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오페라 주인공들의 별난 죽음

정준극 2018. 10. 9. 21:59

오페라 주인공들의 별난 죽음


인간의 본성은 희극보다는 비극을 좋아하는 것인가? 오페라에도 비극적인 내용의 작품이 더 많이 있는 것은 그런 본성 때문인듯 싶다. 비극적인 내용의 오페라는 대체로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죽음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많이 들면 죽게 되고 또한 불치의 병에 걸리면 죽음을 피할수 없다. 그런 일반적인 죽음은 별도로 치고 별난 죽음으로는 어떤 경우가 있는지 살펴본다.


○ 자살: 주인공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푸치니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에서 주인공인 초초상(나비부인)은 미해군장교인 남편 핀커튼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곧 다시 오겠다는 말을 믿고 학수고대하였지만 정작 3년만에 돌아온 남편은 미국에서 결혼한 부인 케이트와 함께였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초초상은 아버지가 남겨준 단검으로 일본 사무라이들의 자살 방식인 하라키리(셋부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라키리는 칼로 배를 갈라 죽는 방식이다. 초초상의 아버지가 초초상에게 단검을 유산으로 남겨주면서 한 말은 '명예스럽게 살지 못한다면 명예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스네의 '베르테르'(Werther)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권총자살을 한다. 샬로테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이다. 베르테르는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쏘았을 때 흘러나온 붉은 피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을 원치 않아서 빨간색 조끼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때 베르테르를 동경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빨간조끼가 유행이 되기까지 했다. 푸치니의 '토스카'(Tosca)에서 플로리아 토스카는 사랑하는 마리오 카바라도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나 카바라도시가 그예 총살형을 당하자 너무나 절망하여서, 그리고 자기를 겁탈하려던 스카르피아를 죽였기 때문에 살인죄를 면치 못할 것 같아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하고 티베르 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헨리 퍼셀의 '디도와 이니아스'(Dido and Aeneas)에서 카르타고의 여왕인 디도는 트로이에서 온 사랑하는 이니아스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자 버림받았다고 믿어서 마침 해변에 크게 피운 모닥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비부인'에서 할복자살코자 하는 초초상. 오페라 콜럼버스


마스네의 '타이스'에서 타이스의 경우는 일반적인 자살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던 타이스는 사랑했던 아다나엘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 들여서 환락의 생활을 청산하고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고행의 기도생활을 하다가 3년 후에 너무나 몸이 쇠약해져서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일종의 자살이라고 간주할수 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에서 레오노라는 사랑하는 만리코를 살리기 위해 루나백작을 받아들이기로 하지만 루나 백작이 약속을 어기고 만리코를 총살하자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르디의 '리골레토'(Rigoletto)이다. 천대받는 존재인 리골레토는 하나뿐인 딸 질다를 만투아 공작이 농락하자 복수를 결심하고 자객 스파라푸칠레에게 공작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 사실을 안 질다가 사랑하는 공작을 대신하여 자객의 칼을 맞아 죽음을 택한다.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는 루치아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자 결혼 첫날밤에 남편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이며 자신은 정신이상을 일으켜 결국 죽는다. 베르디의 '에르나니'()에서 에르나니는 아라곤 영주의 아들이었으나 전쟁에서 패배하여 모든 것을 잃고 산속에 들어가 산적이 된다. 에르나니는 우연히 엘비라를 알게 되고 서로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엘비라는 실바공작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엘비라는 실바공작의 조카이기도 하다. 어느때 에르나니는 우연히 죽음의 고비에서 실바공작의 배려로 목숨을 건진다. 에르나니는 실바공작에게 목숨을 빚졌으므로 언제든지 사냥나팔만 불면 나타나서 대신 죽겠다고 약속한다.


'리골레토'에서 사랑하는 딸 질다의 뜻하지 아니한 죽음을 보고 오열하는 리골레토. 아카데미 오브 보컬 아츠


○ 사형: 주인공들이 죽을 죄를 졌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 경우이다. 사형을 시행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선 참수형이다. 목을 치는 사형이다.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Anna Bolena)에서 영국왕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인 안나 볼레나는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간통죄의 누명을 쓰고 런던탑에서 도끼로 목을 내려치는 참수형을 당했다. 도니체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을 지냈던 마리아가 사촌인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에 의해 암살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역시 참수형을 당했다. 마지막 순간에 마리아가 합창과 함께 부르는 Deh! Tu di un umile preghiera(주여 우리의 겸손한 기도를 들어주소서)가 가슴을 저민다. 도니체티의 또 다른 오페라인 '로베르토 드브러'(Roberto Devereaux)에서도 주인공인 에섹스 경 로베르토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장 총애하던 신하였으나 여왕은 그런 로베르토가 노팅엄 공작의 부인인 사라와 밀회한다고 믿어서 누명을 씌워서 처단코자 한다. 아일랜드 총독으로 부임한 로베르토는 여왕의 승락이 없이 아일랜드 반란군과 휴전협정을 맺은 것을 반역으로 간주하여 사형선고를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로베르토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처형을 중지시키려 했으나 밖에서 대포소리가 들렸다. 이미 처형을 끝냈다는 소리였다. 푸치니의 '토스카'에서 화가인 카바라도시가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의 야욕 때문에 반정부 인물을 도와주었다는 죄목으로 총살형을 당하였다는 것은 이미 소개한바 있다.


처형장에서의 안나 볼레나. 캐나디언 오페라 컴페니. 토론토


프랑스 혁명시기의 전유물이었던 길로틴에 의한 처형 장면도 몇몇 오페라에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프란시스 풀랑크의 '갈멜파 수녀들의 대화'(Les Dialogues des Carmelites)에서이다. 바티칸은 갈멜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갈멜파를 추종하는 자들을 모두 파문하였다. 교황도 갈멜파 신도들을 악마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였다. 프랑스 혁명시기에 교회는 갈멜파가 가톨릭 신앙에 어긋난다고 하여 박해를 감행하였다. 갈멜파 수녀원의 수녀들도 이단으로 몰려서 하나둘씩 단두대에 올라가 생을 마감하였다. 귀족이었으나 혁명으로 사회가 어수선하자 수녀원으로 몸을 피한 블랑셰는 참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다가 다른 수녀들이 죽음을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자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대열에 참여키로 하여 단두대로 올라간다. 그러면서 부르는 노래가 Veni Creator Spiritus(성령이여 오소서)와 Deo Patri Sit Gloria(하나님께 모든 영광을)이다. 그레고리안 챤트로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약할 때에 부르는 찬송가이다. 움베르토 조르나도의 '안드레아 셰니에'()에서도 젊은 시인인 셰니에는 귀족들을 비호했다는 누명을 쓰고 혁명분자들에 의해 체포되어 단두대로 올라가게 된다. 셰니에를 사랑하는 맛달레나가 어머니도 혁명으로 죽임을 당했는데 사랑하는 셰니에마저 잃을수는 없다면서 부르는 La Mamma Morte(어머니도 죽으셨는데)가 유명하다.


갈멜파 수녀들이 하나 둘씩 단두대로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생테티안느 오페라


머리가 잘리는 참수형을 받은 사람은 안나 볼레나 뿐만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세례요한도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Salome)에서 해롯은 아내 헤로디아드의 딸인 살로메가 너무나 뇌살적으로 춤을 추자 감동하여서 무슨 소원이던지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이에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드와 의논해서 헤롯과 헤로디아드의 불륜을 공공연히 비난한 세례 요한을 죽여서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하여 감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은 머리가 잘려서 쟁반에 올려진채 살로메에게 전해진다. 참혹하고 섬뜻한 장면이다. 오페라에서는 처형 방법도 여러가지가 소개되고 있다. 기독교의 초대교회 시절에 로마제국으로부터 받은 처형을 가혹했다. 주로 원형경기장에서 화형에 처하거나 또는 사자가 찢어 죽이도록하는 가혹한 형벌도 서슴치 않았다.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순교자'(Les martyrs)에서 나타난다. 아르메니아의 귀족이며 백부장인 폴리우토와 부인 파울리네는 기독교를 위해 사자의 먹이가 되는 순교를 당했다. 파울리네는 우상을 숭배하는 아르메니아 총독의 딸이었지만 남편의 신앙을 따라서 함께 순교하였다. 오페라의 무대에서는 사자에게 고난을 당하는 장면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그런 내용이다. 마치 영화 '성의'(The Robe)를 보는 것과 같았다. 베르디의 '아이다'()에서 에티오피아의 공주인 아이다는 사랑하는 라다메스가 반역죄로 이시스 사원의 지하 무덤에 생매장 당하는 형벌을 받게 되자 라다메스와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 미리 지하 무덤에 들어와서 있다가 라다메스를 만나서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


세례요한의 머리를 잘라 살로메에게 주는 헤롯. 오페라의 장면은 너무 끔찍하여서 그림으로 대신함.


프로멘탈 알레비의 '유태여인'(La Juive)의 경우에는 더 참혹하다. 유태인 엘레아자르의 딸 라헬이 기독교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참혹한 형벌을 가한다. 뜨거운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솥으로 들어가서 죽는 형벌이다. 라헬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끓는 물 속으로 뛰어들자 아버지인 엘레아자르도 따라 들어가서 함께 죽는다. 그런 형벌을 내린 사람은 가톨릭의 브로니 추기경이었다. 그런데 실은 브로니 추기경이 라헬의 진짜 아버지였다. 화형에 처해진 대표적인 경우는 프랑스의 구국처녀 잔다크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잔다크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로서는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와 차이코브스키의 '오를레앙의 처녀'(The Maid of Orleans)가 있다. 잔다크에 대한 소설과 희곡 등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베르디가 원작으로 삼은 작품은 프리드리히 쉴러의 '오를레앙의 처녀'(Die Jungfrau von Orleans)이다. 원작에서는 잔다크(조반나 다르코)가 오를레앙에서의 전투에서 영국과 손잡은 프랑스 귀족들에 의해 잡혀서 역시 영국에 우호적인 주교로부터 마녀라는 죄명으로 화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베르디의 오페라에서는 화형의 처벌을 받게 되었으나 잔다크의 아버지인 자코모가 풀어주어서 다시 전투에 나가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차이코브스키의 '오를레앙의 처녀'에서는 잔다크가 화형을 받아들여서 하늘로부터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는 중에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대 오페라로서 제이크 히기의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란 것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사형수 입장'이다. 수녀로서 사형수인 로처를 위해 기도해온 헬렌 프리진의 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로처는 무고한 젊은 남녀를 무참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을 받게 되어 있다. 헬렌 프리진 수녀가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로처는 결국 약물에 의한 사형에 처해진다. 오페라에서 죄수들의 사형장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데드 맨 워킹'이 유일 할 것이다.

 

조반나 다르코(안나 네트렙코)가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다. 밀라노 라 스칼라. 마치 장작더미의 화염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

 

○ 살인: 오페라에서는 수많은 경우의 살인 장면이 등장한다. 이런 저런 살인 장면 중에서 별난 살인장면만을 대표적으로 몇가지 소개코자 한다. 암살도 포함된다. 오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암살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ehra)에서일 것이다. 스웨덴의 진보적인 왕인 구스타브 3세는 그의 오랜 친구이며 비서인 안카르스트로엠에 의해서 스톡홀름의 왕립오페라극장에서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이 사실을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오페라에서는 장소가 오페라극장이 아니라 가면무도회장으로 되어 있다. 안카르스트로엠이 구스타브 3세를 암살한 것은 그의 부인 아멜리아와 국왕이 로맨틱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왕의 개혁성향에 대하여 보수적인 귀족들과 함께 저항키로 하여서였다. 이 오페라는 당국의 검열에서 군주를 암살하는 내용은 용납할수가 없다고 해서 장소를 영국 식민지 시기의 보스턴으로 정했으며 등장인물들도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 친구이며 비서인 레나토 등으로 바꾸었다. 구스타브 3세는 가장 신임하였던 친구로부터 총격을 받아 숨을 거두면서 모두를 용서한다고 말했으며 아멜리아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강조했다. 오페라에서 가장 잔혹한 살인의 경우는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오페라 '게수알도'(Gesualdo)를 들수 있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카를로 게수알도는 실존 인물이다. 17세기에 이탈리아 마드리갈의 거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유명한 작곡가였다. 그러한 그가 아내 마리아가 돈 화브리치오 공작과 불륜관계에 있자 어느날 현장을 잡아서 두 사람 모두 칼로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어 저택의 정문 앞에 전시하여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도록 했다. 희대의 살인마이지만 지체 높은 귀족이기 때문에 면죄부를 받았다. 살인의 장면이 너무나 끔찍한 오페라로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를 빼놓을수 없다. 미케네의 왕비인 클리템네스트라는 정부 이지스테우스와 음모를 꾸며서 아가멤논 왕을 죽인다. 아가멤논 왕의 딸인 엘렉트라는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와 정부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린다. 추방되었던 왕자 오레스테가 돌아오자 엘렉트라와 오레스테는 어머니와 정부를 도끼로 살해한다.


'가면무도회'에서 암살당해 쓰러진 리카르도(로베르토 알라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멜리아. 비엔나 슈타츠오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 of Mtshensk District)에서는 레이디 맥베스라는 별명을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가 시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서 독버섯으로 만든 음식을 먹도록해서 죽인다. 시아버지를 죽인 이유는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것이 시아버지에게 발각되어서였다. 이 오페라가 처음 나오자 소련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는 이 오페라가 반사회적이라고 하여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충격을 받은 쇼스타코비치는 그후 30여년 동안 작곡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오페라는 스탈린 사후 10년 만에 초연되었다. 제목은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라고 바꾸었다. 베드리의 '오텔로'(Otello)에서 소위 말하는 의처증의 오텔로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순수하고 성실한 데스데모나를 목졸아 죽인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죽은 데스데모나의 옆에서 칼로 자기자신을 찔러 숨을 거둔다. 이만한 비극도 없을 것이다. 아마 있다고 하면 역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다. 로미오는 사랑하는 줄리엣이 가짜로 죽은 줄을 모르고 자기도 줄리엣을 따라서 저 세상으로 가겠다면서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잠시후 약기운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로미오가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나'라면서 따라서 죽는다. 비극, 또 비극이 아닐수 없다. 오텔로의 죽음은 자기의 미욱한 잘못을 깨닫고서 행한 자살이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은 약간의 오해가 불러온 비극적인 자살이란 것이 다르다. 레오시 야나체크의 '카타 카바노바'(Kat'a Kabanova)에서 볼가강변의 칼리노프 마을에 살고 있는 카타(카티야)는 남편의 무관심과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지만 주위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자 스스로 볼가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카탈라니의 '라 왈리'()에서 왈리는 알프스의 산중에서 사랑하는 하겐바흐를 만나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화해하며 새로운 사랑을 다짐하는데 마을로 내려오다가 그만 눈사태를 만나 하겐바흐가 먼저 눈속에 파묻히자 왈리도 스스로 눈사태 속으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질투심에 불타서 데스데모나(진 펜)를 목졸라 죽이는 오텔로(제임스 맥크래켄). 1967.


프란시스 풀랑크의 '카르디약'(Cardillac)에서 주인공인 카르디약은 파리에서 유명한 보석세공업자이다. 그는 그가 만든 작품들에 대한 애착심으로 보석제품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은밀하게 하나 둘씩 살해하고 보석제품을 찾아와서 만족해 한다. 말하자면 연쇄살인범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죄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르디약은 '사람의 목숨이 무에 그리 중요하냐? 중요한 것은 다시는 만들수 없는 보석제품이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살인자가 자기라는 사실을 밝혔고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뉘우치라고 말했지만 사과한마디 하지 않자 분개한 주위 사람들이 카르디약을 죽인다는 내용이다. 비제의 '카르멘'(Carmen)에서 카르멘으로부터 사랑의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돈 호세는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인다. 투우장 밖에서의 일이다. 투우장 안에서는 투우사의 칼을 맞은 투우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서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고 투우장 밖에서는 질투심을 못 이긴 돈 호세가 카르멘을 칼로 찔러서 바닥을 붉은 피로 물들였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에서는 남의 부인이 된 옛 애인을 잊지 못하는 투리두가 결국은 옛 애인이었던 롤라의 남편 알피오로부터 시실리식의 결투 요청을 받으며 결투 결과 죽임을 당한다. 마을의 처녀로서 투리두의 아이까지 임신한 산뚜짜는 투리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신하여 쓰러진다. 결투도 결국은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존 애덤스의 '클링호퍼의 죽음'(Death of Klinghoffer)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이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로 운항하던 유람선을 습격하여 인질로 삼은 승객들 중에서 유태인인 클링호퍼를 살해한다. 다음날 유람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알렉산드리아에 입항한다. 클링호퍼의 부인만이 남편의 죽음을 알고 슬퍼할 뿐이다.


돈 호세(로베르토 알라냐)가 카르멘(엘리나 가란차)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나와 함께 갈 것이냐?'라고. 카르멘이 '내가 왜 당신하고 같이 가야해요? 안가요. 안가'라고 대답하자 흥분한 돈 호세가 카르멘을 찌른다.


○ 제물: 지금이야 그런 일이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지만 고대에는 생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드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헨델의 '입다'(Jephtah)에서 사람을 불에 태워서 희생물로서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사사(판관)인 입다는 암몬 족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군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나간다. 입다는 출전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만일 암몬 자손들을 물리치고 편안히 돌아오게 되면 누구던지 나의 집 문 앞에 나와 처음으로 나를 영접하는 사람을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했다. 그 사람이 바로 입다의 사랑하는 딸인 이피스였다. 입다는 하나님께 약속한 일이므로 딸을 번제로 드렸던 것이다. 그로부터 '입다의 서약'이라는 말은 공연히 약속을 해서 큰 슬픔을 가져오는 일을 의미하게 되었다. 벨리니의 '노르마'(Norma)에서 여사제인 노르마는 이르민술 신과의 서약을 깨트렸다고 하여서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을 것을 결심한다. 신전의 여사제는 절대로 남자를 알면 안되는데 노르마는 비밀리에 자기 종족의 적인 로마군의 폴리오네와 결혼하고 아이들까지 두었으므로 이르민술 신에 대한 서약을 크게 깨트린 것이다. 폴리오네도 노르마와 함께 불구덩이로 걸어들어간다. 노르마는 처음에는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그것도 자기가 데리고 있는 여사제를 사랑하게 된 폴리우네를 증오하여서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어린아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차마 그짓은 할수가 없어서 자기만이 죽기로 결심했던 것이고 이에 잘못을 뉘우친 폴리우네가 노르마와 함께 번제를 위해 마련된 불길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노르마와 폴리오네가 이르민술 신에 바치는 제물이 되기 위해 불속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있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 자녀 살해: 자기의 아이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들도 오페라의 내용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메데아)의 경우이다. 메데는 테살리 왕국의 왕자 제이슨을 위해 황금양털을 훔쳐서 준다. 메데와 제이슨 사이에는 두 아들까지 생긴다. 그런데 제이슨은 고린도의 왕 크레온의 딸 크레우스와 새로 결혼코자 한다. 제이슨의 배신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메데는 두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인다. 메데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는 대표적으로 두 작품이 있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루이지 케루비노의 '메데'이며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마르크 앙투안 샤르팽티에의 '메데'이다. 구노의 '파우스트'(Faust)에서 마르게리트는 파우스트와의 정당치 못한 사랑으로 아이를 낳지만 그 아이를 살해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다. 마르게리트 자신도 죄책감에 의한 고통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마침 부활절 아침이어서 교회에서 부활의 종이 울리고 '예수 부활하셨네'라는 찬양이 울려퍼지자 감옥의 문이 스스로 열리고 마르게리트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메데(메데아)는 제이슨에 대한 배신감을 이기지 못하여 제이슨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살해코자 한다.


○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에서 에우리디체는 뱀에 물려 세상을 떠난다. 그런 에우리디체를 세상으로 데려오기 위해 오르페오가 지하세계로 떠난다. 오르페오는 아모레의 도움을 받아서 에우리디체를 데리고 나올수 있게 되지만 한가지 조건은 뒤에서 에우리디체가 무어라고 말해도 절대고 뒤돌아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지상으로 가는 도중 에우리디체는 오르페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고 앞서가자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여 원망섞인 말을 한다. 그 말에 오르페오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고 그리하여 에우리디체는 다시 죽는다. 토마의 '햄릿'(Hamlet)에서 햄릿은 자기 때문에 정신이상이 생겨서 죽은 오펠리아에 대하여 비통한 심정을 갖는다. 그럴 즈음에 노르웨이에 갔던 오펠리아의 오빠 라에르테가 돌아와서 오펠리아가 햄릿 때문에 죽은 것을 알고는 결투를 신청한다. 라에르테의 칼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햄릿은 결투 중에 부상을 당하고 이어 독이 몸에 퍼져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하세계에서 이 세상으로 나가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그러나 에우리디체가 오르페오를 뒤를 돌아보게 하여 에우리디체는 그 자리에서 다시 죽는다. 오페라 토론토. 현대적 연출


○ 오페라 수많은 주인공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당시에는 결핵이 불치의 병이어서 결핵에 걸리면 거의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주인공인 비올레타도 결핵으로 숨을 거둔다.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eme)의 주인공인 미미도 결핵으로 숨을 거둔다.


'라 보엠'에서 미미의 죽음. 애통해하는 로돌포.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