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오페라 속의 세기적 미인들 집중탐구 3

정준극 2019. 3. 4. 10:15

오페라 속의 세기적 미인들 집중탐구 3


○ 어름같이 차가웠던 투란도트 공주


-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투란도트'(Turandot)

- 페루치오 부소니(erruccio Busoni: 1866-1924)의 '투란도트'(Turandot)


베이징 궁전에 살고 있으며 알툼 황제의 딸인 투란도트는 천하미인이었다. 절세미인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왕자와 귀족들이 투란도트와 결혼하고 싶어서 청혼했지만 투란도트는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서 맞추지 못하면 청혼자들을 가차없이 죽였다. 투란도트의 선조 중에 포악한 남자에 의해 능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왕비가 있었는데 그 왕비의 비참한 죽음을 생각하여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의 하나이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10대 오페라에 속할 정도의 작품이다.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배경은 이 작품이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이지만 푸치니가 완성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이 오페라의 피날레 파트에서 테너 아리아로 유명한 '공주는 잠 못이루고'(Nessum drma)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투란도트'를 제목으로 삼은 오페라는 푸치니의 '투란도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페루치오 부소니도 '투란도트'도 있다. 다만, 부소니의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것보다 먼저 선을 보였지만(1917년) 그후에 나온 푸치니의 '투란도트'(1926년)의 그늘에 가려져서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투란도트'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투란도트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구혼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잠시 설명코자 한다. 사족이지만,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작곡함에 있어서 부소니의 '투란도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투란도트. 마르티나 세라핀(Martina Serafin). 메트로폴리탄


투란도트는 페르시아어이며 여자 이름이다. '투란의 딸'이란 뜻이다. 투란(Turan)은 중앙 아시아에 있는 지역의 명칭이다. 과거에는 페르시아 제국에 속한 지역이었고 현재는 아랄해 동쪽의 광대한 지역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크스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북부에 걸쳐 있었던 지역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중앙 아시아(센트랄 아시아)라고 부르는 곳에 있던 지역이다. 투란도트라는 말은 페르시아어의 Turandokht(투란도크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Turadokht에서 dokht는 dokhtar라는 단어를 줄인 것으로 '딸'이란 뜻이다. 그래서 '투란의 딸'이란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투란도트란 이름이 처음 문학작품에 등장한 것은 12세기 말이다. 페르시아(이란)의 시인인 니자미(Nizami)의 '하프트 페이카르'(Haft Peykar)에 나오는 '일곱개의 둥근 지붕'(Seven domes)이라는 이야기 중에서 '빨간 둥근 지붕'(Red dome)에 처음 등장한다. '하프트 페이카르'라는 말은 '일곱 미인들'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투란의 딸'도 페르시아가 자랑하는 일곱 미인 중의 하나라는 설명일 것이다. 그러면 Turan(투란)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투르(Tur)의 땅(Land)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투르는 전설적인 이란 왕인 페레이둔(Fereydun)의 아들 중의 하나로서 용감하기가 이를데 없는 인물이었다. 얼마나 용감하였는가하면 무서운 용이 그의 형제들을 공격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대적하여서 용을 격퇴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래서 이름을 투르라고 지어 주었는데 투르는 '용감하다'는 뜻이다. 페레이둔 왕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국의 영토를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투르 왕자에게는 제국에 속한 투르키스탄과 중국의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 이것이 투란(투르의 땅)이란 명칭이 생긴 유래이다. 그리고 투란도트는 투르 왕자의 후손으로서 '투란의 딸' 또는 '투란의 공주'라는 의미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리세우의 투란도트


Turandot 의 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 것인가? 푸치니 학자인 빈첸트 카살리(Vincent Casali)에 의하면 Turandot 에서 마지막 t 는 오페라 제목으로 사용하거나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용할 경우에 묵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Turandot 라고 쓰고 '투란도'라고 읽는다는 것이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로사 라이사(Rosa Raisa)는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푸치니가 '투란도트'라고 말한 경우는 한번도 없고 언제나 '투란도'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훗날 투란도트의 역할로 유명한 소프라노 에바 터너(Eva Turner)도 푸치니를 본받아서인지 투란도트라고 발음하지 않고 언제나 투란도라고 발음했다. 그런데 푸치니의 손녀로서 현재 빌라 푸치니와 푸치니의 영묘를 관리하고 있는 시모네타 푸치니(Simonetta Puccini)는 마지막 t 를 당연히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모네타 푸치니는 오페라 Turandot의 대본이 베니스 출신의 대본가인 카를로 고찌(Carlo Gozzi)가 이탈리아어로 쓴 것이므로 주인공인 Turandot 도 이탈리아 식으로, 구체적으로는 베니스 스타일로 발음되어야 한다고 내세웠다. 페르시아어(이란어)로는 투란도트가 되건 투란도가 되건 상관 없지만 이탈리아식으로는 투란도타(Turandotta)가 되어야 하는데 베니스 사투리에서는 이름의 끝이 자음으로 끝나야 하기 때문에 Turandotta 가 아니라 Turandott 가 되는 것이므로 투란도트라고 분명하게 발음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베이징 오페라의 투란도트


대본을 쓴 카를로 고찌는 어떤 작품을 참고로 했는가?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프랑수아 페티스 들 라 크루아(Francois Petis de la Croix)는 1710년에 징기스 칸에 대한 자서전을 쓰면서 아시아 여러 지방의 문학 작품들을 다수 인용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우수한 스토리는 몽골의 공주 쿠톨룬Khutulun)에 대한 것이었다. 아름답고도 용맹한 공주였다. 그런데 프랑수아 페티스 들 라 크루아는 쿠툴룬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이름을 투란도트라고 변경해서 썼다. 공주가 '터키의 딸'이라는 의미에서 투란도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터키의 딸인 투란도트 공주는 구혼자들이 레슬링을 해서 승리해야 자기와 결혼할수 있다고 내세웠지만 들 라 크루아의 새로운 저서에서는 투란도트 공주가 구혼자들에게 세개의 수수께끼를 내걸고 맞추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내세웠다고 했다. 그리고 물론 맞추지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조건을 내걸도록 했다. 들 라 크루아의 저서를 독일의 프리드리히 폰 쉴러가 번역하여 희곡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괴테가 1802년에 쉴러의 '투란도트'의 봐이마르 공연을 무대감독하면서 몇가지 수정을 하였다. 쉴러와 괴테의 '투란도트' 극본을 카를로 고찌가 참고로 하여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메트로폴리탄 무대


투란도트 공주가 구혼자들에게 세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죽이는 끔찍한 사연은 무엇인가? 어찌 보면 남성혐오증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북경의 왕궁에는 로우링 여왕이 있어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렸다. 로우링 여왕은 아름다우며 인자한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왕궁에서 섬뜩한 비명소리가 흘러 나왔다. 야만적인 타르타르의 왕이 왕궁을 침범하여서 사랑스러운 로우링 여왕을 능욕하고 잔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로우링 여왕의 비참한 최후는 왕실의 공주들에게 전해 내려왔고 그 얘기를 전해 들은 공주들은 순수했던 로우링 여왕의 비명과 비참한 죽음에 말할수 없는 충격을 받아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그리하여 알툼 황제의 딸인 투란도트에게까지 로우링의 전설이 마음을 흔들어 주었고 결국 공주는 어느 남자에게도 자기를 맡길수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공주는 부왕으로부터 결혼해야 한다는 권유를 받지 않을수 없었다. 여러 나라의 수많은 왕자들과 귀족들이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북경을 찾아왔다. 공주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세가지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걸었다. 첫번째 수수께끼는 '밤마다 유령처럼 떠돌아 다니다가 동이 트면 사라지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서 다시 솟아나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두번째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승리에 도취하면 펄펄 솟구치지며 지는 해처럼 작렬하기도 하지만 죽음과 함께 차가워지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세번째 수수께끼는 '어름같이 차갑지만 불꽃처럼 뜨겁기도 한것, 순간이 지나간 후에는 영원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투란도트에 코린나 퀼리엄(Corinna Quilliam)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미완성인채 1924년,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 해에 토스카니니에 의해 밀라노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그리고 당시 토리노음악원의 원장이던 프랑코 알파노가 미완성 부분을 완성시킨 것은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지 2년 후인 1926년 4월에 역시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칼라프 왕자가 어름같이 차가운 투란도트 공주의 마음을 뜨거운 사랑으로 녹여서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끈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이다. 투란도트를 사랑하여서 결혼을 약속받는 칼라프는 실은 타르타르의 왕자이다. 타르타르라고 하면 먼 옛날 북경의 왕궁을 침범하여 아름답고 정숙한 로우링 여왕을 능욕하고 살해한 사람들의 나라이다. 투란도트는 어릴 때에 어머니로부터 선조가 되는 로우링 여왕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남자혐오증 내지 기피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 타르타르의 왕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투란도트 공주 역의 마리아 굴레기나. 메트로폴리탄


○ 이른 아침에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줄리엣


- 니콜로 칭가렐리(Nicolo Zingarelli: 1752-1837)의 '줄리에타와 로메오'(Giulietta e Romeo)

- 게오르그 벤다(Georg Benda: 1772-1795)의 '로메오와 율리'(Romeo und Julie)

- 니콜라 바카이(Nicola Vaccai: 1790-1848)의 '줄리에타와 로메오'(Giulietta e Romeo)

- 빈첸조 벨리니(Vincenz0 Bellini: 1801-1835)의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I Capuleti e i Montecchi)

- 사를르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의 '로메오와 줄리에트'(Romeo et Juliette)

- 프레데릭 들리우스(Frederick Delius: 1862-1934)의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A Village Romeo and Juliette)

- 리카르도 찬도나이(Riccardo Zandonai: 1883-1944)의 '줄리에타와 로메오'(Giulietta e Romeo)

- 하인리히 주터마이스터(Heinrich Sutermeister: 1910-1995)의 '로메오와 율리아(Romeo und Julia)

- 파스칼 뒤사팽(Pascal Dusapin: 1955-)의 '로메오와 줄리에트'(Romeo et Juliette)

- 레너드 번슈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 뮤지컬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올리비아 허세이와 레너드 화이팅


위의 리스트에서 볼수 있듯이 셰익스피어의 5대 비극 중의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 경우가 다른 어느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 것보다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오페라는 아무래도 구노의 '로메오와 줄리엣', 그리고 벨리니의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일 것이다. 레너드 번슈타인의 뮤지컬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를 현대의 뉴욕으로 옮긴 것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이지만 오페라로서 공연되기도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물론 실화가 아닌 픽션이다. 가공의 인물들을 내세운 이야기이다. 비록 가공의 인물들이지만 마치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인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스토리가 너무나 유명해서일 것이다. 몬테키가문의 로미오는 줄리엣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무도회에  가면을 쓰고 남모르게 참석했다가 무도회의 주인공인 줄리엣을 처음 보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크게 끌린다. 줄리엣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겼을까? 줄리엣이 얼마나 청순하고 아름다웠느냐 하는 것은 무도회에 참석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줄리엣이 등장하자 모두들 줄리엣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그후에 로미오가 줄리엣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의하면 줄리엣은 당시 14세였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디아나 담라우와 비토리오 그리골로. 메트로폴리탄


캬퓰레티가의 저택에서 무도회가 열리는 중에 줄리엣이 등장하자 남자 손님들은 입을 모아서 '아 얼마나 아름다운 아가씨인가. 아침에 새로 피어난 꽃과 같구나'(Ah, how beautiful she is! You'd think her a flower new-bloomed at morning)라고 찬미한다. 이어서 여자들도 '아 얼마나 아름다운 아가씨인가. 운명의 총애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 같네(Ah, how beautiful she is. She seems to carry whitin her all the favours of destiny)라고 찬양한다. 줄리엣의 모습을 처음 본 로메오가 줄리엣의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린다. 로메오는 자연에서 불수 있는 물질, 또는 추상적이 개념으로 줄리엣의 아름다움을 비유하여 찬양한다. 구체적으로 로미오는 줄리엣을 불빛, 밤하늘의 별 또는 행성, 아프리카 여왕의 보석 귀걸이, 그리고 까마귀떼 틈에 있는 비둘기로 표현했다. 우선 불빛과 관련하여서 로미오는 줄리엣의 아름다움이 불빛처럼 특별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불이라는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불이 있음으로서 그 따듯함으로 생명을 유지할수 있다, 하지만 불길이 지나치게 맹렬하면 최후의 순간을 마지할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다음으로 로미오는 줄리엣의 아름다움을  별이나 행성에 비추어 얘기했다. 비유적으로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귀걸이 보석과 같다'고 말했다. 다른 버전에 따르면 에티오피라 여왕의 귀걸이 보석을 루비라고 했다. 열정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 루비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줄리엣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보는 듯한 것이며 또한 이국적이라는 것이다. 이국적이라는 표현은 희귀하다는 뜻과 같다. 세상에 하나 뿐인 아름다움이란 의미이다. 로미오는 또한 줄리엣의 아름다움을 까마귀 떼 틈에 있는 비둘기와 같다고 표현했다. 순수함과 젊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둘기는 하얗지만 까마귀는 검다. 하얀색은 순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두 청춘 남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얘기할 때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비유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월을 초월하여서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구노의 '로메오와 줄리엣'. 안나 네트렙코과 로베르토 알라냐. 메트로폴리탄


○ 눈부시게 청순하고 아름다웠던 마농


- 다니엘 오버(Danie Auber: 1782-1871)의 '마농 레스꼬'

- 쥘르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의 '마농'(Manon)

-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마농 레스꼬'(Manon Lescaut)

-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1926-2012)의 '고독대로'(Boulevard Solitude)


마농 레스꼬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의 여인이다. 뭇 남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를 뒤흔들만큼 대단한 존재의 미인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설 속의 마농은 어느 틈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치스럽고 요염한 여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마농은 마치 '인형의 집'의 '노라', 에밀 졸라의 '나나', 발자크의 '마담 보바리' 처럼 세계의 여성사조에 커다란 영향을 던져준 주인공이다. 마농이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디뎌놓았을 때에는 예쁘고 귀엽고 순진하면서도 발랄한 소녀였다. 그러다가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파리의 환락적인 생활에 물들다보니 사치에 탐닉하게 되었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돈많은 이 남자 저 남자를 찾아 다니는 불나비와 같은 생활을 했고 마침내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은채 비참하게 죽어야 했다. 마농 이야기는 사치와 환락에 집착하는 여인의 말로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마농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누구나 한번 보면 마음을 끌리지 않을수 없는 그런 여인이었다.      


마농 역의 안나 네트렙코. 메트로폴리탄


프레보의 '슈발레이 데 그류와 마농 레스꼬의 이야기'의 줄거리부터 알아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무대는 프랑스와 신대륙 아메리카의 루이지아나이며 시기는 18세기 초반이다. 주인공인 데 그류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부유한 지주 가문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농이라는 어여쁘고 순진하며 발랄한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데 그류는 상속자의 신분도 저버리고 그의 아버지를 실망시키면서 마농과 함께 파리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마농은 점차 환락적이고 사치스런 파리의 생활에 물들어 간다. 집을 떠나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데 그류로서는 메번 마농의 사치벽을 충족시켜 줄수가 없다. 데 그류는 친구인 티베르지에게서 돈을 빌리거나 그렇지도 못하면 도박판에서 속여서 돈을 마련하여 마농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데 그류는 돈을 상당히 가지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도둑이 들어서 모두 훔쳐가거나 집에 불이 나서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자 마농은 더 이상 가난하게 데 그류와 함께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돈 많은 남자에게 간다. 그러다가 마농은 매춘부로서 루이지아나로 추방되었고 데 그류는 새로운 도박판을 찾아서 루이지아나로 온다. 루이지아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마치 결혼한 부부처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의 생활은 안락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데 그류는 마농과 정식으로 결혼해서 상속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자 한다. 그래서 주지사를 만나서 마농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주지사의 조카가 마농의 미모에 반하여서 청혼한다. 실망한 데 그류는 주지사의 조카와 결투를 하여 주지사의 조카를 의식불명의 상태로 만든다. 데 그류는 주지사의 조카가 죽었다고 믿는다. 보복이 두려웠다. 데 그류와 마농은 뉴 올리언즈로 도피한다. 그러나 수배를 받은 입장에서 뉴 올리언즈에서 지낼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루이지아나의 황무지 지대 저쪽에 영국인 정착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떠난다. 마농은 황무지를 지나는 중에 너무나 지쳐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데 그류가 다음날 아침에 마농을 땅에 묻는다. 가까스로 영국 정착지에 도착한 데 그류를 친구인 티베르지가 기다리고 있다. 데 그류는  티베르지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간다.


데 그류의 테너 다니엘 노욜리, 마농의 소프라노 시드니 만카솔리. 로열 오페라 하우스


마스네의 '마농'에서는 스토리가 조금 다른다. 마농은 도둑의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뉴 올리언즈로 가게 된다.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뉴 올린즈는 범죄자와 창녀들이 강제로 이주되는 곳이었다. 르 아브르 항구에서 배가 떠날 예정이다. 마농의 오빠인 레스꼬가 간수에게 뇌물을 주어서 마농을 겨우 빼낸다. 그렇지만 마농은 발랄하고 즐거움에 넘쳐 있던 예전의 그 마농의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고 피폐해져 있었다. 마농은 사랑하는 데 그류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꼬'는 비교적 프레보의 원작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다. 1893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초연되었다. 마농은 도둑으로 몰려 뉴 올린언즈(뉴 오를레앙)로 추방되어야 했다. 뉴 올리언즈는 프랑스가 창녀나 도둑과 같은 여인들을 체포하여 보내는 곳이다. 프랑스는 식민지인 뉴오를레앙스에서 여자들이 귀하기 때문에 창녀 등을 무더기로 보내어 남자들을 상대토록 해왔다. 마농도 다른 여인들과 함께 배에 탈 수밖에 없다. 마농을 잊지 못하는 데 그류가 마농을 죄수선에서 구출하기 위해 선장을 매수하여 아무도 모르게 배에 오른다. 얼마후 미국에 도착한 두 사람은 남들의 눈을 피하여 도망친다. 그러나 마농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프랑스 총독의 아들에게 발각된다. 데 그류와 총독의 아들은 결투를 벌인다. 결투로 총독의 아들을 겨우 따 돌인 데 그류와 마농은 프랑스 정착지를 떠나 영국 정착지로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조금난 더 가면 새로운 삶을 살수있는 영국 정착지이다. 마농의 건강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어떤 오두막집에서 더 이상 움직일수 없는 처지가 된다. 마농이 물을 찾는다. 데 그류가 물을 뜨러 밖으로 나간다(어떤 버전에는 사람을 부르러갔다고 되어 있음). 데 그류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마농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푸치니에게 '아니 마스네가 이미 작곡한 마농을 왜 다시 작곡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묻자 푸치니는 '왜 안됩니까? 마농과 같은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뿐이라면 말이 안되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도둑으로 몰려 체포되는 마농(안나 네트렙코). 메트로폴리탄


독일의 한스 베르너 헨체의 '고독 대로'는 아베 프레보의 마농 레스꼬 소설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무대를 2차 대전 직후의 파리로 설정한 것이 큰 차이이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를 압축하여서 단막으로 만들었다. 재즈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헨체의 '고독 대로'는 1952년 독일 하노버의 란데스테아터(시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헨체는 이 오페라를 만듦에 있어서 1950년대 헐리우드의 거장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블르바드'(Sunset Boulevard)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학생인 아르망 데 그류는 프랑스의 어떤 대도시 기차역에서 예쁘고 발랄한 마농 레스코를 만나 단번에 좋아하게 된다. 마농은 시골 집을 떠나 도시의 기숙학교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아르망은 마농에게 기숙학교에 들어가지 말고 자기와 함께 파리에 가서 즐겁게 지내자고 설득한다. 그리하여 마농과 아르망은 파리의 어떤 다락방에서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생활비가 부족하여서 어려운 생활을 한다. 얼마후 마농의 오빠인 레스코가 마농을 찾아온다. 그는 마농에게 구차한 생활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기고 더 행복하게 살라고 부추긴다.


'고독대로'에서의 마농


마농은 아르망을 떠나 돈 많은 찬미자인 릴라크에게 간다. 마농의 오빠인 레스코는 부자 리랄크의 집에서 물건들을 훔치려다가 발각된다. 릴라크는 마농과 오빠 레스코가 서로 짜고서 도둑질을 하려했다고 의심하고 마농을 집에서 쫓아낸다. 마농은 다시 아르망의 다락방을 찾아간다. 마농이 떠난후 아르망은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 마농의 오빠인 레스코는 이번에는 마농을 릴라크의 아들에게 붙여주려고 한다. 릴리크의 아들의 이름도 릴리크이다. 마농은 아르망이 며칠 동안 지방에 있는 사이에 릴라크의 아들을 몰래 만나 그렇고 그런 시간을 보낸다. 그때 갑자기 아르망이 돌아온다. 마침 그 때에 릴라크(아버지)도 마농을 찾아온다. 두 사람 모두 과거는 용서하겠으니 함께 살자고 말하려고 찾아 온 것이다. 아들 릴라크와 밀회하는 현장을 발각당한 마농은 당황한 나머지 권총으로 릴라크(아버지)를 쏘아 죽인다. 경찰에 끌려간 마농은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래도 아르망은 마농을 잊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 마농이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이다. 아르망이 형무소 문 앞에서 마농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형무소 문을 나온 마농은 아르망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채 무심하게 아르망의 옆을 지나 걸어간다. 고독한 길이다.


'고독대로'에서 아르망과 마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