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데틀레프 글라너트의 '칼리굴라' - 208

정준극 2019. 6. 24. 03:52

칼리굴라(Caligula)

데틀레프 글라너트(Detlev Glanert)의 4막 오페라

알베르 까뮈의 동명 희곡 바탕


데틀레프 글라너트


'칼리굴라'(Caligula)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데틀레프 글라너트(Detlev Glanert: 1960-)가 2006년에 완성한 4막의 오페라이다. 독일어 대본은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Hans Ulrich Treichel)이 1945년에 나온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같은 제목의 희곡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칼리굴라'는 2006년 10월 7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가 초연했다. 까뮈의 희곡은 잔인하고 광기가 있는 행동으로 악명 높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최후의 날들에 대한 것이지만 오페라의 대본은 주로 칼리굴라의 비열한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까뮈의 '칼리굴라'는 1942년에 내놓은 '이방인'(L'Etranger), 그리고 같은 해에 내놓은 '시시푸스의 신화'(Le Mythe de Sysphe)와 함께 이른바 그가 주장한 '부조리의 사이클(Cycle of the Absurd)의 한 파트이다.


비너스로 분장한 칼리굴라


작곡자인 데틀레프 글라너트는 한스 베르네 헨체의 학생으로 현재 독일 작곡가 중에서는 가장 작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곡가이다. 그는 스승인 헨제의 스타일을 많이 본 받아서 무대에 대한 높은 센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여러 장르의 작품으로 그의 재능을 보여주었지만 오페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무대작품은 Der Spiegel des Grossen Kaisers(대왕의 거울: 1995), Jospeh Suss(요제프 쥐스: 1999), Scherz, Satire, Ironie und Tiefee Bedeutung(익살, 풍자, 모순, 그리고 깊은 의미: 2006), Solaris(솔라리스: 2012) 등이다.


영화 '성의'의 한 장면. 칼리굴라 황제와 청순한 기독교인인 다이아나. 칼리굴라는 다이아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노예에게 달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다이아나는 달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페라의 타이틀인 칼리굴라는 어떤 인물인가? 1953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성의'(The Robe)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리챠드 버튼이 로마군 장교인 마르셀루스를 맡았고 그와 사랑하는 사이인 다이아나를 진 시몬스가 맡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티베리우스 황제의 조카인 칼리굴라는 나중에 황제가 되어 다이아나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마르셀루스가 기독교임을 들어서 화형에 처한다. 이에 다이아나도 마르셀루스와 함께 화형장으로 걸어가는 라스트 신이 인상에 남는 영화이다. 바로 그 칼리굴라가 글라너트 오페라의 주인공인 칼리굴라이다. 여가시 잠시 로마제국의 시작에 대하여 일고하면 시저가 브루투스에게 암살 당한후 시저의 양자인 옥타비우스가 정적들을 물리치고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렀다. 현군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2장에 보면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라는 구절이 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바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이다. 그렇게 하여 나사렛에 살던 요셉이 정혼한 여인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갔고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으니 그 시절이 옥타비우스가 아우구스투스로서 로마 황제로 있던 때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후 1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14살 되던 해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뒤를 이어 그의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황제에 올랐다. 티베리우스는 나중에 드루실라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는데 드루실라가 티베리우스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이가 칼리굴라이다. 칼리굴라의 생부는 로마의 장군인 게르마니쿠스였으며 어머니 드루실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딸이었다. 칼리굴라는 생부의 삼촌이 되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었고 티베리우스가 기원후 37년,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지 4년 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양자인 칼리굴라가 로마황제가 되어 기원후 41년까지 약 4년간 갖은 악독한 짓을 다하였고 특히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데 몰두하였다. 폭군 네로 황제는 바로 칼리굴라의 조카이다.


칼리굴라를 괴롭히는 죽은 사람들의 망령들


칼리굴라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을 로마제국의 원로원 의원으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칼리굴라가 엉뚱한 면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역대의 로마 황제 중에서 가장 무섭도록 악독한 인물 중의 하나였다. 그는 여러 여인과 관계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그의 누이인 드루실라였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도 드루실라였으므로 혼돈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데 실은 누이인 드루실라하고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누이 두명, 즉 소아그리피나와 라빌라와도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였다. 그러면서 그 누이들을 창녀가 되도록 내 몰았다. 그나저나 칼리굴라는 누이이며 정부인 드루실라가 죽자  실망과 절망으로 마음이 무척 혼란스러워져서 그로부터 별별 괴이하고 잔학하며 엽기적인 행각을 다 벌였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애라는 것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하긴 그의 사악한 행동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그가 벌인 여러 사악한 제멋대로의 행동 중에서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 자신을 암살토록 꾸민 것일 것이다. 


수많은 잔인하고도 엽기적인 행각 중에서 몇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말을 원로원의 의원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바 있으나 한발 나아가서 그 말을 신전의 사제로도 임명하였으니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칼리굴라는 광기에 넘친 인물이었다. 그러다보니 자기 몰두에 집착하였다. 그런 사람일수록 분을 새기지 못하여 광기를 부린다. 사치와 방종하며 특히 섹스에 무분별하여 난잡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그는 남의 부인과 관계를 가진 후에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그런가하면 심심하다고 단순히 재미로 사람을 죽이기를 밥먹듯이 하였다. 한번은 경기장에서 수많은 죄인을 끌어내어 맹수들의 밥이 되도록 한 일이 있는데 맹수들이 더 이상 물어 뜯을 사람들이 없자 그는 근위병들을 동원하여 경기장 관람석 한쪽에 있는 시민들을 모두 경기장 안으로 끌어내려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한 일도 있다. 국고를 너무 심하게 탕진하여서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는 매일 주지육림의 연회를 열었다. 이쯤되는 인간이므로 소설이나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족이지만 칼리굴라의 원래 이름은 가이우스 케사르였다. 칼리굴라라는 이름은 그의 계부인 티베리우스가 게르미나이와 전쟁을 벌일 때에 늘 신고 다니던 작은 장화를 생각하여서 붙인 것이다. 칼리굴라라는 단어는 칼리가(Caliga), 즉 장화의 축소형이다.


칼리굴라와 키소니아의 행복하게 보이는 한때. 런던 콜로세움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칼리굴라(Caligula: Dramatic Bar.). 로마 황제

- 키소니아(Caesonia: Ms). 칼리굴라의 부인

- 헬리콘(Helicon: Countertenor). 칼리굴라의 노예

- 체레아(Cherea: B). 행정장관

- 스키피오(Scipio: A). 젊은 애국자. 시인

- 무치우스(Mucius: T). 원로원 의원

- 메레이아/레피두스(Mereia/Lepidus: Bar). 1인 2역. 로마의 귀족

- 리비아(Livia: S). 무치우스의 부인

- 4명의 시인(2 Ts, 2 Bs). (합창단 중에서 솔로를 맡을수도 있음.)

- 드루실라(Drusilla). 칼리굴라의 누이 겸 정부(사일렌트 역할)

합창단은 각 파트별로 최소한 15명씩을 요구하고 있다.


칼리굴라 황제는 누이이며 정부인 그주실라가 죽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그는 3일 후에 돌아온다. 더러운 모습에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 있다. 칼리굴라는 노예인 헬리콘에게 달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모두들 황제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한다. 칼리굴라는 말도 안되는 잔혹한 법들을 만들어서 실행토록 한다. 그 중에는 자기의 말을 신전의 사제로 임명한다는 법도 들어 있다. 칼리굴라는 왕비인 키소니아에게 이 세상에서 악마들을 모두 제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다. 그리고는 연일 초호화판 연회를 연다. 키소니아는 남편 칼리굴라의 행동에 대하여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앖다. 황제의 행동이 날이 갈수록 도가 심해지자 원로원은 비밀 회의를 열고 황제에 대하여 무슨 조치를 취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그러한 비밀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에 황제가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회의장에 들어선다. 황제는 원로원 의원중 한 사람의 부인을 그 의원이 보고 있는 중에 강간한다. 황제는 그 의원은 황제의 행동을 막으려 했지만 경비병들에 의해 꼼짝도 하지 못한다. 황제는 또 다른 원로원 의원이 자기에게 불만을 얘기했다고 하여 독약을 마시고 죽도록 한다. 오직 한사람, 젊은 시인인 애국적인 스키피오만이 황제의 만행을 비난한다. 스키피오는 칼리굴라가 죽이겠다고 위협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는다.


원로원 회의 장면.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


어느날 황제는 연회에 비너스의 차림으로 나타난다. 달과 결혼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황제는 연회에 참석한 모두에게 자기가 신이므로 경배하라고 강요한다. 한편, 황제의 노예인 헬리콘은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자 하는 음모자 중에서 행정장관인 키레아가 가지고 있는 음모의 증거물을 교묘한 방법으로 손에 넣는다. 그 증거물은 왁스로 만든 무슨 환약같은 것 안에 들어 있다. 칼리굴라는 그 증거물을 받아서 무슨 생각인지 부셔버린다. 그리고 행정장관인 키레아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말한다. 음모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칼리굴라의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에 깊은 인상을 받고 또한 두려워서 어쩔수 없이 칼리굴라를 신으로 간주하여 경배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칼리굴라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한다. 그는 노예 헬리콘이 그에게 달을 가져다 주지 못하자 깊은 절망에 빠지고 죽음에서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음의 위안을 받고자 네명의 시인에게 시를 지어서 발표하라고 명령한다. 시인들이 시를 읊지만 그는 무슨 영문인지 잠시 시를 듣더니 시인 네명을 모두 죽이라고 지시한다. 음모자들은 다시 모여서 황제의 사악한 만행을 도저히 더 이상 볼수 없으므로 그날 밤에 궁전으로 잠입하여 황제를 암살키로 의견을 모은다. 그런데 잠시후에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모두들 목숨을 내건 황제 암살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서 안도한다. 그때 칼리굴라가 모습을 나타낸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은 트릭이었던 것이다. 왕비 키소니아가 칼리굴라에게 제발 마음을 바로 잡고 훌륭한 정치를 하라고 간청하자 그는 키소니아가 자기를 사랑하는 마지막 증거로서 죽으라고 요구한다. 키소니아는 칼리굴라의 손에 죽으라면 죽겠다고 말한다. 칼리굴라는 키소니아의 목을 졸라 죽인다. 칼리굴라가 홀로 남아 있자 음모자들이 힘을 합해서 그를 제압하고 칼로 찔러 죽인다.


광란의 연회장면.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


4막의 이 오페라는 공연시간이 인터발을 포함하여 두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 그만큼 대작이다. 오케스트라도 풀 오케스트라이다. 작곡자인 글라너트는 헨체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가 이 오페라에서 사용한 음악은 구스타브 말러를 느낄수도 있고 알반 베르크, 벤자민 브리튼, 쿠르트 봐일, 그리고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느낄수 있다. 특히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와 '살로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서 칼리굴라가 마지막 장면 직전에 혼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살로메가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것을 연상케 한다. 엘렉트라를 연상케 하는 것은 칼리굴라가 빈번하게 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이외에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후기 낭만주의의 음악을 생각케 한다. 코른골트가 간혹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이다. 결국 이 오페라의 음악은 잔혹하다는 표현보다는 델리카시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아름답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하다. 아무튼 현대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오페라를 듣고 많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칼리굴라의 시와 노래를 숭배하는 궁신들


초연에서 연출자는 정치적으로 우익적인 면모를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우선 무대는 고대 로마가 아니라 현대의 운동경기장으로 설정되었다. 군중들이 집합해 있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군중집회를 갖는 느낌을 준다. 군중들은 작은 노란 깃발들을 흔든다.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일을 환영하는 군중들을 연상케 한다. 죄없는 사람들이 도살 당하는 장면은 프랑코나 히틀러를 생각케 한다. 칼리굴라가 금으로 만든 칼라시니코프 소총(AK 을 들고 휘두르는 것은 사담 후세인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은 가다피를 생각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글라너트와 대본을 쓴 트라이헬은 칼리굴라의 격렬한 과대망상증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가하면 연출자는 칼리굴라라는 인물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를 그의 모습을 통해서 알리는 노력도 기울였다. 즉 처음에는 더러운 의상을 입어서 마치 파멸을 당한듯한 존재로 부이게 했으나 나중에는 회색 양복을 입은 건달 또는 여장을 하고 나타나는 기괴한 폭군으로 그렸다. 그리고 궁정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전문적인 아첨꾼들로 그려 놓았고 한편 죽은 드루실라는 시신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나체로 이리저리 방황하며 칼리굴라를 꿈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광기를 부리는 칼리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