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데이빗 랭의 '해부극장'(Anatomy Theater)

정준극 2018. 10. 22. 09:29

해부극장(Anatomy Theater)

데이빗 랭의 실내오페라


데이빗 랭


세상에는 별별 제목의 오페라들이 다 있지만 섬뜩한 기분을 주는 '해부극장'(Anatomy Theater)이라는 것도 있다. 인체해부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미국의 데이빗 랭(David Lang: 1957-)이 음악을 붙이고 대본도 만든 오페라이다. 데이빗 랭은 '해부극장'을 오페라라고 부르지 않고 오페레타라고 불렀다. 대저 오페레타라고 하면 코믹하고 유쾌한 음악과 스토리로 구성되는 일반적이다. 그런데 '해부극장'을 오페레타라고 부른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데이빗 랭의 음악을 알면 이해도 된다. 그의 음악은 코믹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섬뜩한 면을 보여주고 있고 짜증나게 만들어 주는 면도 있다. 데이빗 랭은 오페레타라고 해서 반드시 코믹한 음악과 코믹한 내용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섬뜩한 음악과 섬뜩한 내용도 오페레타의 구성요소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해부극장'을 규모가 작다고 해서 실내 오페라의 범주에 넣고 있다. 출연진도 4명에 불과하며 오케스트라의 규모도 실내악단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부극장'의 공연시간은 무려 75분이나 된다.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작곡자인 데이빗 랭은 시신에게도 아리아를 만들어 주었다. '해부극장'은 2016년 6월 16일 LA오페라에 의해 로스안젤레스의 레드캣(Redcat) 공연장에서 초연되었고 이후 5회의 추가 공연이 있었다. 이 오페라는 LA 오페라의 오프 그랜드 시리즈(Off Grand Series)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LA에서의 '해부극장' 무대


데이빗 랭은 캘리포니아의 로스안젤레스에서 태어나서 스팬포드와 아이오와를 거쳐 1989년에 예일에서 음악예술 박사학위를 획득한 현대음악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은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로크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그를 포스트 미니멀리즘, 또는 토털리즘 작곡가로 분류하고 있다. 아무튼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이오와의 마틴 제니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여러 위대한 작곡가들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한스 베르너 헨체도 한때 그를 지도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의 음악은 섬뜩하면서도 괴이하고 짜증나게 하며 신경을 건드리게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코믹한 면이 다분히 들어 있고 또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요소가 있다. 어떤 평론가는 그의 음악을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론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에 괴이하면서도 인습을 타파하는 듯한 제목을 붙이기를 선호했다. 예를 들면 '살아 있는 원숭이 먹기'(Eating Living Monkeys), '얼간이'(Bonehead) 등이다. 데이빗 랭은 음악그룹인 '뱅 언 어 캔'(Bang on a Can)의 공동 창설자이다. 그는 2008년에 '성냥팔이 소녀 수난곡'(The Little Match Girl Passion)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어 2010년에는 최우수 소앙상블공연으로 그래미 상을 받았으며 영화 '청춘'(Youth)의 음악(Simple Song #3)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었다.


해부극장'의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해부극장'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해부극장'이라고 하면 '인생극장', '청춘극장'처럼 무슨 신파조의 드라마틱한 면이 다분히 표현되어 있는 작품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인체의 해부에 무슨 드라마틱한 면모가 다분히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해부극장'은 17세기에 주로 영국에서 실제로 인체의 해부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극장을 말한다. 17세기에 영국에서는 이른바 해부전문가들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사형수의 시신을 얻어다가 적당한 장소에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고 입장시킨후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쇼가 있었다. 이를 해부극장이라고 불렀다. 물론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돈을 내고 해부 구경을 오는가? 사람들 중에는 관음증(觀淫症)이라는 증세의 사람들도 있다. 관음증은 변태 성욕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행위를 훔쳐봄으로써 성적 쾌감을 느끼는 증세를 말한다. 그러나 성적인 사항 뿐만 아니라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관음증 환자라고 볼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주로 구경을 온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을 특히 강조하는 사람들도 구경을 온다. 물론 일반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구경오는 경우가 많다.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구경 온다는 것은 '해부극장'이 표면적으로 도덕을 강조하는 행사라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처형당하는 사라


도덕을 강조한다는 말에 대하여는 설명이 필요하다. 중세로부터 어쩐 일인지 악한 사람의 신체 장기는 일반 사람들의 것보다 다르다는 주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심장이 특이하게 크다든지, 간이 기형으로 생겼다든지, 췌장이 이상한 모양이라든지 하면 그런 사람들은 도덕성이 제로여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흉악범으로 사형을 받은 사람들의 시신을 해부하여 보여주므로서 그들의 장기가 일반 선한 사람들의 장기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도덕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요즘같아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교회의 권세가 막강했던 중세에는 그런 주장도 거의 무조건 통하였다. 코믹하면서도 괴이한 소재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빗 랭은 18세기의 기록에 의한 '해부극장' 자료를 보고 영감을 얻어 오페레타를 작곡키로 결심했다. 비주얼 아티스트로 유명한 마크 디온이 합세하였다. '해부극장'은 여자 사형수의 고백과 처형장면으로 시작하여 해부 전문가에 의한 여자 시신의 해부장면으로 진행된다. 해부전문가는 여자 시신에서 악함의 징조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청중들은 일종의 증인들이다. 그런데 18세기에 극장에서 해부가 진행될 때에 발코니의 관중들에게는 음식이 제공되는 서비스가 있었다. 먹고 마시면서 해부를 즐긴다니 대단한 괴기가 아닐수 없었다.


'해부극장'의 무대


돌이켜 보면 피의 장면을 볼수 있는 오페라로는 여러 편이 있다.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는 결혼한 날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이고 그 때문에 드레스에 피가 흔건히 묻은 모습의 루치가아 저 유명한 '광란의 장면'의 아리아를 부른다. 신부인 루치아가 피에 젖어 있는 결혼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장면이 섬뜩한 장면이기는 했다. 베르디의 '막베스'에서 레이디 막베스는 스코틀랜드의 던칸 왕을 죽이고 피에 젖어 있는 손을 들어 보인다. 손에서 선홍색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에서 살로메는 참수된 세례 요한의 머리를 품에 안고 절규한다. 그리고 그 머리에 키스를 한다. 어떤 공연에서는 세례 요한의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아무튼 이렇듯 여러 오페라에서 섬뜩한 피빛 장면이 연출되고 있지만 '해부극장'에서는 더 섬뜩하고 더 끔찍하다. 사람들은 점점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해부극장'의 등장인물은 4명이다. 주인공은 여자 사형수인 사라 오스본(Sarah Osborne: S)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자이다. 조나단 크라우치(Jonathan Crouch: Bar)는 극장의 매니저이면 엠씨로서 해설을 맡는다. 해부전문가는 바론 필(Baron Peel: B-Bar)이다. 이름은 무엇을 벗긴다는 뜻의 필이고 그 앞에 바론(남작)이라는 작위 표시가 있다. 그리고 그를 돕는 조수가 암브로우스 스트랭(Ambrose Strang: T)이다. 그러면 남편과 두 아이를 살해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주인공 사라 오스본이 어떤 생을 살아 왔는지를 그의 고백을 통해서 알아보자. 사라는 어릴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재혼하였다. 사라의 의붓아버지는 난폭한 술주정뱅이었다. 의붓아버지는 어린 사라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주 구타하였다. 어머니는 딸 사라가 매맞으며 지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이 귀중한지 아무런 편도 들어주지 않았다. 사라가 열다섯 살 때에 의붓아버지는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사라를 침대로 끌어들여서 범하였다. 사라는 겁에 질렸지만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의붓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참았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의붓아버지는 틈만 있으면 사라를 건드렸다. 사라는 그런 행위가 악한 것인줄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점차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어떤 때는 의붓아버지가 기다려지기도 했다.


사라의 해부를 준비하는 바론 필


사라와 의붓아버지의 관계를 어렴푸시 알고 있던 사라의 어머니는 어느날 사라와 의붓아버지가 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나서 그나마 조금 열려있던 딸 사라와의 문을 닫았다. 사라는 거리로 나와야 했고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다. 사라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워서 술을 마셨고 결국은 알콜 중독에 빠졌다. 사라의 생활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라가 절망의 삶을 계속하고 있을 때 존 새들러(John Sadler)라는 남자를 만났다. 존은 사라와 결혼하고 사라의 핌프가 되었다. 핌프는 창녀들을 돌보아 주는 포주를 말한다. 처음에 존은 사라에게 상당히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사라는 난파된 것과 같은 인생에서 구호선을 만난듯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사라는 거리에 나가서 계속 창녀노릇을 해야 했다. 세월은 흘러서 사라는 존과 살면서 두 아이까지 두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자 사라의 마음은 전에 비하여 강퍅하지 않게 되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존은 상대적으로 더욱 난폭해지고 잔혹해졌다. 사라에 대한 존의 구타는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잠시라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거리로 나가서 일을 하라고 윽박지르기가 일수였다. 존에 대한 사라의 사랑의 감정은 점점 증오로 변해갔다. 사라는 존이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사라는 오랜 생각 끝에 저런 괴물을 그냥 두었다가는 더 비참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라는 존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바론 필과 사라 오스본


어느날 저녁, 사라는 모처럼 존과 함께 있게 되었다. 사라는 존에게 술을 권했다. 사라는 존이 마실 술에 라우다눔, 즉 아편액을 섞어 넣었다. 술을 마신 존은 잠시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사라는 베개로 그의 얼굴을 덮고 있는 힘을 다해 눌렀다. 존은 숨을 쉬지 못하더니 얼마후 죽었다. 사라가 정신을 차리고 문쪽을 바라보니 두 아이가 문틈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는 갑자기 살인현장을 들켰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아이를 침대로 데려가서 눕히고 역시 베개를 들어서 두 아이까지 죽였다. 사라는 살인죄로 체포되어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사라는 자기의 죄를 생각할 때 지옥의 불길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해부극장의 쇼를 보여주는 바론 필에 의해 해부를 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