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톰 치풀로의 '거부된 영광' - 282

정준극 2019. 9. 6. 13:38

거부된 영광(Glory Denied)

톰 치풀로의 2막 오페라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포로였던 베트남 전쟁의 짐 톰슨 대령 이야기


 톰 치풀로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동안 전쟁포로의 생활을 했던 사람이 있다. 베트남 전쟁의 영웅 플로이드 제임스 톰슨(짐 톰슨: Floyd James ThompsonL 1933-2002) 대령이다. 짐 톰슨은 1933년 뉴저지의 버겐필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버스 운전사였다. 짐은 1951년에 버겐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마을의 A&P 수퍼마켓의 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56년 6월에 징집되어 미육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짐은 1960년에 1년 동안 한국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잠시 복무하다가 1963년 12월에 소령으로서 베트남 전선에 투입되었다. 톰슨 소령은 1964년 3월 26일 정찰기를 타고 정찰임무를 수행 중에 베트콩의대공포에 비행기가 격추되는 참사를 맞았다. 톰슨 소령은 뺨에 총탄이 스쳐지나가는 부상을 입었으며 비행기가 격추되는 충격으로 척추가 손상되었다. 비행기 조종사 등은 전사한 것 같으며 톰슨 소령만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 톰슨 소령은 베트콩에게 체포되어 정글 속의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미군은 비행기가 격추되자 생존자를 수색하였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다. 톰슨 소령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곧바로 워싱턴으로 보내졌고 다음날인 3월 27일 미군의 장교가 뉴저이에 있는 톰슨의 집을 방문하여 부인 알리스에게 실종사실을 전하였다. 그때 부인 알리스는 임신중이었다. 그러나 실종소식에 충격을 받아 바로 그날 아이를 조산하였다. 아이는 다행히 건강한 상태였다.


9년동안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톰슨 소령이 성조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톰슨 소령은 베트콩의 포로가 되어 온갖 고문을 다 당하였고 더구나 음식을 주지 않아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베트콩은 톰슨 소령이 고위 장교인 것을 이유로 줄곧 독방에 가두었다. 톰슨 소령은 그로부터 5년 동안 미군 포로는 물론 미국인을 단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톰슨 소령은 1973년 3월 16일 미군의 Operation Homecoming(홈컴잉 작전)으로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만 9년에서 열흘이 빠지는 기간 동안 베트콩의 포로로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미군이 적국의 전쟁포로로 잡혀 있었던 가장 긴 기간이었다. 톰슨은 미국으로 귀환하였으며 중령으로 진급되었고 제대할 즈음에는 대령이 되었다. 오페라 '거부당한 영광'은 톰슨이 미국으로 귀환한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이다. 톰슨이 증언하고 구술한 내용을 종군기자 출신인 톰 필포트(Tom Philpott)가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것을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거의 1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톰슨은 마침내 귀환하여서 미국으로 돌아왔으나 미국이 어쩐지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고 가족들도 자기 식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 처럼 느껴진다. 톰슨은 또 하나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 나날을 지내야 했다. 사회와 가족이 전쟁에서 돌아온 장병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 얘기가 오페라에서 소개된다.


베트남 정글 속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9년을 지낸 톰슨 소령.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피츠버그 오페라


여기서 잠시 짐 톰슨이 남긴 여러 말들 중에서 하나만을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전쟁에서 졌다고 말합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갔습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계속 자유롭게 남아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월남(Souith Vietnam)이 자기들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명예스럽게 그리고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짐 톰슨에 대한 책을 펴낸 톰 필포트는 짐 톰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부에 대하여 어떤 신랄한 감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전 선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더라도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심각할 정도의 내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 톤슨 소령은 미국의 군인으로서 삶에 대하여 진실하였다. 예를 들면 첫 사랑에 대하여 진실했던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동안 포로 생활을 했던 짐 톰슨은 5년 동안 독방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서 지냈고 9년 동안 잔혹한 고문을 겪으며 지냈으며 거의 10년이란 세월동안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억압 당하여 지네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런 것들 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브루클린대학 극장의 무대. 반전 시위등이 영상으로 보여지고 있다.


톰 필포트가 정리하여 펴낸 '거부된 영광'의 가장 중심되는 메시지는 비록 톰슨이 베트남에서 무수한 고통을 당하였지만 끈질기게 버티어 나갈수 있었던 것은 고국의 집에 남아 있는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톰 치풀로(Tom Cipullo: 1956-)가 음악을 맡은 오페라 '거부된 영광'의 약간 다른 내용을 품고 있다. 톰슨과 그의 아내 알리스 사이의 내적이면서 평행선적인 갈등과 투쟁을 그렸고 또한 톰슨이 베트남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에 초점을 두었다고 볼수 있다. 톰슨은 조국에 돌아왔지만 그 조국에서는 미국의 병사들이 베트남에서 행한 행동을 반대하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극단주의자들, 민간인들, 그리고 가장 좌절감을 갖게 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그런 반대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보다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의 아내가 그가 오랜 세월동안 생사를 알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를 잊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톰슨의 아내는 극심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므로서 위안을 받았다. 톰슨과 알리스 사이에는 네 자녀가 있다. 알리스는 아이들 아버지가 집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베트남 실종자의 아이들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정상 가정의 아이들처럼 기르느라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사항도 간과할수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베트남에서의 짐 톰슨


알리스는 남편 톰슨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몇년 동안은 살아 있으리라는 기대로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최악의 경우, 즉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는 중에 미국에서는 어느 틈에 짐 톰슨의 이름이 월남전 실종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으로서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생존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한 인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마다 짐 톰슨의 이름과 함께 오늘로서 몇년 며칠째 실종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알리스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자기 남편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심지어 알리스는 톰슨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은 날 태어난 아들 짐 주니어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얘기해 주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전미국의 영웅인 짐 톰슨이 실종 9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전쟁이 만들어낸 잔혹한 결과였다. 톰슨은 고국에 돌아왔지만 자기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전혀 낯선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가족들도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전혀 낯선 가정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군대는 그렇게 오랜 기간 미국의 병사을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받을 명예를 은닉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톰슨은 베트남의 정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실 적응이 힘들었다. 결론적으로 오페라는 톰슨이 어떻게 사회와 가정에 적응해 가느냐는 사항과 알리스가 그의 과거 행동이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포트 워스 오페라 무대.


등장인물은 네명이다. 짐 톰슨과 아내 알리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짐 톰슨과 알리스이다. 두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는 여러 음성들이 들리지만 무대 뒤에서의 소리이다.


[1막]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동안 적의 포로로 있었던 짐 톰슨은 9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서 있었던 일들을 회상한다. 탈출을 시도했다가 정글에서 붙잡힌 일, 고문을 당한 일, 독방에서 5년이란 세월을 보낸 일, 베트콩의 반전반미 선전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 받던 일 등을 떠 올린다. 그가 그런 고통을 견디며 생명을 부지할수 있었던 것은 뉴저지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여서였다. 아내 알리스와 세 딸들, 그리고 그가 베트남에 올때 알리스의 뱃속에사 자라고 있던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그 많은 시간들을 견디어 내는 힘을 가질수 있었다. 또한 짐은 아내 알리스가 집안 일과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적어 보낸 편지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보는 일, 그리고 언젠가는 아름다운 자기만의 집을 짓는다는 계획으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알리스는 넷쩨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에 남편 짐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알리스는 그런 충격적인 소식 때문에 결국은 진통이 시작되고 바로 그날 넷째 아이를 출산한다. 네 자녀 중에서 유일한 아들이다. 알리스는 남편 짐의 소재와 상태에 대하여 공연한 상상을 하는 것을 애써서 부정하며 지낸다. 그러다가 알리스는 집안에 남편이 없다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서, 또는 젊은 여성으로서 생리적인 욕구 때문인지 해롤드라고 하는 남자와 만나 관계를 갖게 된다. 얼마후 알리스는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눈빛이 곱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서 해롤드를 따라서 매사추세츠주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죽었다고 말한다. 알리스는 짐의 이름이  실종자 명단에 공공연히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1년, 2년,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으므로 당연히 죽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육군 당국은 짐 톰슨의 이름을 계속 실종자 명단에 올리고 있다. 알리스는 짐을 아는 사람들이 실종자 명단을 보고 알리스에게 연락하여서 혹시 무슨 새로운 소식이 있느냐고 묻는 것에 지친다. 그래서 아예 짐을 잊고 싶은 심정이다.


네명의 출연진. 젊은 시절의 짐과 알리스, 오늘날의 짐과 알리스이다.


정부에서는 월남전에서 포로가 된 병사들의 가족에게 POW(전쟁포로)라고 적은 팔찌를 준 일이 있다. 당시에는 그 팔찌가 전쟁포로들을 돕자는 의미에서 일종의 연대의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알리스는 그것도 싫어하였다. 알리스는 남편 짐이 전사자로 발표되기를 희망하였다. 실종자로 되어 있으면 생존자로 간주되어 어떤 법적인 행동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재혼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자녀들의 법적인 위상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종자라고 하면 언젠가 살아서 돌아 올수도 있기 때문에 전사자 가족에게 주는 연금 등 보훈 프로그램에도 포함되기가 어렵다. 한편, 베트남의 정글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짐은 시편 23편을 읽으면서 위안을 찾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추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게 하심이라. 즈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를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이다.


포로 수용소의 짐.


[2막]  마침내 여러 명의 미군 포로들이 베트남으로부터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온다. '오퍼레이션 홈컴잉' 덕분이다. 짐도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펜타곤은 가장 오랜기간 포로로 있었던 군인으로 짐 톰슨 대신에 에베레트 알바레스라는 사람을 선정하여 표창한다. 그래도 짐은 개의하지 않았다. 월남전을 종식하는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함께 짐은 리챠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무사 귀환을 치하하는 서한을 받는다. 한 장의 종이가 9년간의 포로 생활을 원점으로 돌려 놓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짐을 따듯하게 맞이한 것은 알리스였다. 이제는 다 커버린 네 아이들은 짐을 보고 낯설어하며 이상한 사람처럼 대한다. 알리스는 짐에게 지난 9년 동안 너무나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며 어쩔수 없이 어떤 남자와 관계를 가졌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짐이 원한다면 자기를 생각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짐은 알리스의 존재가 베트남 정글에서 살아 남을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인 것을 생각하고 알리스에게 오히려 자기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자기에게는 누구를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을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지내던중, 아무리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가 없을수 밖에 없지만 짐은 알리스가 그가 생각하고 있던 예전의 아내 알리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그 때문에 알리스와 다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알리스는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혼자 지낸 것을 말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해해 달라고 다시금 강조한다. 한편, 짐은 마을의 영웅으로 알려져서 교회에서 간증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예전에 짐과 알리스가 결혼식을 올렸던 바로 그 교회이다. 짐은 그가 결혼식을 올릴 때에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것을 회상하고서 이제라도 그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알리스는 더 이상 희생이 되고 또한 더 이상 행복을 찾을수 없다고 생각하여 짐을 떠난다. 아이들도 뿔뿔이 헤어진다. 그로부터 몇년이 또 지난다. 짐은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며 홀로 살고 있다. 짐은 가족으로부터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절망의 생활을 하고 있다. 짐은 지난날 자기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투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내 알리스와의 갈등을 겪는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