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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축하 음악 총정리

정준극 2018. 8. 22. 18:54

생일축하 음악 총정리


생일축하 음악이라고 하면 '해피 버스데이 투유'(Happy Birthday To You)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은 클래시컬 음악의 세계에서는 특별한 인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특별한 생일축하 음악이 상당히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해피 버스데이 투 유'에 대하여 잠시 설명하자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노래는1900년대 초반에 미국 켄터키주의 루이빌이라는 곳에서 유치원교사로 있던 패티 힐과 동생 밀드레드 힐이 합작해서 만든 노래로 원래는 아이들이 아침에 서로 만나서 인사하는 목적으로 작곡하고 가사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제목은 Good Morning to All(여러분 잘 잤어요)이다. 이것을 나중에 생일 축하 가사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생일축하 노래로서 처음 공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12년에 악보로 출판되어서부터였다. 오늘날 이 노래는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이어서 참으로 켄터키주의 작은 도시 루이빌에 살고 있던 패티와 밀드레드 힐 자매의 공적이 크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다음에 소개하는 음악들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특별한 인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음악들이다. 새삼 '생일축하 음악으로 이런 작품들도 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들이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자기를 위해 생일 축하 작품을 작곡했다는 것은 일생의 영광이 아닐수 없다. 작곡가의 연도순으로 소개한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칸타타 42번에 붙이는 신포니아'(Sinfonia to Cantata No 42). 이 칸타타의 도입부에는 바흐가 1718년에 그가 봉사하던 안할트 쾨텐(Anhalt-Köthen)의 군주인 레오폴드 공자의 24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세레나데를 인용하였다. 바흐는 1717년부터 1723년까지 안할트 쾨텐의 카펠마이스터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레오폴드 공자는 아버지 에마누엘 레브레헤트가 세상을 떠나자 열살 때에 안할트 쾨텐 공국의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미성년이어서 어머니가 섭정을 하다가 레오폴드가 17세 때에 성년으로서 정식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바흐가 쾨텐의 레오폴드 공자 궁에서 봉사할 때인 1720년에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흐는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를 추도하기 위해 샤콘느를 작곡했다. 그후 바흐는 레오폴드 공자 궁에서 소프라노로 활동하고 있는 안나 마그달레나 비케와 인연이 닿아서 이듬해인 1721년 12월에 쾨텐에서 재혼하였다. 쾨텐은 바흐에게 그런 인연이 있는 곳이었다.  


독일 안할트 쾨텐의 군주인 레오폴드 공자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BWV 213번인 칸타타 '돌보아 주고 지켜 보게 하소서'(Lasst uns sorgen, lasst uns wachen: Let us take care, let us watch over)는 1733년에 작소니의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왕자의 11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다른 제목으로는 '헤라클레스의 선택'(Die Wahl ds Herkules: The Choice of Hercules)이라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다가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한쪽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영광이 기다리고 있고 다른 한쪽 길은 평탄한 길이지만 죄악의 길이어서 과연 어느 쪽 길을 선택해야할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험난한 길이지만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길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이 칸타타는 1733년 9월 5일 프리드리히 왕자의 생일 날에 라이프치히의 '침머만 커피하우스'(Zimmermann's Coffeehouse)에서 초연되었다. 이 커피하우스는 바흐의 유명한 칸타타인 '커피 칸타타'에 나오는 장소이다. 바흐는 '돌보아 주고 지켜 보게 하소서'에 나오는 아리아인 '잘자라 내사랑'(Schlaf, mein Liebster)을 훗날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의 파트 2세 인용하였다.


작소니의 프리드리히 크리스타인 왕자. 바흐는 그의 11회 생일을 위해 BWV 213을 작곡했다.


○ 조지 프리데릭 헨델(George Friderick Handel: 1685-1759). '앤 여왕 생일을 위한 송가'(Ode for the Birthdy of Queen Anne). 헨델이 1713년에 작곡한 이 칸타나는 대영제국의 앤 여왕의 48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가사는 암부로스 필립스가 썼다. 이 칸타타는 앤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작품이지만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의 종식을 명시한 우트레헤트 조약이 체결된 것을 축하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앤 여왕(Queen Anne: 1665-1713)는 1702년부터 1707년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여왕이었으나 1707년에 잉슬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하여 대영제국(GB)의 여왕이 되었으며 아울러 종전대로 아일랜드의 여왕이었다. 앤 여왕은 평소에도 너무나 국사로 인하여 다망하여서 여왕을 위해 존재하는 궁정악단의 연주를 듣거나 또는 궁정에서 개최되는 뛰어난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헨델의 '앤여왕 생일을 위한 송가'도 생전에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 칸타타는 헨델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기여를 했다. 헨델은 앤여왕의 특별 지시로 매년 200 파운드의 연금을 종신까지 받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앤여왕 때에 비로소 대영제국(Great Britain)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앤여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하였으며 아일랜드도 계속 통치하였다.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ilbald Gluck: 1714-1787). 오페라 '라 단자'(댄스: La danza). 1755년 5월 5일 비엔나 근교의 락센부르크 궁전에서 처음 공연된 단막의 오페라이다. 대본은 메타스타시오의 것이다. 이 오페라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프란시스 1세 황제의 둘째 아들로서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드 2세 황제 겸 오스트리아 대공이 된 페터 레오폴드(Peter Leopold: 1747-1792)의 8세 생일을 축하하여서 작곡된 것이다. 레오폴드 2세 황제는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시스의 16명 자녀중 셋째 아들이다.


레오폴드 2세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ilbald Gluck: 1714-1787). '정체를 밝힌 세미라미데'(La Semiramide reconosciuta: Semiramis recognized 또는 Semiramis revealed). 세미라미데 또는 세미라미스는 구약성서 창세기와 역대기에 나오는 아수르(아시리아)의 여왕을 말한다. 노아의 증손자인 님로드(Nimrod)의 부인이다. 지혜롭고 용맹하여서 남편의 뒤를 이어 제국을 크게 발전시키며 통치하였다. 오페라에서 세미라미데는 님로드라는 이름으로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지내기 때문에 간혹 아마존에 비유되기도 한다. 글룩은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의 31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748년에 이 오페라 세리아를 완성하였다. 대본은 메타스타시오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오스트리아 대공인 프란츠 2세(Franz II: 1768-1835)의 29회 생일을 맞이하여 황제찬가인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God Save Emperor Francis)를 작곡했다. 이 음악을 작곡한 것은 프란츠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이든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 국민들이 '하나님이여 우리의 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Our King)이라는 노래를 마치 국가처럼 부르는 것을 보고 오스트리아도 이같은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로 돌아와서 프란츠 2세 황제를 찬양하고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 넣어주기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이 음악은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가처럼 사용되었다. 독일도 이 음악의 멜로디에 가사를 새로 입혀서 오늘날까지도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 노래를 찬송가로 사용하고 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 2세 황제 겸 오스트리아 대공. 훗날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1844). '1805년에 하이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생일 칸타타'(Canata for the Birthday of Joseph Haydn)을 작곡했다. 그러나 이 음악의 악보가 분실되어서 어떤 음악인지 알수 없다. 프란츠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둘째 아들이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인 1791년 7월에 태어났다. 모차르트는 그해 12월 초에 세상을 떠났다. 프란츠 모차르트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 받아서 작곡가로서 활동하였다. 사람들은 보통 그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세라고 불렀다. 하이든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자 두 아들인 칼 토마스와 프란츠를 위해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이를 고맙게 여긴 프란츠가 하이든의 73회 생일을 축하항여서 칸타타를 작곡했다. 프란츠는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어떤 학교의 음악교사로서 지내다가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을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후손이 없다.


요제프 하이든.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모차르트의 두 아들을 돌보아 주었다.


○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슈베르트의 작품번호 D 80인 칸타타 '우리 아버지의 명명일을 축하하기 위한 칸타타'(Kantate zur Namesfeier des Vaters: Cantata for the Name-Day of My Father)는 슈베르트가 1813년 9월에 작곡한 칸타타로서 그의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르 플로리안 슈베르트(Franz Theodor Florian Schubert: 1763-1830)의 명명일(命名日)을 축하하여 작곡한 것이다. 비록 직접 생일축하와는 관련이 없지만 당시에는 교회에서의 명명을 생일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칸타타는 생일축하 칸타타로 간주할수도 있다.

  

슈베르트의 아버지 프란츠 슈베르트(풀 네임은 프란츠 테오도르 플로리안 슈베르트). 직업은 교사였다.


○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1809년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는 요제프 하이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났지만 독일의 함부르크에서는 그 해에 펠릭스 멘델스존이 태어났다. 저 유명한 '결혼행진곡'이 나오는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은 멘델스존이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795-1861)의 48세 생일을 축하하여서 작곡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빌헬름 4세의 1843년도 생일인 10월 15일을 축하하기 프러시아의 포츠담 궁전에서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이 공연되었는데 극음악(Incidental music)을 멘델스존이 작곡했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은 17세이던 1826년에 셰익스피어의 코미디인 '한여름 밤의 꿈'(Ein Sommernachtstraum)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연극을 위한 서곡을 작곡한바 있다. 그로부터 한참 후인 1841년에는 소포클레스의 연극 '안티고네'를 위한 극음악을 작곡했다. 연극 '안티고네'는 새로 완공된 포츠담 궁전에서 공연되었다. 이때 빌헬름 4세 국왕은 '안티고네'의 극음악을 듣고 대단히 좋아해서 멘델스존에게 '한여름 밤의 꿈'의 극음악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은 빌헬름 4세가 가장 좋아하는 연극인데 마땅한 극음악이 없었다. 멘델스존은 '한여름 밤의 꿈'의 극음악을 1842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에 완성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43년 10월 14일에 포츠담에서 선을 보였다. 서곡은 멘델스존이 17세 때에 만들었던 콘서트용 서곡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한 극음악은 대환영을 받았다.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프레데릭 윌리엄 4세). 멘델스존은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인 연극 '한여금 밤의 꿈'의 극음악을 작곡했다.


○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8). '지그프리트 목가'(Siegfried Idyll)는 바그너가 1870년 크리스마스의 아침에 부인 코지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코지마의 생일은 12월 24일이었다. 1870년에는 코지마가 33세였으면 바그너는 57세였다. 바그너의 두번째 부인인 코지마는 잘 아는대로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다. 바그너와 결혼한 코지마는 1869년 6월에 바그너의 유일한 아들인 지그프리트를 출산하였다. 바그너는 아들은 얻은 기쁨과 코지마의 생일을 축하하는 목적으로 아들의 이름을 딴 '지그프리트 목가'를 완성하여 187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여 코지마를 위해 루체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그의 별장에서 연주토록 했다. 당시에 바그너는 가족과 함께 스위스의 트리브셴(Tribschen)에 있는 빌라에 머물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코지마의 기쁨은 말할수 없이 컸다고 한다. 코지마는 '잠결에 음악소리를 듣고 꿈이 아닌가라는 생각했습니다. 음악소리가 서서히 사라지자 리하르트가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리하르트는 내 생일을 축하하는 교향시의 스코어를 주었습니다.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라고 말했다.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와 아들 지그프리트. 지그프리트라는 이름은 바그너의 오페라 '지그프리트'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종교음악인 '성체찬가'(Tantum ergo: 또는 지존하신 성체)는 베르디가 1836년에 당시 롬바르디-베네치아의 왕을 겸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페르디난트 황제의 생일축하 연주회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1793-1875) 황제는 독일연맹 의장, 헝가리 왕, 크로아티아-보헤미아 왕, 그리고 롬바르디-베네치아의 왕을 겸하고 있었다. 베르디가 활동하던 시절에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와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베르디는 롬바르디의 부세토 인근의 작은 시골 마을인 론콜레에서 태어났다. 베르디는 페르디난트 황제의 생일축하 콘서트를 위해 '성체찬가'를 작곡했지만 내켜서 작곡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 황제, 롬바르디-베네치아의 왕도 겸하였다.


○ 요한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세레나데 2번'(Serenade No 2)은 사모하는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의 40세 생일을 축하하여서 헌정한 곡이다. 로베르트 슈만이 세상을 떠난지 3년 후, 클라라의 생일인 9월 13일의 일이었다. 클라라 슈만은 '세레나데 2번'의 느린 악장을 특별히 좋아했다.


브람스가 사모한 클라라 슈만


○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 포레는 연애사건이 많았다. 조강지처 마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여인들과 로맨틱한 관계를 가졌다. 그 중의 하나가 소프라노인 엠마 바르다크(Emme Bardac)였다. 1890년대 초반부터 10여년 동안 포레와 깊은 관계였다. 포레는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엘렌 바르다크(Hélène Bardac)를 특별히 총애하였다. 포레는 엘렌의 1년 생일을 축하해서 1893년에 여섯곡으로 구성된 '인형 모음곡'(Dolly Suite)을 작곡했다. 네손을 위한 피아노 곡들이다. 여섯 곡중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이 첫번째 곡인 베르쉬스(Berceuse)이다. 원래 이곡은 포레가 1864년에 가족 친구의 딸인 수잔느 갸르니에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제목은 '정원에서의 노래'(La Chanson dans le jardin)였다. 이것을 포레가 조금 수정하여서 '자장가'(Berceuse)라는 타이틀로 '인형 모음곡'에 포함하였다. 여담이지만, 포레와 뜨거운 관계였던 엠마 바르다크는 동시에 클로드 드비시와도 깊은 관계였다. 엠마는 결국 1908년에 드비시와 정식으로 결혼했고 슈슈라는 애칭의 딸 클로드-엠마를 낳았다. 드비시가 슈슈를 위해 작곡한 것이 '어린이 코너'라는 피아노 모음곡이다. 다시 여담이지만 포레는 엠마와 헤어지고 나서 피아니스트인 마르게리트 하셀만과 거의 20년 동안, 즉 포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깊은 관계에 있었다.


성악가인 엠마 바르다크. 포레와 10여년 동안 깊은 관계였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엘렌이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버지인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 Joseph Strauss: 1822-1905)는 뛰어난 혼 연주자였고 작곡가였으며 기타, 클라리넷, 비올라도 훌륭하게 연주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뮌헨 궁정 오케스트라의 수석 혼 주자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비록 아버지는 성격이 유별나고 심술궂어서 다른 사람과 다투기가 다반사였고 또한 마음에 맞지 않으면 남을 비난하기를 밥먹듯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82년, 아버지의 6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혼협주곡 1번을 작곡키로 하고 아버지가 직접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60회 생일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동안 작곡해 놓은 악보를 보고는 너무나 연주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연주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1905년


○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 아놀트 쇤베르크(아놀드 쇤버그는 77세까지 살았다. 오스트리아를 위시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1949년, 쇤베르크의 75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합동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건강이 여의치 못해서 참석하지 못하였다. 대신 비엔나는 그에게 명예시민의 타이틀을 증정하였다. 쇤베르크는 오랜 친구이며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돌프 콜도프스키(Adolf Koldofsky)를 위해 '피아노 반주의 바이올린 환상곡'(Fantasy for Violin with Piano Accompaniement)를 작곡한 일이 있다. 콜도프스키는 이 작품을 1949년 9월 13일, 쇤베르크의 75회 생일을 축하하여서 비엔나에서 세계 초연했다. 콜도프스키는 런던에서 유태계 러시아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에 로스안젤레스로 가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LA에 있는 동안 특별히 같은 유태계인 쇤베르크와 가깝게 지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콜도프스키


○ 챨스 아이브스(Charles Ives: 1874-1954). 1913년에 완성한 '뉴 잉글랜드 홀리데이 교향곡'(A New England Holiday Symphony 또는 간단히 Holiday Symphony)는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악장이 '워싱턴 생일'(Washington's Birthday)를 묘사한 것이다. 워싱턴이 태어난 날은 2월 22일이지만 미국에서는 2월 셋째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이라고 하여 2월 12일 에이브라함 링컨의 생일도 함께 경축하고 있다. 하지만 '뉴 잉글랜드 홀리데이 교향곡'에서는 워싱턴의 생일만을 축하하고 있다. 이 교향곡의 2악장은 Decoration Day라고 하여 우리식으로는 현충일을 말하며 3악장은 The Fourth of July 즉 미국독립기념일을 그린 악장이다. 4악장은 추수감사절과 선조들의 날(Thanksgivig and Forefather's Day)이다.


미국의 국부인 조지 워싱턴. 2월 22일이 생일이다.


○ 마이클 티베트(Michael Tippett: 1905-1998). 콘월 출신인 마이클 티베트는 1948년에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가 첫아들 챨스를 출산하자 이를 축하하여서 '챨스 왕자 생일을 위한 모음곡'(Suite for the Birthday of Prince Charles)을 작곡하였다. 서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또한 비유적인 작품이다.


엘리자베스와 챨스 왕자. 1948년. 챨스 왕자는 11월 14일 태어났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takovich: 1906-1975).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쇼스타코비치가 아들 막심(Maxim Shostakovich: 1938-)이 19회 생일을 맞이하는 1957년에 작곡한 것이다. 막심은 이 곡을 모스크바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위해 연주했다. 막심은 그후 러시아를 대표하는 뛰어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활동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 1962년. 에딘버러 페스티발에서.


○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 브리튼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요청에 의해서 여왕의 어머니인 '퀸 마더'(1900-2002: Elisabeth the Queen Mother)의 75회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 한셀'(A Birthday Hansel)을 작곡했다. Hansel(또는 Handsel)이라는 단어는 스코틀랜드어로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1976년 1월 알드버러 페스티발에서 브리튼의 평생의 파트너인 테너 피터 피어스, 그리고 하피스트 오시안 엘리스가 연주하였다. '생일 한셀'은 여섯 노래로 구성되어 있는 연가곡이다. 여섯 노래 중에서 첫번째 곡이 '생일 노래'(Bithday Song)이다. 퀸 마더의 선조가 스코틀랜드인인 것을 감안하여 스코틀랜드의 아이르셔어(Ayrshire) 출신인 시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의 시를 가사로 택하였다. 그러므로 노래의 대부분은 스코틀랜드어로 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퀸 마더'의 소녀 시절 모습. 케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려졌다. 원래 이름은 엘리자베스 안젤라 마르게리트 보위스 리옹이다. 102세까지 살았다.


○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Peter Maxwell Davies: 1934-2016).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0회 생일을 축하하여서 2005년에 '낙소스 현악사중주곡 8번'(Naxos Quartet No 8'을 작곡하여 헌정했다. 낙소스 현악4중주곡이라고 하는 것은 낙소스 레코드사가 의뢰했기 때문이다. 모두 10개의 현악4중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8번이 여왕의 80회 생일을 축하하여 헌정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80회 생일은 2006년 4월 21일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0회 생일 기념 우표


○ 페터 하이드리히(Peter Heidrich: 1935-).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변주곡'(Happy Birthday Variations).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페터 하이드리히는 세계적인 생일 축하 노래인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12개의 변주곡으로 만들었다. 절반인 여섯 곡은 위대한 작곡가의 스타일로 변주곡을 만든 것이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드보르작의 스타일로 만들었다. 나머지 여섯 곡은 세계의 춤곡을 모방하여 만든 변주곡이다. 미국의 래크타임(Ragtime), 아르헨티나의 탱고, 보헤미아의 폴카, 비엔나의 왈츠, 그리고 헝가리의 집시 춤곡을 바탕으로 삼은 변주곡이다. 이 변주곡들은 주로 현악4중주로 연주한다.


페터 하이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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