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샤를르 르코크의 '마담 앙고의 딸' - 290

정준극 2019. 9. 6. 13:49

마담 앙고의 딸(La fille de Madame Angot)

설리반의 'H.M.S. 피나포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보다 더 인기를 끈 작품

샤를르 르코크의 3막 오페라 코미크


작곡 중인 샤를르 르코크


샤를르 르코크(Charles Lecocq: 1832-1918)라고 하면 요즘에는 별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세기말에는 파리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를 대표하는 뛰어난 작곡가로서 대단한 인기를 끈 사람이었다. 그의 대표작이 '마담 앙고의 딸'이다. '마담 앙고의 딸'은 당시의 오페라 코미크 또는 오페레트들이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과는 달리 보통 사람들의 훈훈한 사랑의 이야기여서 19세기를 마무리하는 30여년 동안 유럽 각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코미크였다. 당시에 프랑스에서는 로베르 플랑케트의 '코르느비유의 종'이라는 작품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마담 앙고의 딸'은 그보다 훨씬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예를 들어 영국이나 오스트리아의  코믹 오페라들보다 더 인기를 끌었다. 즉, 영국의 설리반의 H.M.S. 피나포어 보다 더 인기를 끌었고 비엔나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Die Fledermaus)보다 더 자주 공연되었다. '마담 앙고의 딸'은 오페라의 장르로 볼때 오페라 코미크에 해당하지만 오페라 부퐁, 오페라 부파, 오페레트(오페레타), 코믹 오페라, 뮤지컬 티어터 등과 성격상 큰 차이가 없다. 오페라 코미크라고 해서 반드시 코믹한 내용의 작품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오페라 코미크는 18세기와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유행하였던 오페라 작품들을 통틀어서 일컫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비제의 비극인 '카르멘'이나 마스네의 비극인 '마농'도 오페라 코미크에 속한다.


'마담 앙고의 딸' 포스터 그림. 마담 앙고의 딸인 클레어레트와 여배우 랑어의 말다툼 장면.


파리에서 태어난 샤를르 르코크는 파리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고 그후 오페레트와 오페라 코미크의 작곡자로서 등단하였다. 그는 프랑스 오페레트 또는 오페라 코미크의 대부라고 할수 있는 자크 오펜바흐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2선으로 물러나게 되자 그의 뒤를 이어 명실공히 프랑스 오페라 코미크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1870년대와 1880년대 초반에는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를 주름잡는 인물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는 40여편의 오페라 코미크를 남겼으나 '마담 앙고의 딸'을 비롯하여 한두편 만이 오늘날까지 공연되고 있을 뿐인 것은 유감이다. 샤를르 르코크의 음악적 재능은 실로 파리음악원 시절부터 당당했다. 1856년 그는 비제와 함께 오펜바흐 작곡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때의 작품은 '차 꽃'(Fleur-de-Thé)였다. '마담 앙고의 딸'은 파리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젊고 예쁜 아가씨인 클레어레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클레어레트는 부드럽고 상냥한 미용사인 퐁포네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젊은 시인으로서 부정과 폭력에 반항적인 피투를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당시에 프랑스 코믹 오페라들은 대체로 미풍양속은 생각하지 않는 사치스럽고 외설스럽기까지 한 것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담 앙고의 딸'은 그런 스타일과는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보다는 더 점잖은 다른 나라에 수출될수 있었다. 그래서 '마담 앙고의 딸'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심지어는 이탈리아로까지 진출할수 있었다.


클레어레트와 퐁포네의 결혼 준비


역사적으로 볼때, 프랑스 제2제국 시기에는 자크 오펜바흐가 프랑스의 코믹 오페라의 판도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르코크와 같은 젊은 작곡가는 이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1870년에 프러시아와 프랑스간의 이른바 보불전쟁이 일어났고 프랑스가 패배하여서 결국 프랑스 제2제국은 막을 내려야 했다. 전쟁에서 이긴 프러시아의 요구는 대단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러시아(독일)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오펜바흐는 독일 출신이었다. 그러다보니 대중들은 오펜바흐의 오페레트나 오페라 코믹을 일부러 기피하였다. 오펜바흐는 잠시 추방생활까지 해야 했다. 르코크의 등장은 오펜바흐의 임시적이긴 하지만 기우는 달과 같은 신세와 때를 같이하였다. 전쟁 전에는 르코크라고 하면 '차 꽃'의 작곡가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만 오펜바흐가 자취를 감춘 후에는 르코크의 작품들이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르코크는 전쟁 중에 브뤼셀로 이전하여 살았는데 이 때에 두 편의 오페라를 내놓아서 대인기를 끌었다. 오페레트인 Les cent vierges(백명의 처녀들)였다. 이 오페레트는 브뤼셀에서의 대인기 이후에 파리, 런던, 뉴욕, 비엔나, 베를린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브뤼셀 극장장인 외진 윔베르는 르코크의 '백명의 처녀들'이 대성공을 거두자 르코크에게 또 다른 작품의 작곡을 의뢰하였다.


로잔느 오페라 무대


아마도 브뤼셀의 윔베르의 아이디어에 의해서인지 아무튼 새로운 오페라 코미크의 대본을 맡은 클레어비유 등은 프랑스 혁명 말기에 '5인 위원회'(le Directoire)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잡았다. '5인 위원회'는 1795년부터 1799년까지 프랑스를 통치한 막강세력의 위원회였다. 그런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은 오페라 코미크로서는 낮선 것이었다. 한편,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가공의 인물들이지만 개중에는 혁명시기의 실재 인물들도 포함하였다. '5인 위원회'의 대표인 폴 바라(Paul Barras)는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음성이 무대 뒤에서 들리도록하여 존재감을 과시하도록 했다. 유명 배우인 마드무아젤 랑어(Mlle Lange)도 등장한다. 마드무아젤 랑어는 반정부 활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오페라에서 처럼 그가 5인 위원회의 대표인 바라의 애인이라는 사실은 입증된 것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실제적인 반정부 활동가는 앙즈 피투(Ange Pitou)이다. 사실 그는 뒤마가 그의 소설에서 가공의 인물로 등장시킨 존재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실존한 활동가로 믿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한편, 실제이건 가공이건 피투가 마드무아젤 랑어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도 분명치 않은 사항이다. 오페라에서 반정부 음모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검은 컬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은 피투가 부르는 Les collets noirs(검은 컬러)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담 앙고는 여주인공 클레어레트의 어머니이다. 남다른 기대로 인해서 남들이 무시하지 못하는 시장의 여인이다. 마담 앙고는 실존 인물을 비유한 것이 아니라 대본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혁명시기의 드라마에서는 마담 앙고와 같은 성격의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전혀 낮설지가 않다.


파리의 레 잘레 시장에서. 뒤에는 길로틴까지.


'마담 앙고의 딸'은 1872년 12월 4일 벨기에의 환테지 파리지안느(Fantaisies-Parisennes)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초연 이후 500회의 공연을 기록하는 대성공이었다. 파리에서는 1783년 2월 21일에 테아트르 데 폴리 드라마티크(Théâtre des Folies-Dramatiques)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파리 공연은 초연 이후 무려 411회의 공연이 더해졌다. 파리에서의 성공은 지방 도시에 자극을 주었다. 이후 프랑스의 103개 도시에서 '마담 앙고의 딸'이 무대에 올려졌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마담 앙고라는 이름은 타이틀에 등장하지만 오페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마드무아젤 랑어(Mlle Lange: S). 배우 겸 5인 위원회 리더인 폴 바라가 총애하는 여인

- 클레어레트 앙고(Clairette Angot: S). 파리의 레 잘레 시장에서 꽃파는 아가씨. 시장의 미용사인 퐁포네와 약혼한 사이

- 라리보디에르(Larivaudière: Bar). 바라의 친구. 공화국에 대한 음모를 꾸민다.

- 퐁포네(Pomponnet: T). 시장의 이발사 겸 미용사. 마드무아젤 랑어의 전속 미용사이다.

- 앙즈 피투(Ange Pitou: T). 클레어레트를 사랑하는 시인

- 루샤르(Louchard: B). 라리보디에르의 지시를 받는 경찰관

- 아마랑트(Amarante: MS). 시장의 여인

- 자보트(Javotte: MS). 시장의 여인

- 에르실리(Hersillie: S). 마드무아젤 랑어의 하녀

- 트레니츠(Trenitz: T). 후사르의 장교. 당시 유행하던 멋쟁이 한량

- 바베(Babet: S). 클레어레트의 하인. 나중에 장교가 되려고 사관생도가 된다.

- 귀욤(Guillaume: T). 시장의 남자

- 뷔토(Buteaux: B). 시장의 남자


'마담 앙고의 딸' 음반. 마디 메스클레, 베르나르 신클레어 공연.


[1막] 1794년 파리이다. 프랑스를 '5인 위원회'가 통치하고 있는 때이다. '공포 통치'의 시기는 지나갔다. 그렇지만 파리는 아직도 정부를 반대하는 움직임 때문에 위험한 곳이다. 클레어레트는 매력적인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클레어레트는 레잘레(Les Halles) 시장에서 한때 여장부 격이었던 전설적인 마담 앙고의 딸이다. 마담 앙고는 젊은 시절에 대단한 미모로서 한가닥 하였고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시절의 미모가 남아 있어서 뭇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여인이다. 마담 앙고가 사람들로부터 기억되고 있는 것은 남들이 못하는 로맨스를 했다는 점도 있지만 무슨 일이던지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하여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 앙고인데 딸 클레어레트가 겨우 세살 일때에 세상을 떠났다. 그후 클레어레트는 시장 사람들의 손에 컸다. 시장 사람들은 돈을 모아서 클레어레트를 좋은 학교에 보냈고 좋은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리하여 클레어레트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되었다.


시장의 여인들


시장 사람들은 클레어레트와 퐁포네와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퐁포네는 시장에서 남자들에게 이발을 해 주지만 주로 여자들의 머리를 가다듬어 주는 유능한 미용사이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착하게 대하기 때문에 모두들 '거 참 관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청년이다. 그런데 문제는 클레어레트가 퐁포네를 별로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클레어레트는 앙즈 피투라는 젊은 시인을 사랑하고 있다. 피투는 박력있는 청년이다. 그리고 정부가 잘못 하고 있다면서 반정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당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 피투가 최근에 쓴 노래 가사로서 Jadis les rois(옛날 임금님들)라는 것이 있다. 내용인즉 인기 배우인 마드무아젤 랑어가 애인인 바라 몰래 바라의 친구인 라리보디에르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것이다. 아직 노래가 시중에 유통이 되지는 않았지만 피투가 쓴 가사이기 때문에 한번 퍼지면 많이 불려질 것이다. 바라는 5인 위원회의 리더로서 막강한 실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옛날이라면 왕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바라의 친구가 라리보디에르이다. 하지만 라리보디에르는 실은 바라의 '5인 위원회'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라리보디에르는 피투라는 시인이 자기와 랑어가 그렇게 그런 사이라는 내용의 노래가사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어서 피투에게 사례를 하겠으니 노래 가사를 없애 달라고 간청한다. 그런 소리를 들은 클레어레트는 피투에게 '당신은 피끓는 시인인데 그런 압력에 굴복하면 안됩니다'라면서 가사를 없애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클레어레트는 피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기가 그 노래를 불러서 널리 퍼지도록 할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클레어레트도 피투와 마찬가지로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퐁포네와의 결혼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클레어레트가 마침내 그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불렀고 생각대로 대단한 인기를 끈다. 이와 함께 클레어레트는 당국의 수배를 받게 되어 퐁포네와의 결혼을 어쩔수 없이 연기된다.


반정부 운동의 와중에서. 레탕 극장(Theatre l'Etang)


[2막] 랑어는 시중에서 자기와 관련된 노래가 불려진다고 하니까 도대체 누가 왜 노래로 자기를 공격하는지 궁금해서 노래 부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한다. 클레어레트가 랑어의 저택에 도착한다. 랑어는 노래 부른 사람이 다름 아니라 여학교 다닐때 아주 친했던 클레어레트인 것을 알고 놀란다. 한편, 클레어레트와 결혼을 갑자기 못하게 된 퐁포네는 속이 상해서 가사를 쓴 사람은 실은 앙즈 피투라는 사람이며 클레어레트는 무죄라고 주장한다. 그 얘기를 랑어가 듣는다. 랑어는 피투를 알고 있었다. 아주 매력적인 청년이라고 생각되어서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랑어는 클레어레트와 피투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싶어서 피투를 초대한다. 피투가 랑어의 저택에 도착해서 보니 클레어레트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감춘채 의례적인 얘기만 나눈다. 랑어는 두 사람이 별다른 관계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라리보디에르는 랑어가 시인 피투를 집으로 초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질투심에서 랑어에게 따지러 간다. 랑어는 라리도디에르에게 피투는 여기 있는 클레어레트와 사랑하는 사이이며 오늘 밤에 열릴 반정부 음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마음을 놓는다. 클레어레트가 가만히 보니까 랑어가 피투를 은근히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고보니까 피투도 랑어와 즐거운 듯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클레어레트는 아무래도 무슨 수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반정부 음모자들이 약속된 시간에 나타난다. 한참 의논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후사르 군인들이 랑어의 집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랑거는 급히 음모자들의 상징인 검은 컬러들을 수거해서 감춘다. 그리고 음모자들의 모임은 유쾌한 무도회로 바뀐다. 후사르 경기병들도 무도회에 함께 참여해서 즐겁게 춤을 춘다. 그래서 음모자들의 모임은 자연스럽게 의심을 받지 않는다.


오페라 코미크의 무대


[3막] 클레어레트는 랑어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 클레어레트는 시장 사람들을 무도회에 초대한다. 그리고 랑어와 피투도 초대한다. 랑어가 피투에게 초대 편지를 보내고 피투도 랑어에게 초대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만들어서 두 사람에게 보낸다. 가면무도회이지만 랑어와 피투는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가면을 쓰지 않은채 참가해서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본 라리보이에르가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지금 그런 속셈을 보이면 바라에게서 랑어를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참는다. 한편, 클레어레트와 랑어는 서로의 감정이 폭발하여서 말다툼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의 듀엣이 재미있다. 클레어레트는 아무래도 무슨 변환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퐁포네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와서 '저는요, 변덕스러운 피투보다는 착실한 퐁포네가 더 좋아요'라고 선언한다. 피투는 클레어레트의 어머니인 마담 앙고도 로맨스가 여러번이나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서 클레어레트가 언젠가는 자기에게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1943년 리옹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