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테렌스 블랑샤르의 '챔피언' - 287

정준극 2019. 9. 6. 13:45

챔피언(Champion)

테렌스 블랑샤르(Terence Blanchard)의 2막 10장의 재즈 오페라

세인트 루이스 오페라극장(OTSL)과 재즈 세인트 루이스(Jazz Saint-Louis)의 합작


재즈 트럼페터이며 작곡가인 테렌스 블랑샤르


세상에 별별 주제의 오페라가 다 있지만 이번에는 권투에 대한 오페라가 나와서 관심을 끌었다. 아마 체육 종목을 오페라의 주제로 삼은 것은 이것이 처음인듯 싶다. 웰터급 챔피언인 에밀 그리피스(Emile Griffith: 1938-2013)의 권투생활을 내용으로 삼은 실화이다.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흑인 권투선수 에밀 그리피스는 프로 권투선수로서 세계 웰터급과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그는 프로 전향후 112전을 치루었으며 그중에서 85승을 거둘만큼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오페라 '챔피언'은 재즈 트럼페터로 유명한 뉴 올리언스 출신의 테렌스 블랑샤르(Terence Blanchard: 1962-)가 음악을 맡았고 대본은 중견 극작가인 마이클 크리스토퍼(Michael Cristofer: 1945-)가 맡은 작품이다. 마이클 크리스토퍼는 1977년에 Shadow Box로 드라마 분야 퓰리처상을 받은 인사이다. 테렌스 블랑샤르는 재즈의 전설이라고 할만큼 독보적으로 재즈음악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가 네번이나 그래미상을 받은 것을 보면 얼마나 훌륭한 재즈음악가인지 알수 있다. 그는 영화음악도 다수 작곡하였는데 가장 최근에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Black or White일 것이다. 현재 그는 보스턴의 커클리 음악대학(Berklee College of Music)의 교수로서 재직하고 있다.


실존 인물인 에밀 그리피스


'챔피언'에는 '재즈 속의 오페라'(An Opera in Jazz)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새로운 감각으로 오페라와 재즈를 한데 묶은 작품이다. 작곡자인 블랑샤르는 '재즈 오페라'가 아니라 '재즈 속의 오페라'라'라는 부제를 택하였다. 2막 10장으로 구성된 '챔피언'은 2013년 6월 세인트 루이스 오페라 극장(Opera Theater of Saint Louis: OTSL)과 재즈 세인트 루이스(Jazz Saint Louis)가 협동한 가운데 OTSL에서 초연되었다. '챔피언'은 권투의 세계 챔피언으로서 명예를 획득하였지만 1962년도 시합에서 상대방인 베니 페이렛을 죽게 만들자 자책감에 빠진 에밀 그리피스의 방황하는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 양성애자로서의 에밀 그리피스의 고뇌도 덧붙여 소개된다. 테렌스 블랑샤르의 음악은 재즈 일색이다. 재즈 솔로, 재즈 트리오, 재즈 오케스트라, 그리고 가스펠 코러스가 등장한다. 어떤 연주는 비디오로서 무대에 비쳐주는 연출방식이 채택되었다. 소울 스타일의 음악은 주인공 그리피스의 승리와 투쟁이라는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음악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페라 '챔피언'은 2014년도 국제오페라상의 마지막 5개 후보작품에 들어갔었다.


시합에 나서는 에밀을 격려하는 에밀의 어머니와 트레이너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초연에서 에밀의 어머니 역할은 드니스 그레이브스(Denyce Graves)였다.

- 에밀 그리피스(Emile Griffith: B). 젊은 시절의 에밀 그리피스는 베이스 바리톤이 맡는다.

- 에멜다 그리피스(Emelda Griffith: MS). 에밀의 어머니

- 하위 앨버트(Howie Albert: Bar). 에밀의 트레이너

- 케이시 헤이간(Kathy Hagan: MS). 주점(바)의 여주인

- 베니 키드 페이렛(Benny 'Kid' Paret: T). 권투 선수. 그의 아들 베니 페이렛 주니어도 테너이다.

- 루이스 로드리고 그리피스(Luis Rodrigo Griffith: T). 에밀을 돌보아 주는 에밀의 양자

- 세이디 도나스트로그 그리피스(Sadie Donastrog Griffith: S). 에밀의 사촌. 나중에 에밀과 결혼한다.

- 리틀 에밀(Little Emile: boy S). 어린 시절의 에밀

- 링 아나운서(Ring Announcer: T). 이밖에 합창단으로서 기자들, 사진사들, 모자 만드는 사람들, 권투 체육관의 사람들, 카리비안 퍼레이드를 벌이는 사람들, 드랙 퀸스(Drag queens: 여장을 좋아하는 호모들).


에밀과 캐리비안 퍼레이드를 벌이는 사람들


[1막] 뉴욕의 롱 아일랜드의 헴스테드에 있는 에밀 그리피스의 아파트이다. 에밀은 옷을 입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에밀은 치매(디멘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은퇴한 권투선수들에게는 치매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 이를 특별히 '권투선수의 치매'(Boxer's Dementia)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에밀은 지난 날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마치 유령에 쫓기는 듯 고뇌에 시달리고 있다. 에밀의 과거가 플래쉬백처럼 무대에 보여진다. 에밀이 양자로 삼은 루이스가 에밀에게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어서 준비하라면서 옷 입는 것을 도와준다. 에밀은 오늘 그가 선수시절에 때려 눞혀서 죽게 만든 베니 페이렛의 아들인 베니 페이렛 주니어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장면은 바뀌어서 1950년대로 되돌아간다. 에밀은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세인트 토마스에 살고 있는 청년이다. 에밀은 미국 본토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어머니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가수가 되던지, 농구 선수가 되던지, 또는 모자 만드는 사람이 되던지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꿈을 가지고 있다. 얼마후 에밀은 마침내 뉴욕에 도착한다. 그리고 어머니도 만난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에밀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는 버진 아일랜드에 일곱 명의 아이들을 버려둔채 뉴욕으로 왔기 때문에 에밀을 보고 과연 아들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에밀이 아들 중의 하나인 것을 확인하고는 무척 기뻐한다. 어머니는 에밀에게 하위 앨버트를 소개해 준다. 모자 만드는 사람이다. 하위는 에밀을 보고 모자 만드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체격이 권투선수 하기에 알맞다는 생각을 한다. 하위는 에밀을 프로권투선수로 만들기로 다짐한다. 에밀은 가수가 된다던지 하는 다른 꿈들을 접어 두고 권투선수가 되려고 훈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대단히 재능있는 웰터급 선수가 된다. 에밀은 시합에 나가서 이기기를 반복한다. 때리고 맞는 그런 시합이다. 에밀은 프로 권투선수로서 성공하지만 시합이 끝나면 외롭고 혼란스럽다. 과연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생활인가에 대한 혼란한 심정이다. 에밀을 길을 가다가 맨하튼에서 게이 바를 발견하고는 들어가 본다. 에밀로서는 두렵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에밀을 바의 주인인 케이시가 반겨준다. 에밀과 케이시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이가 된다. 에밀은 케이시에게 어린 시절에 악마가 자기의 몸 속에 들어 왔었다는 얘기까지 한다. 어릴 때에 에밀은 남들보다 힘이 세었다.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로서 사촌인 블랑셰는 에밀의 몸 속에 악마가 들어 있기 때문에 힘이 세진 것이라면서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머리 위에  커다란 벽돌을 올려 놓고 있으라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악마가 벽돌의 무게 때문에 짓눌려서 빠져 나온다는 얘기였다.


무대에서는 음악가가 실제로 권투를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장면은 바뀌어 1962년이다. 에밀은 시합전에 몸무게를 재는 곳에서 상대방인 베니 페이렛을 만난다. 페이렛은 에밀에게 '마리콘'(Maricon)이라면서 조소를 보낸다. 스페인어의 마리콘은 동성애자(호모)를 의미한다. 하위와 단 둘이 있게 된 에밀은 하위에게 '왜 그런지 마리콘이라는 말이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하소연한다. 하위는 권투업계에서는 누구도 마리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싫어한다는 설명만 해준다. 에밀은 남자에게 있어서 마리콘이란 단어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한다. 잠시후 에밀과 베니의 대결전이 시작된다. 베니는 시합을 하면서 에밀에게 마리콘이라는 말을 주절거린다. 에밀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베니를 때리기 시작한다. 첫 7초 동안에 무려 17회의 주먹을 퍼부었다. 베니는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베니를 쓰러트린 에밀


[2막] 세월은 흘러서 현재이며 에밀의 침실이다. 에밀은 옛날에 그가 때려 눕힌 베니의 망령이 되살아 돌아온 것같은 느낌으로 괴로운 심정이다. 다시 1960년대 중반으로 돌아간다. 에밀은 챔피언으로서 세계의 갈채를 받는다. 에밀을 상대할 복서가 없을 정도이다. 수많은 타이틀, 트로피, 그리고 돈, 그러나 에밀은 페이렛의 죽음이 머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괴롭다. 에밀은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살려고 버둥거리지만 페이렛의 망령은 떠나지 않는다. 에밀은 자기의 정체성을 부인하기로 한다. 권투 챔피언이 절대로 아니라 평범한 농부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먼 사촌인 세이디와 결혼까지 한다. 어머니 에멜다가 에밀에게 이러면 안된다고 경고하지만 에밀은 듣지 않는다. 다시 1970년대이다. 에밀은 결혼 후에 정신상태가 바뀐다. 운명이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에밀은 과거의 여러 게임에서 계속 패배했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가 이긴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치명적인 가격을 받아서 쓰러지며 정신을 잃는 그런 생각이다. 에밀은 그러면서 결국 '복서의 치매'라는 정신적 쇼크 상태에 빠진다. 그런 에밀을 하위가 위로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에밀은 그렇게도 의지하였던 하위이지만 하위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제발 떠나라고 소리친다. 에밀은 어머니 에멜다와 아내인 세이디까지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친다. 에밀은 대신에 케이시의 바에서 위로를 찾는다. 어느날 몇명의 불량배들이 바에서 나오는 에밀을 붙잡고 조롱하고 시비를 걸더니 이어 심하게 구타를 한다. 그로 인해서 에밀의 뇌 질환은 더욱 악화된다.


베니는 수많은 시합에서 수많은 상대방을 쓰러트렸다.


장면은 바뀌어 처음 장면이다. 에밀은 불량배들에게 심하게 얻어 맞은 일을 생각하며 그것이 자기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때려 눕혔던 보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에밀을 보고 양자인 루이스가 에밀을 위로한다. 루이스의 노래가 That was long ago?이다. 뉴욕의 센트랄 파크에서 베니의 아들인 주니어를 만난 에밀은 용서를 구한다. 루이스는 베니 주니어에게 그날 밤 베니를 링에서 쓰러트린 이후 에밀은 지금까지 수많은 고통에 휩싸여서 지냈다는 얘기를 해준다. 에밀은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많은 투쟁을 하였으며 이제야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인다. 집에 돌아온 에밀의 귀에는 베니 주니어의 용서의 말이 생각나며 아울러 과거의 수많은 괴로운 일들이 이제야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오페라에서 권투시합을 볼수 있다.


'챔피언'이 처음 선을 보이자 반응은 여러 형태였다. 재작, 연출, 감독, 성악가들의 공연 등에 대하여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에서는 당시 현안으로 되어 있었던 몇가지 사항들과 결부시켜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당시의 현안이라는 것은 게이들에 대한 폭력사태를 말한다. 당시에 마침 농구선수로 유명한 제이슨 콜린스가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표명한 일도 있어서 미국 사회가 떠들석했었다. 제이슨 콜린스는 아마 미국의 메저 스포츠 팀의 멤버로서 처음으로 게이임을 공표한 케이스일 것이다. 게다가 2013년 초에는 미국대법원이 '결혼 방지법'(Defence of Married Art: DOMA)을 통해서 동성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한 사태도 있었다. 이러한 때에 동성애자였던 에밀의 스토리는 일반국민들로부터 거부반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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