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오페라의 악역 톱 10

정준극 2019. 8. 23. 05:58

오페라의 악역 톱 10(Ten of the Best Opera Baddies)

오페라 출연자 중에서 누가 가장 악인일까?

BBC 뮤직 매거진이 제시한 오페라 속의 10대 악역


1. 데틀레프 글라너트의 '칼리굴라'(Caligula)에서 칼리굴라 황제

로마 황제라고 하면 대체로 독재로 악명이 높은데 여기에 더해서 말할수 없이 잔인하기까지 한 인물들이 있다. 악명 높은 네로 황제도 있지만 사람들은 칼리굴라를 더 꼽는다. 칼리굴라가 얼마나 못되었느냐 하면 사형을 집행할 때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이도록 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그가 얼마나 안마무인의 독재자였냐하면 그가 아끼는 말을 원로원 의원으로 임명하겠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또 그가 얼마나 사생활이 문란했느냐 하면 그의 누이와 거리낌 없이 관계를 가진 것을 보면 알수 있다. 하기야 고대 사회에서 자기 누이, 또는 심지어 자기 어머니와 관계한 인물들도 더러 있었으니 칼리굴라만을 패륜아라고 말하기에는 거시기하다. 독일의 데틀레프 글라너트(Detlev Glanert: 1960-2004)의 오페라 '칼리굴라'는 알베르 까뮈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로마제국의 3대 황제인 칼리굴라는 정부이며 누이인 드루실라가 죽자 인생이란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후로 그는 궁전에서 무섭고도 잔혹한 행동을 더 서슴없이 한다. 자학적이면서도 음침하고 사악하며 기괴한 행동들을 재미 삼아서 저지른다. 꺄뮈가 그의 소설에서 '칼리굴라는 아무리 황제라고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모멸과 공포에 중독이 되었다. 그는 수많은 살인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가치에 대한 고의적인 부정으로 그러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종국에는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다'라고 썼다.


칼리굴라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


2. 푸치니의 '토스카'(Tosca)에서 스카르피아 남작

스카르피아(Scarpia)는 이탈리아에서 공화제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을 때에 로마의 경시총감으로 왕당파의 핵심이었다. 그러한 그도 음악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인 토스카를 좋아했으니 말이다. 하기야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음악적 재능보다는 미모에 더욱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그보다도 다른 사람을 괴롭힘으로서 쾌락을 찾는 변태일 것이다. 스카르피아는 막강한 권력자로서 토스카와 그가 사랑하는 카바라도시를 희롱하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는 마침내 카바라도시를 석방해 주는 것처럼 속이면서 토스카를 겁탈코자 한다. 푸치니는 이 사악하기 그지없는 스카르피아를 위하여 어떤 파트에서는 지극히 멜로드라마적인,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으스스한 공포의 모티프로 스카르피아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티프는 오페라의 도입부에서도 나오지만 오페라의 전편을 통해서 간간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쨋든 그같은 사악함의 결과는?  주인공인 토스카에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인과응보이고 당연한 처벌이었다.


스카르피아를 죽이는 토스카. 하와이 오페라 극장(HOT). 토스카에 소프라노 질 가드너, 스카르피아에 베이스 바리톤 제이크 가드너. 오페라에서는 살인자와 피살자이지만 두 사람은 실제로 부부였다.


3. 베르디의 '오텔로'(Otello)에서 이아고

이아고(Iago)는 사악한 인간의 대명사이다. 상관인 오텔로가 자기 대신에 다른 사람을 부관으로 임명한데 대하여 악감을 가지고 오텔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데스데모나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이간질을 한다. 결과는? 잘 아는 대로 오텔로는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여 목졸라 죽이고 자기 자신도 후회의 마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만한 비극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의 배후에 이아고가 있다. 이아고는 스스로 천성이 사악하다고 인정한다. 그의 아리아인 Credo in un Dio crudel(나는 잔인한 신을 믿노라)를 보면 그의 심성을 알수 있다. 시인 사뮈엘 테일러 코울릿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이아고에 대하여 '이유없는 악의'(Motiveless malignity)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극적인 영웅인 오텔로의 추락뿐만 아니라 그의 정숙한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또한 무고한 제3자인 카시오까지 파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인간의 심성은 원래 사악한 것이기 때문일까?


이아고 역의 베이스 바리톤 티토 고비


4. 구노의 '파우스트'(Faust)에서 메피스토펠레

악마의 대명사는 메피스토펠레이다.  원래부터가 악마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앞잡이 중의 하나인 메피스토펠레는 노학자인 파우스트를 유혹하여 젊음과 쾌락을 주는 대신에 그의 영혼을 갖기로 한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세상적인 파티와 부질없는 싸움과 순진한 여인의 사랑을 차지하는 일에 정신을 쏟는다. 그로 인하여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긴다. 순진한 처녀 마르게리트도 그에 속한다.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트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은 꽃을 피우지도 못한채 저 세상 사람이 된다. 메피스토펠레는 말할 나위도 없이 자기의 계략에 의한 이런 모든 악행을 즐겨한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피날레는 그렇지가 못하다. 악인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파우스트를 파멸의 길로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 스폴레토 페스티발


5.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에서 돈 조반니

어떤 사람들은 돈 조반니를 이상하게도 흠모하고 있으며 일종의 동정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건 돈 조반니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 조반니는 희대의 호색한이며 살인자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의 부제가 '난봉꾼'(Libertine)인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수 있다. 어느정도의 호색한이냐 하면 그의 하인 레폴렐로가 설명하는 우먼 헌팅의 세부 내역을 보면 알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에서 230명, 프랑스에서 1백명, 터키에서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 무려 1003명의 여인을 농락했다는 것이다. 도합 2064명이다. 돈 조반니는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에 대하여 유별나게 눈독을 들이는 부도덕한 인물이다. 농부 마제토와 방금 결혼한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가 매력이 있어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되어서 마음이 끌려 하마트면 그의 '정복 카달로그'에 포함될 뻔했다. 그런 악행을 저지르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돈 조반니는 결국 그가 살해한 기사장의 유령에 의해 지옥의 불길로 떨어진다. 오페라 '돈 조반니'가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되었을 때 저 유명한 자코모 카사노바도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는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결혼을 앞둔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돈 조반니. 에르빈 슈로트와 이사벨 레너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6.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 구의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 of Mtsensk District)에서 카테리나 이스마일로바

카테리나 이스마일로바는 남편의 무관심 때문인지 또는 천성으로 분방해서인지 남편이 출타 중에 새로온 점원인 세르게이와 불륜을 저지른다. 카테리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시아버지에게 독버섯 음식을 먹도록 해서 살해한다. 이쯤되면 레이디 맥베스라는 별명의 카테리나도 악독한 인물의 반열에 들어가지 않을수 없다. 쇼스타코비치의 이 오페라의 공연은 소련 내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이 오페라가 선을 보이자 스탈린 당국은 이 오페라가 병리적인 자본주의에 분별없는 에로티시즘이 가미되어 있어서 공산 사회주의의 적인 부르조아적 발상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공연을 금지했다. 스탈린 자신도 한마디 했다. 스탈린은 이 오페라를 보고 '서민들의 치정극이 아니라 사회의 혼란을 꾀하는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다가 스탈린 사후에 리바이발 되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테리나(스베틀라나 소즈다텔레바)가 시아버지인 보리스(마네 프레멀리트)에게 독버섯 음식을 먹도록 하는 장면


7.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La Gioconda)에서 바르나바

바르나바는 주역급은 아니지만 그의 역할이 전체에 영향을 준다. 바르나바는 조콘다와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종교재판관의 밀정이다. 그런 그는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조콘다를 좋아한다. 하지만 조콘다는 곤돌라 사공인 엔조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엔조는 다른 지방에서 온 청년이다. 다른 지방에 있을 때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라우라이다. 라우라는 현재 베니스 10인 위원회(또는 종교재판관)의 위원인 막강한 알비세의 부인이다. 엔조는 아직도 라우라를 잊지 못하고 있다. 엔조는 산타 파오르의 공자이다. 사정상 베니스로 도피하여 곤돌라 사공의 일을 하고 있는 처지이다. 바르나바는 조콘다의 약점을 잡기 위해 조콘다의 어머니치에카를 마녀로 몰아 붙인다. 그래도 일이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자 결국은 치에카를 죽인다. 알비세는 부인 라우라가 엔조라는 청년과 사랑하던 사이였다는 것을 알고 불명예라고 생각하여 엔조를 처형코자 한다. 조콘다는 사랑하는 엔조를 구하기 위해 바르나바에게 몸을 바치기로 한다. 조콘다는 바르나바가 어머니 치에카를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콘다는 악마와 같은 바르나바에게 몸을 바치기 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신한다. 바르나바의 악행은 일일히 설명할수 없을 정도이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알비세 궁에서의 가면무도회. 이 때 유명한 '시간의 춤'이 나온다. 라우라는 엔조와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8. 베르디의 '막베스'(Macbeth) 중에서 레이디 막베스

맥베스의 부인, 즉 레이디 맥베스는 참으로 지독한 여인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대로 남편 맥베스를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 맥베스에게 던칸 왕을 죽이라고 강요하지만 맥베스가 마지막 순간에 주저하자 남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직접 던칸 왕을 죽인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경비병의 손에 던칸 왕의 피를 묻혀서 그에게 던칸 왕 살해의 죄를 뒤집어 씌운다. 레이디 맥베스는 마녀들이 남편 맥베스의 친구인 방코 장군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생각하고 불안해 한다. 마녀들은 방코에 대하여 대대로 스코틀랜드 왕들이 이어질 발판이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방코는 결국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사수한 살인자들에 의해 살해된다. 무슨 권력이 그렇게 좋다고 남편이 충성을 바쳐야 할 왕을 죽이고 또한 남편의 친구 까지 죽여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막베스(첼리코 루치크)와 레이디 막베스(안나 네트렙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잠들어 있는 던칸 왕을 죽이려하는 레이디 막베스. 그림


9.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제수알도'(Gesualdo)에서 카를로 제수알도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난 알프레드 슈니트케(Alfred Schnittke: 1934-1998)가 작곡한 오페라 '제수알도'는 실존 인물인 카를로 제수알도의 기이한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카를로 제수알도(Carlo Gesualdo: 1566-1613)는 나폴리 왕국에 속한 베노사의 공자로서 영주였다. 그는 재능있는 작곡가로서 주로 마드리갈과 성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귀족으로서 성품이 고상하였고 영주로서 주민들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하였다. 그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카를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콘차(Conza)의 영주가 되었으며 그런 위치에 있으면 어서 후손을 보는 것이 우선되는 임무였다. 그리하여 카를로 제수알도는 20세 때에 사촌인 마리아 다발로스와 결혼하였다. 마리아는 두번이나 결혼했던 경력이 있었으며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두 아이까지 두었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결혼하면 자녀 생산에 있어서는 과거 실적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원래부터 남자를 밝히는 성격이었는지 결혼하고 나서 얼마후부터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기 시작했다. 그런 불륜이 남편인 제수알도 몰래 2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제수알도는 마리아의 불륜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상 마리아의 불륜은 제수알도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제수알도는 아무래도 마리아가 의심스러워서 사냥을 가서 다음날 온다고 말해 놓고 그날 밤에 몰래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마리아는 정부인 젊은 귀족 화브리치오와 침대에서 딩굴고 있었다. 제수알도는 순간 정신이 어떻게 될수 밖에 없었던지 두 사람을 칼로 난도질하였다. 화브리치오는 칼로 여러번 찔렀는데도 죽지 않자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죽였다. 이어 제수알도는 어린 둘째 아들이 불륜에 의한 소생이라고 믿어서 아이를 집어 들어서 벽에나 내동이쳐 죽였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를 죽이는 것을 말리는 유모도 칼로 찔러 죽였다. 그런 연후에 하인들을 불러 두 남녀의 시신의 사지를 절단해서 집앞에 놓아두어 모두가 보게 했다. 제수알도는 마리아의 아버지, 즉 장인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장인을 오라고 해서 역시 죽였다. 그후 제수알도는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여 지내다가 47세 때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기이하고 기막힌 이야기를 담은 것이 오페라 '제수알도'이다. 작곡가로서 제수알도만한 살인자가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작곡가이면서 희대의 살인자인 카를로 제수알도. 그의 마드리갈 악보는 피에 얼룩져 있다.


10.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Hänsel und Gretel)에서 마녀

마녀가 등장하는 오페라는 여러 편이 있다. '멕베스'(Macbeth)에서는 마녀들이 세명이나 나온다. '로엔그린'(Lohengrin)에서는 오르트루트가 사악한 마녀로 나온다. '루살카'(Rusalka)에서는 제지바바라는 마녀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마녀들은 사람을 잡아 먹지는 않는다.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는 어린이들을 잡아 먹는다. 뜨거운 물에 삶아서 먹는다. 헨젤과 그레텔은 집에서 우유를 쏟질렀다는 이유로 엄마에게서 야단을 맞고 숲으로 산딸기나 따러 나간다. 두 아이는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예쁘게 생긴 집 한채를 발견한다. 생강과자와 캔디로 만들어진 집이다. 그 집에는 오싹한 모습의 할머니가 살고 있다. 마녀이다. 마녀는 피곤하고 배고픈 헨젤과 그레텔을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한다. 마녀는 헨젤을 삶아 먹을 작정이다.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생각한 그레텔이 마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화로 가까이 오게 한 후에 화로의 문을 열고 마녀를 그 안으로 힘차게 밀어 넣는다. '헨젤과 그레텔'은 해피 엔딩이지만 숲속 과자의 집에서 만난 흉악한 마녀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녀에게 잡힌 헨젤과 그레텔. 에드먼튼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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