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현대 오페라가 뭐길래?

정준극 2019. 8. 16. 19:25

현대 오페라가 뭐길래?


영어로 Contemporary Opera 또는  Modern Opera 라고 하는 현대 오페라는 도대체 어떤 오페라들을 말하는 것인가? 간단히 말해서 '오늘의 시대'에 만들어진 오페라들을 말한다. 그러면 '오늘의 시대'는 또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음악학자들은 1980년 이후에 작곡된 오페라가 현대 오페라라는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세대(제너레이션)의 기간 동안에 쓰여진 오페라들을 현대 오페라라고 말한다는 설명이다. 오페라 애호가들이라고 해도 현대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그다지 크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전후의 아방 갸르드(전위) 오페라를 현대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방 갸르드만이 현대 오페라이고 다른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현대 오페라는 아방 갸르드 오페라이므로 흥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고전적인 오페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오페라가 반드시 듣기에 어색한 아방 갸르드 오페라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수 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한 세기(1백년) 전에 만들어진 오페라를 현대 오페라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1920년대 이후에 나온 오페라는 현대 오페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오페라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거의 1백년 텀을 두고 새로운 형식의 오페라가 선을 보였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고전과 낭만을 경험하고 이어 베리스모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 세기의 텀을 두고 오페라 형태가 발전을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 오페라라고 해서 반드시 현대의 스토리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는 2차 대전이 끝나던 해인 1945에 만들어진 고전적 현대오페라이다.  '피터 그라임스'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브리튼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작품이다.


돌이켜보건대 20세기가 시작되는 것과 함께 모더니즘(현대주의)이 음악에서도 전통과 기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나온 수세기 동안 견지되어 왔던 음악의 원칙들이 불가피하게 공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상당수 작곡가들은 음악과 대사와 드라마의 공생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쓰는 노력을 했지만 다른 작곡가들은 모더니즘의 유입을 드라마의 틀 안에서 음악의 역할에 대하여 재고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라는 대변혁의 사건이 있었다. 상당수 예술가들은 전위(아방 갸르드)라는 기치 아래에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코자 했다.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주로 젊은 세대의 아방 갸르드 작곡가들이 전통의 오페라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때 까지의 오페라를 시대에 뒤떨어진 예술 형태라고 보았다. 과거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아직도 무언가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오페라 작곡가들을 경멸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과 독일의 한스 베르너 헨체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고전을 중시하는 강경노선의 작곡가들도 오페라의 형식에 있어서 많던 적던 아방 갸르드와 화해하는 제스추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작곡가들도 있었다.


헨체의 '페드라'. 길드홀 학교 무대


현대의 음악은 조성의 붕괴와 함께 스토리를 전하는 능력을 거의 모두 상실하였다. 그러므로 오페라에서 스토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전제조건이 될수 없었다. 음악은 어쨋든 무대 위의 드라마를 지지하고 강화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유지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직선적일 필요가 없었다. 즉, 스토리의 전개가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의 '병사들'(Die Soldaten: 1965)에서 처럼 몇 장면들이 동시에 중복되게 진행될수 있고 해리슨 버트위슬의 '오르페우스의 마스크'(The Mask of Orpheus)에서 처럼 같은 내용의 스토리가 여러 버전으로 소개될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전혀 아무런 스토리도 말해주지 않는 오페라도 나왔다. 필립 글라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을 예로 들수 있다. 한편, 볼프강 림의 '세라핀'(Seraphin: 1995)에서 처럼 텍스트를 모두 삭감하거나  덜어주는 경우도 있다. 


'병사들'. 베를린 코미셰 오퍼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개성이 강한 예술분야에 있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작곡가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형식으로 오페라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심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성도 중요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오페라는 대체로 대단히 값비싼 공연이었다. 우선 성악가만 하더라도 세계의 정상급 성악가들을 섭외하려면 막대한 출연료를 감내야해 앴다. 그리고 사람들의 안목이 점점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어서 이에 따라 무대도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서 눈요기라도 시켜주어야 했다. 그런 입장에서 실험적인 새로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작곡가들은 관중을 생각해서 소규모 오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아무튼 대규모 합창단과 풀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 장시간의 오페라는 무대에서 점점 사라졌고 멀어졌다. 작곡가들은 경제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페라라는 타이틀 보다는 음악극장(Music theater)라는 호칭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단순 오페라의 뿌리는 실상 몬테베르디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몬테베르디의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결투'(Il Combattimento di Tancredi e Clorinda)가 대표적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The Soldier's Tale), 쿠르트 봐일의 '해피 엔드'(Happy End) 등도 그러하다. 이런 '기름빼고 따귀 빼고'식의 오페라는 몇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한두 사람만의 주인공(성악가 또는 배우), 풀 오케스트라가 아닌 실내 앙상블의 반주,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세트로서 대형극장이 아니라 콘서트 홀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페라의 공연에 영화 필름이나 실시간의 비디오 또는 디지탈 전자 테크닉을 통합하는 패션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풍조에서는 오페라와 음악 극장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다.  


몬테베르디의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결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