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피터 브룩스의 '카르멘의 비극' - 283

정준극 2019. 9. 6. 13:39

카르멘의 비극(La Tragédie de Carmen) - The Tragedy of Carmen

피터 브룩스 제작, 마리우스 콘스탄트 작곡


피터 브룩스(왼편)와 마리우스 콘스탄트


미국의 저명한 비교문학자이며 현재는 예일대 명예교수인 피터 브룩스(Peter Brooks: 1938-)는 수많은 비소설과 소설, 그리고 논문을 남긴 작가이다. 대표적인 비소설로는 '누가 프로이트인가?'(Whose Freud?), '파리 폐허의 플로베르'(Falubert in the Ruins of Paris), 그리고 이번에 소개하는 '카르멘의 비극'이 있다. '카르멘의 비극'은 1981년 피터 브룩스의 아이디어로 창조되었다. 프로스퍼 메리메 원작의 '카르멘'은 프랑스의 뛰어난 작곡가인 조르즈 비제에 의해 1875년에 4막의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피터 브룩스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키로 결심하고 대본가 장 클로드 캬리에르(Jean-Claude Carrière)와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인 마리우스 콘스탄트(Marius Constant: 1925-2004)와 협동하여 실내 오페라 성격의 '카르멘의 비극'을 완성하였다. 비제의 '카르멘'의 수정버전이라고도 볼수 있지만 비제의 기념비적인 음악들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냈다고 할수 있다.


사고를 쳐서 붙잡혀 온 카르멘을 돈 호세가 카르멘의 매력에 빠져서 풀어주고자 한다.


'카르멘의 비극'은 비제의 '카르멘'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마리우스 콘스탄트가 원래의 음악들을 편곡하고 수정하고 또는 덧붙여서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다만, 원래 비제의 음악인 카르멘의 '하바네라'(사랑은 길들지 않은 들새와 같은 것),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그대의 축배를 되돌려주려하오), 돈 호세의 '꽃 노래'(당신이 나에게 준 꽃 한송이)는 그대로 사용하였다. 기왕 소개하는 김에 마리우스 콘스탄트를 좀 더 소개하자면 그는 대체로 발레음악으로 명성을 떨친 작곡가 겸 지휘자였다. 발레음악으로는 '셉텐트리온'(Septentrion), '나나'(Nana), 랑에 블루'(L'ange bleu), 그리고 실은 '카르멘의 비극'(1981)도 발레음악의 범주에 넣을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드라마음악도 여러 편을 작곡했는데 대표적으로는 TV 시리즈인 '트와일라이트 존'(Twilight Zone)의 주제음악을 작곡한 것이다. 그리고 드비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를 바탕으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카르멘과 돈 호세와 미카엘라. 이들은 관객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


'카르멘의 비극'은 1983년 파리의 아레나처럼 생긴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Theatre des Bouffes du Nord)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실내오페라 스타일이어서 본래의 '카르멘'과는 규모가 판이하게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네명뿐이다. 카르멘, 돈 호세, 에스카미요, 미카엘라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제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합창이 없다. 그저 네명의 주역들이 무대를 장식할 뿐이다. 오케스트라도 필요하지 않다. 사실상 피아노 한대만 있으면 된다. 대사부분은 원작인 메리메의 '카르멘'의 실제 대사들을 인용하여서 원작의 인스피레이션을 좀 더 느낄수 있도록 했다. 말하자면 보다 열정적인 면으로 압축하였고 보다 인간적인 그리고 섹스에 마음을 태우는 그런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고 대본은 비록 오페라의 무대가 스페인의 세빌리야이지만 원래 오페라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었고 영화에서도 인용되었다.


'카르멘의 비극' 포스터


전체 제작자인 피터 브룩스는 오페라 '카르멘'의 불필요한 껍질들은 벗겨내고 핵심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플롯으로 기획했다. 그렇지만 피터 브룩스는 의상이나 무대장치, 그리고 오케스트라는 비제의 '카르멘'과 차이가 없게 했다. 물론 다른 장소에서의 공연에서는 연출자에 따라 시기와 장소의 변화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비제의 '카르멘'은 공연시간이 거의 두시간 반이나 걸리는 것이지만 피터 브룩스는 압축하여서 80분, 즉 1시간 20분 짜리로 만들었다. 주인공인 카르멘은 단순히 남자들과 시시덕거리는 담배공장 여공이 아니라 육감적인 마녀처럼 그렸다. 마녀가 아니더라고 적어도 마법을 할수 있는 여인의 이미지로 그렸다. 카르멘은 자기를 만나는 뭇 남자들을 유혹하여 결국은 '비극'에 도달토록하는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는 여인으로 그렸다.


카르멘과 돈 호세


줄거리는 비제의 '카르멘'과 다를바가 없다. 군인인 돈 호세는 집시 여인인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카르멘은 처음에는 돈 호세의 순진함에 마음을 두지만 나중에는 돈 호세의 질투심에 피곤하여서 다른 사람, 즉 투우사인 에스카미요에게 간다. 에스카미요는 투우를 하다가 죽는다. 그리고 돈 호세는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인다. 피터 브룩스의 '카르멘의 비극'에서는 카르멘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주고 있다. 카르멘은 즈 멩 푸(Je m'en fous)스타일의 여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는 다른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독립심이 강하다는 성격이라는 얘기다. 거친 밀수꾼 남자들 틈에서 지내기 때문에 반항적인 기질이 있는 것도 간과할수 없는 사항이다. 그러면 돈 호세는 어떤 인물인가? 터프한 직업군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간 애인을 죽일만큼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성격임에는 틀림없다.


돈 호세와 에스카미요의 결투


피터 브룩스의 '카르멘의 비극'에서 에스카미요는 투우사가 아니라 장교로 나온다. 시기는 프랑코의 파치스트 독재가 시작되던 시기이다. 돈 호세는 무슨 일 때문에 군인으로서의 명예가 실추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병사이다. 그는 마음 속에도 피를 묻히고 있지만 실제로 손에도 묻히는 사람이다. 돈 호세는 캬바레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카르멘을 길에서 살해한다. 마치 국민주의 병사들이 나라의 이곳저곳에서 행하였던 그런 식의 살해였다. 돈 호세는 이제 과거의 경험을 되새겨 보는 것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무대의 배경에는 전쟁과 그로 인한 후유증이 필름으로 투영된다. 오리지널 '카르멘'에서 합창이 나오는 장면들을 필름으로 대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관객들은 돈 호세의 연혁을 통해서 강력한 운명의 힘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실은 카르멘의 카드 점으로부터 더 강한 운명의 힘을 느낀다.  


캬바레에서의 카르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