. 레나타는 루프레헤트에게 하인리히를 찾는 일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다.
떠나는 하인리히를 붙잡는 레나타
[2막] 루프레헤트는 레나타와 함께 하인리히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는 중에 괴연 자기가 왜 레나타를 도와서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레나타는 루프레헤트의 그런 마음을 몰라 준다. 그러는 중에 두 사람은 이대로 하인리히를 찾아 다니면 공연히 시간낭비이므로 마녀를 찾아가서 방법을 알아보기로 한다. 마녀가 주문을 소리쳐 내뱉는다. 해골들이 나타나서 춤을 추며 마녀의 주문에 장단을 맞춘다. 잠시후 문에서 노크 소리가 세번 들린다. 레나타는 마녀의 주문이 효력을 일으켜서 문밖에 하인리히가 찾아 왔다고 믿는다. 레나타는 하인리히를 만날 생각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있다. 그러나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레나타와 루프레헤트는 마녀에게 실망하고 이번에는 더 강력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를 찾이가기로 한다. 철학자이기도 한 아그리파 폰 네텔스하임이다. 하지만 아그리파는 두 사람의 부탁을 거절한다. 권세있는 종교재판관과 대결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3막] 레나타는 마침내 그렇게도 찾아 헤맨 하인리히를 만난다. 그러나 레나타는 하인리히가 어릴 때부터 사랑해온 바로 그 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하인리히에게 복수할 생각을 갖는다. 루프레헤트가 레나타를 위해 복수해 주기로 한다. 하인리히와 루프레헤트는 결투를 갖기로 한다. 결투는 일방적이었다. 하인리히의 무술이 더 뛰어나서 루프레헤트를 단번에 제압한다.
정신이상으로 간주된 레나타에 대한 치료
[4막] 레나타는 자기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결투를 한 루프레헤트에게 감동한다. 그렇다고 사랑할수는 없다. 레나타는 마침내 모든 것을 잊고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이 때에 주막에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오페라의 진행이 지나치게 어둡고 풍자적이기 때문에 분위기 전환용으로 삽입된 장면이다. 간혹 이 장면은 삭제되기도 한다. [5막] 이제 레나타는 수녀원에 들어가 있다. 수녀원장은 레나타가 아직도 악마의 환상에 빠져 있다고 하면서 비난한다. 레나타를 고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된다. 마치 퇴마행위와 같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수녀들도 레나타의 영향을 받아서 악마에게 집학하게 된다. 종교재판관이 레나타를 마녀로 규정하고 화형에 처하도록 판결한다.
레나타에 대한 종교재판
참고로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영어 제목의 알파벳 순서)
○ 수도원에서의 결혼(Betrothal in a Monastery: 1946) ○ 분노의 천사(The Fiery Angel: 1955) ○ 갬블러(The Gambler: 1929) ○ 거인(The Giant: 9세 때에 작곡, 미완성) ○ 세개의 오렌지 사랑(The Love for Three Oranges: 1921) ○ 맛달레나(Maddalena: 1980, 1912) ○ 세미욘 코트코(Semyon Kotko: 1940) ○ 진정한 남자의 이야기(The Story of a Real Man: 1948) ○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1946)
'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 > 화제의 30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워드 쇼어의 '파리'(The Fly) - 199 (0) | 2018.07.13 |
---|---|
오스발도 골리호브의 '아이나다마르' - 198 (0) | 2018.07.11 |
다니엘 카탄의 '살시푸에데스' - 196 (0) | 2018.07.09 |
조아키노 로시니의 '시지스몬도'- 195 (0) | 2018.07.07 |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의 '코밀토넨' - 194 (0) | 2018.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